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속에서 피어난 지성의 향연 : 르네상스를 빛낸 이탈리아의 지식인들

불안 속에서 피어난 지성의 향연 : 르네상스를 빛낸 이탈리아의 지식인들

$22.00
Description
르네상스, 역설의 문화운동 그리고 불안 속에서 피어난 처연한 꽃
르네상스를 읽는 것은 재미있으면서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굳이 역사를 공부하지 않더라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천재들이 등장해 놀라운 재기를 뽐낸 ‘멋진’ 시대, 그것이 나의 첫 인상이었다. 그런 까닭에 르네상스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경험이 내겐 즐거움이었고, 또 지금까지도 계속 그런 마음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될수록 고민과 불편함도 함께 자라났다.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도 모순적인 르네상스인들의 이런저런 일면들이 이곳저곳에서 고개를 들었던 탓이다. 내게 르네상스는 어디선가 무엇을 읽으면 다른 곳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는 고통스러울 만큼 ‘희한한’ 세계다. 이 책은 이 멋지고 희한한 세계를 빛낸 지식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르네상스를 ‘역설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자기 시대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르네상스인들의 시선을 먼 과거에 이르게 했고,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뒤를 돌아보면서도 그들이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아마도 독자들이 그들에게서 여러 혼란과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독자들이 아니라 그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맥락에서일 테지만, 흔히 회자되는 르네상스 문명이라는 ‘찬란함’의 이면에는 그것을 추동한 당대인의 불안한 기운과 불편한 속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머리말」 중에서
저자

임병철

서강대학교사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교대학원에서레오나르도브루니의공화주의를주제로석사학위를받았다.이후미국인디애나대학교사학과에서근대초유럽지성사와문화사를전공해르네상스에관한연구를계속했고,그결실로2004년포조브라치올리니의자아-재현과르네상스개인주의라는주제로박사학위를취득했다.어릴적부터신화나옛이야기에유독호기심이많았으며,학부시절근대유럽의형성과인문학적소양이라는별개의주제에관심을갖게되면서현재까지르네상스에천착하고있다.전인적교양인을강조한르네상스휴머니즘을프리즘삼아현대유럽사회를이해하고더나아가그것을통해물질만능의기치아래인간성이쇠락하는오늘날의문제를성찰하고싶은이유에서다.주요연구분야는르네상스시기의이탈리아지성사와사회·문화사이며,미술사와역사이론에도관심을가지고있다.그동안「21세기역사학길잡이」(공저),「서양문화사깊이읽기」(공저),「역사속의소수자들」(공편),「르네상스기이탈리아인들의자아와타자를찾아서」등의책을썼고,레오나르도브루니의「피렌체찬가」,주디스브라운의「수녀원스캔들」,니콜라스터프스트라의「르네상스뒷골목을가다」,한스바론의「초기이탈리아르네상스의위기」,리사자딘과제리브로턴이함께쓴「글로벌르네상스」를우리말로옮겼다.2005년부터2019년여름까지부산신라대학교에서재직했으며,이후현재까지한국교원대학교역사교육과에서교수로일하고있다.공부하면서학생들을가르치는일에감사하며하루하루를보낸다.

목차


머리말

근대유럽을수놓은이탈리아의‘르네상스인들’
단테를흠모한문인,페트라르카에게도전하다
휴머니스트서기장,공화국의의미를묻다
피렌체의‘리비우스’,공화국의역사를예찬하다
전투적고전주의자,르네상스의문을열다
격동의시대,조숙한역사주의자를낳다
키케로주의자,인문교육의가치를제시하다
밀라노의지식인,마키아벨리즘을선점하다
반메디치지식인,‘세계시민’을꿈꾸다
피렌체의상인,인간의세속적존엄을노래하다
르네상스‘만능인’,인간의행위규범에대해성찰하다
반항적수사학자,역사적비판의식을일깨우다
최고의고고학자,로마에서유럽정체성의고향을찾다
약관의천재,철학에서‘인간다움’의길을구하다
궁정휴머니스트,군주의‘위엄’에딴죽을걸다
방랑지식인,르네상스공화국의진실을폭로하다
현실주의정치인,법과법률가의위선을벗겨내다
좌절한정치사상가,시대의철창을열다
최고의궁정인,‘문명화과정’의길을열다
누가르네상스를두려워하는가?

