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 분배에 관한 인류학적 사유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 분배에 관한 인류학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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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현존’과 ‘나눔’을 토대로 새롭게 열어가는 미래
◆ 누가 무엇을, 왜 가져야 하는가?

전 세계 경제가 급격히 글로벌화되어가는 상황에서 부의 불평등과 분배문제가 나날이 더 대두되고 있다. 특히 분배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할 것 없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첨예한 대립과 갈등의 주원인이었다. 초부유층과 기층 서민들의 간극이 날로 커지고, 부유층 내에서도 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중산층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은 결코 건강한 사회를 담보하기 어렵다. 게다가 요즘은 최첨단 인공지능의 발달로 사람들의 ‘적절한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는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우리 주위에 점점 ‘잉여’ 인간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그 ‘잉여’ 인간이 ‘내’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은 그 관심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일상에 잘 스며들었고,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일반인들도 그 효용을 절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지지부진한 정쟁에 휩쓸려 제대로 된 공론장을 마련해보지도 못한 채 기본소득 논의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분배정치의 시대』로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스탠퍼드 대학 인류학과 제임스 퍼거슨 교수의 신작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은 단순히 기본소득을 논하는 책이 아니다. 전작에서 문제의식 제기 정도에 그친 ‘현존presence’이라는 키워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나눔’과 ‘사회적 의무’를 고찰한, 짧지만 강렬하고 묵직한 책이다. 원서의 부제가 “나눔에 관한 에세이”인 데 비해 한국어판 부제를 “분배에 관한 인류학적 사유”라고 단 이유는 단순히 ‘나눔’보다 훨씬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무엇을, 왜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 시대에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할 도전적인 문제의식이자 사회적 합의 도출이 시급한 화두다.

“넘쳐나는 우리의 부는 어디서 온 것인가? 이전 세대보다 우리가 훨씬 더 생산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그들보다 뛰어난 인종이어서는 아니다. 우리가 더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반면 우리는 100년, 아니 1,000년의 인류 역사를 거치면서 세대를 이은 노동과 희생, 발명으로 건설된 거대한 지구적 생산조직을 통해 그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거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지구 전체적으로 수백만 명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중략) 이 관점에서 본다면 생산과 관련된 모든 체계는 통합된 유산이다. (중략) 분명한 것은 적어도 전체 산출물의 일정 부분은 생산조직의 모든 사람에게 소유권이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지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39~40쪽)
저자

제임스퍼거슨

저자:제임스퍼거슨JamesFerguson
스탠퍼드대학인류학과교수이자인문과학부‘수전과윌리엄힌들SusanS.andWilliamH.Hindle’특훈교수다.1985년하버드대학인류학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고,캘리포니아주립대학어바인인류학과를거쳐2003년부터스탠퍼드대학에서학생들을가르치고있다.지난30여년동안남아프리카지역에대한광범위한현지조사와이론작업을바탕으로빈곤,개발,이주,현대성등에관한인류학과인문사회과학의논의에기여해왔다.
주요저서로는『분배정치의시대』(조문영옮김,여문책,2017)를비롯해『글로벌세계의그림자GlobalShadows』(2006),『현대성의열망ExpectationsofModernity』(1999),『문화,권력,장소Culture,Power,Place』(1997),『인류학적장소들AnthropologicalLocations』(1997),『반정치기계TheAnti-PoliticsMachine』(1994)등이있다.

역자:이동구
서울대학교에서경제학을전공했다.인터넷기업에서프로그래머와시스템담당임원으로근무했으며,현재는마을잡지『디어교하』에서기자와편집자로활동하고있다.인문사회과학외에도물리학,음악,사진등다양한분야에관심이많다.현재는파주문발동에서‘우리술연구소’를운영하며막걸리를빚고있다.옮긴책으로제프리힐의『자연자본 ̄지속가능한성장을위한해법』(여문책,2018)이있다.

목차


해제:조문영(연세대학교문화인류학과교수)

머리말:팬데믹속에서사회가갖는의미를다시생각하며

1장논의의출발:사회적의무가왜필요할까?왜지금?

2장현존과사회적의무:나눔에관한에세이
인류학적으로접근하는사회적의무
_나눔의확장
지구차원의현존정치를향해서
결론

3장부록:일부이론적인대조와설명
사회인류학의전통과‘관대함’에대한분석
_뒤르켐
_데리다
_차터지
_아렌트
_버틀러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누가무엇을,왜가져야하는가?

