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7 (전두환과 5공 잔혹사, 무소불위 권력 휘두르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7 (전두환과 5공 잔혹사, 무소불위 권력 휘두르다)

$15.50
Description
또다시 군홧발에 짓밟힌 한국의 민주주의

1979년 10월 26일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박정희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 사회는 마땅히 민주화로 나아갔어야 했지만,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의해 발목을 잡혔고, 1987년 6월항쟁이 있기까지 8년이나 더 군홧발에 짓눌려야 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 17권은 10.26 이후부터 1980년대 전반기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살피고 있다. 특히 16권 ‘광주항쟁, 한국 사회를 뒤흔든 시민 항쟁’ 편은 광주항쟁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광주항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광주항쟁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광주항쟁이 한국 현대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극우 세력의 광주항쟁에 대한 폄훼가 왜 망발에 불과한지 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제시하고 있다. 특히 10?26에서 광주항쟁까지의 역사를 자세히 되짚으면서 전두환?신군부 세력이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움직였는지, 얼마나 잔인하게 학살을 자행했는지를 살피고 있다.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전두환 일당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과정과 자신들의 ‘위력 과시’를 위해 시민들을 어떻게 학살했는지가 자세히 드러나 있다.

17권 ‘전두환과 5공 잔혹사, 무소불위의 권력 휘두르다’ 편에는 삼청교육대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녹화 사업 강행, 5공화국의 등장 등 1980년대 전반기 한국 현대사를 살피고 있다. 광주항쟁을 짓밟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일당은 버젓이 인권 유린을 저지르며 권력을 쟁취했는데, 그 과정과 결과를 상세히 기록해놓았다. 박정희가 죽고 한국의 민주주의에 희망이 엿보이던 찰라, 또다시 민주주의를 짓밟은 전두환 신군부 세력.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 17권에는 군홧발에 억눌린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역사도 담겨 있다.
저자

서중석

1948년충남논산에서출생했다.서울대학교국사학과를졸업하고,연세대학교대학원에서석사학위를,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1979년부터1988년까지동아일보기자로재직했으며,6월항쟁당시《신동아》취재기자로역사적현장에서그날의사건들을생생히목격하고기록했다.현재성균관대학교사학과명예교수이며역사문제연구소이사장,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상임공동대표,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을맡고있다.
주요저서로《80년대민중의삶과투쟁》《한국근현대민족문제연구》《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1·2》《신흥무관학교와망명자들》《남북협상:김규식의길,김구의길》《조봉암과1950년대》(상·하)《비극의현대지도자》《배반당한한국민족주의》《이승만의정치이데올로기》《한국현대사60년》《이승만과제1공화국》《대한민국선거이야기》《지배자의국가민중의나라》《6월항쟁》《사진과그림으로보는한국현대사》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
연표

전두환과5공잔혹사

첫번째마당
전두환·신군부,국가권력장악
국보위로무소불위권력휘두르다

두번째마당
인권유린과잔혹함의상징,
삼청교육대‘순화교육’

