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과 함께 격정의 시대로 (조선의용대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김학철과 함께 격정의 시대로 (조선의용대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28.00
Description
생각하는 항일 투사이자 행동하는 작가였던 김학철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분단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지 못하고 바로 잊혔던 조선의용대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선생님. 외다리로 일본군이 무조건 항복하는 그날까지 단 한 번도 자유와 독립을 위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그의 험난한 여정을 따라가봅니다. 1916년 함경북도 원산 출생, 본명은 홍성걸. 중국에서 조선의용대가 창립될 때 부득이하게 어머니 성을 따라 ‘김학철’로 개명. 이후 2001년 9월, 21일간의 금식 끝에 유명을 달리하는 날까지 ‘김학철’이란 이름으로 살았던 우리의 진정한 투사입니다.

김학철 선생님은 서울 관훈동 근처 고서점에서 이상화 시인의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구에서 더는 망국노로 살 수 없음을 통감하며 결연히 임시정부를 찾아 떠날 각오를 합니다. 홀어머니가 시골집을 팔아 삼 남매의 학자금으로 넣어둔 통장에서 100원을 꺼내 봉천(심양)행 기차표를 사고, 그렇게 북경을 거쳐 상하이에 도착했을 때 그의 나이는 만 18세에 불과했습니다.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의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혼자 따로 서는 사람이다!”를 몸소 실천하는 일이자 “빼앗긴 땅을 붓으로 되찾지 못한다면 총으로 되찾자!”는 다짐을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는 용단이었습니다.

이 책은 김학철 선생님이 겪은 역사적 현장을 생동하게 글로 재구성하고 생생한 역사적 사진 및 풍부한 자료를 함께 실어 격정으로 넘쳤던 그 당시를 후세에 고스란히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젊은 조선의용대원들이 어떻게 어둠의 장막을 헤치고 이국땅에서 꿋꿋하게 한길만 고집했는지 만나볼까요?
저자

김해양,김호웅

저자:김해양
1948년인천시부평에서태어나유년기를평양,북경(베이징)에서지냈다.중국연길시에서노동자출신노조간부부터시작하여정부경공업부공무원,연변총공회선전부장,연변공회간부학교교장을역임하였다.현재김학철항전역사와작품을정리하고출판하며그의조선의용대전우들을기리기위한사회활동에도힘쓰고있다.

저자:김호웅
1953년5월,연길의광주김씨가문의8남매중넷째아들로태어나어릴적부터문학을좋아했고KBS해외동포상수상자정판룡교수의문하에서석사,박사과정을마쳤다.1985년부터연변대학에서문학이론,문학창작론,조선족문학사,한국근현대문학사를강의하고있다.일본와세다대학교,한국한양대학교,배재대학교와아주대학교에서각각1년간강의한바있다.김해양과함께《김학철평전》,김관웅과함께《김학철문학과의대화》,이외에《재만조선인문학연구》,《조선족문학과아이덴티티》등10여권의저작을펴냈다.중국의‘전국모범교사’로선발되었으며준마상,한국의동서문화상등다수의상을수상한바있다.현재연변대학교박사생지도교수,‘걸출(傑出)인재’초빙교수로일하고있다.

목차


추천사_김학철선생과그의격정시대
머리말_인간김학철과그의전우들

1부
태항산기슭에석류꽃붉게물들다

2부
중국석가장일본헌병사령부에서일본나가사키감옥으로

3부
자유와독립의길을찾아떠난청년김학철

4부
상해에서의반일테러활동

5부
황포군관학교와조선의용대

6부
태항산팔로군사령부와팽덕회

7부
일본나가사키형무소

8부
일본감옥에서서울,평양그리고또다시북경으로

9부
북경에서정령과함께

10부
연변에서주덕해와의인연

11부
작가김학철의작품세계

12부
두만강에서의마지막길

부록1김해양의일기11편
〈마지막스무하루의낮과밤〉에서발췌
부록2김호웅교수가바라본김학철
부록3김학철선생이생전에정리한자료1
황포군관학교13기(특별6반)조선인학생명단
부록4김학철선생이생전에정리한자료2
조선의용대명단
부록5김학철연보
김학철항일투쟁경로
조선의용군투쟁경로

