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러진 대지에 하나의 장소를

바스러진 대지에 하나의 장소를

$17.50
Description
‘근거’가 사라져버린 시대에 다시 묻는 민주제와 혁명, 예술의 근원적 의미
2011년 3월 11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일본 각지에서 ‘지식인의 발언’ 요청이 쇄도한 가운데 자칫 대참사를 ‘이용’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극도로 발언을 자제해온 사사키 아타루. 그는 2010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수상 기념 강연을 기회로 작심하고 지진과 원전, 핵병기, 민주제 등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하기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며 열정적으로 논의를 이어나간다. 그 대표작이 바로 「바스러진 대지에 하나의 장소를」이다.

1755년에 발생한 리스본 대지진 이후 대지, 이성, 토대를 뜻하는 ‘그룬트Grund’, 즉 ‘근거’가 흔들렸음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더럽혀진 대지에 다시 하나의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나아가 텍스트에 의한 혁명, 비판적 성찰을 근간으로 한 새로운 예술 창조, 진정한 민주제의 확립 등을 설파한다. 전작인 《제자리걸음을 멈추고》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강연, 기고, 대담, 철학적 에세이 등을 묶어 펴낸 것으로, 이번 책에서는 저자 자신에 관한 에피소드가 상당히 많이 담겼다는 차이점이 있어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저자

사사키아타루

저자사사키아타루는작가이자철학자로1973년일본아오모리에서태어났다.도쿄대학문학부사상문화학과졸업후같은대학대학원에서인문사회연구계기초문화연구를전공해종교학?종교사학전문분야박사학위를받았다(문학박사).호세이대학비상근강사를거쳐현재는도쿄세이카대학인문학부준교수로재직중이다.철학적저서『야전과영원?푸코·라캉·르장드르』를비롯해『잘라라,기도하는그손을』,『이치열한무력을』,『춤춰라우리의밤을그리고이세계에오는아침을맞이하라』,『제자리걸음을멈추고』,『이나날의돌림노래』등을발표했으며,소설작품으로『구하전야』,『행복했을적에그랬던것처럼』,『Back2Back』(이토세이코와공저),『아키코그대의제문제』,『밤을빨아들여서밤보다어두운』등이있다.

목차

1부바스러진대지에하나의장소를
/밝은시력을잃다
/바스러진대지에하나의장소를:‘전야는지금’의기록
/굴욕이아니라치욕을:혁명과민주제에관하여
/‘밤의밑바닥에서귀를기울이다’

2부반시대적인것을두려워하지마라
/문학과예술
/이것은‘문학’이아니다:Absolute/『Self-Referencetwin-Engine』
/반시대적인것을두려워하지마라
/사상을말하다

3부내책은안이한희망의책이아니다
/ATARUSASAKIPhilosopher,Novelist
/정치는‘논증’을웅변하는기예가필요
/2010년기노쿠니야인문대상수상연설
/내책은안이한희망의책이아니다
/쓰면서생각하다

4부그래도‘이유’를질문하며살다
/감동으로말문이막힐따름인저항과투쟁의계속
/그래도‘이유’를질문하며살다
/<라임스타우타마루의위크엔드셔플>봄추천도서특집!
발문277

출판사 서평

텍스트를섬세하게엮어가는작업에서지진피해를거쳐
민주제와혁명,예술에대한근원적인질문으로.
통치의‘기술’을둘러싼깊고도폭넓은사고의궤적이
열광과유머속에펼쳐진다!

