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구술 기록집)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구술 기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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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하금철

저자:하금철
이사회가쓸모없다고여겨내다버린사람들의이야기를쫓아다니는‘이야기의넝마주이’를꿈꾸는사람.장애인야학교사,‘비마이너’기자등을거쳐,현재한국학중앙연구원박사과정에재학중이다.

저자:홍은전
문제그자체보다그문제를겪는사람에게관심이있다.차별받던인간이저항하는인간이되는이야기를수집한다.《노란들판의꿈》을썼고《금요일엔돌아오렴》《숫자가된사람들》《나를보라,있는그대로》를함께만들었다.

저자:강혜민
인터넷장애인언론‘비마이너’기자이자노들장애인야학교사로활동하고있다.종종연극을하며,기억과이야기,고통과함께사는삶에관심이있다.《섬과섬을잇다2》를만드는데함께했다.

저자:김유미
사진을공부하다가장애인이동권투쟁을접하면서사는게많이바뀌었다.‘비마이너’에서일했고,노들장애인야학에서소식지《노들바람》을만든다.

저자:비마이너(기획)
진보장애언론을표방하며2010년1월15일창간했다.장애운동의현장을기록하고이에대한담론을생산해왔다.현재는장애이슈뿐만아니라빈곤,소수자문제를당사자목소리에기초해보도하는언론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들어가는말어떤소년의대결4

1부수렁에빠진소년들

살기위해돌멩이를들었다15
김성민(가명)구술ㆍ홍은전글
후기‘그시절’을살아낸사람들에관한단상34

살아있는자의사망신고41
김춘근구술ㆍ하금철글
후기기억복원을통한‘인간선언’58

꿀수록불행해지는꿈61
한일영구술ㆍ김유미글
후기예순의소년이겪은울분과억울함87

열다섯번이나탈출을시도했어요89
이대준구술ㆍ하금철글
후기그와함께돌림노래를부르겠다108

2부삶이라는공식에셈해지지않은삶

해일의시간을경험한조개의이야기115
김성환구술ㆍ강혜민글
후기지독한해일의시간,그후137

선한사마리아인은없었다141
김성곤구술ㆍ하금철글
후기한퇴로없는삶에관하여167

여기에있는나는누구입니까173
오광석구술ㆍ강혜민글
후기나에대한흔적찾기195

넝마주이왕초가만난하나님199
현정선구술ㆍ하금철글
후기살아있는하나님들과의만남을꿈꾸며217

눈초리들의감옥221
김창호구술ㆍ홍은전글
후기듣는사람이있어가능한이야기251

부록선감학원함께알기명랑사회,거리의아이들을‘정화’하다ㆍ하금철259
선감학원연표301
추천사한국사회가거쳐온야만의시절에관한보고서ㆍ김동춘303
추천사선감학원,그절망의핵심을직면하기ㆍ최현숙306

출판사 서평

수용시설,청산되지않은일제잔재
강제수용시설의역사는일제강점기로거슬러올라간다.선감학원역시일제의부랑아단속및수용조치를위한감화정책과함께등장했다.선감학원이설립된1942년은일제가태평양전쟁에매진하던시기로,전시군수물자를확보하기위해강제수용된부랑아들을참혹한강제노역에동원했다.선감학원도그런필요에의해세워졌다.1940년경기도지사로부임한일본인스즈카와의지휘하에경기도가현안산시소재의선감도전체를매수하고,선감도주민전체를도외로철거시킨후공식개원한곳이바로선감학원이다.선감학원은‘총후의꿋꿋한황국신민’을연성하겠다는의지를내걸고수용된원생들에게일제에대한충성심을강제하는교육을실시했다.극심한인권유린과노역을견디지못한원생들다수가탈출을시도하고,그과정에서사망하는일이빈발했지만,선감학원은굴하지않고‘전시동원’에매달렸다.
일제의악법은해방이후에도쉽사리사라지지않았다.일제가물러간후에도부랑인단속을위한법령들의효력이유지되었는데,사회적불안을잠재울필요가있다는게그이유였다.구호정책은진지하게고민되지않았고,오로지추방에초점이맞춰졌다.1947년서울사직공원안에설치된부랑아보호소가이를단적으로보여준다.당시서울시는시청사회과직원으로하여금경관을대동시켜부랑아를‘취체’하는활동을벌였다.서울의미화를위한다며부랑아와거지900명을한꺼번에시내에서300리떨어진철도없는곳으로추방하기까지했다.
이보호소는이후1960년서울시립아동보호소로재개소해대대적인수용을시작하게된다.무엇보다도충격적인것은,당시아동보호소에수용된인원중약50퍼센트에달하는아이들의실제부모가생존해있었다는사실이다.그러나행정당국은부모를찾아아이들을돌려보내기보다지방에분산수용하는데열을올렸다.특히1961년에는목포,광주,대전,충주,인천등으로아동들을대거분산시켰다.

