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나날 : 재판으로 드러나는 '검은 전설'과 '하얀 전설'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나날 : 재판으로 드러나는 '검은 전설'과 '하얀 전설'

$25.00
저자

에마뉘엘드바레스키엘

저자:에마뉘엘드바레스키엘(EmmanueldeWaresquiel)
1957년에태어나1979년생클루고등사범학교인문과학부에입학했다.파리소르본대학석사과정부터장튈라르JeanTulard교수를사사하면서1996년에역사학박사학위를받았다.이후1999년부터프랑스고등연구실습원의교수가되었으며,프랑스학술원회원으로서18세기와19세기의정치,사회,문화와그표현에대한역사를연구하고있다.그동안약20권의책을저술했고,많은찬사와중요한문학상을받은작가이기도한그는탈레랑,푸셰,나폴레옹같은인물의전기를써서프랑스혁명부터19세기전반의해박한지식을제공했다.
그는『리슐리외공작,1766~1822년LeDucdeRichelieu,1766-1822』(Perrin,1990)으로1991년아카데미프랑세즈의고베르대상을받으며일찍부터큰기대를모았고,이책『마리앙투아네트의마지막나날』로2017년에콩부르상과브랑톰상을동시에받는쾌거를이루었다.

역자:주명철
한국교원대학교역사교육과명예교수로한국서양사학회회장을지냈으며,40여년가까이프랑스혁명과18세기사회를연구해왔다.그동안지은책으로는‘프랑스혁명사10부작’시리즈를비롯해『서양금서의문화사』,『지옥에간작가들』,『파리의치마밑』,『다이아몬드목걸이사건과마리앙투아네트신화』,『계몽과쾌락』,『오늘만나는프랑스혁명』,『이판사판역사판』등이있다.그밖에『새로쓴프랑스혁명사』(2024년학술원우수학술도서선정),『이야기와인포그래픽으로보는프랑스혁명』(2022년세종도서교양부문선정),『프랑스혁명의공포정』등앙시앵레짐과프랑스혁명관련책을비롯해『인포그래픽으로보는세계전쟁사』,『기술봉건주의』등의양서여러권을우리말로옮겼다.

목차

1막감옥에서
2막외국인
3막피고인
4막‘죽음의기사’

에필로그
후기

감사의말
옮긴이의말
그림설명
사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마리앙투아네트의재판과처형으로살펴보는인간의본성과재판의본질

세계근대사의가장큰변곡점이었던프랑스혁명기당시의혁명법원은어떤모습이었을까?현재우리관점에서는다소놀랍게도당시에이미배심원제도가있었고재판도공개적으로이루어졌다.다만그배심원대다수가판사와매우가까운관계였다는한계를인식해야한다.
“모든사람이자기집에서도두려움을느꼈다.웃으면공화국의패배를기뻐한다고비난받았고,울면공화국의성공을슬퍼한다고비난받았다.결국아무때나군인들이집으로들이닥쳐음모를찾아냈다”는증언이증명하듯,이책의배경이된시기는“아직공포정의한밤중은아니었지만,이미그초저녁에접어들고있었다.”
1789년에일어난프랑스혁명이왜여전히인구에회자될까?무엇보다당시유럽의분위기에서는상상하기도힘든,왕과왕비를위시해숱한귀족과공포정치를이끌던로베스피에르마저단두대에서공개처형을당하고그토록강고하던신분질서가완전히무너져‘국민주권시대’를연대사건이었기때문이다.이책은주권이급작스럽게왕에서국민으로넘어가는대혼돈의시기에‘왕비’라는태생적신분때문에더오래구세계에묶여있을수밖에없었던마리앙투아네트가주연으로,공소인푸키에탱빌과재판장에르만등이조연으로,그외화가샤틀레,구두장이시몽,신문발행인에베르등의주요배심원·증인들과죽을때까지마리앙투아네트를진심으로사랑했던스웨덴귀족페르센부터왕비의가족과시녀들,단두대의처형담당자앙리상송까지수많은인물이등장하는한편의비극적시대극이다.

◆동전의양면과같은혁명,그소용돌이속비극에휩쓸린운명의공동체

국내에처음소개되는저자에마뉘엘드바레스키엘은이름에서도드러나듯귀족의후예다.그렇다고이책이시대착오적인왕당파의관점에서쓰였으리라는선입견을갖고읽으면안된다.저자는프랑스고등연구실습원의교수로임명되기8년전인1991년에아카데미프랑세즈의고베르대상을받으며일찍부터큰기대를모은역사학자이자전기작가로서프랑스혁명부터19세기전반의해박한지식을제공해온인물이다.그는어떤이유로이책을썼고,이책을통해무엇을말하고싶었던것일까?

