페미니스트프리즘,
한국문학을읽는새로운기준
여성혐오,소수자혐오,순문학주의,계몽주의,세계문학상집착
한국문학(장)을떠받쳐온관성과폐습에맞서,
우리세대의‘정치적취향’을탐구할권리
「퇴행의시대와‘K문학/비평’의종말」(『문화과학』,2016)이라는글로한국문학계와인문학계전반에큰반향을일으키며활약해온문학연구자오혜진이첫단독저작을펴냈다.당시그는2015년신경숙표절사건을한국문학비평계의낡은교양과감수성이집합적으로드러난계기로사유해야한다고역설한바있다.이는단순히비평의권위를회복함으로써한국문학(장)을정화할수있다고본당시‘문학권력비판론자’에대한신랄한비판이었다.‘문단권력’혹은‘문학권력’을격렬히비판한논자들조차한국사회의급변하는사회문화적조건을포착하지못한채20세기적계몽주의프레임을답습하고있다는것이다.
문학권력비판론자들조차기민하게의식하지못한그‘변화’란곧새로운문학주체,독자층의출현이다.젊은여성독자를주축으로형성된이들문학주체는페미니즘을비롯한소수자정치가부상하는맥락에서강력하게등장했다.‘강남역여성혐오살인사건’,‘OO계_내_성폭력’,‘#MeTOO운동’,‘#나는페미니스트다’선언,낙태죄폐지를외친‘검은시위’와같은일련의사태를겪으며소수자운동/문화의경험을축적한이들은한국문학(장)의견고한남성중심주의,여성혐오및소수자혐오경향에이의를제기해왔다.이로인해한국문학이자부해온‘보통사람들의민주주의’는모조리심문되는중이다.
『지극히문학적인취향』은한국문학(장)에서감지되는바로그퇴행의징후들을예리하게포착하고,페미니즘과소수자정치에입각해한국문학의새로운기준을모색한결과물이다.1부와2부에서는떠오르는(여성)문학주체들의경험에주목하며‘정상적인것’,‘정당한것’으로승인돼온주류한국문학계의지배질서와기율들을의심해본다.3부는우리가관습적으로상상해온여성서사의모든지점을과감히‘떠나보는’방식으로여성작가들의소설을읽는다.4부에서는한국사회의‘성적배치’와정상성을편향적이고작위적인것으로폭로하는‘퀴어’의문화정치가다뤄진다.마지막5부는용산참사,세월호참사등의사회적참사를따라가며한국사회가관철해온‘공동체’혹은‘공감과애도의형식’을면밀하게살핀다.소설을비롯해극영화,다큐멘터리,웹툰등의디지털매체를가로지르는이비평들을통해우리는문학(성)자체를끊임없이갱신하게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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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체질에관하여:여성혐오,소수자혐오,순문학주의,계몽주의,세계문학상집착……
그렇다면이제이렇게말해야한다.신경숙표절사태그리고그사태가촉발한문학권력논쟁은한국문학계의퇴행적욕망이드러난‘계기’였다고.또한다르게물어야한다.‘문학/비평의타락’이라는손쉬운언표가무엇을감추고있었는지.
한국문학의개탄스러운현실을‘수준미달’의작가신경숙및상업주의와결탁한창비의‘타락’으로돌리는것은심각한전가의혐의가있다.그것이오늘날한국문학이독자를거의다잃어버리고게토화되기까지의상황을충분히설명해주지는않기때문이다.이른바‘K문학’이라는멸칭으로명명되는‘한국문학’특유의‘체질’이여기에큰몫을했다는사실은애써회피되어왔다.
가부장제공동체의번영을위해여성에대한물리적,상징적폭력및도식적재현을필수적으로경유하는한국문학전반의여성혐오,외국인이주노동자및장애인,노동자,성소수자등에대한재현의윤리를고려하지않는소수자혐오,장르문학을철저히위계화함으로써관철되는순문학주의,세계시장진출및세계문학상에집착하는제국주의적욕망및후진국콤플렉스,가족/모성애같은전통적질서수호에만골몰하는폐쇄적보수성,교조주의적“꼰대질”……등으로요약되는이체질들이야말로신경숙표절사건뒤에감춰진심각한퇴행이라할수있다.그리하여오늘날의젊은독자들이한국문학을‘K문학’이라고부를때,그것은바로그‘퇴행적체질’의총체를가리킨다.