세번째마당
김대중내란음모사건과일본정부,
노골적으로전두환지지한미국

네번째마당
악법제조기구입법회의앞세워
정치도,언론도,노동도입맛대로개악

다섯번째마당
관제야당까지만든전두환·신군부,
희대의코미디1대대-2중대-3소대

여섯번째마당
사회·문화규제완화와3S정책
일본극우인사,올림픽개최권유

일곱번째마당
이념투쟁전개,‘무림’-‘학림’사건
본격적반미투쟁,‘부미방’사건

여덟번째마당
시위막으려강제징집,녹화사업강행
눈물바다만든이산가족찾기생방송

아홉번째마당
이철희·장영자금융사기사건,
전두환·신군부권력지형을바꾸다

열번째마당
유화국면활용해고조된학생운동,
김영삼단식과민추협의탄생

나가는말

출판사 서평

학살자전두환,
한국의민주주의를또다시잔인하게짓밟다

삼청교육대,영장없이6만여명체포,인권유린과잔혹함의상징
악법제조기구입법회의앞세워정치도,언론도,노동도입맛대로개악

용의주도한전두환일당,쿠데타를일으키다

광주항쟁이왜일어났는지를알려면우선전두환?신군부세력의10?26이후행적을살펴야한다.보안사령관인전두환은박정희가죽자일찍부터국가권력을장악해야겠다는시나리오를짜고있었다.그리고곧역사를뒷걸음질치게한12?12쿠데타를일으킨다.국군통수권자로서아무조치도하지않았던최규하대통령,정승화를비롯한군상층부의무능력,미국의방관,일본의지원등으로쿠데타는결국성공하고만다.전두환일당은쿠데타후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제거하고군권을장악하게됐다.
12.12쿠데타가성공하자보안사는1980년2월부터전두환권력을만들기위해K-공작(K는‘King’의약자)을실시했다.K-공작은언론을조종,통제,회유한작전이다.보안사가언론사간부들을접촉해‘현재상황에서민주주의는안된다’,‘3김은안된다.사회안정을위해군부가집권해야한다’등의취지의보도를하도록유도하는작업을했다.곧전두환?신군부가한국을이끌세력,안전구축세력으로퍼뜨리게하는작업이었다.
그리고전두환은보안사에이어또하나의정보기관을손에움켜쥐게된다.1980년4월중앙정보부장서리에임명된것이다.보안사와중앙정보부를장악한전두환은이로써실질적인최고권력자에오르게된다.

드디어찾아온서울의봄,그러나…

서울의봄은1980년2월29일대규모사면복권이후,더넓게는1980년초정치인들의신년사가나오고국회에서개헌논의가진행될무렵부터5·17쿠데타가일어날때까지의기간을말한다.독재자박정희가죽었으니한국사회가이제는민주화로나아갈거라는기대가이단어속에담겨있다.무엇보다신군부세력을막아야했다.그러기위해서는김대중,김영삼등정치권이단결하고최규하쪽과도연결하면서국회를활용해계엄을해제하는것이필요했다.그러나김영삼과김대중은이때에도서로각자대권행보를하며분열돼민주화에대한열망에찬물을끼얹고만다.결국5?17쿠데타가성공하자김대중은‘소요배후조종혐의’로체포됐고,김영삼또한가택연금상태에놓이게된다.
학생운동세력도꿈틀대기시작했다.각대학에서는학생회를부활시켰고,병영집체훈련거부등민주화활동을벌였다.그러면서도전두환?신군부에게빌미를주지않기위해신중하게활동을전개했다.노동쟁의도크게늘어나는등사회각계에서그동안억눌렸던목소리가분출하던시기이기도했다.대표적인것이사북항쟁이다.이항쟁은단순히노조집행부와그반대파의싸움이라기보다는그간박정희유신체제아래에서누적된불만,분노가노조문제를계기로분출한것이라고할수있다.그리고1980년5월이되자대규모의학생들이거리로나와시위를벌이게된다.

신군부가서울역시위를그대로놔둔이유는?

1980년5월13일밤학생회장단이모여토론한끝에교문을박차고거리에서싸우기로결의했다.이결의대로각대학학생들은가두시위를벌인다.14일에도서울시내21개대학에서약7만명이,지방11개대학에서약3만명이거리로나와시위를벌였다.15일에는최고7만여명에달하는학생들이서울역에모여시위를벌였다.그런데신군부는충분히이시위를막을수있었는데도왜막지않았을까?광주에서처럼시민들이이시위에대거호응하면신군부가예측하지못한상황이벌어질수도있었는데왜막지않았을까?그이전부터진압군투입준비도이미마친상태였는데.
신군부는권력을찬탈하기위해미리용의주도하게시나리오를짜놓고있었다.‘거리에나오는걸방치하는등의방식으로학생들이가두시위를하게끔한다.그런것등을빌미로쿠데타를일으켜계엄을전국에확대하고국회를해산하며국보위같은걸만들어권력을장악한다’,이런계획을짜놓은것이다.또한그렇게할경우학생과시민들이큰시위를벌일가능성이있다고보고,그것에대비해군을미리움직여서울과전국주요지역에배치해놓았다.이러한조치는서울에서학생시위가크게확대되는것에대비한다는측면도있었지만,그학생시위가커지면서상황이혼란으로들어갔다는걸빙자해5월17일쿠데타이후의사태에대비한다는측면이있었다.‘민주화를완전히짓밟는쿠데타를일으키면굉장히많은학생,시민이봉기할수있다.그런봉기가있을것이다’라고보고그것에대비한것이었다.그러나5?17쿠데타이후광주이외의지역에서는아무런시위도일어나지않았다.전두환일당은그병력의상당부분을광주로이동시켰다.광주를아주단단히진압하려고그랬던것이다.

