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독자들 : 현대 정치철학의 마키아벨리, 홉스, 칸트 독해

정치적 독자들 : 현대 정치철학의 마키아벨리, 홉스, 칸트 독해

$17.00
Description
철학의 고전들은 언제나 새로운 영감을 제공한다. 하나의 해석을 허락하지 않고 끊임없는 재독해를 통해 독창적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 고전의 매력이다. 정치철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은 현대 철학자들이 마키아벨리, 홉스, 칸트 같은 근대 고전을 어떻게 독해해 자신들이 처한 정치·사회적, 역사적 상황과 대결했는지를 탐색한다. 결국 책은 정치철학은 언제나 정치적 독자들이 수행한 정치적 독해의 과정이며 과거의 텍스트와의 끊임없는 대결 속에서 전개돼왔음을 보여준다.

마키아벨리를 맑스주의의 이론적·정치적 위기의 관점에서 사고한 그람시와 알튀세르, 근대성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홉스의 역설에 다가간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또 홉스의 실패를 통해 자신의 위기를 거울삼으려 한 슈미트, 그리고 칸트의 공통감각 개념을 각각의 정치적 공동체성으로 확장해 이해하려 한 아렌트와 랑시에르, 아도르노, 여기에 각자의 저작들에서 은밀히 서로를 참조하며 반박한 동시대의 슈미트와 벤야민까지, 모두 정치적 실천의 지평 속에서 고전 텍스트들을 살아 있게 만든 정치적 독자들이었다.
저자

한상원

저자:한상원
서울시립대철학과에서맑스의물신주의와이데올로기개념연구로석사학위를,독일베를린훔볼트대에서아도르노의정치철학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저서로<앙겔루스노부스의시선>,<계몽의변증법함께읽기>,<니체의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데모스의민주주의>,역서로<공동체의이론들>,<아도르노,사유의모티브들>등이있다.비판이론과현대사회·정치철학을주로연구하고있으며,각이론들간상호대화와교차에관심을기울이고있다.충북대철학과에재직중이다.

목차

책을펴내며

마키아벨리의정치적독자들
마키아벨리의정치적유산
마키아벨리를읽는그람시:계급투쟁과헤게모니
마키아벨리를읽는알튀세르:이론적실천
‘마키아벨리를읽는그람시’를읽는알튀세르:이데올로기론

보론
마키아벨리의<피렌체사>:공화국의비르투혹은갈등속에서정치의역할에관한지혜

홉스의정치적독자들
홉스의역설
홉스를읽는호르크하이머와아도르노:자기보존과자기부정사이
홉스를읽는슈미트:자유주의자홉스?
‘홉스를읽는슈미트’를읽는스트라우스:자유주의자슈미트?
‘홉스를읽는슈미트’를읽는발리바르와무페

보론
정치적상호독자들로서슈미트와벤야민:예외상태논쟁

칸트의정치적독자들
칸트의공통감각개념
칸트를읽는아렌트
칸트를읽는랑시에르:감성의분할과메텍시스
칸트를읽는아도르노:미메시스와짜임관계

참고문헌
주요개념어및인물

출판사 서평

정치적독해는언제나자기시대의위기를조망하기위한실천이었다.정치적독자들은서로다른역사적‘위기’상황에서그위기의이론적공백을메우기위해고전을독해했다.

정치적독자들1:그람시의마키아벨리독해

이론은당대의역사적상황을반성하는데서출발한다.중요한것은‘어떠한맥락에서’그렇게상이한방식으로정치적독해를수행했냐는것이다.그람시는공장평의회운동의패배와파시즘의집권이라는역사적위기,동시에맑스주의의위기에서마키아벨리를읽었다.1921년파시스트세력이이탈리아전역에걸쳐병력50만명과무기를비축하고관료들의지지를획득한상황에서이탈리아사회당이여전히무솔리니와파시스트의영향력을간과할때,그람시는마키아벨리를읽었다.1919년부터1921년까지격렬히전개된토리노공장평의회운동에참여했던그람시는‘이탈리아노동자운동은왜파시즘에패배했나?’라는질문을던지며,마키아벨리를읽었다.그람시가보기에패배는외부적조건이아니라혁명세력의정치력부족에서나온것이었다.그람시는정치를‘상부구조’에불과한것으로,정치적지도력의문제는부차적인것으로인식하는당대맑스주의자들에맞서정치적지도등을본격적으로제기하기위해마키아벨리의언어를필요로했다.

그람시가보는마키아벨리는사유와행동,철학과정치,정치와윤리의통일성을주창한사람이었다.그람시에게필요했던것은정치적지도력에대한마키아벨리의직관적예리함이가리키는실천적귀결들이었다.따라서그람시는마키아벨리독해에서‘헤게모니’(정치의헤게모니적요소)를이론화하기위한틀을발견한다.

