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재판 몰아보기 (12·3 내란 1심 재판)

내란재판 몰아보기 (12·3 내란 1심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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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피고인으로 칭하겠습니다” 첫 공판부터 “주문,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합니다” 선고까지.
내란재판은 여러 갈래와 굽이가 펼쳐지는 지난한 여정이지만 돌아보면 뚜렷한 궤적이 남아 있다. 사건의 결정적 장면과 증언 등이 모여 ‘12·3 내란’의 전모를 이루는 과정을 그렸을 뿐 아니라, 진술 한마디, 작은 증거에 드러나는 계엄의 밤 개별의 판단과 불안한 내면까지 포착했다.

법정에 선 피고인과 증인들의 발언을 중심으로 재판을 순차적으로 따라갔다. 재판에 대한 기록은 KBS 구성원이 작성한 자체 속기록과 중계방송, 판결문 등에 기반을 뒀다.
저자

이호준

현KBS에서법조와정치,탄소중립,사학비리등을,직전SBS비즈에서경제와산업을취재했다.2023년‘이문옥밝은사회상(보도부문)’,2024년대한변협우수언론인상을수상했다.알고싶은것과알아야하는것그리고잊지말아야할것을취재해보도하려노력한다.

목차

책을펴내며
내란재판시작:체포와구속,구속취소
대통령파면:내란우두머리혐의1차공판
계엄군지휘관들의증언“지시가이상하다,물러서라”:내란우두머리혐의1차·2차공판
네번걸려온‘대통령님’전화,“총쏴서라도들어가”:내란우두머리혐의3차·4차공판
국회에모인시민들을보고정신든특전사지휘관:내란우두머리혐의5차·6차·7차공판
내란특검과재구속:내란우두머리혐의8차·9차·10차공판
“코드원이라고들었다”,“두번,세번걸면된다”:내란우두머리혐의11차·12차·13차공판
‘총쏘라’던사람,“뉴스에서많이듣던목소리였다”:내란우두머리혐의14차·15차·16차·17차공판
“1.8평짜리방안에서‘서바이브’하는것자체가힘들어”:내란우두머리혐의18차·19차·20차공판,체포방해혐의1차공판
“총한번만쏘면되지않느냐”,체포저지시나리오?:내란우두머리혐의21차·22차·23차공판,체포방해혐의2차·3차공판
그는웃다가소리쳤다,“김건희가뭡니까!”:내란우두머리혐의24차·25차·26차공판,체포방해혐의4차·5차공판
대통령과폭탄주그리고‘한동훈총살’:내란우두머리혐의27차공판,체포방해혐의6차·7차공판
법정에선“지렁이”에폭소,체포앞두곤“미사일도있다”:내란우두머리혐의28차·29차공판,체포방해혐의8차·9차공판
“부하한테책임을전가하는것아니냐?”:내란우두머리혐의30차·31차·32차공판,체포방해혐의10차·11차·12차공판,일반이적혐의1차공판준비기일
“‘계엄은액션이었다’고전파하라”:내란우두머리혐의33차·34차·35차공판,체포방해혐의13차공판
“통닭이라도한마리사주려하면,딱딱자르나”‘또다른’계엄선포이유:내란우두머리혐의36차·37차공판,체포방해혐의14차·15차·결심공판
“그런이야기하는사람이하나도없다”또책임전가:내란우두머리혐의38차·39차(병합)·40차·41차공판
“경호처공무원들을사실상사병화했다”:내란우두머리혐의등결심공판,일반이적혐의1차공판,체포방해혐의1심선고
‘국무회의개최는나의판단’:위증혐의1차공판준비기일
1심무기징역선고:‘국헌문란의목적에해당한다’
한덕수총리재판:대통령꿈꾼‘관운의남자’,CCTV앞에서멈췄다
이상민장관재판:‘언론사단전·단수’에연루된최측근

