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살이 (파이낸셜 어드바이즈 한현순의 뉴질랜드 이민 성공기)

타국살이 (파이낸셜 어드바이즈 한현순의 뉴질랜드 이민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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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은 1947년 7월, 충북 옥천군 군북면 지오리에서 한귀섭의 6남매 셋째딸로 출생해 평택 주재 미 8군 장교클럽 여비서로 근무해 오다 24세 때인 1971년 5월, 한국 주재 뉴질랜드 〈한뉴목장 농업 컨설턴트〉로 재직하던 뉴질랜드 청년을 서울 조계사 부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나 지정된 좌석에서 평택까지 같이 앉아가게 되고, 얼마 후 뉴질랜드 청년의 구애와 청혼으로 한국 주재 뉴질랜드 대사관의 주선으로 국제결혼 후 남편을 따라 뉴질랜드로 귀화해, 세 아들을 낳아 훌륭히 키우면서 자식들을 대학까지 졸업시키기 위해 솔로 맘으로 뉴질랜드 사회 직업전선으로 나아가 타국 사회에서의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동양 여성으로는 최초로 파이낸셜 어드바이즈(재정 고문 또는 재정구원)로 활동하며 뉴질랜드 사회 정착에 성공한 파이낸셜 어드바이즈 한현순의 일대기를 기록한 인간 승리 자전 에세이다.

웰링턴 지역 일간지인 「The Post(구 Dominion Post)」지는 그녀를 향해 “성공한 한인 여성 사업가”이자 “부동산 투자 전문가”로 소개했고, 「코리아포스트(NZ Korea Post)」지는 2015년~2017년 비즈니스 섹션(12면~18면)에다 수 차례 “모기지(mortgage) 설계의 마술사”, “자산 증식의 파트너”, “웰링턴의 부동산 투자 멘토”라는 제목으로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최근까지 뉴질랜드 아일랜드 베이 뉴타운에 거주하며, 〈Haley Fenwick Financial advisor'(헤일리 펜윅 경제 자문)〉 프리랜서 사무실을 열어놓고 멘토로 활동했던 그녀는, “43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아주 늦게 사회에 나온 온상 속의 화초, 아니면 잡풀(?)이라고 해야겠다. 보통 그 나이가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는데 이 사람은 좀 달랐다. 일어섰다. 세 아들을 대학에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솔로 맘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해 냈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대형 거미줄에 걸려든 한 마리의 벌처럼 허우적거리며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절박함 속에서 살아날 길을 찾아야 했기에……. 그 절박함이 그녀를 살렸다.”라고 처음 직장을 구하기 위해 그녀가 직업소개소를 찾아 나선 그날을 회고하고 있다.
저자

한현순

(HaleyHyon-sunFenwick)