그람시는마키아벨리의군주는구체적이고특수한개인의인격이아니라군주라는‘자리’이며,따라서군주는하나의이론적추상물이라고해석한다.<옥중수고>에서‘현대의군주’라는모델을제시할때그람시는‘군주’를정치적정당이라는집단적주체로해석해,‘군주개인의권력독점’이라는파시즘적인해석에대항한다.그렇게해석된<군주론>이야말로맑시스트들에게강한매력을가진텍스트였다.이처럼그람시에게<군주론>은맑스·엥겔스의<공산당선언>에맞먹는‘정치적선언’이었다.

정치적독자들2:알튀세르의마키아벨리독해

알튀세르는또다른맑스주의의위기국면에서그람시의해석을비판하며마키아벨리를읽었다.1970년대초반알튀세르는프랑스공산당내에서‘인간주의적’경향이지배할때그에맞서다당내에서고립되고실패를겪었다.그런가운데이론적자기반성을수행한다.초기저작들에서제기한‘이론적실천에대한이론으로서철학’이라는관념을스스로비판하고,철학에대한계급투쟁의우위를주장한다.이처럼실천에대한관심속에서알튀세르는그람시와마키아벨리를탐구했다.분명‘마키아벨리와계급투쟁’이라는주제는그람시를경유해사고해야할대상이었다.

알튀세르는자신이초기에제시했던‘이론적실천’개념을새로운각도에서재정의한다.저술가이면서동시에정치가였던마키아벨리는‘정치적실천’을수행하기도하면서동시에이론과정치의공백을메우는‘이론적실천’을보여준다.알튀세르는그런마키아벨리를기존의문제틀에대한단절로서‘이론에서의계급투쟁’을수행한사상가로해석한다.알튀세르가보기에마키아벨리의글쓰기는‘정치적행위’그자체였다.

그런점에서알튀세르는“<군주론>이군주의정치적실천에관한텍스트일뿐아니라,그자체가정치적행동”이라고평가한다.이는정세에대한지식인의실천적개입을뜻하며,그지점에서알튀세르는마키아벨리를‘유기적지식인’의모델로이해했던그람시를계승한다.

하지만1976년프랑스공산당이22차당대회에서프롤레타리아독재를폐기하고유로코뮤니즘으로노선을전환할때알튀세르가치열히비판하며‘맑스주의의위기’를선언한이후,그는그람시와멀어진다.알튀세르는그람시가경제주의를비판하는중에‘상부구조의우위’로기울어이데올로기를무시하고이데올로기론을전개하지않았다고비판한다.급기야마키아벨리의군주로부터‘공산당=현대의군주’를도출하는그람시의발상을공상적이라고평가한다.

알튀세르의비판은그람시의마키아벨리독해를겨냥한다.헤게모니의기능을천착했던그람시는‘동의’에집중하고정작정치적‘강제력(힘)’의문제를놓치고있다는것이다.알튀세르는그람시와달리마키아벨리는‘동의’뿐아니라‘강제력’을설명할수있는이데올로기론을갖고있었다고본다.이제알튀세르는마키아벨리를이데올로기적국가장치라는개념에이르는길을처음개척한인물로,‘지배이데올로기의비밀’을누설하는이론가로해석한다.

결국마키아벨리의두독자는서로다른역사적‘위기’상황에서그위기의이론적공백을메우려고마키아벨리를독해했던것이다.

정치적독자들3:슈미트의홉스독해

1933년5월슈미트는나치에가입한다.그러나1936년나치친위대의기관지<검은군단>으로부터가차없는비판을받은뒤프로이센추밀원이라는한직으로밀려나게된다.그런상황에서헌법제정이라는그의과제에대해당은무관심으로일관하고히틀러본인도새로운질서의‘호국경’이되려고한다.그런위기상황에서슈미트는다시홉스를읽었다.즉그런맥락에서1938년에나온슈미트의홉스비판은동시에자신의정치적실패에대한진단으로,자신의정치적전망과기획이실패했음을토로하는고백일수있다.다시말해슈미트의홉스독해는그가봉착한난관을보여준다.발리바르또한정치적위기에처한슈미트가홉스와자신을동일시해홉스를“절망적으로”읽었다고주장한다.

하지만슈미트는홉스를넘어서려고했다.슈미트의전략은‘리바이어던의죽음’을말하면서그죽음의원인을홉스자신에게돌리는방식이었다.리바이어던이불멸의신이아니라필멸의신,유한한존재인이상,그것이언젠가내전이나반란에의해파괴되리라는점이암시된다고지적한다.즉슈미트는홉스에게서국가가수립되면서억제되는것으로묘사되는‘내전’을부활한다.

