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완 평전 (민족대표 33인 | 무궁화 피는 동산의 민족혼을 찾아서)

박동완 평전 (민족대표 33인 | 무궁화 피는 동산의 민족혼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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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근현대사의 굴곡이 만든 역사의 빈칸을 메우려는 작업에 천착해온 저자가 주목한 박동완은 3.1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으로 참여했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서 그의 치열한 행적과 사상이 평전으로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호가 근곡(槿谷)인 박동완은 우리나라에 여름성경학교를 처음으로 도입하고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기독교 민주주의자로서 일제강점기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이자 언론인, 목사로서 투철한 삶을 살다간 인물이지만 “셈해지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즉 주연 못지않게 많은 역할을 하고도 묻히거나 잊힌 독립운동가였다.
박동완은 활동 공간이 어디든 ‘민족의 십자가’를 내려놓지 않은 실천적 기독인의 삶을 견지했다. 앎과 삶을 일치시키며 늠연한 기상과 고절한 인품으로 힘겨운 ‘골고다’를 쉼 없이 걸었던 것이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 미주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은 ‘동지회’와 ‘국민회’로 나뉘어 분열상이 심했으나 박동완은 이를 통합하고 치유하는 데에도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해방을 맞이하기 전 1941년에 하와이에서 56세에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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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삼웅

독립운동사및친일반민족사연구가로서현재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공동대표를맡고있다.대한매일신보(지금의서울신문)주필을거쳐성균관대학교에서정치문화론을가르쳤으며,4년여동안독립기념관장을지냈다.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위원,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및명예회복위원회위원,백범학술원운영위원등을역임하였다.
역사·언론바로잡기와민주화·통일운동에큰관심을두고,독립운동가와민주화운동에헌신한인물의평전등이분야에많은저서를집필했다.주요저서로『한국필화사』,『3·1혁명과임시정부』,『장일순평전』,『의열단,항일의불꽃』,『수운최제우평전』,『꺼지지않는오월의불꽃5·18광주혈사』,『운암김성숙』,『나철평전』,『정의의길,역사의길』,『광이불요의지도자:성재이시영선생평전』,『개남,새세상을열다』,『이승만평전』,『김재규장군평전』등이있다.

목차

감사의글
머리글_선생의이름앞에붙일수식어를찾아서

1.출생과성장기
포천출생,서울에서성장
기독교와역사의식깨우친배재학당

2.기독교민족주의자가되다
상투자르고양복입고면학
현순·손정도·이필주목사만나
보성전문학교에서법률공부

3.‘기독신보’에서왕성한집필활동
‘기독신보’참여,창간사집필
나라빼앗긴조선의사회상
방황하는민중에게희망의글쓰기

4.민족운동전면에나서다
민족자결,국제정세포착하고
국내외에서동시적으로독립선언준비

5.태화관에서독립선언
기독교계이승훈중심으로대표선임
종교계‘비폭력’택한배경
민족대표33인중세번째연소자
태화관에서자주독립선언
민족사의대전환3·1혁명
‘3·1혁명’의정명으로불러야

6.당당한법정투쟁
구속당일부터혹독한조사받아
군중모이면소요는당연
‘민족자결’원칙으로독립운동하자고

7.옥살이와가족그리고출옥
가족들굶기를밥먹듯이
석방되어‘기독신보’이어‘신생명’활동
핍박받으며‘신생명’에기고
‘지성일관’의신념,총독부가글일부삭제
‘재만동포옹호동맹’조직,현지조사활동
흥업구락부등민족운동에앞장

8.민족운동에나서다
‘문화정치’내세우며조선민족말살시도
민족협동전선신간회창립주도
임시집행부부의장등책임맡아

9.하와이망명또는이민·이주
일제,역사왜곡을자행하고남산에신궁세워
한인교회초청으로하와이행
하와이교포들에게한글교육
교회성장,고국지원나서기도

10.멈추지않는활동
병환에서도목회와한글교육매진
3개월고국방문,각지에서연설

11.마지막헌신
교민통합을위한거듭된노력
월간‘한인기독교보’발행

12.마지막불꽃그리고서거
마지막열정‘한인기독교보’
1941년55세로소천하다

덧붙이는말
무궁화아호로상징되는민족혼
지언행합일(知言行合一)의실천적삶의궤적

근곡박동완연보

출판사 서평

‘민족대표33인’의일원근곡박동완지사,
그의이름앞에하나의수식어가필요하다면과연무엇이라할것인가?