주요등장인물
르네상스기연표
도판출처

출판사 서평

르네상스란무엇이고,왜휴머니즘/휴머니스트인가?

흔히‘문예부흥’이라고일컬어지는‘르네상스Renaissance’는어원상‘부활’이나‘재생’을뜻하는데,크게두가지의미를지니는개념이다.첫째는14세기이탈리아에서시작해15세기이후알프스이북의유럽으로확산된일련의문화적변동을지칭하고,둘째는정치·경제·종교·사회등당시유럽의모든분야에서총체적인변화를이끌어낸이문화적변동이사회의지배적조류로작용한역사상의특정시대를가리킨다.

르네상스연구자인한국교원대역사학과임병철교수는이번신간에서미켈란젤로나레오나르도다빈치같은예술가중심의역사서술에서벗어나,‘말과글을통해고대세계를부활시키려한지적운동’인르네상스의본질에초점을맞추어르네상스사를가장올곧게전달하기위해지성인들의열전형식을따랐다.단테,마키아벨리,보카치오,페트라르카처럼널리알려진인물은물론일반인에게다소생소할수도있는브루니,카스틸리오네,브란돌리니,귀차르디니등을망라해당시의시대상을여러각도에서입체적으로직조해냈다.그러면서임교수는‘humanism’과‘humanist’를‘인문주의’(또는인본주의)와‘인문주의자’라는번역어로옮기지않고‘휴머니즘’과‘휴머니스트’라고쓴이유를「머리말」에서이렇게밝힌다.

“르네상스기의휴머니즘은오늘날의인문주의라는의미보다는‘고전을고전그대로읽고고전적맥락에서이해하려는지적태도’라는뜻에더가까웠다.(중략)따라서휴머니즘에경도된당대의지식인들은오늘날의인문주의자라기보다오히려라틴고전주의자에더가깝다.

19세기이후인간에대한사랑과박애등의의미를담게되는인본주의나박애주의같은보편적인개념역시르네상스휴머니즘의본질은아니었다.한마디로나는인문주의와인문주의자라는번역어가의도치않은시대착오적오해를불러일으키며르네상스기의성격을곡해하게만들수도있다고생각한다.이것이바로고전에기초한르네상스기의지적풍토를휴머니즘으로,그리고그것을강조하고실천한지식인을휴머니스트로적을수밖에없는이유다.”

다채로운천재들이수놓은백가쟁명의지적쟁투기

오늘날우리는다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로같은위대한예술가들과그들이남긴다양한작품을통해르네상스를바라보고이해하면서놀라움을금치못한다.하지만‘종이전쟁’이라는말이무색하게느껴질정도로당시에는뛰어난예술가들에버금갈만큼의탁월한지성을갖춘지식인들이르네상스기를명멸하며풍부한지적향연을벌였다.

저자에따르면이책에서소개하는인물대부분이항상고매한인격의소유자였던것은아니다.그들은때론숭고한사상가였으나,어떤경우에는논쟁적인독설가였으며,간혹은성마른싸움꾼이기도했다.스스로자기모순적인이야기를이곳저곳에서늘어놓는이들도적지않았다.그렇기에우리가르네상스에서모순적이고복잡다기한사고실험의흔적들을종종목격하게되는것도그때문이다.

저자는바로이런점에서긴장과갈등혹은모순이라는키워드로정리할수있는이통일되지못한사고의혼란이야말로르네상스를가장르네상스답게만드는문화적징후라고진단한다.‘르네상스의아버지’페트라르카부터16세기교양인의전형으로평가받는당대‘최고의궁정인’카스틸리오네에이르기까지그들모두는절실하게새로운삶을지향하고있었다.