출판사 서평

“스무살에상해에서반일테러활동에뛰어들어맥아더사령부의정치범석방명령으로일본감옥에서풀려나온서른살까지나는지겨운줄도모르고또한눈도팔지않고오로지한길을걸어나왔다.제멋에겨워서자신만만하게걸어나왔다.하긴자신만만한것은지금도마찬가지다.”
이말씀은김학철선생님께서1994년에하셨으니세상을떠나기7년전에남긴말입니다.선생님은조선의용대최후의분대장으로호가장전투에참가했다가왼쪽다리에총상을입게됩니다.그리고일본군포로가되어〈치안유지법위반〉으로일본나가사키형무소에수감됩니다.그렇게선생님은자신의생명을시시각각좀먹어들어오는원수같은다리를끌고“일본이먼저망하느냐내가먼저죽느냐”하는경주를3년넘게하다가끝내열악한환경에서다리를절단하게됩니다.하지만자신만만한걸음으로살아오셨던것처럼,다리를절단한후여동생에게쓴편지에서“사람의정의는인력거를끄는동물이아니다.다리한짝쯤없어도문제없다.걱정마라!”라고태연하게위로합니다.

김해양선생님에게아버지김학철은어떤분이셨을까요?
“나의아버지는극한의상황을수없이극복하며끝내인간승리를증명해냈습니다.그는일본감옥에서왼쪽다리를절단했지만실의에잠기는대신총칼을붓으로바꾸었습니다.거대한우상들에차례로도전했으며어두운철창속에서도희망을저버리지않았습니다.아버지가22년동안의비인간적인수감생활을마치고자유의몸이되었을때,아버지의나이는어느덧65세였습니다.하지만그는최후의질주를멈추지않았고,여든다섯해로써생을마감하는날까지장장20년간위대한문학유산을우리에게남겨주었습니다.진리와자유를위해서는개인의안위와부모형제마저뒤로하고나설용기가필요함을아버지를보며깨닫곤합니다.아버지의파란만장한여정은한국,중국,북한,일본을아우르는동아시아역사의실사판입니다.”

김학철선생님은세상의온갖불의에맞서싸우며죽음의고비를수없이넘나들었습니다.세상을지배하는힘과권력이라도정의롭지못하다면그에도전해야마땅했습니다.말년에는“나는여생을모든입가진자들이다말할수있는자유를위해싸울거야!”라고하시면서출입문에‘한가한사람은문을두드리지말라’는팻말을걸고일분일초를아끼시며창작에몰두하셨습니다.
병이깊어글을쓸기력마저쇠해지자“작품을더는쓸수없다면나의인생은끝난것이다.한명(限命)을아는것이영웅이다.”라고하시면서식사를중단하고담담히존엄한죽음을맞이합니다.
선생님의친필유언은대쪽같은그의신념이자좌우명이었습니다.
“편안하게살려거든불의에외면을하라.
그러나사람답게살려거든그에도전을하라.”

김학철문학의원천은평생꾸준히해온‘독서’라고해도과언이아닙니다.그의일생은열광적인독서로점철되어있습니다.어린시절에는일본어로된세계문학전집을통독하였고,팔만뻗으면닿을수있는책장에《노신전집》10권과홍명희의《임꺽정》6권을두고책이닳도록읽었습니다.또《홍루몽》도외울정도로자주읽으셨는데선생님은이소설이중국사회의백과사전이라하셨지요.중국의《사기(史記)》를좋아하셨고숄로호프와톨스토이의작품도생명같이사랑했습니다.문학에대한사랑,박애정신,역사에대한책임감등이김학철문학의정체성이되어주었습니다.

한반도와일본(감옥),그리고중국에서격동의20세기를온몸으로치열하게살아온김학철선생님은세상을떠나기전돋보기로조선의용대창립사진을하나하나살펴보시며대원들에대한자료를정리하셨습니다.당신만이그작업을할수있다며정리한소중한자료를이책의부록으로공유합니다.망국시기‘최초의조선인무장대오인조선의용대는전무후무한항일결사체’였습니다.독립운동과광복을위해창립된조선의용대는어떤이유에서든우리의독립운동사에서지워져서도폄하되어서도안되는한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