죄없는소년들을납치해가둔국가
피해생존자들의증언도이러한정황들을뒷받침한다.그들은국가가부모등이렇다할보호자없이떠도는부랑아뿐아니라단순히길을잃은미아까지강제로납치해시설에수감했다고입을모은다.꾀죄죄한차림으로거리를배회하는소년들을보면묻고따지지도않은채마구잡이로납치했다는것이다.길을잃은아이를발견하면경찰이신원을확인해보호자를찾아주는것이상식이건만,그런절차는전혀이루어지지않았다.서울에있던작은아버지댁을찾아가다가경찰의불심검문에걸려선감학원까지잡혀왔다는한일영씨는당시의상황을이렇게전한다.
“파출소에있는순경같았어요.저한테‘집어디냐’‘어디가냐’하면서집주소를대라고했어요.나는주소는몰라서모른다고했어요.가평에살고가평국민학교에다닌다고했는데,자기네가확인을하려고하면학교에연락해서얼마든지확인할수있잖아요.그런데혼자서왔다고하니까아예믿지를않았던거같아요.저를파출소에데리고있다가바로응암동아동보호소로넘겼어요.자기들도할당이있었는지어쨌는지모르겠지만.나중에아동보호소가서알고보니까다그렇게잡혀온다고하더라고요.웬만큼꾀죄죄하고그러면.”
가족들이버젓이살아있던오광석씨역시길거리를돌아다닌다는황당한사유로경찰에납치되었다.그는자신의스케치북에이렇게썼다.“박정희정권때어린나이에길거리를돌아다니다가일명양아치차라는차에끌려가게되었습니다.멀정이아머니가있고,여동생이있는대도또한어린간난아이동생도.있었는대전길거리에돌아다닌다는이유로고아가된것입니다.”
이처럼아무런죄없이경찰의손에끌려간아이들은아동보호소와이런저런고아원,선감학원등의시설을전전하게된다.그과정에서성과이름이바뀌고,생일이조작되고,소년들은그렇게자신의모든것을잃고완전히다른사람이되어갔다.경찰혹은공무원이납치해간까닭에,가족이실종신고를내더라도별반소용이없었다.
그렇다면거리의소년들을납치감금한국가의그기준은무엇이었을까?도대체어떤기준이었길래공권력의이름으로그런잔악한폭력을휘두를수있었을까?선감학원과관련된각종역사기록들은우리에게뜻밖의사실을전해준다.명확한기준은커녕아이들을납치해수용한원인이너무나모호하게기재되어있는것이다.“생활고,엄격한생활,악우관계,허영심,주위환경의불순”등국가는어린아이들에게서흔히나타나는특성들을과도하게부풀려부랑아의성질로분류했고,그얼토당토않은분류를수용의근거로삼았다.고민의흔적이라고는찾아볼수없는이기막히고‘손쉬운’분류가누군가의귀중한인생전체를파괴한셈이다.

