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하지 않는 사랑의 힘 (축소 시대에 어른이 된다는 것 | 반양장)

부패하지 않는 사랑의 힘 (축소 시대에 어른이 된다는 것 | 반양장)

$16.80
Description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삶에서 길어 올린 가볍고 또렷한 문장, 그 속에서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사유의 발걸음!
평범하지 않을 것. 글 쓰는 모든 이의 숙명이다. 독자는 진부한 글을 읽지 않는다. 작가의 운명이란 평생 새로운 소재를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것이다. 이 직업의식에 너무 충실하다 보면 보편·유행 같은 '평범함'을 멀리하기 쉽다. 저자 나호선은 평범한 삶을 동경하지만, 그 역량까지 평범하지는 않다.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과 비뚤어지지 않은 시각을 가졌다.
『부패하지 않는 사랑의 힘』은 한국인이 으레 겪는 평범한 사건을 평범하지 않은 작가가 겪으며 떠올린 생각의 집합이다. 일생일대의 중대사나 장밋빛 가득한 사랑 이야기는 없다. 그 대신 누구나 겪기에 사소하다고 치부하며 가볍게 지나쳐온 일상이 있다. 대다수가 가볍게 넘겨왔던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되 무겁지 않게 풀어나간다. 본문 내내 이어지는 가볍고 또렷한 문장에서는 깊은 사유가 우러나온다.
평범한 일상의 이면을 상세하게 해부하는 능력은 예상컨대 저자를 지독하게 괴롭혀온 빈곤에서 나왔으리라. 가난한 사람에겐 수많은 의사결정이 외줄타기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위기조차 방치하면 금방 대형 악재가 되어 들이닥친다. 숙고하지 않으면 생존하기도 어렵다. 시시때때로 몰아닥치는 극한상황은 일상 속에서 깊이 사고하는 힘을 키우고 길러낸 산파가 아니었을까. 저자는 돈 많이 버는 방법, 사회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좋은 친구, 떳떳한 어른, 부끄럽지 않은 아들, 사랑받을 자격 있는 연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했다. 이 책은 평범하지 않은 이가 평범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의 기록이다. 가족, 연인, 친구 혹은 동물이나 사물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훌륭하게 성장한 청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천현우(용접공·『쇳밥일지』의 저자)
저자

나호선

저자:나호선
1992년생ENFP.어긋남과조급함에대해고민한다.내가건네는위로는이기적이다.타인에게가했던상처의경험에서비롯되었으니까.그원죄를갚는길은이젠착하게사는일밖에남지않았다.대학원까지정치학을공부했다.현재전공을살려밥벌이를하고있다.그동안쓴책으로는『젊은생각,오래된지혜를만나다』,『연애결핍시대의증언』(2022년세종도서교양부문선정)이있다.가슴이촉촉할때더많이써둘걸.건조주의보속에서문장을쓴다.

목차

인생은배속을허용하지않는다
내가랜선룸투어를하는이유I
내가랜선룸투어를하는이유II
MBTI사랑학개론
내거북목현재사
개를들이는마음
인생첫차
기록말소적사랑
사람구실하기
플러스펜실종사건
아주보통의기쁨
게임중독을위한변론
재미의땅은영토가넓다
다단계우정보고서I
다단계우정보고서II
생활기록부여행
두발단속과교실민주화
나는매운잠을좋아한다
수학이내게가르쳐준것들
달리기는인간의광합성
엄마의퇴직기념케이크
형이필요한남자들I
형이필요한남자들II
내논문이하늘을날았다
시간부자들의도끼
꿀벌의수성법
비겁한어른은김빠진맥주와같다
두번째사춘기I
두번째사춘기II
아버지가될수있을까

작가의말:부패하지않는사랑

출판사 서평

어른의문턱에다다른사회초년생의‘ENFP식글쓰기’

20대후반에생애첫책『젊은생각,오래된지혜를만나다』로독자와만난후『연애결핍시대의증언』으로2022년세종도서교양부문에선정되며본격적으로작가의길에들어선나호선이세번째책『부패하지않는사랑의힘』으로돌아왔다.이책은이제막사회에첫발을디딘초년생이‘축소’와‘단종’의압박이거세진시대의긴터널을뚜벅뚜벅헤쳐나오며겪은일들을때론경쾌하게,때론가슴뭉클하게풀어놓은에세이다.빠른속도감,재기발랄한말솜씨,더할나위없는솔직함,진지한성찰이어우러진이시대‘2030’의또다른자화상이다.

“‘낙관주의자는비행기를만들고,비관주의자는낙하산을만든다’라는아일랜드의극작가버나드쇼의말을가장좋아한다”는작가는‘수포자’였던중학생때훌륭한선생님을만나수학의가치와아름다움을깨달은성인으로성장했고,급기야“내인생의불꽃같던시기에대해쓸수있다면미적분과삼각함수가내게다시찾아와도좋다”고너스레를떨며읽고쓰는삶을생의한축으로삼게되었다.

