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 (1313일의 기다림)

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 (1313일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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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세월호 미수습자 다섯 사람의 네 가족 그리고 1313일
세월호 미수습자 다섯 사람. 단원고의 남현철 군, 박영인 군, 양승진 교사 그리고 일반인 권재근 씨, 권혁규 군 부자. 2014년 4월 16일 참사 이후 1313일 동안뼈 한 조각이라도손꼽아 기다렸던가족들은아들을, 남편을, 아빠를, 동생을, 조카를 가슴에 묻기로 하고, 2017년 11월 18일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 인근컨테이너 숙소 생활을 접고 떠났다.끝내 돌아오지 않은 가족에게미안해하면서….책은 세월호 1313일의 기다림, 그리고 마지막 네 가족을 그렸다.

처음에는 그 배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아홉 명을 찾을 것만 같아 애타게 물 밖으로 나오기를 수많은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달며 기다렸다.
2017년 3월 31일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하고, 4월 11일 드디어 육상에 거치된다.
마침내 거대한 몸집을 수면 위로 드러낸 세월호는 아홉 명의 가족에겐 희망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희망이 점점 절망으로 변해가리라는 것을. 재개된 미수습자 수습 과정에서 넷은 유해라도 찾았는데, 끝내 다섯은 유해를 찾을 수 없었다. 미수습자 다섯 명의 네 가족은 다시 절망했다. 가방과 유류품이 나온 경우는 그래도 다행이었다. 유류품 한 점 찾지 못한 가족도 있었다. 유해를 찾은 미수습자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고 목포신항을 떠나면서 남은 네 가족은 막바지로 몰렸다. 미수습자 네 가족은 2017년 11월 16일 해양수산부의 수색 종료 방침을 수용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년 7개월 만이다. 11월 18일 그토록 기다리던 유해 한 점 찾지 못한 가족들은 결국 목포신항을 떠났고, 11월 20일 빈 관의 장례식을 치렀다. 빈 관에는 시신 대신 병풍도 앞바다의 해저 흙이 담겼고, 가족들의 간절한 편지와 꽃들이 채워졌다. 마지막에 들른 단원고에서는 가족들에게 운동장의 흙을 넘겨주었다. 빈 관의 장례식을 마지막까지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지켜주었지만, 다시 미수습자 가족들은 절망의 시간 속에 놓였다. 그렇게 마지막 네 가족은 고스란히 절망을 받아들이며 세월호 곁을 떠났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2017년 11월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합동 추모식을 치른 뒤 안산 제일장례식장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저자들인 오마이뉴스 기자들은 세월호 참사 후 3년 7개월의 시간을 고통 속에 보냈지만 결국 뼛조각조차 찾지 못하고 떠나야 할 미수습자 네 가족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기 위한 동행을 준비했다. 목포신항에서 추모식이 엄수된 11월 18일까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들은 세월호 주변을 거닐고, 함께 밥을 나누고, 컨테이너 숙소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자들에게 속내를 들려주었다. 기자들은 목포신항의 합동 추모식, 서울과 안산의 장례식, 2018년 1월 사십구재, 현충원 안장까지 함께 했다.
저자

이경태

저자이경태.남현철군가족을인터뷰했다.현재오마이뉴스기동팀에서일하고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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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말

1부떠날채비

“내가마지막까지남을줄이야”
:목포신항을떠날결심

지옥에서의3년7개월,엄마는무서웠고아빠는미쳐갔다
:남현철군엄마아빠가아들을보내는마음

그날이후,엄마아빠는상복을세번입었다
:박영인군엄마아빠가버틴세월과버텨야할세월

“이매정한사람아…”아내는남편흔적하나못찾았다
:양승진교사와아내유백형씨의32년

“손가락질받기전떠난다”빈손으로돌아서는팽목항산증인
:권재근ㆍ권혁규부자를기다려온권오복씨의1313일

2부입관과발인

세월호해저흙,미수습자봉안함에담기다

세월호떠나는날분억센바람“우리아들,가기싫은가보다…”
:시신없는관,가족들의오열

“이렇게가면안돼요”수많은미안함들,후회들
:발인을앞두고잠못드는…

시신없는세개의관,단원고로떠나다
:단원고운동장흙받아들고다시떠나는미수습자

“아프지말고엄마기다리고있어”
:‘세월호마지막안치’후겨울비가내리다

세월호에남은비상구흔적

3부편지와일기

양승진교사의딸지혜씨의‘아빠에게부치는편지’
:“자신이없습니다,당신을보내드릴자신이…”