◆자연인사사키아타루와‘시원시원한성격의육체노동자’사이

이번책에서는‘사사키아타루’하면으레따라다니는‘일본의니체’라는수식어대신자연인의면모를더많이접할수있다.그는어릴때시력이3.5,어쩌면5.0정도되어남들이보지못하는것을봄으로써괴로운나날이많았다.20대에벌써급속히노안이와서이제는겨우글을쓸수있는수준으로떨어졌다.아프리카대평원이나몽골초원같은데가아니면하등쓸모없는능력을가졌던셈이다.어쨌거나남들보다뛰어난능력을가진반면에‘섬뜩한아이’이기도했던것이다.또원래학교라는걸싫어해서고등학교를중퇴한뒤5년동안놀거나일을했다.수학과국어를잘해경제학부에진학했지만남이시켜서하는공부는질색이었기에와세다대학의음악서클에틀어박혀서학교와는담쌓고지냈다.경제학자체는정말재미있었지만애덤스미스나케인스와마르크스같은사상을꿈꿔서는안되는곳임을깨닫고종교학으로진로를바꿨다.“정상적인철학과에들어갔다가는대판싸움이날테니종교학이나미학을전공하라”는조언덕이었다.전혀예상치못했던『야전과영원』의대성공이후딱히할일이없어시행착오를거듭하며소설『구하전야』를썼다.『잘라라,기도하는그손을』을탈고한뒤형언하기힘든혐오감에휩싸였다.“99.9퍼센트에도달하지않을지도모르지만그래도문학은살아남았다고했던주제에살아남은0.01퍼센트의승리한작자가하는이야기만했다”는자괴감이들어서.그런그는자신을“‘뭐든알고있다’라는지식인의만능주의를굳이피하다가글을쓰게된인간”이라고소개한다.나아가자신의문장과힙합에관해서는이렇게말한다.

“문장에관해서는아무런계산도없습니다.철학과문학에서는이렇게태어난이상이렇게밖에쓸수없다는듯이쓰는자세가중요합니다.그외의다른근거를찾는다면출세제일주의careerism,권력이지요.대박나길바라거나인기가많길바라기때문에권력과돈에오염되고맙니다.권력을원하거나돈을벌고싶으면문학이나사상을관둬야죠.비효율적이니까.제가글을쓰는이유는존경하는베케트의말대로달리재주가없기때문입니다.이토록완벽한대답이또있을까요.”(220쪽)

“힙합은중요한문화입니다.힙합이탄생한장소는새로운형태의게토ghetto(유대인의강제지정거주구역)이므로완벽하게도시설계를해서(주민에게)자유를줍니다.마약거래와서로죽일수있는자유,우리속의자유를.그런데계략대로되지않았습니다.거기에서놀라운글로벌문화가탄생했으니까요.”(221쪽)

그를인터뷰한가네코요시노리에따르면“자기신격화는철저히증오한다.기개있는재능의신선함에비평관계자들은2010년대를상징하는재인才人이라는열띤찬사를보내지만본인은지극히냉정하다.‘후배에게보내는가벼운격려로받아들였으나내시대라는말은단호히거부하고싶습니다.내시대를가진순간그길로끝이기때문입니다.10년,20년만에쇠퇴하는사상은사상이아니니까요.저는앞으로도50년은글을쓰겠습니다’”라는포부를밝혔다.

사사키아타루에대한가네코의한줄평이매우인상적이다.
“시치미를떼고장르의벽에우회도로를내는시원시원한성격의‘육체노동자’”
사사키아타루의향후작업이더욱기대되는이유다.

◆미증유의재해속에서

요즘들어부쩍지진관련기사를자주접하게된다.역사적으로한국은지진안전지대가아니며,신고리원전5,6호기건설중지냐계속이냐의논란때문에지진에대해더욱민감해질수밖에없는상황이다.통상우리보다지진피해가훨씬잦은일본에서는2011년에엄청난재앙이일어났고,일본뿐아니라전세계가큰충격에휩싸였다.이책은그재해직후사사키아타루가작심하고발언한내용을중심으로여러강연과대담,기고등을묶은것이다.몇년전에발표된내용이고형식과주제또한다양하지만오히려지금우리에게시사하는바가더많은책이다.원전문제뿐아니라일각에서는핵병기에대해목소리를높이고있기때문이다.
책에따르면앵글로색슨족이살고있는지역만지진발생빈도가드물뿐거의전세계가지진에대해안심할수없는형편이다.게다가원전문제또한심각하다.그뿐인가.일본에서도핵무장을해야한다는주장은꾸준히제기되어왔다.그런데원전과핵문제는결코우리당대만의,어느한나라만의문제가아니다.전지구적차원에서접근해야하는중차대한문제다.그런데저자의지적대로우리는너무안이한사고방식에젖어살고있는것은아닐까.