일본은왜5.17쿠데타를도왔나?

10·26이후전두환일당은미국에는절대적으로보안을취하면서도일본에는12·12쿠데타계획을알려주는등일본과교감을하고있었다.1979년12월이후일본측은소련의북한남침사주설을포함해북한의남침과관련된사항에대해6번이나전두환일당에게‘자료’를내주었다.더군다나일본내각조사실은북한이5월15일에서20일사이에남침하기로결정했다며날짜까지콕집어서신군부에게첩보를건넸다.그러나이첩보는신빙성이없는것으로결론났지만,전두환?신군부는이남침설과학생시위를구실삼아계엄을전국으로확대하고국회를무력화한다.그리고실질적으로권력을넘겨받게되는국보위가설치된다.이것이곧5?17쿠데타이다.
일본이이토록전두환?신군부를지원한이유는무엇일까?해방후70여년의역사를돌아보면,일본우익은한국에서민주주의가진전되는것을달가워하지않았다.일본은박정희정권을대신할새로운정권으로이세력을지원하기로한것이다.전두환·신군부가권력을탈취하는데일본의지원은상당히중요한역할을했다.

전두환일당은왜제2쿠데타날짜를5월17일로정했나?

1980년5월정치권은국회소집에합의했고,대학생들은거리로나와계엄해제를요구하며전두환·신군부를규탄했다.이에전두환일당은10·26직후선포돼반년넘게계속된비상계엄을지속할명분을찾기가어려운상황이었다.이러한상황에서전두환일당은또하나의쿠데타를계획하며시국수습방안을발표한다.이시국수습방안의핵심은세가지였다.하나는비상계엄전국확대였고,둘째는국회해산,셋째는국가보위비상기구설치였다.비상계엄전국확대는군인들이전권을가지고국정을좌지우지할수있는방법이었다.두번째와세번째것은유신헌법조차짓밟으면서강권,무력으로헌정을중단시키겠다는음모였다.그와함께시국수습방안에는정치인들의정치활동규제방안등도들어있었다.
전두환일당은김재규의대법원선고가있는날인5월20일이후이시국수습방안을실행에옮기려고했다.그러나당시해외순방중인최규하대통령이귀국하는17일로쿠데타일정을앞당기기로했다.이렇게한데에는5월20일임시국회가소집되고,5월22일까지계엄을해제하지않을경우대학생들이다시대규모데모를벌일계획이라는정보를입수했기때문이었다.그리고5월17일쿠데타를감행하고,결국성공한다.이로써전두환일당은1979년에12·12쿠데타를일으킨다음1980년에다시5·17쿠데타를일으켜권력을탈취했다.

광주항쟁,왜일어났나?

5월18일일요일아침,전남대교문앞에학생들이모여들었다.5월14~16일민주성회때‘비상사태가벌어지면그다음날아침에자동적으로교문에모여시위를하자.그게여의치않으면정오에도청광장에모이자’고약속한대로교문으로온학생들이많았다.‘계엄해제’를외치는학생들을향해공수부대원들은진압봉등으로마구구타했다.정문앞에서해산당한학생들은전남도청으로향했다.시내로나간학생들은수백명단위로비상계엄해제를요구하며시위를벌였다.
그런데그후놀라운일이벌어진다.학생시위규모가그리큰것도아니었고,경찰력으로도충분히진압할수있는상황이었는데공수부대가시내한복판에출현한것이다.게다가서울동국대에있던11공수여단까지광주로이동시켰고,여기에더해3공수여단도광주로출동하라는명령이떨어졌다.그후공수부대는시민들에게무차별폭력을휘두른다.그걸본광주시민들은수그러들기는커녕격렬하게항의를한다.이제시위는학생에서시민들로확대되었다.공수부대의만행을목격한시민들은점점더많이모여들었고,공수부대에맞서싸우기시작했다.단순한학생시위가공수부대의만행으로항쟁으로번지게된것이다.

