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완성(큰글씨책) (입헌군주제 혁명을 완수하다)

헌법의 완성(큰글씨책) (입헌군주제 혁명을 완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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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제헌의회와 함께 민주주의 정치의 첫걸음을 떼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법치주의다. 그리고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1789년에 바스티유 정복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간 혁명의 열기 아래 프랑스는 1791년까지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 특히 1791년에는 프랑스 역사상 최초로 성문헌법이 제정되었고 민주적 방식의 투표를 통해 입법의원들을 뽑았다. 물론 당시의 민주적 방식에는 ‘평등’의 문제에서 남녀를 구별하고, 능동시민과 수동시민을 구별하는 한계가 있었지만, 1789년의 전국신분회 대표를 뽑을 때와 비교하면 가히 혁명적 방식이었다.
그간 프랑스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정치적 혁명의 측면에서 보자면 1789년 6월 17일 제3신분 대표들이 주축이 되어 국민의회를 선포하고, 20일에는 죄드폼에 모여 프랑스에 헌법을 제정해주기 전에는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 3일 뒤에는 루이 16세가 절대군주로서 내리는 명령을 거부한 뒤 2년 넘게 헌법을 제정하는 일을 하면서도 복잡한 정국을 하나하나 수습하면서 달려왔다. 그러나 1791년 6월 20일에 루이 16세는 국경 근처까지 야반도주했다가 바렌에서 붙잡혀 파리로 돌아오는 신세가 되었다(5권 참조). 국회에서는 왕이 ‘납치’된 것이라며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지만 왕을 부정하는 여론이 날로 들끓었고 결국 우리의 ‘5ㆍ18 광주민주항쟁’을 연상케 하는 연맹의 장(샹드마르스) 학살사건까지 일어났다.
그럼에도 제헌의원들은 어떻게든 입헌군주제 헌법을 완성했고, 그 헌법을 기초로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투표로써 입법의원들을 뽑아놓고 물러났다. 그들이 성취한 ‘주권의 혁명’ 덕에 강고한 신분사회는 시민사회로 탈바꿈했다. 그들 덕분에 왕의 통치권은 국민주권이 되었고, 왕은 모든 법의 원천인 절대군주에서 행정부의 수반인 입헌군주로 바뀌었다. 그들을 뽑는 선거를 통해 프랑스인들은 급격히 정치화했고, 정치는 공개적인 행위가 되었다. 제헌의회가 임기를 마치고 입법의회가 시작될 즈음과 그 뒤에도 민주주의 실험은 험난한 장애를 계속 극복해야 했지만, 제헌의회와 함께 민주주의 정치의 첫걸음을 뗀 것을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꼽을 수 있다. 제헌의회는 민주주의 정치의 학교였다. 제6권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배경으로 제헌의회가 성문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 혁명을 완수하는 과정을 찬찬히 살펴본다.
저자

주명철

1987년부터2015년여름까지한국교원대역사교육과교수로학생들을가르쳤으며문화사학회,역사학회,한국서양사학회종신회원,한국서양사학회회장을지냈다.그동안지은책으로는『대서사의서막』,『1789』,『진정한혁명의시작』,『1790』,『왕의도주』(이상‘프랑스혁명사10부작중1~5권),『바스티유의금서』(이후『서양금서의문화사』로재출간),『지옥에간작가들』,『파리의치마밑』,『다이아몬드목걸이사건과마리앙투아네트신화』,『계몽과쾌락』,『오늘만나는프랑스혁명』등이있고,앙시앵레짐과프랑스혁명관련책을여러권우리말로옮겼다.현재프랑스혁명사10부작을재미있게저술하여한평생추구한학문을제대로마무리하는데매진하고있다.

