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중에서
박상준(문학평론가,포스텍인문사회학부교수)
1.우리삶의주변을살피는판타스마고리아
-김살로메가그리는인물들은대체로우리사회의주변인들이자삶의저변을이루는인간들이다.작품에뚜렷이드러나는대로꼽아보더라도,알비노증이있는약사,무력한대학의시간강사,영세기업사장과직원,혼자사는한지인형제작자,불륜에빠져있는간호사,살인을주도한무기수,매춘을겸하는텔레마케터,시대착오적인가부장,불법의료장,가난한영세상인이나과외교사,아르바이트와인턴을병행하는고학생,성폭행범,시메트리증후군환자,삼류시인등이줄을잇는다.이들의삶은생물학적인본성과경제적인유인에크게휘둘리고있으며,그런만큼삶의비속함과적나라함을생생하게보여준다.
작품이재현하는현실또한풍성한양상을보인다.아마추어독립영화모임이나,장애인단체,결손가정및저소득층아이들을위한사회교육기관,북한을탈출해나온새터민단체,지방의문인모임등에서,텔레폰클럽이나암흑식당에이르기까지우리사회의여러모습들이망라되어있다.이들이대체로사회의이면이나기층에해당함은물론인데,바로이렇게사회의저변을두루형상화하는것이『라요하네의우산』의특징이다.
-이와같이『라요하네의우산』은우리들이흔히보는삶의현장,공적으로이야기되는사회상과는거리가멀다할수있는장을찾아내어,이렇다하게내세울것이없는인물들을다양하게등장시키고있다.배경자체가전적으로사회의주변부라할수는없어도인물들의삶을보면주변부적이라고하지않을수도없는상황들에시선을주어작품화하고있는것이다.그결과『라요하네의우산』을통해작가가축조해낸것은우리사회의비루한삶들이빚어내는판타스마고리아(fantasmagoria)곧환영과도같은변화무쌍한광경이다.
2.냉정과열정사이의(무)관심
-등장인물면에서『라요하네의우산』이갖는특징은우리사회의주변인을내세웠다는데그치지않는다.그러한사람들이기행을일삼는다는점곧주변부의보통사람이기는하지만그들개개인의행태나상호간의관계면에서보자면보통사람들답지않다는사실이김살로메소설고유의특징을이룬다.
남편의치료를위해알비노증이있는며느리의소변을청하는모친의숨겨진동기가욕정이라는사실(「알비노의항아리」)이나,여직원을아랑곳하지않고사무실에서자위하는사장과그의돈을훔쳐음식을탐하고끝내그와몸을섞는여자(「암흑식당」),텔레폰클럽등을통해항상바람을피우는병원원장이나그와불륜관계를이어가는여자,내레이터모델이자아르바이트로매춘을하며도벽을가진그녀의동생(「귀휴」),시대착오적이라할만큼며느리를구박하는시아버지(「피의일요일」),23세에첫아이를낳고끊임없이남성을편력하는,모성과는거리가먼여인(「강건너데이지」),가족을무시하며타인에게만친절을베푸는남편혹은아버지(「누가빈지를잠갔나」,「라요하네의우산」),공금횡령으로교도소에있으면서출옥하면다른여자와살겠다고하는남성이나술취한채차를움직여아내를불구가되게한남편,시메트리증후군을가져타인의일상을간섭하고부친의깁스한팔을펴려고까지하는여인(「라요하네의우산」),북한을탈출해온‘허기와상처의극한을경험한자들’이돈문제로갈등하는것(「아폴로를씹었어」),삼류시인들의술자리기행(「아빠는시인이다」)등처럼모든작품들에서인물들의기행이그려지고있다.
-다소특이한부정적인물들과예외적이지않을까싶을만큼극단적인상황이펼쳐짐에도불구하고작품의경향이어느한쪽에치우지지않게된것은,대체로볼때,그러한환경속에서도발견되는따뜻한인간심리에주목하는경향이있기때문이다.여기서도주의할것은,어두운상황속의긍정적인인물(심성)을부각시키려한다거나하는이분법적인설정과는거리가멀다는사실을잊지않는것이다.작품의세계든,인물구성이든,주요사건이든부정성이앞서있기는하되,삶의한부면으로그것을차분히재현해내는데그치거나,그럼에도불구하고발견되는인간적인소망을놓치지는않는경우라해야할것이다.
『라요하네의우산』이이러한면모를띠게된것은,이소설집이거대담론과거리를둔자리에서우리삶의저변과주변을응시하는시선의산물인까닭이다.이시선의주체는의지를앞세운해석도섣부른의미부여도삼간다.보여주는자로서의소설가,오롯이재현하는소설가가바로『라요하네의우산』의김살로메이다.