기억은기록을의심하고,기록은기억을부정하고
지금은엄연히‘국가폭력피해’로받아들여지는이‘선감학원’사건에대해털어놓기까지피해생존자들은이루말할수없는고통을겪어야했다.‘선감학원출신’이라는낙인,평생을가도지워지지않는그부끄러움을당당히드러내면서그들이전하고자했던경험은과연무엇일까?이들이끌려간선감학원에서는도대체어떤일들이일어났던것일까?
이책에등장하는아홉명의피해생존자들은하나같이선감학원에서보낸지난날을‘자기자신을상실한시간’으로기억한다.기본적으로인적사항이완전히조작돼호적이말소되는경우가많았는데,다수의생존자들은이런사실조차퇴소혹은탈출이후성인이되어서야알게되었다고한다.심지어선감학원측은모든원생들의생일을선감학원개원기념일인5월29일로기재하는등원아대장을날조해왔다.시설내부에는그흔한시계와달력도없어서원생들은시간에대한감각조차가질수없었다.선감학원에서시간은오로지명령의형식으로고지되었다.아침점호와취침점호,그것이선감학원에존재하는유일한시계였다.
대부분의피해생존자들이자신의(선감학원)입소시기와퇴소시기조차정확히기억하지못하는것은바로그때문이다.이를테면김성곤씨는입소시기와퇴소시기를매번다르게증언하거나,아동보호소의기록과전혀다르게증언했다.한마디로자신의생生에대한기억자체가완전히망가져있었다.이렇듯사회에나와서야자기자신의존재를증명해줄수있는모든공적기록/서류가부재하거나왜곡되어있다는사실을접한피해생존자들은또한번무너졌다.‘나’라는존재가거기(선감학원)에있었다는것을누구도증명해줄수없고,나조차도내가누구인지모르는이상태를어떻게설명할수있을까.
피해생존자들의증언이종종신빙성을요구받는다는점으로미루어볼때이는분명중대한문제다.선감학원의운영주체였던경기도가당시서류를온전히공개하지않고있는상황에서,피해자임을증명할수있는수단은오로지본인의증언뿐이기때문이다.피해자자신이입소시기를정확히기억하지못한다면(피해사실에대해)사회구성원들의인정을이끌어내는데어려움이따를수밖에없다.

