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배반한 근대 : 화려한 허울을 벗겨낸 근대의 속살

우리를 배반한 근대 : 화려한 허울을 벗겨낸 근대의 속살

$20.00
Description
자유, 민주, 법치는 왜 항상 흔들리는가?
‘근대’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다는 의심에서 이 책은 구상되었다. 세상은 30여 년 전에 이미 거대 서사의 붕괴니 주체의 죽음이니 이종교배니 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들로 한차례 들썩거렸고, 얼마 전부터는 빅데이터니 인공지능이니 사물인터넷이니 가상현실이니 하며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의제들로 떠들썩하다. 겉으로만 보면 세상은 그렇게 ‘포스트모던’, 즉 ‘탈근대’ 또는 ‘근대 이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는 이 시점에도 세상은 여전히 근대의 프레임에 갇혀 있을 뿐만 아니라 압축적인 근대화를 겪는 과정에서 전근대적 제도와 의식을 털어내지 못한 실정이다.
문제는 역사의 발전과 인류 전체의 행복well-being에 기여하리라 믿었던 근대의 가치들이 수시로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의 가치인 자유ㆍ민주ㆍ법치ㆍ소비ㆍ시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갖가지 퇴행의 모습을 우리는 날마다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가 농업혁명을 대사기극이라고 평가한 것처럼, 어쩌면 근대도 훗날 대사기극으로 평가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런 의심을 안고서 기존의 통념을 뒤틀어보고 보편화된 상식을 거꾸로 보고 고정관념을 뒤집어보며 근대적 가치들의 참모습을 찾아 떠난 여행의 기록이다. 주로 책을 그 여행의 가이드로 삼았으나 때로는 영화, 드라마, 광고, 대중가요, 코미디 프로그램, 유튜브 영상과 동행하기도 했다. 역사의 발전을 의심하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신봉해온 근대의 가치들이 기존의 통념과 어떻게 다르며, 왜 수시로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저자

엄창호

타자의욕망을욕망한끝에모대학의경제학과에입학했으나신고전파경제학일변도의학풍에적응하지못하고방황하다가문학비평에꽂혀국문학과대학원으로진학해석사과정을마쳤다.졸업후광고회사에들어가카피라이터로일했지만,자본주의전위대로서소비자의욕망을자극해야하는과업에늘부담을느꼈고,이를광고비평이라는일종의내부고발행위로이겨내려했다.이때여러매체에쓴글들을모아『광고는덫이다』라는광고비평집을냈으며,다른연구자들과함께『광고비평의이해』와『영상광고와광고비평』이라는이론서도냈다.

그이후관심영역을소비문화비판으로넓혔고,장보드리야르와클로드레비스트로스를탐독하며광고의신화적성격을구조주의기호학으로분석한논문을써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정부산하기관에들어가광고교육과정책연구책임자로일하는동안홍익대광고홍보대학원의겸임교수로기호학과소비문화를주제로강의했다.

그동안『애착의대상:기호학과소비문화』,『마케팅기호학』,『소비자본주의를넘어서』,『그레이트컨버전스:정보기술과새로운세계화』,『유튜버들』등의번역서를냈고,최근에는소비문화를낳은근대의이념과가치들을공부하며근대너머의세상을가늠하고있다.『우리를배반한근대』는그공부의첫번째기록이다.

목차

들어가는말:‘근대’로거슬러오르는연어의꿈

1장자유주의의배반:자유로운것이자유는아니다
-자유보다달콤한복종
-공화주의를물리친자유주의
-자유주의,국가주의와손잡다
-강제를자유로착각하는바보들에게

2장계몽주의의배반:계몽이라쓰고야만이라읽는다
-계몽은신화로돌아간다
-카프카,근대를조롱하다
-‘미친놈’이라고말할자격

3장자본주의의배반:신사가아니라조폭이었네
-자본주의의기원에관한불편한진실
-사다리를걷어찬‘나쁜사마리아인들’
-‘밀턴프리드먼’이라는주술
-주식회사의놀부심보

4장부르주아의배반:또다른계급사회의특권층이되다
-부르주아의다섯가지얼굴
-부르주아,귀족을꿈꾸다

5장소비주의의배반:소비자,근대적주체로생산되다
-만들어진소비자
-‘계획적진부화’라는음모
-소비의미끼,사용가치

6장민주주의의배반:대의민주주의는민주주의가아니다
-국민이주인이라는착각
-선거없는민주주의가가능하다고?
-자발적굴종의유혹

7장법치의배반:법의이름으로꼼수를쓰다
-‘법앞의평등’이라는기만술
-‘법지상주의’프레임에갇힌우영우
-사라지지않은특권

8장잃어버린공동체를찾아서
-‘후계동’이라는이름의‘오래된미래’
-바람이여안개를걷어가다오
-공동체주의를넘어서

9장한국의근대낯설게읽기
-왜사촌이땅을사면배가아플까
-‘리理’라는이름의절대반지
-기자정신에밀려난소설가정신
-굿바이,아베

나오는말:산란을마친연어의꿈
도움받은콘텐츠

출판사 서평

◆우리가아는근대는거대한사기극일수도있다

우리는흔히시대착오적인현상에‘전근대’라는딱지를붙인다.전근대는근대이전을가리키고근대의가치들과대척점에놓여있으므로‘근대’는전근대에비해바람직한발전상태를지칭한다고볼수있다.그렇다면근대적가치들은무엇인가?대표적으로자유·민주·법치·소비·시장을꼽을수있으며,이와연동된계몽주의와자본주의등도함께생각해볼수있다.서구근대화과정에서매우중요한분기점이된프랑스혁명의사상적동력이바로계몽주의였으며,프랑스혁명을이끈주요주체중하나는부르주아계층이었다.그런데그부르주아들은다수의민중과더불어자유롭고평등한새세상을열기를희망하기보다자신들의이권을철저히지키며스스로새로운귀족이되기를꿈꾸었다.어쩌면‘부르주아의배반’이근대의비극을잉태한씨앗인지도모른다.부르주아의배반뿐이랴.현재우리는자유·민주·법치등의퇴행을날마다목도하고있는중이다.유발하라리가농업혁명을인류사의대사기극이라고모질게평가한것과마찬가지로근대의가치들역시말만번지르르한거대한사기극은아닐까?