공수부대는왜광주시민에게폭력을휘둘렀나?

전두환신군부세력은5?17쿠데타로비상계엄을전국에확대한뒤이로인해대규모시위가예상되는서울,광주지역등에이미진압부대를투입해놓고있었다.그리고군투입이요구되는사태가발생할때에는강경한응징조치를하겠다고정해놓고있었다.초동단계부터강경진압등‘위력과시’를해시위군중을위축시킴으로써‘시위확산’과‘격렬화’를미연에방지한다는방침이었다.
그런데5?17쿠데타를일으켰는데도서울에서는시위가전혀일어나지않았다.그런가운데광주에서시위가일어나자‘그쪽을철저히,과감히타격하자.상대방이다시는시위를일으킬수없도록끝까지추격해궤멸적타격을입히자’,‘우리에게저항하는자(세력)들은이렇게당한다는걸확실하게보여주자’고결의를다진것이다.그래서경찰로도시위를막을수있는데도7공수여단을시내한복판으로보낸것이고,그에더해서울에있던11공수여단병력까지광주로급히보내고곧이어3공수여단병력을또보낸것이다.
더군다나광주는자신들의권력을구축하기위해서는반드시제거해야하는김대중의정치적근거지였다.그때문에도광주를더무자비하게,위력적으로제압하려고했던것이다.

공수부대가만든생지옥,심지어성폭행까지…
본격적인항쟁이시작되다

19일새벽부터1,000여명의공수부대원들은시민들에게마구폭력을휘둘렀다.곤봉을마구휘두르며착검한소총으로시위군중의어깨,다리등을마구찔러금남로일대는삽시에피를흘리며쓰러지는군중과이를지켜보고비명을지르는시민등으로아비규환이되었다.건물안으로도망가는시위군중을추적해끄집어내어길가에서무릎을꿇리고턱을걷어차거나엎어진사람의머리와등을마구짓이겼다.특히젊은청년들에게는팬티만남기고옷을모두벗게한뒤마구때렸다.겁에질린여자들까지아랫배를걷어차고가슴팍을치거나대검으로상의를마구찢기도했다.심지어는성폭행을당한여성들도있었다.
이런무자비한폭력을본광주시민들은공포에떨었지만결코물러나지않았다.오후들어수만명의민중이금남로일대를가득채웠다.19일부터본격적으로항쟁이시작된것이다.왜시민들은성난민중으로변해그무섭고무자비한공수부대와적극적으로맞붙는격렬한투쟁을벌이게되었을까?그것은공수부대의만행,도무지이해할수도없고있을수도없는만행에분노해그야말로피가끓는시민들이궐기한것이었다.그리고또한가지는‘부끄러움’의정서다.18일공수부대의만행에제대로맞서싸우지못한것에서비롯된부끄러움이시민들을자꾸싸우게했고,그것이항쟁으로바뀌는추동력이되었다.

광주를피로물들인대학살,21일애국가와함께울린총성

21일오후1시정각,도청옥상스피커에서애국가가울려퍼졌다.그와동시에수백발의총성이일제히울렸다.21일금남로일대에서이뤄진발포로최소한54명이숨지고500여명이다친것으로추정됐다.21일3공수여단과7공수여단이보급을받은실탄은M16소총탄123만발,살상력이큰40mm고폭유탄316발,한꺼번에여러명을해칠수있는세열수류탄4,880발이었다.이중48만4,484발이실제로사용됐는데,공수부대원1인당142발을쏜셈이다.광주를그야말로피로물들인대학살이었다.심지어이날오후에는헬기기관총소사까지있었다.
오후1시가조금지나서광주한복판에서시민들을대량학살하는경악할만한사태가벌어지자학생을비롯한젊은사람들은‘이제우리도무기를가져야한다’고외치면서여러지역으로갔다.일부시위대는10여대의차량에나누어타고화순탄광에가서다이너마이트를,화순경찰서무기고에서카빈소총을입수했고나주경찰서무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