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번도 초라하지 않았으니까 - 어른의시간 시인선 4

우리는 한 번도 초라하지 않았으니까 - 어른의시간 시인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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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는, 특히 현대 시는 어렵다고들 한다. 그래서 독자에게 외면받는다. 이러한 시대에 일상인의 화법을 유지하며 큰 울림을 주는 전병석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 출간됐다. “하나의 인생이 한 권의 시집이 되다”라는 취지로 출간되는 어른의시간 시인선 네 번째 책이기도 하다.
그간 평이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깊은 인상을 주는 시를 써온 시인이, 여전히 일상적인 어휘와 표현을 유지하면서도 더욱 웅숭깊어진 정서와 생명성을 담아 시를 썼다. 소재는 주변의 사물과 자연, 사람이다. 덤으로 받은 붕어빵, 길가에 핀 애기똥풀꽃, 유통기한 믿지 말라던 생전 어머니의 말씀, 봄바람과 황사와 같은 소재가 가족과 이웃, 자연과 자신 안으로 깊고 널리 퍼져가는 과정이 시 속에 담겨 있다. 어렵지 않은 어휘로 표현되기에 시가 담긴 메시지는 한층 더 깊고 크게 다가온다.
손진은 시인의 말처럼 “판독 불능의 의미와 어휘가 창궐하는 시기에 철저하게 시단의 폐습으로부터 자유로운 감정”이 “예외적인 상황 속에서의 이상 체험이나 극도로 고양된 순간의 의식 체험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법 없”이 일상적인 화법이나 대화로 정감을 토로하면서 68편의 시로 탄생했다.
저자

전병석

저자:전병석
경상북도영천시금호읍에서태어났다.경북대학교사범대학국어교육과를졸업하고,경서중학교교장을지내고있다.2021년〈문학청춘〉을통해등단했으며,시집『그때는당신이계셨고지금은내가있습니다』『구두를벗다』『천변왕버들』『화본역』등을펴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덤으로마음을받다
붕어빵│제주돌담처럼│그대를위로하고싶었습니다│꽃나무아래에서│병꽃이잖아│찔레꽃향기│채송화│사랑은│플라잉디스크│이브의경고│십리사탕│슬도명파(瑟島鳴波)│바람막이천막│믿음으로내려라│명자꽃│제비꽃│노도의서포│신독(愼獨)│초상화│바다의마음으로│12월에는

2부슬픔이지구를돌린다
애기똥풀꽃│구령│선생질│슬픔이지구를돌린다│다리를끊다│이별후의기다림│꿈이었으면│외로운사람이다│늦은가을│혼자인사람│집으로가는길│모텔이보이는두류공원│신호대기중│모모│상족암│속물3│아니│화났다,꽃이│돌을들고싶다│소금쟁이│거미의꿈│그복│약속│유기견│신발정리

3부이제바다로갈수있겠습니다
봄이왔습니다│4월생각│산길을걷다│아이스아메리카노│서천국립생태원소로우집에서│잃어버린양│미끼를탐하다│모과│친목회│송해공원│겨울실상사│그림자│방생│줄다리기│당신차례│겨울나무│뒤태│상해임시정부청사│웃었습니다│귀향│유통기한│아흔한살에

해설_손진은(시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독자들의접근이어렵지않고작품성은올곧은전병석의시편들을읽으면서
철저하게시단의폐습으로부터자유로운감정을느낄수있다는것은
참으로흐뭇하고도다행스러운일이다.”
-손진은(시인?문학평론가)

일상인의화법에스며든생명성와웅숭깊은정서그리고유머
시는,특히현대시는어렵다.큰마음먹고시집을펼쳐들어도그난해함에이내접게된다.모든시가그렇지는않다해도많은시가그러하기에독자에게외면받는다.시를읽지않는시대라는한탄이많이들리지만,반복해읽어도그뜻을헤아리기힘들다면시의책임은없는지생각해볼일이다.손진은문학평론가는이를“시단의폐습”이라고까지했다.이러한시대에전병석의시는남다른가치를지닌다.사용하는어휘와표현이일상인의그것자체이며,그렇기에되레시의메시지가증폭돼전달되기때문이다.
소재역시흔하다.노점의붕어빵,길가의애기똥풀꽃,식품의유통기한,봄의불청객황사등언제나,누구의입에나오르는흔한사물과말과현상이다.그런만큼표현도담담하다.어떤시는마치어린아이가오늘있었던일을서술하는듯한인상마저준다.가령,“오늘은붕어열마리를샀다”(「붕어빵」)라든가,“동수아버지는똥수아버지”(「애기똥풀꽃」)“봄바람이불어오는데창을닫는다”(「4월생각」)라는식이다.그중이시집의첫시「붕어빵」은평범한화법과풍성한메시지의조화가백미를이루는대표적인작품이다.