핵잠수함사고도몇년에한번꼴로발생합니다.자료를읽으면‘미소핵잠수함충돌사고,상세불명,침몰한것으로추정’이라는한줄로끝납니다.하지만핵탄두든원자로든적재하고있지요.그럼침몰한그핵잠수함들은어디로갔을까요.그들은원래구닥다리가된핵잠수함용원자로는바다에버리거든요.육상의핵병기사고도군사기밀이어서알려지지는않았지만여러번있었습니다.동해[일본해]에버린것도있습니다.미국과소련에서골백번이나실시했던핵실험으로피폭한희생자도세계각국에있습니다.(72~73쪽)

우리도더럽혀졌습니다.원자력발전소가이런상태였던것은알고있었습니다.그런내용의책도출간되었습니다.자료도있었습니다.숨기려고해도미처숨길수없는사실이있었습니다.그럼에도저를포함한우리는손가락물고바라보았던것입니다.문벌귀족이있다는사실을어렴풋이알기는했지만그냥방관했습니다.아닌가요.우리는이러한체제를용납하고묵인했습니다.얼마나큰치욕인가요.이치욕을자초한우리는속죄해야만합니다.(85쪽)

그러면지진에관해서는어떨까.저자의조사에따르면‘매그니튜드’라는단위가생긴것이1935년이고,보급되기까지약간시간이걸렸을테니엄밀하게측정한수치라고하기는무리일수도있지만,20세기일본에서는M7이상의지진이예순한번이상발생했다고한다.19세기에는스물아홉번,18세기에는일곱번,17세기에는여덟번.대지진이점점늘고있는것은아니고기록에남아있지않을뿐이다.1976년세계최대의피해자를낸것은중국의탕산대지진唐山大地震이다.M7.8로60만명이사망했다.2008년에는쓰촨대지진四川大地震으로8,700명의사망자가나왔다.2001년의수마트라해상지진은M9.3으로22만7,900명이,1990년의이란지진에서는3만7,000명,1999년의터키대지진에서는1만6,000명,2005년파키스탄지진에서는10만명이목숨을잃었다.또한2010년M7.0의아이티지진에서는30만명이상이사망했다.단한번의재해로무려30만명,60만명의사망자가나오다니,가히전쟁을방불케한다.우리나라도기원후2년부터1904년까지역사서에기록된전체지진기록이약2,000여회라고하며,작년9월에경주에서발생한M5.8의강진을떠올리면더욱오싹한느낌이든다.지진은언제든발생한다.원전사고도결코안심할수없다.우리는이미미증유의재해속에서살고있는것이다.