오늘날의우리자신을이해하려는사람이라면누구나혁명의시작과과도한면을상징적으로보여주는그시기를반드시알아야한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나는혁명의빛나는면과어두운면을보여주면서도,그것들을도저히떼어놓을수없다는사실을말하고싶었다.(중략)1793년10월14일부터16일까지이곳에서,두사회,두가지표상체계,두세계가축소된형태로맞붙어기이한싸움을벌였다.왕의재판보다더욱두드러진모습이었다.그적대자들은더분명하고,더명확히묘사되었기때문이다.바로혁명과반혁명.남성과여성.두개의주권,두개의정당성,또한적용되는대상에따라그의미가계속변하는조국,배신,미덕,음모라는단어들.서로완전히대립하고,결코화합할수없는두세계,겉보기에는공존하고대화하며접촉하지만서로이해하지못하는두세계.그러한자폐증은곧바로죽음으로이어진다.마리앙투아네트와친구들의죽음,그의고발자들과판사들의죽음.나는이비극적인운명의공동체에마음을빼앗겼다.우리는솔직히인정해야한다.우리는수많은시체위에우리의공화국을세웠고,그러고나서민주주의를세웠다.(352~353쪽)

마리앙투아네트에대한글은많지만그의재판을다룬글은별로없다.19세기초반에는그의마지막순간을성스럽게다룬연구가많이나왔으며,거의전적으로그의관점에서만다루었다.그러한한계를인식한저자는당대재판기록과특히미공개방청기록은물론후대에발굴된편지까지광범위한자료를속속들이조사,발굴,취합하는역사가의남다른노력을기울였고,마침내이전에는볼수없었던매우상세하고균형잡힌당대의역사한축을입체적으로완성해냈다.그성과로프랑스유수의문학상과전기작가상을받는쾌거를이루었다.

◆“혁명은평등이특권층에거둔승리일뿐만아니라
여성세계에대한남성의복수이기도했다.”

미국외교관거버너모리스는일찍이루이16세의무기력함을강조하면서‘완전히쓸모없는사람’이라고모멸적인평가를내린반면,(궁중에서는약하다는비판적표현인)‘선량한’왕과달리강인하고결단력있는왕비의모습에놀라움을감추지못했다.1789년에그가조우한프랑스는‘여성의나라’였다.당대주요인물중하나인탈레랑또한혁명직전에모든곳에여성이존재했음을강조하며여성이분위기를주도하면서관습,언어,취향,심지어정치까지도지배한다고말했다.또한파리의살롱에서젊은여성이정부의결정이나가장복잡한행정운영에대해서도자유롭게이야기할수있었다고도했다.이에대해저자는“오늘날우리는양성평등의시대를살고있지만,그때는어떤시대와도닮지않은,슬프고무관심하며절차적인시대였다”라고부연한다.그렇게자유로운나라프랑스에서혁명이일어나고1792년오스트리아에전쟁을선포하면서분위기가완전히바뀌었으며,이듬해프랑스가오스트리아에계속패배하자왕비는감옥에갇힌채어느때보다도더큰죄인이되었다.
오스트리아의암노새,사악한오스트리아년,희생자의피로흠뻑적신오스트리아의흉악한암호랑이,오스트리아암탉,적자부인등오스트리아출신의왕비인마리앙투아네트는말로다할수없는온갖욕설과도를넘은헛소문에시달려야했다.저자는이에대해“역사상어느시기에어느여자도이만큼많은증오의대상이된적이없다.그가말하거나행하거나만지는것은모두미움을받았다”,“이러한공격의뒤에는왕에대해서는품지않았던질투가깃들어있음을알수있다.루이16세는군주제를상징했다는잘못밖에없었던반면,왕비는그범죄의화신이었다”라고진단한다.“결국혁명가들이보기에,마리앙투아네트의진정한범죄는여성의역할과위치를넘어남성의자리를차지했다는것이다.”
저자는당시의여성혐오가얼마나강고했는지에대해이렇게들려준다.

여성의성격은신경질적이라서쉽게‘과잉흥분’에빠지며,그래서자유와공공업무에치명적이라는것이다.여성은실수와무질서를뜻한다.여성의도덕적교육은“거의성과가없다.”이러한생각은혁명기에나온수많은문헌속에반복해서나타났다.어떤언론인은이렇게썼다.“우리가날마다말하듯이,사실상프랑스여성의풍습은아직까지혁명을이기지못했다.”
그러므로여성을가정으로돌려보내거나잠잠하게만들어야한다.그들은잠재적으로반혁명적이기때문이다.마리앙투아네트의재판은샤를로트코르데,롤랑부인,올랭프드구즈OlympedeGouges같은여성의재판사이에있었다.(230쪽)

◆‘광범위한사회적전복작전’같았던마리앙투아네트의재판

여러문헌외에도왕비를천박하고외설적으로묘사한많은그림에서는혁명기남성이왕비를지배적이고전복적이며위험한여성으로보고자했던고정관념이그대로드러난다.이러한여성혐오는오래도록아물수없는상처였으며,마리앙투아네트는이러한성향을가진배심원들과재판장앞에서야했다.