전세계경제가급격히글로벌화되어가는상황에서부의불평등과분배문제가나날이더대두되고있다.특히분배문제는자본주의,사회주의할것없이과거부터지금까지첨예한대립과갈등의주원인이었다.초부유층과기층서민들의간극이날로커지고,부유층내에서도격차가커지고있으며,중산층이점점줄어드는현실은결코건강한사회를담보하기어렵다.게다가요즘은최첨단인공지능의발달로사람들의‘적절한일자리’가계속줄어들고있다.이는앞으로더가속화될것이다.우리주위에점점‘잉여’인간들이늘어날수밖에없는이유다.그리고그‘잉여’인간이‘내’가되지않으리라는보장은어디에도없다.

지금은그관심이대폭줄어들었지만,몇년전만해도우리사회에‘기본소득’이라는개념이일상에잘스며들었고,코로나팬데믹을거치며일반인들도그효용을절감한바있다.하지만그동안지지부진한정쟁에휩쓸려제대로된공론장을마련해보지도못한채기본소득논의는후퇴를거듭하고있는게현실이다.

『분배정치의시대』로큰주목을받은바있는스탠퍼드대학인류학과제임스퍼거슨교수의신작『지금여기함께있다는것』은단순히기본소득을논하는책이아니다.전작에서문제의식제기정도에그친‘현존presence’이라는키워드를중점적으로살펴보며‘나눔’과‘사회적의무’를고찰한,짧지만강렬하고묵직한책이다.원서의부제가“나눔에관한에세이”인데비해한국어판부제를“분배에관한인류학적사유”라고단이유는단순히‘나눔’보다훨씬광범위한내용을다루고있기때문이다.“누가무엇을,왜가져야하는가?”라는질문은이시대에매우비중있게다루어야할도전적인문제의식이자사회적합의도출이시급한화두다.

“넘쳐나는우리의부는어디서온것인가?이전세대보다우리가훨씬더생산적인이유는무엇인가?우리가그들보다뛰어난인종이어서는아니다.우리가더열심히일을하는것도아니다.반면우리는100년,아니1,000년의인류역사를거치면서세대를이은노동과희생,발명으로건설된거대한지구적생산조직을통해그들이꿈도꾸지못했던거대한부를창출할수있었다.그과정에서지구전체적으로수백만명이엄청난고통에시달리고있다.(중략)이관점에서본다면생산과관련된모든체계는통합된유산이다.(중략)분명한것은적어도전체산출물의일정부분은생산조직의모든사람에게소유권이돌아가야한다는사실이다.다시말해모든사람이지분을가져야한다는것이다.”(39~40쪽)

‘현존’에기반을둔새로운정치적전략을찾아야할때

퍼거슨은‘현존’을“다른사람들과물리적으로인접해있는상태”,“살아있을뿐아니라암묵적으로는적어도최소한의인정과의무를요구하는방식으로여기,우리안에있다는구체적이고사회적인사실”,“노동이나시민권에기반을두지않은(넓은의미의)‘소유권’”,“모든문제점까지공유한채비자발적으로공존할수밖에없는상태”라고정의한다.그런데이정의만으로는‘현존’의실체가명확하게와닿지않을수도있다.이를의식해서인지저자는이렇게덧붙인다.“현존이라는것은글로표현할수도없고자명하지도않다.현존은정치적·사회적인식과정을통해그자체로인정되어야한다.”다시말해현존은구체적인삶의과정에서자연스럽게체득되어야하는개념이라고할수있다.그래서저자는현존의대표적인사례로남아프리카의미니버스택시를소개한다.

“올리브를담은바구니같은것을들고있는승객들을잔뜩밀어넣고는과적상태로달리는게일상이다.덥고땀내나고불편하며,때로는위험하기까지하다.하지만한편으로는일종의사회성을공유하는현장이기도하며,최소한의예의범절과시민행동의원칙을모두가존중하는곳이기도하다.(중략)여기에사회적인계약은존재하지않는다.심지어진정한상호주의조차존재하지않는다.때로는공유요구에더가깝다.새로운승객이올라타면우리에게는의무가주어진다.단지나와같은요구를가지고있는다른사람이나타났다는이유만으로어느정도의공간은포기해야하고,불편을감수해야한다.”(68~69쪽)

이런상황은우리나라의‘지옥철’,‘만원버스’와별반다르지않다.그동안별로의식하지못했을뿐,우리대부분은날마다이렇게타인과사회성을공유할수밖에없는상황에놓여있다.이때‘얌체’짓은금물이다.우리는사회적동물이므로.저자는이렇듯일상에실재하는‘현존’을기반으로새로운정치적전략을찾아야할때라고힘주어말한다.

‘사회’란무엇이며,‘사회적의무’란무슨의미일까?

