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완성 (입헌군주제 혁명을 완수하다)

헌법의 완성 (입헌군주제 혁명을 완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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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시각으로 살펴본 프랑스 혁명사!
지금으로부터 226년 전인 1789년 7월 14일, 무장한 민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정복’하면서 본격적으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관련 논문과 저술이 나올 만큼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한국서양사학계의 거목 주명철 교수가 펴낸 연속기획물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은 우리 목소리로 또 우리 시각으로 면밀히 프랑스 혁명사를 살펴보는 시도이다.

책은 혁명이 시작된 1789년부터 테르미도르 반동이 일어난 1794년까지를 무려 10권에 세밀히 다루려 한다. 제6권 『헌법의 완성』에서는 제헌의회가 성문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 혁명을 완수하는 과정을 찬찬히 살펴본다. 특히 이번 책을 집필하는 동안 생생하게 목격한 ‘촛불혁명’을 염두에 두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역사학자로서 여러 가지 당부를 전한다.

온전한 민주제의 확립을 위해 일제시대 이후 100여 년간 지속되어온 온갖 적폐를 청산하는 데 힘을 쏟고, 대의제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를 슬기롭게 결합해 숭고한 촛불혁명을 제대로 완수하자고 강조한다. 민주주의 정치의 학교였던 프랑스 제헌의회의 활약상을 통해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고 미래의 한국 사회를 그려보는 데 이 책이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저자는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을 시작하며 이렇게 밝힌 바 있다. 혹자는 ‘남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일어난 혁명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으나, 프랑스 혁명의 교훈은 언제라도 우리에게 유용하다고 말이다. 새삼스럽게도 ‘자유’의 의미를 다시금 물어야 하는 사태에 직면한 오늘날, 이 책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저자

주명철

저자주명철은1987년부터2015년여름까지한국교원대역사교육과교수로학생들을가르쳤으며문화사학회,역사학회,한국서양사학회종신회원,한국서양사학회회장을지냈다.그동안지은책으로는『대서사의서막』,『1789』,『진정한혁명의시작』,『1790』,『왕의도주』(이상‘프랑스혁명사10부작중1~5권),『바스티유의금서』(이후『서양금서의문화사』로재출간),『지옥에간작가들』,『파리의치마밑』,『다이아몬드목걸이사건과마리앙투아네트신화』,『계몽과쾌락』,『오늘만나는프랑스혁명』등이있고,앙시앵레짐과프랑스혁명관련책을여러권우리말로옮겼다.현재프랑스혁명사10부작을재미있게저술하여한평생추구한학문을제대로마무리하는데매진하고있다.

목차

시작하면서

제1부여론의변화
1.파리의정치클럽
2.국회그리고파리도지도부와시정부
3.루이16세의파리귀환
4.사후처리에대한논의
5.왕과왕비,부이예장군의진술
6.노동자문제와르샤플리에법
7.볼테르의팡테옹안장
8.7월14일의행사
9.튈르리궁의근황
10.코르들리에클럽과공화주의주장
11.국회에대한우애협회들의반응
12.샹드마르스의학살
13.사태수습과질서회복
14.푀이양파

제2부제헌의회의입헌군주제혁명완성
1.제헌의원의재선문제와입법의회선거법
2.파리의입법의원선거
3.제헌의회가본국가재정
4.헌법의완성과왕의승인
5.헌법선포식
6.제헌의회가마지막으로한일
7.제헌의회의이모저모