출판사 서평

◎내란재판의얼굴들
일찍이2025년1월초공수처등수사기관이체포영장을들고한남동관저를찾았을때부터그는나타나지않았다.첫공판에이어2차공판에서도지하주차장을통해차량으로출입하면서법원에출석하고퇴정하는그의모습을볼수없었다.그래도2차공판에선재판시작전법정에선그를촬영하는것이허가됐다.첫공개였다.법정에서촬영이진행되는3분여동안그는검사석만바라본채취재진이있는방청석쪽은돌아보지않았다.
내란우두머리혐의1차공판,첫증인은조성현수방사1경비단장이었다.그날조단장은법정밖복도에서오전11시부터오후3시넘은시각까지순서를기다렸다.전대통령의진술이길었다.조단장은앞서헌법재판소탄핵심판에서한번봤던얼굴이었다.당시헌법재판소측이직권으로신청한유일한증인.직속상관인수방사령관의“답변드리기제한된다”는말과는너무나다른톤으로,국회에진입해의원들을끌어내라는지시를받았다고증언했던,그리고서강대교에서국회쪽으로오던후속부대에서강대교를넘지말고대기하라고지시했다던그사람.1차공판에서도조단장의목소리는다르지않았다.“이상하다,국회로들어가면안될것같다.”
3차공판부터법원이지하주차장이용을허용하지않으면서전대통령은지상을통해출입했다.불구속상태이던그로선법원에출석하는모습이처음공개되는순간이었다.그는포토라인에멈춰서지도않고취재진의질문에대답하지도않았다.
4차공판엔박정환특전사참모장의증언이나왔다.그는계엄당일밤특전사지휘통제실에서곽종근사령관옆에앉았던이다.그에따르면,계엄당일곽사령관이707특임단과1공수여단에내린‘최초명령’은“국회를확보하라”였다.
김문상수방사작전처장은대중의주목을덜받았다.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열린계엄군수뇌부재판엔4월에일찍증인으로나오나내란우두머리혐의재판엔9월로밀렸다.계엄당일특전사헬기의서울진입을3차례보류한장본인.군검찰은그가거부한세번의시각을손으로세듯제시했다.헬기진입은계엄당일밤10시49분,10시54분,11시19분3차례거부됐다.밤11시31분이돼서야헬기가서울공역으로진입할수있었다.그렇게그가40분넘게헬기를묶어두면서특전사707특임단을태운헬기들은당일밤11시49분에야국회의사당뒤편운동장에착륙(착륙시작)했다.계엄선포를위해생방송카메라앞에선대통령의입에서“비상계엄”이라는단어가튀어나온시각이당일밤10시27분이었으니이후경기이천에서출발한707특임단이국회운동장잔디를밟기까지1시간22분이걸린셈이다.
계엄당일자정쯤,검은카니발한대가국회근처를맴돌고있었다.차에는이진우수방사령관과부관인오상배대위,운전수행부사관이민수중사,그렇게셋이타고있었다.그날밤차안에서셋은비화폰에서들리는목소리를함께들었다.훗날1심판결문에따르면,오대위가대통령과사령관간의4차례통화에대해증언한내용은대부분인정됐다.오대위는네번의통화마다자신의머릿속에떠올랐던이미지를함께언급했다.‘4명이1명씩들쳐업고나오라’는지시를듣고는가마를태워나오는이미지가연상됐다고했다.
이상현당시특전사1공수여단장도비교적일찍증인으로출석했다.계엄당일국회로출동한계엄군260여명을현장에서지휘한그는국회에모인시민들을보고정신이번쩍들었다고했다.“시민들이,아주머니가울부짖으면서‘민주주의를지켜야돼’이런말씀을하는걸보고‘아,이게지금정상적인군사작전이아니구나’인식했다”고말했다.또길거리에있는시민들의행동을보고‘우리가잘못한게아닌가’하는생각이불현듯들었다”고증언했다.
그무렵6월중순내란특검이출범해8차공판부터는내란특검팀이검찰로부터사건을이첩받아공소유지를맡았다.7월10일전대통령은체포방해혐의로재구속되는것과동시에모든의전과예우도박탈됐다.그날열린내란우두머리혐의10차공판에서피고인석은비어있었다.그가자신의재판에출석하지않은건그때가처음이었다.
추가구속된뒤내란재판에불출석하며두문불출하던그는체포방해혐의1차공판이돼서야85일만에법원에모습을드러냈다.넥타이없는남색정장차림에왼쪽가슴에는수인번호가적힌명찰을달고,하얗게센머리카락을짧게자른모습이었다.그날재판부는내란특검법에따라재판을시작부터끝까지전체를공개했다.하급심에서‘선고부분’만아니라‘재판과정전체’가중계된건그때가처음이다.
한덕수총리의내란중요임무종사혐의2차공판에선계엄당일의대통령실CCTV영상일부가공개됐다.그전까지한총리는‘계엄문건은본적이없다’고주장해왔으나CCTV에담긴모습은달랐다.계엄당일밤9시10분쯤그가대통령집무실에서비상계엄선포계획을듣고나와대접견실로들어올때그의손에는문건이2개들려있었다.그날법정에서CCTV영상이공개된뒤,재판장은한총리에게“할말있으세요?”라고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