한국의대표적인평전작가김삼웅저자의이번신작은프랑스철학자자크랑시에르의표현을빌자면“셈해지지않는사람들”가운데한명을소환한다.지금까지저자의평전이주로‘존재는낯익지만실체는낯선독립지사’의삶을복원하는데초점을맞춰왔다면,새로펴낸‘박동완평전’은‘존재도낯설고실체도낯선독립지사’박동안에초점을맞췄다.

근현대사의굴곡이만든역사의빈칸을메우려는작업에천착해온저자가주목한박동완은3.1독립운동당시민족대표33인의한명으로참여했지만거의알려지지않은인물로서그의치열한행적과사상이평전으로출간되기는이번이처음이다.호가근곡(槿谷)인박동완은우리나라에여름성경학교를처음으로도입하고전국적으로확산시킨기독교민주주의자로서일제강점기에비타협적민족주의자이자언론인,목사로서투철한삶을살다간인물이지만“셈해지지않는사람들”가운데한명이었다.즉주연못지않게많은역할을하고도묻히거나잊힌독립운동가였다.저자는“근곡박동완지사의이름앞에하나의수식어가필요하다면과연무엇이라할것인가?이를찾고자평전을쓰게되었다”고밝힌다.

‘무궁화피는동산’이라는‘근곡’의아호에는선생의민족혼이배어있다.일제는대한제국을병탄하면서‘대한’이라는국호와‘무궁화’라는국화를그냥두지않았다.박동완은일본이가장싫어하는무궁화를아호로삼을만큼강기와결기가있었으며,3.1혁명후우리가쓰는시간은일본의표준시각이기때문에그들의시간에맞추어살지않겠다는각오로자신의손목시계를항상30분늦추어놓을정도의강단을지녔다.박동완은3.1혁명으로2년여의옥고를치르고만기출감된뒤일제의감시와협박,회유를견디면서1927년‘민족반일당민족협동전선’의기치아래발족한신간회창립과초창기운영에중추적역할을했다.

박동완은기독교언론인으로서독립운동과민족혼찾기에진심전력했다.3.1혁명에참여하기전한글신문《기독신보》의편집위원과서기로서많은논설과사설을쓰는등실질적주필의역할을맡아수행했다.병탄과함께민족지《대한매일신보》를강탈한일제가‘대한’을삭제하고《매일신보》로개칭하여어용신문을발행할때《기독신보》는우리말글로발행된유일한신문이었다.뿐만아니라박동완은《신생명》,《한인기독교보》,《청년》,《별건곤》등총독부의간섭이극심한매체에많은글을발표했다.그가비교적젊은나이에,기독교계의주류도아닌처지에서민족대표로선임되어서명한것은이처럼기독교언론인으로서의위상때문이었다.언론인의신분으로독립선언에서명한유일한분이다.

신간회활동이총독부의탄압과내부갈등으로분열상을보이고언론활동과신앙운동역시극심한압제의대상이되자박동완은1928년미국의하와이로망명하여활동을이어갔다.하와이와히아와한인기독교회담임목사로서목회활동과《한인기독교보》를발행하는한편,교회안에별도의한글학교를세우고우리말교육을통해교포1세와2세의민족의식고취에열정을쏟았다.하와이는만주,해삼위러시아령,극동지역일대에이어제3의독립운동전진기지가되었다.

이렇듯박동완은활동공간이어디든‘민족의십자가’를내려놓지않은실천적기독인의삶을견지했다.앎과삶을일치시키며늠연한기상과고절한인품으로힘겨운‘골고다’를쉼없이걸었던것이다.그가활동하던시기미주지역의독립운동가들은‘동지회’와‘국민회’로나뉘어분열상이심했으나박동완은이를통합하고치유하는데에도정성을아끼지않았다.해방을맞이하기전1941년에하와이에서56세에소천했다.

“박동완의치열한삶의행적과그의사상이김삼웅선생님의글을통해독자들의마음을울리고적셔주기를기대합니다.이책을통해일제강점기당시독립운동을하다이름없이사라져간수많은민초와독립운동가의헌신이있었다는사실을,우리는식민지배나당할수밖에없는열등한민족이라친일은어쩔수없었다는말이정당화되지않기를,그리고지금의K-문화는저절로주어진게아니라는사실이독자여러분에게와닿기를소망합니다.”-박동완선열의장손박재상·장손부임미선,〈감사의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