나아가정치학을사랑했고,읽고쓰는것을좋아하던작가가“이제는취직해매일같이글밥을먹는다.목적없는독서는목적이뚜렷한직업적책읽기로변했다.”작가는이를“대가가후불인행운”이라고고백한다.“언젠가꼭공적인일을하며자유를선물하는데보탬이되는사람이되고자마음먹”은대로성장한작가는최근“부패하지않는사랑”을다짐하며많은사람의축복속에서결혼식을올렸다.극심한빈곤의늪에서온가족이힘들었던어린시절을거쳐꿋꿋하게대학원까지마치고국방의의무를다한후어엿한직장을얻고결혼까지했으니비로소‘어른’의대열에합류했다고할수있을것이다.그러나단순히나이가차고,괜찮은직장을갖고,결혼후자식이있어야반드시‘어른’이되는것은아니다.이세상에어른답지못한성인이얼마나많은가!

어릴때는특별한사람이되고싶었으나이제는평범한삶을추구하게된작가가들려주는다채로운이야기들은자랑이아닌자기반성과성찰,비난이아닌공감,분열로치닫는사회현상에대한정치학전공자다운통찰,하루하루치열하게살아낸청춘의내공이묻어나는참신한삶의감각등으로읽는맛을더해주고,우리사회와청년들에대한이해의폭도넓혀준다.빈곤,가정폭력,학내부조리,군대에서만난‘형이필요한남자들’의이야기,사랑과소통에서툰뭇청년들의현실,우정을빙자한‘가짜친구들’의흔한사례,직장구하기든‘내집(방)’마련이든청년들이자신의의지만으로헤쳐나가기어려워진사회에서어떻게든한사람몫을제대로해내야한다는절박함,‘좋아요’를누르고싶게만드는진지한통찰이어우러진이책은같은세대는물론청소년층과부모세대에게까지잔잔한감동과이해,희망을선사한다.

사랑에는급행열차가없고,사랑에빠지면철학자가된다

평소MBTI를백안시하던작가는짝사랑을하게되면서MBTI의효용성을깨닫고마침내MBTI검사를해보았다고한다.“몇번을반복해도확신의ENFP.재기발랄한활동가다.두서없이산만한통찰과가득뿜어져나오는자기애.이게바로ENFP식글쓰기다.오늘의결론.사랑은남자를철학자로만든다.”

MBTI의쓸모와그것이유행하게된이유를작가는이렇게설명한다.

MBTI는이시대청춘들이외로움을극복하는방식중하나다.색은직접만나면서칠하더라도밑그림은들고낯선타인을대하고싶은마음은보편적이다.미리품행을조절해불필요한무례를줄이고,좋은쪽으로첫인상을남겨분위기를환하게만들수만있다면누구라도힌트를쓰고싶을테니까.(35쪽,「MBTI사랑학개론」)

특히내향인에게는MBTI가구원일수도있겠다는생각까지들었다.예전에는소심해서낯을가리거나말을잘붙이지못하면불친절하다거나무뚝뚝하다는소리를들었을텐데,요새는“당신I군요!”라고먼저말해준다.상대의고민에논리적해법만을제시하며냉혈한으로비난받던이들에게는한동안요즘세상이‘공감강점기’처럼느껴졌을텐데,요새는“당신T죠?”라고알아서이해해주니굳이길게설명할필요가없다.
이해가부족한사회는항상긴말을요구하면서,정작말이긴것은또참아주지않는다.짧은설명으로도충분한것이얼마나큰축복인가.물론MBTI가자신의무례를원래그렇게태어나어쩔수없다는듯손쉽게정당화하는부작용도있다.그러나조잡한유사과학이라치부하더라도다양한인간군상을이해하고표현해줄새로운렌즈를갖게된것은아무튼좋은일이다.
한편으로는우리시대청춘이앓고있는강박적인‘겁의표현’이라는생각도든다.사랑이매번동시에양방향으로만발동한다면가슴졸이지않아도되고얼마나좋을까.보통한쪽이마음을들켜야시작되는것이사랑인데,다른사람의마음을얻고싶다는욕망은거절의두려움과상처받고싶지않다는내안의겁앞에서멈춰선다.(35~36쪽,「MBTI사랑학개론」)

짝사랑에서시작해‘사랑에는급행열차가없다’는깨달음을얻고결혼에성공한작가는‘깔끔한이별’을위해미리‘럽스타그램’계정을따로만드는세태에대해이렇게안타까워한다.