목차

시작하면서

제1부여론의변화
1.파리의정치클럽
2.국회그리고파리도지도부와시정부
3.루이16세의파리귀환
4.사후처리에대한논의
5.왕과왕비,부이예장군의진술
6.노동자문제와르샤플리에법
7.볼테르의팡테옹안장
8.7월14일의행사
9.튈르리궁의근황
10.코르들리에클럽과공화주의주장
11.국회에대한우애협회들의반응
12.샹드마르스의학살
13.사태수습과질서회복
14.푀이양파

제2부제헌의회의입헌군주제혁명완성
1.제헌의원의재선문제와입법의회선거법
2.파리의입법의원선거
3.제헌의회가본국가재정
4.헌법의완성과왕의승인
5.헌법선포식
6.제헌의회가마지막으로한일
7.제헌의회의이모저모

연표

출판사 서평

◆프랑스의입법혁명과우리의촛불혁명

1791년은프랑스에서역사상최초로성문헌법이탄생한해다.제헌의원들은2년5개월동안나라의근간을이루는새헌법을마련하기위해불철주야노력한끝에왕의승인을받아헌법을선포하고다음입법의원들을투표로뽑은뒤9월30일마지막회의를끝으로입헌군주제혁명을완수하고물러났다.그동안프랑스사람들은정치적으로엄청난경험을했다.우선국회의원들이정파에따라국회밖에서각종협회를결성하는한편기관지를발행해일반인과소통한것과각지역주민들이기초의회활동을통해작은단위의정치를경험하면서정치적으로깨이기시작한점을꼽을수있다.여론의힘이막강해지면서마침내절대군주라는영원할것만같던왕의권위를헌법아래에두게되었으며지위고하를막론하고모든것을헌법에기초하게만든민주제를뿌리내렸다.그과정에서크고작은분란과사건들이줄을이었으나제헌의원들은치열한토론을통해문제를하나하나풀어나갔고,구체제에서는모두‘반란’으로규정되던시위가정치적집회로조직화되기시작했다.

2016년가을부터이어진우리의촛불혁명은각성된시민의힘과여론이얼마나큰일을이루어낼수있는지를전세계에각인시킨획기적인대사건이었다.밀실의정치가드디어드넓은광장으로나왔으며촛불시민들은연일분통이터지는가운데서도이성을잃지않고평화적으로집회를이어가마치‘잔치’같은분위기를연출했다.비선실세를등에업고초법적권력을누리던박근혜는우리헌정사상최초로헌재의결정아래‘파면’당했으며,급기야‘503호’라는조롱속에서최순실과함께국정농단,뇌물수수,직무유기,직권남용등의온갖위법과비리관련재판을받는신세로전락했다.이러는와중에도여전히자신을‘신민’으로인식하고있는일부문화지체자들이있는것이현실이다.이는마치입헌군주제가도래했는데도왕이나타나기만하면감격해서어쩔줄모르던프랑스의일부국민들과묘하게오버랩된다.혁명이일어났다고해서사회모든구성원이단번에깨일수는없다는역사적아이러니가200년넘게지속되고있다는안타까운사실의반증일것이다.

저자는이6권을집필하는동안생생하게목격한‘촛불혁명’을염두에두고독자들에게역사학자로서여러가지당부를전한다.특히온전한민주제의확립을위해일제시대이후100여년간지속되어온온갖적폐를청산하는데힘을쏟고,대의제민주주의와참여민주주의를슬기롭게결합해숭고한촛불혁명을제대로완수하자고강조한다.프랑스의근대화역사에서혁명을가장중요한단계라고말하는저자는근대화의핵심요소인합리화,산업화,정교분리,민주화중민주화야말로가장중요한가치라고역설한다.그리고이는그대로우리의지금현실에도부합한다.평화적으로시작한촛불혁명을어떻게마무리지을지고민하면서프랑스의입헌혁명과정을살펴보면한나라의근간을뿌리부터바꾸는일의험난함과지난함을여실히느낄수있다.특히내년지방선거와앞으로의중대과제인‘개헌’을앞두고우리에게시사하는바가상당히많다는점도알수있다.결국우리의미래는시민들의올바른판단과현명한선택에달린것이다.‘민주주의정치의학교’였던프랑스제헌의회의활약상을통해오늘의우리를돌아보고미래의한국사회를그려보는데이책이각별한영감을줄것이다.