찬바람이매서운/퇴근길에/팥다섯,슈크림다섯/붕어열마리를샀다/아들이아니라/아내에게줄거라답하니/덤으로한마리더담는다/(중략)/나는받은대로돌려준/때로는조금씩떼먹은/덤없는사랑이부끄러워//덤으로받은붕어잘기르다가/따듯한날신천에놓아야겠다_「붕어빵」전문

한편의시그어디에도읽다가어렵게느껴져멈칫하게되는곳이없다.그런데도2연“덤으로받은붕어잘기르다가/따듯한날신천에놓아야겠다”로넘어가는순간잔잔한수면같던시에물결이일렁이며큰파동이인다.인심좋게하나를더준상인의마음이얼마나고마운지,그대로이어받아서자신도그렇게베풀며살겠다는생각을“붕어잘기르다가/따듯한날신천에놓아야겠다”라고표현하면서,일상에커다란생명성을부여하고독자의내면에많은물둘레를일으킨다.일상인의언어가큰사유로이어져읽는이의삶과크게공명하는것이다.

자연에서발견하는동심과유머
쉽게쓴글이잘쓴글이라고들한다.많은경우,그러한글에는동심이엿보이기도한다.전병석의시가그렇다.그의시곳곳에어린아이것과같은순수한정서와표현이가득하다.그러한동심이자연물을통해표현되면서유머로발현되기도한다.그의시선이닿는자연물의범위에는한계가없어서,이번시집68편의시중절반이상이자연을소재로할정도다.계절,하늘,바람,바다와파도와바위,잡초,돌멩이,과일,나무등사람의일상과삶을둘러싼자연곳곳에시인의시선이머물고,그머묾에서다음과같은시들이탄생한다.

봄과여름사이/한꽃나무아래에서/꽃의이름이생각나지않는다/잔기침처럼간질이고/기름처럼미끌거리기만할뿐/노랗고하얗고빨간꽃이/섞여이름도섞여서맴돈다/머리를굴려도/공익광고같은생각만떠올라/꽃나무의이름을놓아버리고/가만히슬픔처럼안는다/그제야노랗고하얗고빨간
내걱정을아는꽃들이가만히속삭였다/병꽃,병꽃이잖아_「병꽃이잖아」전문

작은나무아래에선시인은꽃이름이생각나지않아애를태운다.애를써도떠오르지않아결국포기하고가만히슬픔처럼미지의이름을안는데,이런슬픔을자연이그냥두지않고속삭여준다.“병꽃,병꽃이잖아.”자연쪽에서사람에게말을걸어오는동심의세상.손진은문학평론가의말처럼,전병석의시에서드러나는자연은“인생과인연을건드리면서동심을놓쳐버린우리를돌아보게하는힘”을지닌다.유머는이런힘을더욱고양한다.“머리를굴려도공익광고같은생각만떠올라”라는표현에서웃음이나고,이유머가시인이얼마나이름을생각하기위해애를썼는지안타까움을그대로전해준다.다음시에서도같은묘미를만날수있다.

모든게꽃이아니라/똥이되는시절이있었다/동수아버지는똥수아버지/동자는똥자/봄동은봄똥/모두꽃이되기위해똥심을쓰던시절이었다/(중략)/애쓰면꽃이되는시절이오는가싶었다/그런데너도나도/속은똥이면서겉은꽃이고/겉은꽃이면서속은똥인/애기똥풀꽃같은이상한시절이와버렸다_「애기똥풀꽃」전문

애기똥풀꽃이라는자연물을보면서그옛날,어린아이가“똥”자를붙여놀던기억을불러와웃음을자아내고,모두꽃이되기위해‘똥심’을쓰던시절이었다는말로자연물의이름에담긴인생사의이치를이끌어낸다.한단계나아가,겉보기에만화려하고내용은형편없는세태를“속은똥이면서겉은꽃”인시절이와버렸다는현실비판적메시지까지담아내시의차원을격상한다.자연물과시인의시선이만났을때동심이열리고,그동심에유머가더해져시의메시지가학장되는것이다.

가르침과배움사이에선시인의가만가만한말들
오랫동안교직에몸담아온시인답게청소년과교육문제가시에담긴다는특징도눈에띈다.“찔레꽃이피는/강가로”우리를데려가때를밀게하신어린시절의선생님과의기억(「찔레꽃향기」)이현재교직에몸담은시인의현실이돼학생들의삶을들여다보게한다.“슬픔이뛰어내리지않으니/네가강다리에서뛰어내리려하는구나”(「꿈이었으면」)라는말에서는제자들에대한시인의슬픔과안타까움이,“꽃으로도안된다/마음으로만해야한다/그마음도들키면안된다”(「선생질」)라는말에서는우리교육을바라보는시인의씁쓸한마음이전해진다.

자연물과사람과사물을대하는동심어린마음,그와함께전해지는시인만의깊은서정성과인생에대한지혜가과장됨없는일상인의화법으로전해져,시가어렵게만여겨져외면받는시대에독자의삶에큰자장을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