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고 회피했다 (세월호 책임 주체들)

외면하고 회피했다 (세월호 책임 주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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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세월호특조위가 강제 종료된 뒤 민간인 신분으로 조사 활동을 계속한 조사관들 31명, 첫 번째 결과물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책임 주체들 그리고 책임의 계보를 썼다. 세월호특조위가 활동 기간 1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2016년 9월 30일 이후 강제 종료되자, 진상 규명 활동을 지속할 의지가 있는 조사관 31명이 결의해 후속 모임을 만들었고, 첫 번째 결과물이다.
저자

세월호특조위조사관모임

세월호특조위(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조사관모임은세월호특조위에서근무했던조사관들이민간인신분으로조직한후속모임이다.
세월호진상규명법에따라만들어진세월호특조위는2015년8월이되어서야예산과인력을갖춰활동을시작했다.그러나2016년6월30일박근혜정부는조사활동을강제종료시켰고,이후세월호특조위는3개월간단식농성,조사활동,3차청문회까지진행하면서부당한폐쇄에항의했다.결국9월30일이후기본업무시스템이정지되고,사무실출입조차불가능해지면서세월호특조위는법이보장하는활동기간1년6개월을채우지못하고국가기구로서의활동을마치게되었고,이후진상규명활동을지속할의지가있는조사관31명이결의해후속모임을만들었다.
‘세월호특조위조사관모임’은현재까지‘참사당일정부대응체계정리’,‘세월호인양과정점검’,‘사고원인’등조사활동을진행하고있으며,진실을향해흔들리지않고세월호진상규명이이루어지는그날까지이어갈계획이다.이책은‘참사당일정부대응체계정리’를기초로하고있는데,공동작업에참여한조사관들은진상규명국김성훈·박상은·서희정조사관,안전사회과김진희·전수경조사관,피해자지원점검과김경민조사관이다.책임집필은안전사회과김선애팀장이맡았다.

목차

발문
출간에즈음하여

그날누구도지휘하지않았다:초기구조에서해경의책임
책임자없는현장,서로에게떠넘겼다
목포서상황실이직접세월호와교신하지않았다
서해청상황실도지시하지않았다
목포서장도교신지시를내리지않았다
해경본청상황실
9시18분,‘교신되지않는다’
9시27분,‘대부분배안에있다’

현장에도착한123정,9시30분부터9시45분까지34
123정과세월호와의교신,없었다
퇴선방송을하지않았다
9시44분,결정적시간

위기에어떤지시를내렸는가
처음에구조한사람들이선원들이라는사실
3009함을타고뒤늦게현장에도착한목포서장
9시14분목포서장의지시
9시30분이후목포서장은
9시30분이후해경지휘부들은

배밖에서국가는무엇을했는가
세월호참사에서국가의책무
1.‘내관할,내소관이아니다’
집행없는행정
주된관심사는‘상부보고’
지휘공백사태
대다수의승객들이선내에있다는사실
2.책임행위의주체들
책임자와책임질조직,가려낼수있다
현재까지드러난기관들의법적책임
검찰수사와감사원조사
대통령의직무책임
청와대의법적책임
안전행정부와해양수산부의법적책임
3.핵심정보와보고가청와대에집중되었다
그들만의‘안전’
참사당일청와대와대통령의타임라인
참사당일상황분석
유선보고왜곡
4.전형적인관료주의에빠진사람들
청와대없는컨트롤타워
중대본,관료제에막혔다
5.청해진해운의전화번호를추가했을뿐이다
해양수산부는해경을지휘하지않았다
6.군을초동단계에서투입하지못했다
조사를받지않는해군

출판사 서평

조사관후속모임의첫번째공동작업!
세월호특조위가강제종료된뒤민간인신분으로조사활동을계속한조사관들31명,첫번째결과물이다.세월호참사당시책임주체들그리고책임의계보를썼다.

세월호특조위가활동기간1년6개월을채우지못하고2016년9월30일이후강제종료되자,진상규명활동을지속할의지가있는조사관31명이결의해후속모임을만들었고,첫번째결과물이다.

‘내관할,내소관이아니다’부처간책임떠넘기며…
‘부처칸막이’로상황전파가지체된전형적인사례

참사의순간에는수많은이들에게책임이있는것처럼보이나,사실책임자,책임져야할조직이명확히존재한다.분명그들을가려낼수있다.조사관들은세월호참사당일정부가어떻게대응했고어떤책임이있는지를밝히는데우선집중했다.인명을구조할핵심적인조치가취해지지않은이유를먼저조사하기로했다.세월호특조위가공개한문건,동영상,중간조사보고서등에기초해기록과자료를분석하면서,구조기관과책임자들의동선을추적해나갔다.공개된자료를중심으로2016년11월부터2017년1월까지조사를진행했다.여기에국정원과국방부,해경측이세월호특조위에자료제출을끝내거부한까닭에빠진부분등은일정한한계를갖는다.

‘국민의안전불감증’이재난을부른것이아니다.탈출하지못한친구를찾으러다시배안에들어간학생의책임감이참사당일정부기관이나관료들에게는부재했기에참사가일어난것이다.구조기관들은참사당일‘내관할,내소관’이아니라는이류로자신들은몸을빼면서다른곳에책임을떠넘겼다.참사당일승객들의신고전화가정부각기관으로넘어가면서사실이축소되고왜곡되는것은그때문이다.구조기관의지휘부는서로소임을미루었고,일선현장의구조자들은문책을피하기위해소극적으로대처했다.
아무도지휘하지않았다.자신들이아니라도누구든지휘하면된다고미루어놓고서막상아무도하지않으면어떻게되는가.다른부처,다른직원들에게그냥구조를맡겨두고있었다.이러한행태는해경뿐아니라정부재난대응기관들에서공통으로나타났다.자신들의업무가아닌일에그토록적극나설필요가없다는것.이는세월호참사당시충격과혼돈속에서갑자기등장한것이아니라,일상의관성처럼,그리고그동안수많은대형참사를겪는과정에서줄곧유지되어온방식이었다.조직의위계와속성상그렇게부처들끼리관할과영역을서로미루면서재난대응의효율성이떨어지고말았다.

주된관심사는‘상부보고’
청와대없는컨트롤타워?

세월호참사에서컨트롤타워의주체들인대통령과장관,해경지휘부,중간관료,하급관료들이어떻게대응했는지를살펴보면,그날그들의주된관심사는‘상부를위해서만관리되는정보의흐름’이었다.참사당일관련공무원들이각자의부서에서수많은업무를수행했다고했지만,사실그일은상부기관이나상급자를위한정보수집과보고활동에지나지않았다.구조활동과별관련이없었다.해당부처에서파견나온인력들이중대본이라는한공간에모여구조자수를집계해서,언론에브리핑을하는식이었다.그렇게세월호참사에서관료들은자연재난에나적용될법한기술적관리?감독시스템으로움직였다.
세월호참사당일대응기관들은수치와규모자체를관리하기위해대응하는것처럼보였다.피해수치와규모자체를관리하기위해정부의역량을총동원하는것처럼보였다.그럴때보고서에숫자를채우는데급급해하는그들의행위를멈출게할곳은단한곳뿐이었다.당시관할과소속이라는그들만의영역싸움을중지시키고국민의생명을보호할권한이주어진곳은대통령과청와대밖에없었다.실제로참사당일상황에대한핵심정보와보고는대통령과청와대에집중되었다.그러나그곳에서적절한지시와와조치가나오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