연표

출판사 서평

제헌의회와함께민주주의정치의첫걸음을떼다

민주주의의근간은법치주의다.그리고선거는민주주의의꽃이다.1789년에바스티유정복으로들불처럼퍼져나간혁명의열기아래프랑스는1791년까지참으로많은일을겪었다.특히1791년에는프랑스역사상최초로성문헌법이제정되었고민주적방식의투표를통해입법의원들을뽑았다.물론당시의민주적방식에는‘평등’의문제에서남녀를구별하고,능동시민과수동시민을구별하는한계가있었지만,1789년의전국신분회대표를뽑을때와비교하면가히혁명적방식이었다.
그간프랑스에서는어떤일들이있었는가?정치적혁명의측면에서보자면1789년6월17일제3신분대표들이주축이되어국민의회를선포하고,20일에는죄드폼에모여프랑스에헌법을제정해주기전에는절대헤어지지않겠다고약속했다.또3일뒤에는루이16세가절대군주로서내리는명령을거부한뒤2년넘게헌법을제정하는일을하면서도복잡한정국을하나하나수습하면서달려왔다.그러나1791년6월20일에루이16세는국경근처까지야반도주했다가바렌에서붙잡혀파리로돌아오는신세가되었다(5권참조).국회에서는왕이‘납치’된것이라며진실을감추기에급급했지만왕을부정하는여론이날로들끓었고결국우리의‘5·18광주민주항쟁’을연상케하는연맹의장(샹드마르스)학살사건까지일어났다.
그럼에도제헌의원들은어떻게든입헌군주제헌법을완성했고,그헌법을기초로프랑스역사상최초의투표로써입법의원들을뽑아놓고물러났다.그들이성취한‘주권의혁명’덕에강고한신분사회는시민사회로탈바꿈했다.그들덕분에왕의통치권은국민주권이되었고,왕은모든법의원천인절대군주에서행정부의수반인입헌군주로바뀌었다.그들을뽑는선거를통해프랑스인들은급격히정치화했고,정치는공개적인행위가되었다.제헌의회가임기를마치고입법의회가시작될즈음과그뒤에도민주주의실험은험난한장애를계속극복해야했지만,제헌의회와함께민주주의정치의첫걸음을뗀것을가장중요한업적으로꼽을수있다.제헌의회는민주주의정치의학교였다.제6권에서는이러한내용을배경으로제헌의회가성문헌법을제정하고입헌군주제혁명을완수하는과정을찬찬히살펴본다.

◆프랑스의입법혁명과우리의촛불혁명
1791년은프랑스에서역사상최초로성문헌법이탄생한해다.제헌의원들은2년5개월동안나라의근간을이루는새헌법을마련하기위해불철주야노력한끝에왕의승인을받아헌법을선포하고다음입법의원들을투표로뽑은뒤9월30일마지막회의를끝으로입헌군주제혁명을완수하고물러났다.그동안프랑스사람들은정치적으로엄청난경험을했다.우선국회의원들이정파에따라국회밖에서각종협회를결성하는한편기관지를발행해일반인과소통한것과각지역주민들이기초의회활동을통해작은단위의정치를경험하면서정치적으로깨이기시작한점을꼽을수있다.여론의힘이막강해지면서마침내절대군주라는영원할것만같던왕의권위를헌법아래에두게되었으며지위고하를막론하고모든것을헌법에기초하게만든민주제를뿌리내렸다.그과정에서크고작은분란과사건들이줄을이었으나제헌의원들은치열한토론을통해문제를하나하나풀어나갔고,구체제에서는모두‘반란’으로규정되던시위가정치적집회로조직화되기시작했다.

2016년가을부터이어진우리의촛불혁명은각성된시민의힘과여론이얼마나큰일을이루어낼수있는지를전세계에각인시킨획기적인대사건이었다.밀실의정치가드디어드넓은광장으로나왔으며촛불시민들은연일분통이터지는가운데서도이성을잃지않고평화적으로집회를이어가마치‘잔치’같은분위기를연출했다.비선실세를등에업고초법적권력을누리던박근혜는우리헌정사상최초로헌재의결정아래‘파면’당했으며,급기야‘503호’라는조롱속에서최순실과함께국정농단,뇌물수수,직무유기,직권남용등의온갖위법과비리관련재판을받는신세로전락했다.이러는와중에도여전히자신을‘신민’으로인식하고있는일부문화지체자들이있는것이현실이다.이는마치입헌군주제가도래했는데도왕이나타나기만하면감격해서어쩔줄모르던프랑스의일부국민들과묘하게오버랩된다.혁명이일어났다고해서사회모든구성원이단번에깨일수는없다는역사적아이러니가200년넘게지속되고있다는안타까운사실의반증일것이다.