◆민주제와혁명,굴욕이아니라치욕을

종교학을전공하고프랑스현대사상에정통한인물답게사사키아타루의논의에는‘혁명’이빠지지않고등장한다.그간발표한다수의책에서꾸준히텍스트에기반을둔혁명이야말로진정한혁명임을강조한데비해이번책에서는현실속의민중혁명을깊이있게다뤄눈길을끈다.특히2010년부터2011년에걸쳐튀니지에서독재정권에반대해민중이봉기한혁명을두고서구의언론매체가일방적으로‘재스민혁명’이라고명명한것에대해‘온건하고길들여진인상을주려’는시도라고비판한다.더불어민주제는이집트의영향아래있었던그리스인이인류에게던진하나의거대한수수께끼로서‘블랙아테나’가창조한것이기에서구인이특별한소유권을주장할처지가아니라고강조한다.따라서서구의언론매체가전하는‘아랍의민주화’,‘이집트의민주화’가얼마나우스꽝스러운표현인지를지적한다.비서구권에속하는사람들이정치에관해사고할때왕왕범하는심각한오류가있는데,민주주의나인권의옹호라고하면곧바로‘유럽적가치관이며본래우리와는무관한,서구에서강요한것’이라고말하는태도다.그러한서구대자신들이라는단순한대립도식을두는것은어리석은일이며,자유와평등을행사할때서구인에게빚진느낌에쫓길필요는없다고피력한다.그들이이도식에따라서비서구인을차별할근거는일체없으며,우리비서구인이이도식에따라서서구적인것에반발하는것도무의미하다고말한다.
혁명에관해서는‘치욕honte’과‘굴욕humiliation’이라는두가지정치철학적인개념을구별해야한다고강조한다.치욕은개인적이거나심리적인혹은내면적인개념이아니며,자신의삶자체의변혁을내포하는감정이다.저자는피터벤슬라마의표현을빌려“남자(인간)인것의부끄러움,여기에혁명하는최고의이유가있지는않을까”라고말한다.원전사고를일으키고도정보조차공개하지않는행태야말로치욕이라고.그리고혁명은대단히구체적인일로촉발되며자신이처한상황을충분히치욕으로느끼느냐마느냐가관건이라고.
반면굴욕이란무엇인가.자신은무슬림인데서구적인가치관에침해당하고있다거나,헌법제9조는미국의강요로만들어졌으니재군비해서일본남아의긍지를회복하라는그런감정을말한다.굴욕은자신이남자인,이사회에서이렇게살고있는남자라는사실에부끄러움을느끼지않는다.결국그굴욕은남의탓으로돌릴수밖에없고고통과고난으로자신을변용시킬생각은하지도않는감정이다.그러므로굴욕이아니라치욕을통해우리의민주제를새롭게창조해야한다고호소한다.

데모스의지배를,데모스에의한데모스의통치기예를우리는아직발명하지못했습니다.우리는우리의민주제를새롭게창조해야합니다.우리는우리를지배하지못합니다.여러분자신을지배하는것이자기자신뿐이라고실감할수있습니까?이나라의이제도아래에서실감못합니다.그렇다면여기에는민주제가없습니다.우리는민주제를도출해야만합니다.(……)무려몇천년전에그리스인이했던말입니다.어떻게우리만이우리를통치하는상황을고안하는가.무엇이데모스에의한데모스의지배인가.몇천년간이어져온이문제는미해결상태로우리눈앞에가로놓여있습니다.그리고이문제를떠맡은당사자는항상우리입니다.우리를통치하고,오로지우리만이우리를통치하도록용납하는,우리의문제입니다.지금여기에는없는,까마득히먼훗날도래할‘우리’를불러모으기위해.그우리를통치하는것은우리이외의그누구도아닌그런세상의기초를마련하기위해.여기서우리가아닌남의잘못으로돌리는굴욕이문제가될수없는것은이미이해하시죠.우리의손만더럽혀졌다는치욕만이지금여기에는없는민주제로가는혁명의이유가될수있습니다.‘근거’가될수있습니다.(89~90쪽)

◆예술과철학,문학에관하여

사사키아타루는종교와철학뿐아니라다양한장르의예술과문학에도상당히조예가깊은것으로정평이나있는인물이다.그만큼각주제에관해풀어놓을말이많은셈이다.『바스러진대지에하나의장소를』에서는예술과철학,문학을대하는그만의독특하고흥미로운관점이다양하게녹아있다.그중핵심적인부분의일부만살펴보자.

유럽예술은다른문화의예술에비해시각이편협하다(예를들면당초부터정밀하기그지없는사실적묘사를으뜸으로쳤던유럽회화의역사를이슬람의장식적인회화문화의역사와비교하라).웬일인지다른일신교에서는(성전에서다양한논의가이루어져야할부분은있을지언정)원칙적으로무한자無限者,theinfinite인신은유한자有限者,thefinite인인간의유한한일개기관인눈에는보이지않는다.그러나기독교에서는예수가신인동시에인간이라고여긴다.(93쪽)

근원적인아르스,다시말해다른모든예술혹은창조행위를가능하게하는예술이있다면그것은대지나‘영토성’과관련된다.살수있는장소를,시공을확보하지않고는예술은불가능하다.그러나필시그시공의확보는예술없이는불가능하다.그리고그것자체가바로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