‘호모나란스homonarrans’(이야기하는인간)의폭발적인재등장

그들은왜모두중세문화를배격하고르네상스라는문화운동에뛰어든것일까?도덕적타락과학문의퇴조로자기시대를암울하게바라본그들은그해결책을모색하면서역설적이게도고대인들의세계로시선을돌렸고,고전고대의세계관이시대의폐해를치유할수있다는믿음을공유하고있었다.그러나그들을한데묶고있던관심사는고전의부활만이아니었다.튀르크의위협이낳은위기감과그에조응하는십자군정신또한그들대부분의삶과사고에알게모르게영향을끼치고있었다.

특히1453년에일어난콘스탄티노폴리스함락은그들을끝없는불안의나락에빠뜨린일대충격이었다.이내유럽세계곳곳에세기말적인암울한분위기가드리워졌고,그위기감이가장강하게감지된곳이바로교회였다.한편‘꽃의도시’피렌체는르네상스의본향이라는명성이무색하리만치볼썽사나운정치적파벌싸움이치열하게전개되는혼란의도가니그자체였다.특히기존의전통적인가문과새롭게피렌체정치계의실세로부상하던메디치가문사이의대립은물리적·정신적차원모두에서도시곳곳을암투의그림자로물들였다.

널리알려져있다시피메디치가는마치20세기초의마피아처럼은막의뒤편에몸을숨긴채15세기피렌체정치극장의모든것을기획한막후의연출자였다.
이러한메디치가문의부상과포조나스칼라등여러‘벼락출세자’들이생생히보여주듯이,15세기의이탈리아는능력에따른신분의이동이낯설게느껴지지않는유동적인사회였다.또한그렇기에르네상스기는치열한경쟁의시대이자그경쟁에서살아남기위한의도적인자기포장의시대였다.한마디로르네상스기의이탈리아는어느누구도타인의시선에서벗어날수없는작고위험한세계였다.이‘정치적카오스’의세계에서는정치문화와도덕에대한의견대립뿐아니라군주정?귀족정?공화정같은정치체제에대한논쟁,수사학과철학의관계정립을둘러싼끝없는쟁론등당대의뛰어난지식인들이저마다‘호모나란스’가되어인간의삶과공동체에대한여러담론을봇물터뜨리듯쏟아냈다.

‘리퍼블릭republic’은‘공공의것respublica’

르네상스기의지식인들은과학적?형이상학적차원에서앎의문제에천착하기보다인간의삶의방식자체를변화시켜시민들을올바른삶으로이끌고자했다.물적탐욕으로가득차있어명예가아니라부가삶의기준이되는피렌체에서는법적정의가실현될수없다고일갈한브란돌리니,철학에무지한사람은인간자체가아니라고까지강변한피코처럼인간존재를인간답게개선하는것이그들의공통된지향점이었다.그들은인간과사회를개선하기위한각자의해결책을제시하면서역사의식의성장이라는예기치못한변화도일구어냈다.살루타티의공화사상에서브란돌리니의공화국비판,폰타노의군주의위엄에관한논의에이르기까지,그들의고민과해결책은다양한스펙트럼위에서부유했다.

하지만모두‘공동체’의가치에주목했다는점에서는그들사이에큰차이가없다.‘리퍼블릭’은‘공공의것’이라는생각을모두공유했기때문이다.‘다채롭다’,‘매력적이다’라는수식어만으로는부족한르네상스기에우리가왜관심을가져야하는지에대한저자의말이조용하지만큰울림으로다가오는것도그래서일것이다.

“르네상스의지성을읽는다는것은그저과거라는낯선세계를즐거움의차원에서맛보는것이상의의미를지닌다.인간과사회,역사와학문에대한르네상스기의현란한논의가오늘날우리가경험하는정치와권력,사상의문제와도분명맞닿아있기때문이다.

물질만능의전문가바보만을양산하면서도애써그부끄러움을피하기만하고,마치유행어처럼문명의위기라는말을입에달고살면서도‘인간으로서우리는과연어떻게살아야하는가’라는문제에대해서는애써말문을닫아버리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