저자는이6권을집필하는동안생생하게목격한‘촛불혁명’을염두에두고독자들에게역사학자로서여러가지당부를전한다.특히온전한민주제의확립을위해일제시대이후100여년간지속되어온온갖적폐를청산하는데힘을쏟고,대의제민주주의와참여민주주의를슬기롭게결합해숭고한촛불혁명을제대로완수하자고강조한다.프랑스의근대화역사에서혁명을가장중요한단계라고말하는저자는근대화의핵심요소인합리화,산업화,정교분리,민주화중민주화야말로가장중요한가치라고역설한다.그리고이는그대로우리의지금현실에도부합한다.평화적으로시작한촛불혁명을어떻게마무리지을지고민하면서프랑스의입헌혁명과정을살펴보면한나라의근간을뿌리부터바꾸는일의험난함과지난함을여실히느낄수있다.특히내년지방선거와앞으로의중대과제인‘개헌’을앞두고우리에게시사하는바가상당히많다는점도알수있다.결국우리의미래는시민들의올바른판단과현명한선택에달린것이다.‘민주주의정치의학교’였던프랑스제헌의회의활약상을통해오늘의우리를돌아보고미래의한국사회를그려보는데이책이각별한영감을줄것이다.

◆국회위원3분의2가바꾼역사의물줄기
루이16세의도주가공식적으로확인된뒤,여론은말할수없이나빠졌다.반혁명의두려움과분노때문에외국으로망명하는사람이늘었고,공화정에대한논의또한활발히일어났다.자코뱅클럽의그유명한당통은왕을‘제1공복premierfonctionnaire’이라고점잖게표현했지만,당시까지온건한논조를지키던신문도갑자기왕에게적대감을드러내며왕을‘변절자’,‘괴물’,‘얼간이’라고비난했다.그렇지않아도기존왕들에대해좋지않은감정이팽배해있던터라이제는루이16세를대놓고깎아내리기시작했던것이다.
애초왜혁명이일어났던가?여러이유가있지만그중으뜸은역시경제적인문제였다.나라살림이말이아니었던것이다.그시급한문제를해결하기위해1789년5월1일전국신분회가모였을때,나라곳간에는겨우쥐꼬리만큼의예산만남아있었다.낡은정부기관도온전히남아있었고국민은불안한나날을보내는데,어떤후속조치도할수없는상태였다.왕국의방방곡곡에서대대적으로봉기한사람들이도시를둘러친세관울타리들을무너뜨렸다.소금세와각종소비세,담배세,입시세를받던세리들은쫓겨났다.분노한사람들이창고를약탈했다.도처에서식료품의밀수가성행했고이성보다폭력이세상을먼저지배했다.국회는차분히재정문제를해결하기위해시민들에게질서를지켜달라고호소하는한편,금지물품에대해아주가혹한조세법을완화하고,가장부담스러운세금의종류를줄이고,그밖의세금을임시로유지하는등의조치를취했지만텅텅빈국고는좀처럼채워지지않았다.재무대신네케르는국회에애국세를신설하고9월과10월을버틸돈을빌리도록승인해달라고요청했고국회는이를승인했다.그러나애국세를신설하기전에국민에게호소할필요가있었는데,이것은국민을불안하게만드는행위였다.예나지금이나세금문제는정말뜨거운감자이기때문이다.이자를많이주고서돈을빌리는문제도간단치않았다.모든상황이나빴기때문이다.그결과재무대신이원하던결과를얻지못했다.게다가반대파는상황을과장해서더욱나쁘게선전했기때문에국가는더더욱신용을잃을수밖에없었다.
이런상황에서정치적으로의견이갈린국회의원들은헌법을제정하는문제를놓고날마다서로의주장을쏟아내기에바빴다.왕의신성성을생각하는방식에따라크게극우파와우파는절대군주제를지지하고,중도우파와중도좌파는입헌군주제를지지했다.혁명이급진화할수록좌파에서공화제를주장하는극좌파가나타나기도했다.절대군주제파는비록왕의자격을정지하는법을통과시키는것을저지하지못했지만,1791년6월29일에는자신들의소신을밝히는성명서를발표했으며,이에모두290명이서명했다.당시에활동하던국회의원의3분의1정도가절대군주제를옹호했던것이다.그만큼신분제사회의뿌리는공고했으며정치적변화는절로오지않았다.‘헌법의친구들협회(헌우회)’를자처한자코뱅클럽보다좀더급진적인‘인간과시민의권리의친구들협회’를자처한코르들리에클럽소속의원들과진보적?비판적언론인들의활약덕분에프랑스는반혁명적퇴행을막고입헌군주제라는역사의진일보를이룩할수있었다.그러나1792년봄부터프랑스는대외전쟁에휩쓸렸고혁명의앞에는더큰시련이기다리고있음을당시에는누구도알지못했다.
1791년진보적인자코뱅클럽내부에서급진파와온건파가계속대립각을세우다가끝내자코뱅헌우회와푀이양헌우회로갈라지게되는데,그과정에서(당의성격은다르지만)오늘날한국의자유한국당과바른정당의분당사태가겹쳐지는것,또로베스피에르를위시한당대명연설가들을보며각자가좋아하는정치가를떠올려보는것은이책이선사하는또다른재미다.