마리앙투아네트의재판은여느재판과달랐다.단순히왕비의재판이라는이유만은아니었다.사라져가는세계와폭력속에서새로태어나고있던세계,이처럼아주이질적인두세계가격렬하게충돌하는기회이자순간이었다.두세계는서로에게귀를기울이지않았을뿐만아니라상대를제거해야만구원받을수있었으며,오랫동안서로화합할수없는합당한이유를확립해왔다.한쪽에는공화국이,다른쪽에는왕정,왕실,관습,풍습이있었다.이재판은또한한여성의재판이며,한어머니의재판이기도했다.끝으로한외국인의재판이었다.이재판이어떤현실을갖고있다면,그것은바로상상력의현실이다.그래서이재판은독특한것이었다.(28쪽)

모든재판은형편없는증거를가지고진행되었으며,합당한증거를제시하지못하는증인들은자신들의과거신분에대한복수의기회를찾았다.증인과배심원들은“몇달만에무의미하고평범한존재에서벗어나수천명의동료를살리거나죽일수있게되었다.한마디로그들은한때왕비였던여성을단지판화속모습으로만보았을뿐이며,그와자신들사이의거리가얼마나컸는지와는상관없이그를구하거나처형할수있었다.이것이바로마리앙투아네트재판의의미이기도했다.평범한소규모자영업자의복수,비범하고접근하기어려운것,오래도록꿈도꾸지못하던일을일상적인것이누르고승리하는복수였다.(중략)그들을이해하려면,그들이미처준비를갖추지못한상황에서막중한권력을휘두르게되었을때얼마나황홀했을지고려해야할것이다.”(162쪽)

◆역사상성범죄재판의최초사례

마리앙투아네트의삶은시작부터이미비범했다.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가문의대공녀로태어난데다세계에서가장강력한국가중하나인프랑스의왕비가되었기에타고난귀족적몸집과자세의우아함,드높은자존심,게다가용기라는갑옷을입은기사의명예까지두루갖추고있었다.혁명기의사람들은아주일찍이왕비의힘과완고함을예상했으며,그를혁명의장애물로여겼다.“왕곁에는한남자만있는데,바로그의부인이다.”그유명한미라보백작이한이말을모두알고있었고,결국혁명세력은왕비를희생자로만들기로결정했다.
혁명이시작된이후4년동안마리앙투아네트는끊임없이목숨을위협받으며살았다.그들은1789년10월과1792년6월20일에튈르리궁을향해반란을일으켰을때노골적으로마리앙투아네트를찾아죽이려했다.“오스트리아년,어디있느냐?그의머리,머리를자르자!”
1792년8월23일에루이16세와함께탕플탑에갇힌후7개월이지나콩시에르주리감옥으로이송된마리앙투아네트는남편과딸의끔찍한죽음보다더한고통을받아야했다.바로재판정에서어머니라는역할마저부정당하고여덟살짜리아들과근친상간을저질렀다는참혹한고발을직접들을수밖에없었던일이다.저자에따르면“여성의명예를더훼손하고자그의판사들은어머니라는역할마저공격하는사악한생각을떠올렸다.(중략)혁명가들은이를잘알고있었다.어머니를건드리는것은왕실혈통의신성함을건드리는것이며,신성성과혈통의관계를끊어버리고그와함께다시한번왕정을처형하는것이다.”
이는당시에엄청난발행부수를자랑하던파리신문『뒤셴영감』의발행인이었던에베르의참혹한고발로이어졌다.“두여성[왕비와고모]이아이[왕세자]를가운데재우는일이많았고,그곳에서가장광적인방탕행위를자주저질렀으며,카페의아들[왕세자]이말한바로는모자간에근친상간행위가있었다는데의심의여지가없습니다.”에베르는한술더떠서“마리앙투아네트가아들과잔것은단순한쾌락때문이아니라‘육체를흥분’시켜어린아들을더잘통제하려는사악한정치적의도도가지고있었다”라는추악하고끔찍한설명까지덧붙였다!
이에대해저자는매서운비판을가한다.“도대체뇌가얼마나병들었으면마리앙투아네트에게가장소중한것을공격해서그를공격하려는악마같은계략을꾸밀수있는것인지상상조차하기어렵다.(중략)그는이렇게말하면서피고인을똑바로보았을까?적어도충격적이고끔찍한이야기들을면전에서쏟아놓는용기는‘죽일놈들salauds’의변명거리일뿐이다.”
한편너무도큰충격을받은마리앙투아네트는눈물을보이다가간신히이렇게답했다.“이끔찍한일들을생각만해도몸서리치지않을어머니가단한사람이라도있을까요?”
마리앙투아네트는이렇게말도안되는반인륜적누명까지뒤집어써야했으며,완전히엉터리같은단사흘간의재판을받고단두대에서처형당했다.‘검은전설’의피해자마리앙투아네트에게는처형전부터‘하얀전설’도따라다녔다.바로눈앞에서목숨을위협당하는상황에서도낯빛하나변하지않고꼿꼿한자세를유지한마리앙투아네트의용기에서‘초자연적인것’을발견했다는사람이있는가하면,형장에서흘린그의피를필사적으로손수건에적시려던사람들은그를순교자로여겼다.그러나전설은전설일뿐,마리앙투아네트가세상을뜬지232년후의지금우리는그당시상황과진실을직시하면서다양한인간군상의모습을통해우리자신과사회에대해성찰하는기회로삼으면족할것이다.“비극은언제나드러나지않는것의주름속에숨어있다.”
이책을번역한주명철교수는이책의의의에대해다음과같이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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