저자한현순은1947년7월,충북옥천군군북면지오리에서청주한씨(한귀섭)와재령이씨(이계녀)의셋째고명딸로태어나부모님의품에안겨서울로올라와동대문구망우동(지금은서울중랑구망우동)에서유아기를보냈다.아기였을때영양실조로눈에미영시(무명씨)가끼어서치료는엄두도못낼당시외할머니가닭한마리를고아서그녀를무릎위에앉히고숟갈로국물을떠먹였던정성으로미영씨낀그녀의눈과영양실조의몸은기적적으로소생해재롱둥이고명딸로성장했다.
일곱살때인1953년4월,서울동대문국민학교에입학해국민학교교육을받기시작했다.열세살때인1959년,경기여자중학교입학시험에합격했으나면접시험에서집안이가난하다는이유로낙방해상급학교진학을포기한채국민학교졸업직후부터5개외국어를구사해야겠다는꿈을키우며AFKN미8군방송을들으며영어부터독학의길로들어섰다.
열여섯살때인1962년,신설동타자학원에급사로취업해,열아홉살때인1966년,평택캠프험프리스타자원겸여비서공모에응시해타자실기시험과영어면접시험에합격했으나발령을받지못하고기다리다그해8월캠프험프리스장교클럽식당여종업원인‘웨이트리스’로두번째직장생활을시작했다.
1966년9월,세번째직장인캠프험프리스장교클럽여비서로발탁되어18개월동안〈열심,우의,정직〉으로부여된임무를충실히수행한공로로1969년1월캠프험프리스장교클럽최고우두머리인제너럴매니저〈감사장〉을받으며Grade7로승진되어대한민국국민평균월급보다12배의급료를받으며행복한직장생활을했다.
24세때인1971년5월,서울조계사부근시외버스터미널에서한국주재뉴질랜드〈한뉴목장농업컨설턴트〉로재직하던뉴질랜드청년을버스안에서우연히만나,지정된좌석때문에평택까지같이앉아가게되고,얼마후뉴질랜드청년의구애와청혼으로7개월후인1971년12월,한국주재뉴질랜드대사관의주선으로국제결혼후남편을따라1972년2월19일한국을떠나뉴질랜드로이민을갔다…….
1981년7월,중국정부를위해서뉴질랜드식아웃도어파밍(OutdoorFarming:옥외농장)을셋업(Setup:설립)하려고남편과세아들을데리고중국광시성치안지앙시범목장에서1년,산시성친슈이시범목장에서2년,3년간중국에서살면서중국어와중국현지생활을체득하고1984년10월뉴질랜드로돌아와,1986년4월부터그동안결혼생활로단절되었던사회생활을복원하기위해직업소개소를찾아나서기시작했다.
1988년8월8일,일본정부는해마다전세계에서일본어를공부하는학생들을대상으로일본어능력시험을치르며,최고점수를받은학생들에게비행기삯,숙식비,용돈까지현찰로주며일본을구경시켜주는국위선양행사를열었는데,그녀는뉴질랜드웰링턴대표로뽑혀전세계에서모여든93명의〈일본어장학생〉들과함께일본의유명도시를여행하며일본어와일본문화를습득하기도했다.
그녀의나이43세때인1990년,세아들들을대학까지공부시키기위해〈5개년재무계획표〉를작성한후솔로맘으로뉴질랜드사회직업전선으로나아가타국사회에서의숱한고난과역경을이기며동양여성으로는최초로일곱번째직장인종신생명보험판매회사파이낸셜어드바이즈(재정고문또는재정구원)로활동하며〈뉴질랜드전역TOP10브로커〉반열에올라4년간〈백만달러원탁회의〉에초빙되었다.
그러던중1992년6월2일,본의아니게종신보험회사한클라이언트의집한채를인수,세입자관리를해주며부동산사업에첫발을내디딘후한해에한채씩부동산을사들였고,어떤해는두채도사들이고,얼마후는웰링턴지역을넘어서뉴질랜드남섬의부동산도사들이며〈집한채는나무한그루〉라는개념으로부(富)의문을열어갔다…….
이기간(2015∼2020)동안뉴질랜드언론들은그녀를“부동산투자전문가”,“모기지설계의마술사”,“자산증식의파트너”,“웰링턴부동산투자멘토”등으로소개했고,그녀는한국교민은물론뉴질랜드본토민들로부터도선망의대상이되었다…….
43세때인1993년3월대전EXPO’93〈뉴질랜드관〉관리자로한국에파견되었다.
1993년12월,뉴질랜드육류수출위원회한국어통역사로발탁되어,한국미트바이어들의육류수입상담을한국어로통역하며뉴질랜드전역모든도축장을바이어들에게안내하며함께동행했다…….
48세때인1995년5월,종신보험판매프리랜서로전향하다.
50세때인1997년뉴질랜드전역Top10브로커가되어무려4년간계속되다.
54세때인2001년밀리언달러라운드테이블(MillionDollarRoundTable:백만달러원탁회의)에초빙되어캐나다를여행하고돌아온이후2020년까지그녀를찾는수많은뉴질랜드전역클라이언트들의모기지(mortgage)대출상담,재무설계,은퇴전략,그리고특히부동산투자(PropertyInvestment)관련컨설팅을해주며갖은고난과역경속에서도오뚜기처럼우뚝서는한국인의참모습을오늘날까지보여주며,전세계인들로부터귀감이되는〈한국여성상〉을이룩하였다는정평을받고있다.