[책속으로추가]
제헌의원들은어떻게든입헌군주제헌법을완성했고,그것을왕에게가져가승인해달라고요청했다.과연이것이혁명을무난히끝낼수있는길이었을까?우리는1791년이후의과정을알기때문에이것이새로운혁명을시작하는과정임을알지만당시사람들은어땠을까?이제헌법을만들어왕의손에넘겨준제헌의원들이나그것을흔쾌히승인한왕은희망을보았을것이분명하다.특히왕은절대군주의지위를잃었지만헌법이세습적인왕을인정해주고,또지난2년동안그랬듯이행정부를이끌수있기때문에혁명으로새세상이오기를고대하던사람들보다는만족할만한결과를얻었다.(241쪽)

6월21일이후군주국가인프랑스에는왕이없었다.국회밖에서는두달이상왕을부정하고폐위시키라는여론이들끓었음에도,제헌의회는입헌군주제헌법을마무리했다.왕이나국회나지난2년을돌이켜보면서실로어렵고험한길을헤쳐왔음을실감했다.왕은모든것을잃는것을안타까워하면서헌법에계속딴죽을걸었고,도저히헌법을막지못한다는사실에절망하고도주했다.국회는처음부터절대군주제에서입헌군주제헌법을만들기로작정하고추진해나갔지만왕이소문대로진짜도주한뒤어떻게든헌법을마무리하려고여론을무시했다.우파의원들은여전히만족하지못했지만,마침내왕과타협할수있는형태의헌법을만들어결국왕의승인을받았다.그리고국회의장은왕을극찬하는연설을했다.겉모습의변화는마음속변화를반영하지만,때로는겉모습의변화를마음속변화가따라가지못하기도한다.국회의장이왕과나란히앉을수있도록의전을바꾸었지만,의장의마음은왕과나란히앉는것이아직송구스럽다고말하고있었다.『파리의혁명』에서꼬집듯이,투레는‘비굴한표현expressionservile’인‘전하Votremajest?’라는호칭을썼다.게다가회의장안에있는모든의원과방청객들도왕이직접국회에나와헌법을수호하겠다고맹세해준것에감격해서환호했다.왕의맹세와함께국민화합이상징적으로최고조에달했음을알수있다.(253쪽)

왕의거부권을인정하는문제를놓고투표할때,보수성향의원들과진보성향의원들이각각의장의오른쪽과왼쪽에모인것이우파와좌파라는말이정치생활에끼어든계기가되었다.그리하여의원들을크게우파,중도파,좌파의세부류로나눌수있고세분하면극우파,우파,중도우파,중도좌파,좌파,극좌파로나눌수있다.비록우파라고해서언제나새로운사상에적대적이었던것은아니었지만,파리에살면서의사당의방청석에드나드는사람들은의원들이앉은자리를보고우파와좌파를구별하는경향이있었다.혁명초재무대신이었던자크네케르의딸인마담드스탈은우파를어떤상황에도타협을모르는비타협파intransigeants,카잘레스의입을빌려의견을표명하는귀족,모리신부를앞세우는종교인의세부류로나누고,무니에처럼영국식입헌군주제를주장하는중도파를평원파(늪지파PlaineouMarais)라불렀으며,좌파를인민파partipop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