◆국회위원3분의2가바꾼역사의물줄기

루이16세의도주가공식적으로확인된뒤,여론은말할수없이나빠졌다.반혁명의두려움과분노때문에외국으로망명하는사람이늘었고,공화정에대한논의또한활발히일어났다.자코뱅클럽의그유명한당통은왕을‘제1공복premierfonctionnaire’이라고점잖게표현했지만,당시까지온건한논조를지키던신문도갑자기왕에게적대감을드러내며왕을‘변절자’,‘괴물’,‘얼간이’라고비난했다.그렇지않아도기존왕들에대해좋지않은감정이팽배해있던터라이제는루이16세를대놓고깎아내리기시작했던것이다.
애초왜혁명이일어났던가?여러이유가있지만그중으뜸은역시경제적인문제였다.나라살림이말이아니었던것이다.그시급한문제를해결하기위해1789년5월1일전국신분회가모였을때,나라곳간에는겨우쥐꼬리만큼의예산만남아있었다.낡은정부기관도온전히남아있었고국민은불안한나날을보내는데,어떤후속조치도할수없는상태였다.왕국의방방곡곡에서대대적으로봉기한사람들이도시를둘러친세관울타리들을무너뜨렸다.소금세와각종소비세,담배세,입시세를받던세리들은쫓겨났다.분노한사람들이창고를약탈했다.도처에서식료품의밀수가성행했고이성보다폭력이세상을먼저지배했다.국회는차분히재정문제를해결하기위해시민들에게질서를지켜달라고호소하는한편,금지물품에대해아주가혹한조세법을완화하고,가장부담스러운세금의종류를줄이고,그밖의세금을임시로유지하는등의조치를취했지만텅텅빈국고는좀처럼채워지지않았다.재무대신네케르는국회에애국세를신설하고9월과10월을버틸돈을빌리도록승인해달라고요청했고국회는이를승인했다.그러나애국세를신설하기전에국민에게호소할필요가있었는데,이것은국민을불안하게만드는행위였다.예나지금이나세금문제는정말뜨거운감자이기때문이다.이자를많이주고서돈을빌리는문제도간단치않았다.모든상황이나빴기때문이다.그결과재무대신이원하던결과를얻지못했다.게다가반대파는상황을과장해서더욱나쁘게선전했기때문에국가는더더욱신용을잃을수밖에없었다.
이런상황에서정치적으로의견이갈린국회의원들은헌법을제정하는문제를놓고날마다서로의주장을쏟아내기에바빴다.왕의신성성을생각하는방식에따라크게극우파와우파는절대군주제를지지하고,중도우파와중도좌파는입헌군주제를지지했다.혁명이급진화할수록좌파에서공화제를주장하는극좌파가나타나기도했다.절대군주제파는비록왕의자격을정지하는법을통과시키는것을저지하지못했지만,1791년6월29일에는자신들의소신을밝히는성명서를발표했으며,이에모두290명이서명했다.당시에활동하던국회의원의3분의1정도가절대군주제를옹호했던것이다.그만큼신분제사회의뿌리는공고했으며정치적변화는절로오지않았다.‘헌법의친구들협회(헌우회)’를자처한자코뱅클럽보다좀더급진적인‘인간과시민의권리의친구들협회’를자처한코르들리에클럽소속의원들과진보적ㆍ비판적언론인들의활약덕분에프랑스는반혁명적퇴행을막고입헌군주제라는역사의진일보를이룩할수있었다.그러나1792년봄부터프랑스는대외전쟁에휩쓸렸고혁명의앞에는더큰시련이기다리고있음을당시에는누구도알지못했다.
1791년진보적인자코뱅클럽내부에서급진파와온건파가계속대립각을세우다가끝내자코뱅헌우회와푀이양헌우회로갈라지게되는데,그과정에서(당의성격은다르지만)오늘날한국의자유한국당과바른정당의분당사태가겹쳐지는것,또로베스피에르를위시한당대명연설가들을보며각자가좋아하는정치가를떠올려보는것은이책이선사하는또다른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