3.소설,언제나지속되는이야기의길
-이렇게관조적인입장에서재현대상과거리를두고우리사회저변의판타스마고리아를펼쳐보임으로써『라요하네의우산』은우리에게전통적인소설읽기의진진한재미를선사한다.각각의작품들에재현된풍성한현실속에서저마다고유한특징을가진다채로운인물들이보이는기행에가까운행태들을생생하게형상화함으로써,김살로메의소설은서사문학의오랜전통,민중적삶의다양함을흥미롭게제시해온전통을우리시대에되살려주고있다.우리시대의비루한삶,상처받은삶들을다양하게펼쳐보이는김살로메의소설들이야말로가담항설(街談巷說)과패관잡기(稗官雜記)에연원을둔동양소설의전통,미하일바흐찐이보여준대로민속에뿌리를두고민중적인문학으로부터발전해온서양소설의전통,이모두의연장선상에서소설읽기의즐거움을새롭게구현해내고있는것이다.
-「누가빈지를잠갔나」에서보이듯김살로메는,‘좋은소설이란이야기안에서늘한진실’이들어있는반면‘나쁜소설이란작가의자기합리화가들어간다’는생각을갖고있다.해서작가는“중립을가장한채자기연민에는당위성을끌어다붙이고,타자를향한시선에는근거없이객관적인척하는기만”을강하게의식한다.바로이러한의식이러한경계심이풍성하게재현된현상들로부터한발뒤로물러서는관조적인태도를낳은것이고,그결과로,재현된이야기의재미가소설읽기의즐거움으로온전히이어지는한편독자들이저마다그의미를반추해볼수있게된것이다.
이처럼서사문학의전통위에서우리사회비루한삶들의판타스마고리아를재현함으로써소설읽기의즐거움을되살려낸것,이것이김살로메의소설집『라요하네의우산』의의의를이룬다.
책속으로추가
그건일종의간접트라우마였다.오래전주변에그런사람이있었다.약자네아버지였다.아버지와의형제를맺은,우리가아재라불렀던약자네아버지.그때문에약자는집을나갔고,차례로아지매와두여동생마저가출을했다.아재곁엔아무도없었다.홀로쓸쓸했던아재는당뇨와외로움에지쳐쓰러졌다.피붙이없는장례식은쓸쓸했다.망자앞에서는누구나관대한법이지만,그관대함은때론누군가를향한원망이되기도했다.아버지와엄마는곁에있지도않은아지매에게모진말의화살을꽂았다.뒤늦게소식을들은고향사람들은어린나이에집을먼저나간약자더러죽일년이라했다.하지만내기억으로는집나갈당시의약자는누구에게나동정과연민의대상이었다.누가봐도아재가지나쳤다고했다.
-누가빈지를잠갔나중에서
p와통화를끝낸여자는얼마전턴테이블을버린것을후회했다.여자는버리는것을좋아했다.필요치않다싶으면무엇이든잘버렸다.현관문을나서는여자의한손엔자주무언가가쥐어있곤했다.달지난잡지나,그을린냄비,묵은옷가지등뭔가를버릴때여자는쾌감을느꼈다.살아있음을느꼈다.주변이휑하다싶을만큼버려야속이시원했다.강박에가까운습성이었다.그런여자가몇번의이사를하면서도턴테이블만은쉽게버리지못했다.p와함께고른물건이었기때문이었다.대청소를하던얼마전그것을갖다버렸다.즉흥적으로결정한일이었다.먼지쌓인채한구석을차지한턴테이블을보는순간버릴때가됐다고생각했다.
_왼손엔달강꽃중에서
처음예나를본날그애가잠시자리를비운사이그녀의스케치북을슬쩍넘겨본적이있다.예나는다양한동물들을그리고있었다.떨어뜨린지푸라기를나무위에서바라보는까치,대로변에널브러진다리다친고양이,못물위로떠올라죽어있는붕어등,음울하고서늘한분위기의동물그림이주를이루고있었다.오희말에의하면예나도마음의상처가있다고했다.1990년대중반최악의식량난을겪었을때,소위고난의행군시절에태어난아이라부지불식간에결핍이학습된아이라고했다.죽어나가는사람들이거리마다넘쳤고,동물들마저굶주린사람에게죽어나씨가마르던시절이었다고했다.
-아폴로를씹었어중에서
이번시집은삼국유사에나오는한서린이야기들을소재로한연작시편들로이루어져있다.백두산이남이낳은최고서사시인다운소재들을선택했다고나는생각한다.시집제목은‘단군아,에밀레여’이다.시집제목을처음들었을때나는자꾸웃음이나왔다.21세기를살아가는현대인들에게너무구태의연하고억장무너지는제목같았기때문이었다.이번시집도서점에제대로깔리기도전에제운명을다할것같아불안하기만하다.
-아빠는시인이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