‘이야기꾼’이라는칭호로호출된작가천명관과정유정에대한지배적인비평의흐름에서도한국문학의오랜‘욕망’은여과없이드러났다.당시비평계는‘장편소설’이라는양식에강박적으로집착하면서두작가에게열렬한환호를보냈다.실제로천명관과정유정의소설톤과스타일이현격히다른데도,정작그차이는제대로조명되지?았다.두작가의차이를논해야할자리를잠식해버린‘이야기꾼’이라는호칭이환기하는것은무엇일까?
그것은곧‘남성-이야기꾼’모델을중심으로한남성지식인중심의한국문학사전통을자연화하려는욕망이며,나아가‘이야기의세계’를‘남성의세계’로전유하고자하는욕망의표현이었다.여기서핵심은‘남성-이야기꾼’,‘남성-소설가’에대한한국문학의오랜강박이1990년대문학과2000년대문학에대한명백한타자화와맞닿아있다는데있다.다시말해그욕망은‘1990년대문학’과그후예인‘2000년대문학’을‘여성적인것’으로젠더화하고,“방한칸에인물두명만있으면끝나는”“한국작가들의자기고백”으로타자화함으로써충족되는것이다.1990년대문학과2000년대문학의특성을‘이야기/서사없음’으로낙인찍는이방식은“체험이란게학교다녔고연애몇번했고컴퓨터게임에빠져본정도의평범한것”이라는식의특정세대에대한가치평가와도긴밀히연동한다.
한국‘장편남성서사’의신화깨기:누가민주주의를노래하는가
한국문학/비평계가그토록애착심을갖는‘장편남성서사’의세계는어떠한가?이제는거의하나의‘장르’로굳어졌다고해도과언이아닌장편남성서사는두터운독자층을확보한이른바‘거장’중견남성소설가들에의해생산됐다.김훈,이기호,천명관등으로대표되는이중견남성소설가들은장편남성서사의양식으로제각기한국근현대사를서사화한바있다.간첩조작사건이만연한1980년대를다룬『차남들의세계사』(이기호),경제불황이후조직폭력배생태계의홍망성쇠를1990년대‘조폭영화’의문법으로그려낸『이것이남자의세상이다』(천명관),일제강점기혹은한국전쟁기부터1980년대에이르는자신과아버지세대의생애사를한국근현대사와등치시킨다수의장편소설을펴낸김훈까지.
이들남성소설가의작품이야말로한국문학특유의자부심의원천이다.그들의소설은‘개별적인것의진실’을전면화한87년체제이후‘민주화’의결과물로,‘가난한자’‘못배운자’를비롯한‘사회적약자’와‘보통사람들’의삶을조망해왔다.이남성주인공들은계급,학력,인맥,가문,재산등의물질적,상징적자본을소유하지않은하층계급출신으로태어나비루하게살아왔기에가부장의위치를점하지도,지배적남성성을구현하지도못한다.이들은종종역사의파국을경험하며,언제나‘역사의피해자’로등장한다.그‘자기피해자화’야말로서사를추동하는원리인셈이다.국가나정부같은대문자주체혹은재벌,지식인등을중심으로전개되는주류남성서사와는분명차별화되는지점이다.
그러나과연이것만으로충분한가?지배층의번영을기원하는우경화된역사서사혹은주류남성서사에서벗어나있다는사실자체가‘성숙함’을증명해주는충분한알리바이가되는가?그렇다고보기에이비주류남성서사들은너무나위악적이다.그남성주인공들이내세우는‘먹고사니즘’이다른한편여성에대한지배와성별분업을자연화하고정당화하기때문이다.즉남성주인공이자기자신을폭력적인역사에휩쓸리는‘피해자’인동시에‘먹고자고싸야’만하는연약하고무력한존재로형상화할때,거기에여성의자리는없다.
이를테면김훈의소설들이빈번하게묘사하는극도의자연상태,즉국가를잃고난민화된세계에서조차그‘비루함’을알리바이삼아스스로를피해자화하고연민할수있는권리는오로지남성에게만주어진다.말하자면남성은‘밥벌이의숭고함’으로요약되는‘난민의철학’을형성함으로써‘사유하는인간’으로서의존엄성을유지한다.반면여성인물은아무런계보도맥락도없는‘’역사의타자’,‘비역사적존재’로등장할뿐이다.김훈의소설에서여성이언제나‘피,땀,젖’같은‘냄새’,즉‘비체abject’로만환기되는것은결코우연이아니다.
