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흑산도 푸르다 지쳐 검은 섬 - 어른의시간 시인선 5

내 고향 흑산도 푸르다 지쳐 검은 섬 - 어른의시간 시인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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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주빈 시인의 첫 시집이자 어른의시간 시인선 다섯 번째 책이 출간됐다. 흑산도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도시에서 학업과 기자 생활을 마친 뒤 섬문화 다양성과 태평양 기후 위기 대응 일을 하고 있는 시인이 바다, 섬, 그리움 그리고 어머니를 주제로 노래한다. 오지 않을 존재들을 기다리고, 유년의 한때를 회상하며, 세상의 모든 연약한 이들을 호명하는 시인의 노래 70편이 독자의 마음에서 철썩인다.
저자

이주빈

저자:이주빈
신안의섬흑산도에서태어나유년기를보내고,목포에서중·고교를다녔다.조선대학교에서러시아어를,목포대학교대학원에서도서해양문화학을공부했다.20년동안오마이뉴스기자로활동하며지역공동체부부장·영국특파원등을역임했다.지금은섬문화다양성과태평양기후위기대응일을하고있다.저서로『구럼비의노래를들어라』등이있고,흑산도고래잡이를최초로연구한논문「일제강점기대흑산도포경근거지연구」를발표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네이름마저푸르다지쳐검은섬
별밤
당골래도화(桃花)
겨울흑산바다를건너며
아픈것들은모조리파도가되자
비내리는흑산바다
파시골목여관유리창
늙은뗀마의노래
푸른초저녁
명절손님
보리바다
도초도불섬물양장에서
태풍주의보
수평선에별
겨울추자도
무인도
흑산(黑山)
내고향은흑산도
도초도수항리석장승
섬사람
월산(越山)
흑산도사리상회
향수(鄕愁)

2부온순한슬픔마르지않게
연애시절
객선머리그여자
기다리는날에는아무도오지않았다
어느귀신고래의장례식
첫사랑
수평수(水平水)
흑산홍어를말리며
목포온금동곰보선착장
집어등불빛아래
노란바다
달밤에부친전보
염병할그리움
“오빠긍가”
여려울때마다붉어진볼처럼
섬집
마당에핀접시꽃
안구건조증약을넣으며
자은도일출
새벽기도
불시로아련한심장
흰꼬리수리옛집
선창의밤
남행(南行)
막배를기다리며

3부한때내가너의지문이었듯
목포영해잔교산다이
땅끝에서
한달만살자
눈내린날,늙은나무에게물었다
목포행무궁화호
목포만호진소원등
객선머리에서
민달팽이의바다
동백(冬柏)
한때내가너의지문이었듯
뒤안에내린눈
화순운주사와불
서럽게우호적인시월바다
갯강구의산보
섬마을초저녁
서해노포(老鋪)에서
선창가집
꽃들의당부
헌집을고치며
텃밭
오라는데없어도
밤눈
무종(霧鐘)의노래
출항1
출항2
개망초꽃

발문_홍성식(시인)

출판사 서평

“사람의음성으로말하였으되
불현듯오래된악기가불러주는음유가되는사람
생래적시인이란이런것이다.”
_류근(시인)

취약함을정체성으로삼아전면에드러내는삶과시
_연약한존재들을노래한다는것

밝음과어둠,흥함과쇠함,편리함과불편함,활기참과고적함.세상이만약이런식으로이분된다면대개의사람은앞의것을택한다.그편이현실을살아내기에유리하기때문이다.그럼에도애써뒤의것을택하는사람들이있다.이주빈시인도그중하나다.

대도시에서학업과기자생활을마친그는활기차고편리하며밝은타향을떠나어둡고불편하고쓸쓸한고향으로돌아갔다.그것도“하도멀어섬천개는징검다리삼아건너야갈수있는섬”,“울울창창바다보다깊은/푸르다못해검은산”,“천주쟁이정약전,왕의도포를훔친상궁/가다죽으라보낸유배지”(내고향은흑산도)였던곳이다.돌아간정도가아니다.그는자신의고향을정체성으로내세우며섬문화다양성과기후위기대응일을할뿐아니라그곳을배경으로수십편의시를쓰기에이른다.