◆흥미로운이력의선장과함께돌아보는근대라는바다

이책의저자엄창호는이런문제의식과함께근대라는바다로우리를이끄는흥미로운이력의소유자다.대학에서경제학을전공했으나신고전파일변도의학풍에적응하지못하고방황하다가문학비평에꽂혀대학원에서국문학을전공한후잘나가는광고회사에서카피라이터로일하는동안“자본주의전위대로서소비자의욕망을자극해야하는과업에늘부담을느꼈고,이를광고비평이라는일종의내부고발행위로이겨내려했”으며,지금은근대이후의세상을가늠하는공부에매진하고있다는데,캐리커처실력또한발군이다.

오랜시간고민해온자신의문제의식을좀더넓은층의독자들과공유하고자펴낸이번신간에서엄창호는우리를배반해온근대의가치들을하나하나짚어나간다.자유주의를시작으로계몽주의,자본주의,부르주아,소비주의,민주주의,법치까지일곱개장에걸쳐분석한후근대가무너뜨린공동체의복원에대한희망을담은8장과한국근대에대한낯선시각을다룬9장으로책을마무리한다.각장은유기적으로연결되면서도독립적인체제를갖추고있어아무곳이나눈길을끄는꼭지부터읽어도무방한여유로움과편안함이배어있으며,저자가직접그린캐리커처를감상하는즐거움까지덤으로얻을수있다.

◆부르주아를바라보는신선하고독특한시각

저자는근대가내세우는가치들의실상을마주하면서특히부르주아에대한독특한시각을갖게되었는데,다음과같이자신의경험을바탕으로각유형에재미난꼬리표를달아준다.

부르주아를빼놓고근대를말할수는없다.문제는부르주아가근대의주역임은분명하지만,그역할과의미에대한해석은시대나정치적입장에따라사뭇다르다는점이다.나만해도살아오는동안다섯가지유형의서로다른부르주아를만났다.내삶에서다섯가지얼굴로나타난그부르주아들에각각재미있는이름을붙여보았다.만난순서대로그이름은‘전교1등부르주아’,‘날라리부르주아’,‘피도눈물도없는부르주아’,‘범생이부르주아’,‘허풍선이부르주아’다.(129~130쪽)저자가분류한부르주아의다섯가지유형은학술적으로공인된용어가아니라고해서가볍게넘길일이아니다.저자는각유형에맞춤한단짝을붙여설명하는데,한국적특성이고스란히묻어나읽는재미를더한다.“세계사교과서와전교1등부르주아”,“1980년대운동권과날라리부르주아”,“마르크스주의와피도눈물도없는부르주아”,“프로테스탄티즘윤리와범생이부르주아”,“유한계급과허풍선이부르주아”.저자의다음설명을들어보자.

부르주아가근대를연주역이라는사실을부정할수는없다.다만그부르주아가어떤부류인지가중요하다.‘날라리부르주아’와‘피도눈물도없는부르주아’는속류마르크스주의나극좌이념에따라악마화한부르주아로,이미사망선고가내려진개념이다.‘전교1등부르주아’와‘범생이부르주아’는자유주의세력이내세우는부르주아로,정치적으로나학문적으로나현실적인권력을얻고있는개념이다.하지만이들의공통점은선악이라는가장단순한흑백논리의양극단에있는부르주아들로,각자의이념과정치적지향에맞게가공된개념이라는점이라고생각한다.그래서나는‘허풍선이부르주아’가실체에가장근접한부르주아상像이라는데에흔쾌히한표를던진다.(151~152쪽)

◆근대이후는어떤세상일까?

저자는근대라는거대한바다를항해하며국내외의다양한책들은물론얼마전우리사회를뜨겁게달군인기드라마〈나의아저씨〉와〈이상한변호사우영우〉를비롯해‘괜찮아유’라는오래전코미디프로그램,“여보!아버님댁에보일러놓아드려야겠어요”라는카피로유명한보일러광고,200만부이상이나팔렸다는데제대로읽은사람은별로없어보이는『정의란무엇인가』에대한유명인들의해설유튜브영상,정태춘의〈북한강에서〉를위시한대중가요와〈희망의나라로〉같은가곡,〈처음만나는자유〉와〈국가부도의날〉등의영화에이르기까지각장의주제에맞는폭넓은소재를활용함으로써자칫시종일관무거운분위기로내려앉을뻔한시소의한쪽에현실감충만한이야기보따리를올려둔것같은균형감을확보했다.

이책에등장하는이처럼다양한소재를모두접한독자는많지않겠지만,책전체를읽어나가는데전혀무리가없는것은일관된문제의식과명료한서술,마음을확사로잡는공감포인트등이탄탄한뼈대를이루고있기때문이다.특히무미건조한각종비평에지친독자라면시간을들여찬찬히곱씹고싶어지게만드는매력까지느낄수있다는점에서,배반당한근대를넘어선이후의세상은어떤모습일지스스로그려보는좋은기회를얻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