그런데아무리마음의준비를하더라도마감이깔끔한이별은너무나도잔인하다는느낌을지울수없다.우리사랑은편집되어전시되고,그전시회는사랑이끝나자마자신속한철거가시작된다.정확히말하자면사랑이아닌사랑의흔적이손쉽게휘발되는것이겠지만,그게그거다.이별에상처받지않는이는없다.(76쪽,「기록말소적사랑」)

그래서나는이별만큼은더는효율성이침투하지않기를기도했다.오래도록추억을더듬다가결국놓고야마는모든지질한과정을느끼는것은사랑했던이들의의무라고말하면서,이시대사랑의휘발성이더강해지지않도록,간절히빌었다.이별마저더치페이하며마음용량을알뜰히사용하는기록말소적인사랑을있는힘껏미워하면서.찰나일지라도충동그대로의강렬한사랑이이시대에남아있기를.(78쪽,「기록말소적사랑」)

한편,어느새모태솔로소재의연애예능프로그램이흔해진사회적현상에대해서는이런진단을내린다.특히“나는이사회에사랑대신혐오가판치는이유를실제로사랑하는이들의숫자가줄었기때문으로꼽는다”라는부분은귀담아들을필요가있는신선한통찰이다.

구애상대를대하는법을아예까먹어버린채서른중반을맞아처음사랑을해보려니,옷을갖춰입고데이트코스를정하는아주사소하고기초적인것부터막힌다.대화소재는빈곤하고행동에는겁이많아어설프기짝이없다.20대의첫단계와시행착오를속성으로과속해서따라가다많은추돌사고를낸다.때를놓친미숙함이나이와어울리지않게되는상황이주책처럼느껴지고,자존감을더빠른속도로갉아먹는다.연애예능프로그램의모태솔로특집은일회성예능소재가아니다.현실속많은당사자의현주소다.나는이사회에사랑대신혐오가판치는이유를실제로사랑하는이들의숫자가줄었기때문으로꼽는다.(240쪽,「두번째사춘기II」)

어른이된다는것,성숙해진다는것

대다수가그렇듯나호선작가도어렸을때는특별한존재가되기를바랐지만,“지금은평온한저녁을가질수있다면낮에는무슨일이든할수있을것만같다.돋보이고싶은욕구보다는오늘하루도무사히넘어갔으면하는안도감에감사하다”라고말하는어른으로성장했다.그런자신을두고“언제잃어버려도좋을편의점검정우산과닮았다”는생각이들었다는작가는“주인을잃고어느가게에서섞여다른사람의착각이나도벽에손을타고타다결국모두의공유재가되어버린무채색우산의운명.그우산을싸구려절도의피해라말하지말지어다.어떻게보면그우산을거친모두에게쓸모있는존재였으니까.어찌됐건내가쓸모있었다면그만이다”라고성인이된자신의모습을담담하게드러낸다.

어른이된다는것은남김없이자신을실망시키는과정이라고생각한다.그래서더는실망할거리가남아있지않아‘네가그럼그렇지’한마디로도모든실책을스스로용서할수있게되는상황이되는것이다.이세상이내게준시름을배달음식에맥주한캔으로손쉽게달랠수있는저렴해진고통의가격.쉽게상처받지않고쉽게위로받을수있도록기대를줄이고맷집을기르는과정이바로성숙이다.(153쪽,「나는매운잠을좋아한다」)

또한자신의부족함과부끄러움을있는그대로드러내며‘애송이’의실수를통해더발전해나가려는듬직한의지를전해주기도한다.냉철한자기반성과낙관적인자세로온갖역경을이겨내며이뤄온작가의오늘을응원하고,더욱단단해질내일을기대하게되는이유다.

나는성인이된10년정도를스스로‘진보적’이라고생각하며살아왔다.그래놓고도사람을대하는내접근법은진보적이지못했다.선언이사실을규정하지는못한다.선언은선언일뿐,진보적으로살아와야진보적인것이다.책으로만,기사로만,칼럼으로만세상을읽는사람은쉽사리언제나자신은평가하고평론할위치에있을것이라는어떤오만에빠지기쉽다는것을깨달았다.나도그랬으니까.(188쪽,「형이필요한남자들I」)

무엇보다실수에대한관점이바뀌었다.지금당장을기준으로예단하지않고,실수를부끄러움의흉터로삼도록허용해줘야인간이성장한다는것을깨닫게된다.하루단판으로끝나는시험이아닌,기간을길게잡고가는논문이갖는장점은수정할기회가많다는것이다.실수를빌미로기회를박탈하는것이아닌,실수를고쳐성장할기회를주는것,그것이학술이가진매력이다.내논문이하늘을날아본덕에‘애송이의윤리’를알게되었다.사람은틀리지않으면결코발전할수없다.(206쪽,「내논문이하늘을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