아들없는아들관에넣은아빠의일기장
:현철아빠,“죽고싶을때마다한장한장썼다”

모두가떠나고,빈세월호만남았네
:도살장에각을뜬소처럼,선체가해체된모습으로

4부사십구재,현충원안장

“잘지내는거지?”엄마의108배
:사십구재날이아들생일…

아내는침대밑머리카락모았고,남편은결국현충원에묻혔다
:세월호순직교사아홉명합동안장식

발문을대신하여

출판사 서평

◎만일일어날지도모를‘영원한미수습’이라는문제
2018년5월초.이제목포신항에서세월호를바로세우는일을앞두고있다.타기실과기관실에쉽게접근할수있게되면서,조타기조절기고장등세월호침몰의원인을정밀히살피게될전망이다.하지만이마지막수색과정을애타게기다리는사람들이있다.바로미수습자가족들이다.미수습자유해를찾을줄모른다는실낱같은희망을갖고목포신항에서오는소식을기다릴것이다.그기다림의시간은얼마나간절할까.
하지만여기서마저찾지못하면어떻게될까.세월호미수습자가족들을관심갖고지켜보는많은이들의마음한편에는그런불길함과불안이자리하고있다.
“이분들중끝까지돌아오지못하는분이계시면어쩌나.혹시누구라도영원히미수습자가족으로남게되면어쩌나.
지금은그래도세월호선내수색을더할수있다는희망이라도있지만,그것마저다끝나고나서도못찾는분이계신다면….”(유경근위원장의발문에서)
바로‘영원한미수습’문제다.영원한미수습자가족이라는이름이주는고통의무게를누가알수있을까.

◎1편의편지와16편의일기
남현철군아빠남경원씨는“죽고싶을때마다한장한장썼다”고했다.아빠는참사이후일기를쓰면서하루하루를버텼다.2017년11월20일시신없는아들의관이타오를때남경원씨는뼛조각조차찾지못한아들대신새로마련한교복과속옷,신발을관에넣었다.그리고2014년4월16일이후아들을기다리며썼던자신의일기도인쇄해서함께넣었다.
진도실내체육관이처음에는가득찼다가서서히시신을찾은사람들이빠져나가면서느끼는공황상태,아이가없는아이의방에처음들어갔을때겪은감정의소용돌이,처음에는그토록미웠던세월호가나중에목포신항에올라와가까이마주하게되면서친구처럼친숙해지는사연등긴어둠속터널같은시간을보내온기록이다.
1313일동안한결같이‘오늘은아이를만날수있을것만같은설렘과미안함’으로기다렸다.목포신항에서는아침에일어나면맨먼저세월호를보며아이를빨리돌려달라는말로하루를시작했다.
양승진교사의딸양지혜씨는2017년11월18일진행된입관식에서아버지의유품이담긴관에편지를내려놓았다.관과함께태워진편지의재는영원히열리지않을아버지의봉안함에안치됐다.

◎아내는세월호에서남편의체취를느낀다
세월호는남편의체취를담은마지막존재.장례를치르고떠나기전에조금이라도더기억해야한다.아내만느낄수있는공감각적체취.1313일동안,세월호에서남편의흔적은하나도나오지않았다.

◎지옥에서의3년7개월
미수습자권재근씨의형인권오복씨는지친유가족들이하나둘떠날때도사고해역을지켰다.진도실내체육관에서218일,팽목항에서862일,목포신항에서233일.그는“아직미수습자가있다는걸보여주기위해서라도버텨야했다”고말한다.오기로버틴것도있다.“자,봐라.여기지금시신못찾은미수습자가족이기다리고있다.”

◎편지와일기에서
“캄캄한바닷속에서여전히당신은굶주리는데밥을넘기고있는저를용서하세요.낮과밤구분없는당신은여전히어둠속인데밝은빛을보고있는저를용서하세요.당신을딸로서지켜주지못해,찾아주지못해미안합니다.너무미안합니다.”(양승진교사의딸양지혜씨가아버지에게부치는마지막편지에서)
“어제저희부부가진도팽목항에가울면서아이이름을불러보았지만,돌아오는건외로움과공허함뿐이었습니다.저지평선넘어아이가있어바닷속에서건져달라고소리치는것만같아심장이터질것만같아요.하느님,이제아이를돌려보내주시면안되나요.십프로조차안되는확률도제욕심일까요?”(남현철군의아버지남경원씨의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