씻을수없는상처로남은폭력과구타
소년들이선감학원에서당했다는잔혹행위와폭력의목록을보고있으면,기억을회복하는문제는오히려부차적으로느껴진다.피해생존자들이증언한선감학원의일상은참혹하고끔찍했다.취학나이의소년들은학교도가지못한채하루종일강제노역에동원됐다.그이후로배움의길은영영막혀버렸다.기록상선감학원은‘직업교육’의명목으로소년들을양잠(누에고치키우기),축산(소키우기),이용활동에투입했다고알려져있다.그러나그것을온전한‘직업교육’으로이해하기에는석연치않은구석들이너무나많다.실제로그것이‘작업의능률’을확보하는(그럼으로써경제적이윤을추구하는)방향으로전혀이루어지지않았기때문이다.
“소를키웠어요.20마리,30마리키웠어요.소들이겨울에먹을게있어야되잖아요.억새풀을잘게썰어서큰통에다가재워놔요.그걸하는게다우리같은어린애들이에요.낫도안줘요.손으로하던가,우리가돌로만들어요.돌두개를갖고다니면서억새풀을꺾어서짓이겨서하루에40킬로씩해야돼요”(이○○)
“농사에관한건,웬만한건다했어요.보리밭이되게넓은게있었어요.추운데양말도없이고무신하나신고.바람도엄청차가워요.그넓은데를어린애들이매야하죠.”(한일영)
10세전후의어린아이들에게낫조차주지않고일을시켰다는것은,그것이강제노역임을감안한다하더라도쉽사리납득되지않는처사다.작업의능률을높여생산량을늘리고,거기에서경제적이윤을추구하는것이진짜목적이었다면최소한의의복이나낫정도의도구는지급해야하지않았을까.선감학원의모든규율이사실상원생들을인간이하로격하하고존엄을파괴하기위한장치에지나지않았음을확인할수있는대목이다.
심지어는급식조차제대로이루어지지않았다.어떤아이는생식을시도했고,또다른아이는배가고파먹을것을찾다가콜라병에들어있던농약을마시고죽었다.
“거기서는항상배가고팠어요.반찬도맨날새우젓하고무같은걸심어서짠지를만들어줬어요.새우젓도구데기가끓어서도저히못먹어요.호박도큼직하게잘라서익지도않은걸주고.그래서내가사회나와서도젓갈종류랑호박을잘안먹어요.생식도엄청많이먹었어요.논에가면벼가있잖아요.벼를손으로훑어다가바닥에다놓고신발로막비비면껍질이까져요.그럼그걸손에다놓고호호불어서입에털어넣는다구요.생쌀을.”(이대준)
“어떤아이는배가고파서사무실에들어가콜라병같은게있길래그걸마셨대요.근데그게사실은농약이었던거예요.어처구니없게,농약을먹고죽은거죠.”(현정선)
더욱참담한것은,폭력이일상구석구석을지배하는원리였다는사실이다.“빠따를한대라도안맞은날은오히려불안할정도”라고말하는생존자도있을정도로매일매일잔인한가혹행위가이어졌다.특히생활공동체인숙소안에서폭력은원생이원생을때리는구조로작동했다.
“일렬로원생들을엎드려뻗쳐시킨뒤원생이원생을때리는‘줄빠따’라는게있었다.원생열명이누워있으면맨앞원생이일어나아홉명의원생을때린뒤맨뒤로가서엎드린다.그다음원생이일어나또아홉명의원생을때린뒤맨뒤로가서엎드린다.맨첫번째로때린사람의순서가되면줄빠따는끝난다.이불뒤집어씌운한사람에게여러사람이달려들어대리는‘다구리’도있었다.”(오광석)
“더끔찍한건,사장놈들이원생끼리권투를시키는거예요.권투장갑을만들어서.권투못하겠다면또짓밟아버리는거지.가혹하게.거기서사장놈들은재미를보는거예요”(현정선)
이런폭력은내옆에있는동료의존재를완전히지워버린다는점에서매우위험하다.내옆의동류가나를때리는가해자이거나내가밟고올라서야하는대상에지나지않게될때,오직‘자기가살아남는것’만이중요해지기때문이다.원생들간의관계를일부러와해하려한선감학원의의도가다분히드러나는지점이다.

“우리집에가서있을래?선감원으로도로돌아갈래?”
극도의굶주림과폭력을견디다못해탈출을시도한원생들도있었다.주민들의감시때문에배를탈수조차없었던소년들은헤엄쳐바다를건너는모험을감행했다.일주일을헤엄쳐대부도까지이른,탈출에성공한경우도있었지만,더이상나아가지못하고싸늘한주검으로돌아온아이들도있었다.선감학원은그작은시신들을야산에아무렇게나암매장했고,그마저도살아있는동료원생들을시켰다.아이들의죽음과관련해경찰조사나검시가이루어진적은없었다.
“도망가다물에빠져죽은사람은퉁퉁불어가지고소라,낙지이런게다붙어있어요.거기다빨간소독약을그냥뿌리는거예요.냄새난다고.한번은장마가크게온뒤에뽕따러올라가다보니까시체가다드러나있는거예요.아이들시신을얼마나아무렇게나내버렸는지.그런아이들을내가직접묻기도했어요선생이준빨간고무장갑을끼고.”(이대준)
경찰의집요한추적으로또다시잡혀온소년들도물론있었다.서로가서로를때리는것이탈출에대한벌이었다.
“서로마주보고서로의뺨을한대씩때렸다.내가널때리고,네가날때리고.이상했다.난이렇게세게안때린거같은데.점점화가났다.올려붙이는손에힘이들어갔다.볼이씨뻘게졌다.오른손이아플때쯤이면왼손을치켜들어때렸다.전날만해도함께도주를계획했던우리인데오늘의우리는죽일듯이서로의뺨을휘갈기고있었다.”(김성환)
탈출에성공한소년들의사정도결코좋지않았다.선감학원이사라진자리에또다른약탈과폭력이비집고들어왔다.선감학원의소년들을익히알고있던주변어섬의주민들이탈출하는소년들을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