누구에게나자신의정서적뿌리가돼주는고향이있다.그러나누구나그고향을정체성으로내세우며살지는않는다.수도권에서먼곳일수록지역소멸의속도가빠르고,사라지는것들은외면받기십상이기에드러내면손해일때가많다.이런풍토속에서이젠이색적인여행지,특별한문화체험공간정도로유지되는흑산도로돌아가마치취약함을정체성으로삼으려작정한듯고향을배경으로한시70편을지어내세상에내보였다.얼핏흑산도의소멸을용납하지않겠다는듯한결의인가싶지만,꼭그런것은아니다.박남준시인의말대로“시집을펼치면징긍징글징하다.지독하다.시집의온통이검은흑산의바다다.그섬에갇힌외롭고쓸쓸한그리움이무”서울정도다.

“꽃을기다리는날에는/묏등삐비꽃도피지않았다//파도를기다리는날에는/잔놀조차일지않았다.//기다리는날에는/모두오지않았다//객선머리에머리를덩덩찧으며통곡을해도/바윗돌에심장을북북갈아피를토해도//어미는오지않았다/사랑은오지않았다”

「기다리는날에는아무도오지않았다」라는시에서그가“통곡”하고“피를토”한다고말할때무언가를지키고관철하고자하는결의보다는비통함과고독함이전해지며,이로인해이작은시집은더이상작지도가볍지도않아진다.어째서그는지독한쓸쓸함속으로자진해들어가오지않을존재들을그리워하는걸까.어째서불편함과고독함을대면하다못해연약한존재들과하나되려할까.그의많은시가답변해주고있다.

그곳은한때“참고래대왕고래흑등고래귀신고래/나고자란고래들의고향”이며,“가진거라곤아득한눈물뿐인어미가/아비와함께늙어”갔던곳이고(내고향은흑산도),“쫓아갈힘도/가로챌욕심도없는섬사람은/그저하늘바다만바라보고”(섬사람)사는곳이기때문이다.또한“꼿꼿한허벅지에손주재우던할므니”가살던곳이고(흑산도사리상회),“섬마을아이들좁은등에/차크르서린소금알갱이/인산솔숲성근낙엽밀고다니는/미역줄기같은바람닦아주던/까맣게흰/어린동무들살냄새”를품었던곳이고(향수),“잘계시요?/쫌만기다리시요/흰상여꽃같은소원등을”(목포만호진소원등)다는사람이아직은사는곳이기때문이다.

추억속의거의모두가없으나여전히시인의기억과삶속에서살아숨쉬는존재들이있는곳,아직은그곳이전부인양하는이들이사는곳,그렇기에이젠떠날이조차드물어진그곳을시인은차마버리지못한다.“이웃집옥상에버려진맥주캔”(한때내가너의지문이었듯),그위에살포시쌓인눈조차도외면하지못하는,“나는개망초/오로지가난한자들에게만보이고/오로지힘없는자들에게만사랑이되는//흔해서따순,당신의밥”(개망초꽃)이라는시인의성정때문이다.홍성식시인의말대로그것은「흑산도사리상회」를드나들던피붙이와이웃들속에서형성된시인의선량함때문일것이다.

잃어버린섬의신화적일상과사라져가는남도어를불러오다
_타고난시인이란이런것

시집의물리적배경이되는흑산도는과거고래의섬이었다.어느해겨울,흑산도사람몇몇이바다에서조업하던중에돌풍을만나위기에처했다.그런데갑자기고래한마리가다가와뒤집히기전의어선을바로세웠다.고래가자신의등판에실어다준것이다.전설이아닌,흑산도박씨집안족보에기록된백년전의실화라고한다.강제윤시인의말대로“흑산도사람이주빈이‘섬아기들은고래등에올라피리를분다’라고노래하는것은은유가아닌섬의신화적일상”이었던것이다.물론일제강점기무차별적으로포경되었던탓에지금은그고래들이신화처럼만회자되고있으나,놀랍게도이주빈의시를통해“잃어버린신화와일상이공존하던시대,한없이외롭고애잔하고따뜻했던섬의이야기들이그의시속에서섬의신원을확인해줄지문처럼되살아난다”.

더욱이“여렵다”“짝지밭”“소징하다”등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볼수없는남도지역특유의구성진어휘를통해다양한우리말을만나는것또한독자에게는즐겁고값진경험이다.시의내용과형식모두를통해이주빈이라는사람하나가섬의지문이된셈이다.

소멸해가는섬에서태어난사람,자신을유폐하듯적막함속으로걸어들어간사람,그속에서그리움과쓸쓸함을울음인듯노래인듯부르는사람,사람의음성으로말하였으되오래된악기가불러주는음유가된사람.“생래적시인이란이런것”이란류근시인의말이과장이아니게다가오는이유는,시인의태어남과삶의방식이그대로시가되었기때문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