퍼거슨은“개인간의단순한집합이나연합이아닌,구성원들이구속력있는의무로묶인특정한종류의집단적자아”가‘사회’라고정의하면서,사회라는최소한의개념이없다면‘사회적의무’라는것을이끌어낼수없다고강조한다.그가말하는사회적의무는한마디로‘지분(몫)을나누는것’이다.동시에저자는자신의논지를다음과같이명확히밝힌다.

“‘지분을나누는것’이환영할만한유토피아적인이상은절대아니다.오히려현존함으로써가능해진지분덕에치열한경쟁이촉발되기도한다.진흙탕싸움을벌인끝에대부분의경우마지못해강제적으로받아들이기도한다.여기서공유가발생한다면그것은전적으로‘공유요구’의결과다.종종한심할정도로작은‘지분’은인심이좋아서주는것이아니다.인심은커녕현존하는자체로지분을받을수있는기회가만들어졌기에어쩔수없이받게되는것이다.이처럼명확한비유토피아적정치과정에대한내접근방식은보편적인공유가영원히행복한세상의하늘에그려놓을상상속의파이를제안하는것이아니라현장에서실제로벌어지는과정을추적하는것이다.”(84쪽)

국민국가프레임에서벗어나‘우리’라는감각확장하기

여기서“우리는아직도사회는회원제조직이라는19세기의낡은생각과,사회를규정하고범위를정하는것은원칙적으로국민국가라는전제에사로잡혀있다.이러한개념은사회과학이태동한핵심이며,‘사회보험’,‘사회복지’,여타‘사회정책’의기본이되고있다.하지만우리시대가엄청난도전에직면한지금,권한을부여받은국민국가구성원의집합체와‘사회’가같은것이라는인식때문에우리는엄청난실패를겪어야했다”(48쪽)라는저자의지적을기억할필요가있다.특히요즘처럼심각한저출생과인구절벽에골치를앓고있는한국의경우,취업,이민,유학,관광등의이유로주위에서흔하게마주할수있는외국인의수가전체인구의약5퍼센트에달해있고,앞으로도그수는더늘어날수밖에없는실정이기에포용이아닌배제의속성을가진국민국가의‘성원권’이나‘시민권’이라는틀을고수해서는안된다.
“실제로는우리와매우가깝게있는어떤사람들이관념속의선너머에있다는이유로존재를인식할수없다면,선안쪽에있다고하더라도외국인인경우‘여기우리와함께’있는존재로인식하기에충분치못하다는것도사실이다.혐오에대해연구해온민속지학자들이오래전부터기록해왔던일종의사회적사각지대때문에우리는바로앞에있는사람들의존재조차인식하지못하는경우가많다”(89쪽)라는저작의지적을진지하게되새겨야한다.이제는웬만한식당이나가게에서외국인이주문을받는게아주친숙한일상이지않은가.저자는현존에기반을둔정치가강화되고확장되면어떤모습이될지에대해다음과같이말한다.

“내가생각할수있는가장희망적인경우는,직접적이든아니든,우리의사회적의무에대한인식이더강력하고탄탄해질것이라는점이다.이를통해너무나오랫동안사회와의무에대한우리의인식을지배해온기존의국민국가프레임을붕괴시킬수있을지도모르겠다.그렇게된다면경로를약간만바꾸면지금으로서는도달할수없어보이는정치적결과물을얻을기회가열릴수있을것이다.아마도머리말에서언급한전지구적기본소득과같은전세계적재분배제도가거기에포함될지모른다.”(96쪽)

물론저자스스로“너무낙관적인생각인지도모르겠다”라고솔직한심정을토로하기도한다.그러나“새로운사회적·정치적형태를이해하기위해노력하는중요한이유중하나는그다음에는무엇이올지알수있도록돕기때문이고,가능한미래의경로를그려볼수있는상상력을키워주기때문”인동시에‘현존’과사회적의무에대한실질적인공감대가형성되면향후새로운분배정치가“전세계적으로확장되어포용의지평을넓혀갈수있”으리라보기때문이다.해제를쓴연세대조문영교수의평처럼“전염병,전쟁,기후재난등예측불허의행성적위기에도생존과안전을향한고투가개인과가족으로내파內破될뿐인시대를감당하기힘든독자라면,이책은충분히의미있는위로와자극이될것이다.”

태어날때부터‘우리’라는감각을온몸으로체득해온한국인은그어느나라사람들보다‘우리’의소중함과의미를잘알고있다.그러므로우리가먼저“‘우리’라는감각을확장하는것을목표로성원권의범위와정치적연대의폭을넓”혀가는과제에적극적으로나선다면,조만간완전히새로운정치적상상력을현실화하면서세계를이끌어나갈수도있지않을까.그러기위해서는‘당장내코가석자’라는이기적이고편협한인식에서벗어날필요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