더나아가슈미트는한때자신이결단주의적주권이론의선구자로매료됐던홉스를‘자유주의자’로극단화해비판한다.홉스가기적및신앙에대해뿌리깊은개인주의적인유보를드러내는대목에서슈미트는그런내적믿음에대한국가의유예를‘리바이어던의죽음’의맹아로보았다.즉개인의‘외적행위’만주권자에의해통제되고‘내면’에선불간섭의원칙이통용되는것이다.이렇게국가가내적인믿음을사적인것으로추방함에따라인민의영혼은내면성의길을걷게됐다고슈미트는한탄한다.그런의미에서슈미트는홉스를근대적의미의‘개인적자유’를열어젖혀사회를상시적내전의혼란에빠뜨린인물로독해한다.

이제슈미트는홉스의국가론이새로운전체주의적국가의통일성과총체성을표현하지못한다고비판하며정치적인것을‘재신성화’하려한다.그리고리바이어던보다더높은권위,즉현존하는법적안정성에중단을초래할예외상태의결단주의로나아간다.

정치적상호독자들:슈미트와벤야민

1973년5월슈미트는한스외르크피젤에게보낸편지에서자신이1930년대벤야민과매우빈번히접촉하고그의사유와지속적으로대결했음을암시했다.1973년4월마찬가지로피젤에게쓴편지에서슈미트는자신의홉스저작이직접적으로벤야민을겨냥한것이라고말하고있다.이렇게슈미트가고백하고있듯이그의홉스비판은궁극적으로벤야민을겨냥한것이고,홉스가언급한리바이어던의안정성을벤야민이강조하는‘주권의부재’라는표상에대립시키려한것이었다.

일찍이1930년12월벤야민도슈미트에게보낸편지에서자신의저작<독일비애극의원천>이그의저작<독재론>에얼마나빚지고있는지를고백했다.유태인좌파지식인인벤야민이보수적인국가철학자이자훗날나치당원이되는슈미트에게보낸이신앙고백은매우충격적이어서훗날그편지가벤야민전집에실려출판됐을때학계는그야말로충격에휩싸였다.

슈미트는보수주의법학자로주권독재와예외상태,법효력의중지를이론화한사람이지만,역설적이게도그의문제제기는정치적으로정반대편에있던유태계철학자벤야민에의해비판적으로수용된다.그러나벤야민은그것을통해거꾸로,예외가상례가되고민주주의와전체주의가서로교차하는위기의시대를극복하는전망을도출하려고했다.

칸트의정치적독자들:아렌트와랑시에르,아도르노

<판단력비판>에나오는칸트의‘공통감각’구상은새로운공동체성의나눔과참여를이론화할자원을제공한다.여러철학자가현대적공동체의형성에전제돼야할구성원들의공통성을공통감각에비춰사유해보려고했다.

아렌트는칸트독해를통해소통과합의를통한정치공동체의형성을사유한다.칸트에게서판단력은고립된개인의주관성을타파해타인의입장을이해하는능력으로제시되는데,그런점에서아렌트는<판단력비판>을정치철학저작으로이해했다.아렌트는이렇게말했다.“공통감각에대해말하자면,칸트는가장사적이고주관적인감각인것처럼보이는감각속에서주관적이지않은어떤것이존재하고있음을아주일찍깨달았다.”이처럼아렌트는<판단력비판>이지닌정치적의미들을가장민감하게해독해냈다.

그런데공통의쟁점을둘러싸고소통을거쳐합의에도달한다고할때랑시에르는과연모든이해관계에서벗어난,투명하고중립적인공론장이존재할수있나하고질문했다.그리고감각의공유는동시에분할이기도하다며분할을둘러싼정치적갈등이필연적임을자신의이론적주제로삼았다.즉랑시에르는칸트가전제하는공통성의구조는투명한절차를통한합의에따르지않고,끊임없는감각적분할과재분할의과정을두고배제와참여의갈등속에전개된다고보았다.

또아도르노는사회적분할의재분할과정치적공동체의형성과정속에서미메시스적연대의형태들이발견될수있다고봤다.그러면서그가능성으로‘타자’를닮으려하는주체들의미메시스적충동을제시한다.즉충동의형태로내재해있는미메시스적능력을동일성원칙을넘어타인을인식할수있는근거로보았다.아도르노의전제는“의식은그것이타자와닮아있는만큼타자에대해알수있다”는것이었다.그런의미에서아도르노는미메시스를‘공감능력’이라는의미에서‘공통감각’의전제로재사유한다.그점에서아도르노는분명<판단력비판>의칸트에대한독자로서자신을드러낸다.

저자의말

새로움이없다는것,변화가없다는것은그자체로파국이라는형벌과같은것이다.그러나철학적성찰은그런반복의순환을넘어서는변화의순간을놓치지않기위해끝없이자신의노동을이어가야한다.정치적독자가되는것은그러한실천의한방편이다.
또더나아가고백하건대,필자자신도현재우리가마주한위기의한복판에서고전적텍스트들을독해하려고시도하는한사람의정치적독자임에틀림없다.결국이책에서보여주고자하는바는,정치철학은언제나정치적독자들이수행한정치적독해의과정에서드러나는과거의텍스트와의끊임없는대결속에서전개돼왔다는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