결국스스로를피해자로자리매김하는이일련의남성서사에서눈여겨봐야하는것은,‘역사’나‘민주주의’따위를사유할수있는주체의자리를누가독점하고있느냐이다.의심의여지없이그것은언제나남성의것이었고,이는그간남성만이‘문학적시민권’을거머쥘수있었다는사실에서잘드러난다.지배적남성성을질문에부치고,거대담론의허위성을폭로하는그비판적역사의식은실로시민이자역사적주체로서여성을배제한채성립된것이다.즉,‘누가역사의주체인가?’혹은‘누가역사를역사화할수있는가?’
비평의백래시:누가‘정치적올바름’을두려워하는가
이처럼남성소설가중심의‘장편소설’혹은‘장편대망론’이오랫동안한국문학을점령해왔다는사실로미루어볼때,페미니즘정치학의부상으로‘페미니즘소설’이나‘여성소설가’가각광받고있는최근의흐름은매우고무적인현상이아닐수없다.1990년대와2000년대소설이‘여성적인것’이라는라벨링으로타자화되고,따라서작가스스로‘여성-’,‘페미니즘-’같은호명을염려해야했던과거를뒤로하고이제는‘페미니즘소설’을하나의브랜드로써전략적으로활용하는시대가온것이다.심지어이뉴웨이브는1980년대식의교조주의적진보에매몰돼있던586세대남성평론가들에게도효과적으로각성의계기를제공했다.
그러나중견남성지식인/비평가들의연이은‘페미니스트선언’에걸맞게실제로도남성중심적기율들이급진적으로탈구축됐는지를묻자면,답은부정적이다.이를테면최은영,조남주,강화길등최근크게활약하고있는여성소설가의작품에대한중견남성비평가들의비판이이를잘보여준다.‘진보주의’를표방하는이남성비평가들은자신이가진‘좋은작품’의기준을전혀의심하지않는다.이때이들이‘문학적이데아’로소환하는것은『난쟁이가쏘아올린작은공』같은작품이다.하지만이작품은한편으로여성의섹슈얼리티와성적노동의희생을노동자계급및민족을위해효과적으로승인하는텍스트이기도하다.한마디로훨씬더꼼꼼하고신중한(재)독해가수반되지않는다면,이작품을지금여기에서형성되고있는문학(성)의롤모델로제시하기는곤란하다.
이뿐만이아니다.최근비평계에서다시부상하고있는‘정치적올바름politicalcorrectness’이라는개념은상당히문제적이다.‘페미니즘’이라는라벨링은종종어떤작품과담론을‘문학적인것’의외부로추방하기위한알리바이로활용된다.특히최근비평계에서는‘페미니즘소설’을문학성이현저히결여된,‘소재주의’나‘대중추수주의’에편승한산물로‘후려치는’시도가두드러졌다.다시말해‘페미니즘/퀴어소설’이‘정치적올바름’에구속된것이며,‘정체성정치’에매몰돼있다는것이다.이때‘정치적올바름’은별다른근거없이‘문학적인것’(미적인것)과대립되는것으로상정된다.이런비평들은‘페미니즘소설’이라는호명이하나의스펙트럼으로서개별작품들의고유성을현시한다는점을완전히간과하고있다.
흥미로운것은누구보다열정적으로‘정치적올바름’을외치는주체가다름아닌‘페미니즘소설이정치적올바름에경도되었다고’비판한그들자신이라는점이다.심지어‘페미니즘소설이정치적올바름에경도되었다’는그비판을지탱하는것은‘페미니즘은남성에대한역차별’,‘가해자도일종의피해자’라는흔한비논리다.그러나여성과남성양자의압도적인힘차이는고려하지않은채어느한쪽에경도되지않은‘균형’을주문하는것이과연정당할까.이것이야말로‘정치적올바름’을물신화한결과가아닐까.
‘페미니즘소설’과관련해문제삼아야할것은‘정치적올바름’이아니라해당작품이사회를구성하는다원적주체들의힘과관계를어떻게재현하고있느냐이다.실제로‘정치적올바름’의혐의를강하게받은『82년생김지영』은결코정치적으로올바르지않다.주인공‘김지영’이‘순진하고무고한피해자’라는전형을체화하고있으며,따라서‘희생적인여성의좌절이라는낭만적구도’를벗어나지못하기때문이다.『8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