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쓰는 삶의 문법 (동포문학(17호) 특집 | 대림칼럼 기획선집)

경계에서 쓰는 삶의 문법 (동포문학(17호) 특집 | 대림칼럼 기획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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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경계에서 쓰는 삶의 문법』은 한국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며 석·박사 과정을 밟거나 이미 학위를 취득하여 한국과 중국에서 강사나 교수로 재직 중인 조선족 출신 연구자(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원)들이 공동의 정체성과 시대적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조선족의 삶을 고유한 '문법'으로 풀어낸 칼럼 모음집이다. 이 칼럼들은 『동북아신문』의 기획으로 연재되었으며, 현재(2025년 기준) 140회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책에는 각 필자가 쓴 글 중 한 편씩을 골라 엮었다. 이 칼럼집은 ‘경계 위에 선’ 디아스포라 주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의 본질을 직시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온 인식의 기록이며, 그들 자신의 언어로 서술된 생생한 구술적 증언이자 자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서사의 흔적이다.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고정되었던 오랜 규정과 개념적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기록하며 사회적 존재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해온 과정의 한 단면을 담고 있다.
저자

전은주

학력으로 2012년 연변대학교 조문학부 문학석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문학석사, 2019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다. 2008년 『창작 21』 신인상 등단했다. 현재 디아스포라 시 치료 연구회 대표,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글쓰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수상으로 2021년 박두진문학상 제1회 아시아시선상 등을 수상했다.

목차

프롤로그
서로 다른 문장들이 하나의 응답으로!_예동근*7

1장 | 경계 위에서 사는 일

경계 위에 뿌리내린 ‘大林’의 문학 초상_이동렬*13
숨겨진 폭탄_예동근*23
‘차별’에 대하는 자세 _전은주*31
편견의 반대말 _전춘화*39
조선의 뜸부기는 다 네 뜸부기냐_김경애*45
한국, 한국인 그리고 나_문민*53
또 다른 고향 _최유학*58
영문자 이름의 재외동포로 살아간다는 것_최미령*67
애국시인 윤동주에 대한 오해와 진실_최미성*72
『천진시절』 속 ‘嫦娥’가 찾은 尙雅_조은경*81

2장 | 일상의 감각, 삶의 질문

한국의 다문화 현상에 대한 단상_리위*89
술이라는 인생의 비타민_정련*98
죽음의 일상화_류경자*107
탐욕 근절과 평화_허련화*112
쌀뜨물과 환경오염_엄정자*118
시간 만담_신문봉*126
고대 역병과 인간 윤리_전월매*133
똑똑한 디지털 유저가 되려면_박려정*139
중국 AI 교육,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_강설금*144

3장 | 몸과 마음을 돌보는 기술

까치발 내려놓기_최옥란*155
배움과 변화의 시간들_이미옥*160
방해받지 않을 권리_백한*165
다이어트가 가장 쉬웠다_최해선*172
아름답다는 것_박경*179
공감하기, 공감하는 주체되기_정희정*184
인생의 멋진 흔적-주름_손은홍*200

에필로그
「대림칼럼」 연대기_전은주*203

출판사 서평

이 책에 담긴 글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따라 읽는 독자는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얼핏 보아도 이 칼럼들은 한 목소리로 답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감정의 층위를 섬세히 탐색하고, 어떤 이는 정치적 현실을 직시하며, 또 어떤 이는 가족의 일상을 천천히 응시한다. 말투도 다르고, 문장의 리듬도 제각각이며, 같은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다름’은 혼란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같음’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 이질성과 다양성은 오히려 이 책의 문장들과 관점들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경계’는 이 책의 보이지 않는 중심어이다. ‘조선족’이라는 정체성, ‘재한’이라는 생활 조건, ‘이주’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 글의 저자들은 저마다의 ‘경계’를 사유한다. 그런 사유는 경계를 고립이나 고정된 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를 다르게 보고 성찰하게 하는 사유의 공간이자, 감각의 자극점이 된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 경계를 멈춰 선 자리가 아니라, 변화하고 재해석되기를 바라는 살아 있는 질문으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이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성찰하며, 재해석을 통해 자신만의 각성으로 응답하고자 한다.

‘다름’은 더 이상 불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가치 지향적인 방식으로 생동할 수 있도록 한다. ‘다름’을 외부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지닌 실존적 현상으로 파악하는 힘이 이 책의 저자들에게 작용한다. 이 힘은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 각기 다른 시선과 언어를 가진 집필자들에게 공통된 지향점으로 작동한다. 그것이 바로 ‘재한조선족 차세대’라는 존재 조건이다. 한국 사회의 외부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감내하며, 타자화의 경험 속에서도 주체화를 이뤄내고자 자신의 언어를 되찾으려는 노력. 그 공통의 경험은 이질성 속에서도 강한 결속력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여진다.

이들의 글쓰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지 경험의 나열이나 고백이 아니다. 그것은 사유의 움직임이며, 인문학적 정치학이다. 글쓴이들은 자신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사회가 부여한 이름들을 되묻고, 외부의 시선 속에 숨어있는 균열조차 놓치지 않으며, 내면의 언어로 세계 인식을 새롭게 기술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원적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당위의 질문으로 전환된다. 그 전환의 움직임이 이 책 곳곳에 스며 있다.

‘대림’이라는 공간은 그러한 목소리들이 재집합하는 새로운 장소가 된다. 이제 그 공간적 언어는 특정 장소를 넘어서 더 넓은 맥락 속에서 서술된다. 조선족 정체성에 대한 응답은 대림이라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장소적 의미를 확장하며 새로운 감각 지도로 이어진다. 그 언어는 한국 사회 전반으로 번져나가며, 한민족이라는 범주가 더 이상 고정된 경계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웅변한다.

이들의 목소리는 재한조선족 차세대의 삶이‘정체성의 혼란’이 아닌‘정체성의 재구성’이며, 나아가 ‘정체성의 확장’임을 보여준다. 더 이상 “중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이라는 부정의 언어가 아니라,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 산다!”는 능동적 진술로 나아간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필자들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문화의 윤리이자 정치다. 주어진 이름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 새로운 의미를 채워 넣는 작업. 그것이 이들의 글쓰기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조선족’이라는 이름에 무지를 드러내거나 불편해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낯선 ‘다름’을 조용히 응시하게 만들고, 오해의 지층을 걷어낸다. 보라, 이들의 문장은 낯선 ‘다름’ 속에서 미래의 친숙함이 될 수 있는 ‘같음’을 지향하고 있음을. 이 글들은 그러한 서술적 시도의 흔적이며, 더 넓은 공존을 향한 초대장이다.

삶은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미완의 문장, 생략된 문장들, 설명되지 않은 여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그 여백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그 빈자리를 껴안으며 함께 사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증언이자 다짐일 수 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여전히 질문하고, 성찰하고, 발견하고, 말할 수 있다고.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도, 연구자라는 정체성으로도, 무엇보다‘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서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그러한 목소리들을 담은 첫 번째 합창이라면, 우리는 그들이 들려줄 두 번째 합창을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