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현실에고난이닥치면가장먼저손에잡게되는성경속의책,욥기.하지만좀처럼갈피를잡기어려운대화의난맥속을헤매다보면,가장먼저내려놓게되는책역시욥기다.고난을이길묘약을찾고자욥기를펼쳤으나욥의비명도,세친구의충고도,마침내나타나결론을내시는하나님의마무리도어딘가석연치않다.인내를갖고읽어도등장인물들의입장이파악조차안된다면,끝도없이이어지는논쟁이지루하기만하다면,제3라운드까지펼쳐지는논쟁에서각논쟁의차이와진보가눈에들어오지않는다면,욥기말미에나오는하나님의현현이어떻게욥의고난에대한궁극적대답이되는지알기어렵다면,욥기를읽어낼입문서가필요한타임이다.
언제나욥기가어려워매번익숙한명제와와닿지않는명분의관점에서욥기를읽는데그쳐왔던평신도들에게가히‘욥기옆의욥기’라고말해도좋을『박영선의욥기설교』가새로운제본방식(사철노출제본방식)을입고출간되었다.
이책은난해한욥기를읽어내기어려워하는이들에게성경적관점에서바르고또알기쉽게욥기를이해하게해주는‘욥기입문서’라할수있다.저자도서문에서이렇게언급하였다.“욥기는모든기독교신앙인들에게한번은풀고가야할숙제였습니다.이제그길을하나뚫은기분입니다.후배들이그길을포장하고번지수를달고개선하여더쓸모있는길이되게해주기를빌어봅니다.”
‘욥기입문서’라고소개하였으나이는욥기를쉽게이해하게해준다는점을부각한표현일뿐,이설교에담긴내용은더할나위없이깊다.우리믿음의지평을인과응보라는단순한공식을넘어신자의고난배후에숨겨져있는창조주의거룩한목적으로넘어서기까지인도해준다는점에서기독교가말하는믿음의본질을욥이라는인물을통해꿰뚫은설교이기때문이다.이제막욥기에입문(入門)한것같았으나읽어가는내내득도(得道)했다는뿌듯함을맛볼수있을것이다.이책과함께욥기를일독하였다면,이제욥기를날것그대로곱씹고,파헤쳐더깊은진리의보화를캐낼수있기를희망한다.
저자서문
욥기는흥미로운책입니다.그시대배경을사사시대일것으로추정하는학자들도있습니다.사사시대라면이스라엘역사에서가장곤혹스러운시대상이난무하던때입니다.이난맥상속에서,그학자들의추정이옳다면,하나님은욥을들어자신의성실하심과은혜의능력을증거하신셈입니다.그런데욥기는사사기나룻기와달리창조의능력을들어하나님을증거하고있습니다.
인간은본성적으로윤리종교를가지고있습니다.인과응보가가지는보응의원리,권선징악으로대표되는윤리적가치,지성이면감천이라는샤머니즘이그것들입니다.우리는신앙인이라면서도이런것들을벗지못한채하나님과그분의권위나의지나계획을도외시할때가많습니다.스스로세운이상과윤리를신앙의핵심으로오해하기도합니다.자신이이해했거나소원한것에몰두하기도합니다.이렇게하여성경과다른종교를만들어내고거기에매달림으로써참으로헛된고생을합니다.
욥기는하나님이누구신지를분명하게선언합니다.창조세계의모든존재와그질서와내용과목적이하나님에게로말미암는다고말입니다.이러한하나님을욥이어떻게알게되느냐하는것이욥기의중요한주제입니다.그는자신이만든종교의부족함을알게되는데서출발합니다.윤리와도덕,열심과헌신을기울여도행복과평화라는답은얻어지지않습니다.
욥은뜬금없이극심한고난속으로들어갑니다.왜그렇게된것일까요?그의친구들은욥이잘못하여벌을받는것이라고거듭주장합니다.그러나욥은그것을수긍할수없었습니다.벌을불러올잘못된원인이자신에게없었다는것입니다.이렇게반박은했지만,그렇다고그에게다른설명이있는것도아니었습니다.이납득할수없는현실에서그는자연주의자들처럼체념한채살아가거나아니면죽어버릴수밖에없었습니다.
이막다른현실에하나님이찾아오십니다.하나님은그에게줄곧자신이만든피조물들을보라고말씀하십니다.그것들의존재와가치와의미가하나님에게있다고하십니다.하나님이그것들을존재하게하셨듯이그분이피조물의존재의미와목적과결과의주인이라고하십니다.창조세계는필요와원리의결과물이아니라하나님의기쁘신뜻에따른실재입니다.창조세계는물질의존재에그치지않고그안에하나님의기쁘신영광을담아냅니다.하나님의영광이곧피조물의영광이된다는말입니다.
이지점에서욥이마침내고백하는내용은이렇습니다.“내가주께대하여귀로듣기만하였사오나이제는눈으로주를뵈옵나이다”(욥42:5).즉그는창조의능력과신비와영광을보게됩니다.하나님의구체적영광을보는것입니다.시므온이아기예수를안고서“내눈이주의구원을보았사오니”(눅2:30)라고고백하듯이말입니다.
욥기는모든기독교신앙인들에게한번은풀고가야할숙제였습니다.이제그길을하나뚫은기분입니다.후배들이그길을포장하고번지수를달고개선하고더쓸모있는길이되게해주기를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