목차

저자의글……4



프롤로그……18

그삶이라는것……18
예언……19


첫째마당이야기……21

나의탄생……22
울보와기적……23
내어린시절의행복……23
쥐의세상뒷간……24
들꽃……24
거리상가의노래와교회에서주던시루떡……25
두꺼비녀석들……25
혼자만의게임들……26
산동네친구들……26
기차의기적소리……27
하늘의선물……27
동대문국민학교에입학하다……28
책낭독챔피언……30
꼬부랑할머니들……31
그리운귀뚜라미들의코러스……32
개구리들의개굴개굴합창……32
혼자인백로……32
양반님들같이품위있는소나무들……33
즐거웠던나날들……33
가랑잎과의게임……34
거리마다즐비했던시인들의이야기……34
콩나물시루같은버스안에서……34
행복한시절의한가지사건-엄마의부재……35
국민학교6학년때-국가장학금시험……36
중학교입학시험……39
외국어공부를시작하다……40
첫번째외국어-영어……41
두번째외국어-독일어……43
세번째외국어-일본어……44
네번째외국어-중국어……46
다섯번째외국어-불어……47


둘째마당이야기……49

다시어린시절로……50
상이군인이많았던어린시절……51
모윤숙씨의국군은죽어서말한다……51
그많은상처속에서도……57
정규교육을받지못한나……58
나를낳아주신부모님들……58
나의엄마……59
엄마는음치……60
우리엄마의영어실력……62
긍정적인사상……62
엄마와나는자매같다네……63
엄마의틀니……64
2006년10월29일-엄마의마지막날……65
나의외조부모님들에대해서……67
엄마는외동딸……68
남자아이로둔갑하신엄마……70
외조부모의외동딸혼사준비……71
부모님의뜻대로……72
상반되는부모님의결혼-모든결혼은그러한가?73
귀한공주님이허드레일꾼으로전락하다……73
나의아버지……74
아버지가나에게남겨주신인생철학……76
남편과옥천방문……77


셋째마당이야기……79

첫번째직장-타자기를만나다……80
나에게학생들은이방인……83
첫번째점이나타나다……84
올빼미,나의올빼미……84
지금선생님이안계셔……85
우리의한평생우정이그렇게시작되다……85
미8군타자수모집……86
또낙방……88
올빼미의제안으로〈캠프험프리스〉엘가다……89
또하나의시험……90
타자시험합격!……90
필기시험합격!……91
구두시험-영국인인사청장……91
기다리는시간……92
또다시평택으로……93
빈자리가있긴한데……94
두번째직업-웨이트리스……95
또다른세계를만나다……95
담배연기속의일……95
사고-좋은일에는나쁜일이따라온다더니……96
일시작한지꼭한달되던날……97
전화위복……99
보고서작성……100
내일아침9시까지오시오……102
또하나의새로운문이열리다……102
나의세번째직장-장교클럽의여비서……103
두개의별명-베이비와전화번호부……103
승진위에또승진……106
말많은사람들……108
나타난쫄병……109
펜프랜드……113
만나자고하는펜팔……113
결혼하기일년전에일어난슬픈일……115
새로부임해온커스토디언……116
한국인들은모두도둑놈……116
허락받은도둑놈……118
프러포즈인가?……120
결근……121
나는냉혈인간인가?……122
또한단계의승진……123
처음만난이성……124
다시찾아온그고등학생……126
14살에서19살까지……127
나는부모님의불량품일까?……128
아버지께용돈드리기……128
아버지와의마지막만남……129
아버지의죽음……131
꿈속에서의아버지이야기……132
결혼은안해!……133
우리아버지의계획……133
회색의새……135
올빼미의상경명령……135
올빼미가버스표를바꾸다……137
그날은석가탄신일이었다……138
낚싯밥을덜컥문나는맹꽁이……139
그를찾아간운명의그날……140
절세가인이아닌절세미남……142
평화스러운옥수수밭……142
가면안된다고그가만류하다……143
미스한을데려다줘라……144
궤도를벗어났던하루……144
우리식구들과의만남……145
괴상한청혼과주일뉴질랜드대사님의편지……146
엄마가좋다고하셨다……147
주황색독일차-폭스바겐……147
다이아몬드반지……148
휴가허락……149
동해안을따라서속초로……150
임신이래……152
1971년12월2일-결혼식……153
‘아부지나결혼했다.이제됐어?’……154
마약범!……155
돌아가야해……156


넷째마당이야기……159

내가사랑했던한국을뒤로하고……160
비행기……161
호주시드니공항에도착하다……161
뉴질랜드오클랜드에도착……162
시댁에도착하다……163
드론보다더겁나는샌드플라이공격……164
바위틈새의굴-나의식량이되다……166
결혼이후천천히깔려오는안개……167
시간이흘러시어머님댁을떠날때가되다……168
남쪽으로남쪽으로……169
HelloGeorge!……169
거대한여객선-인터아일랜드호……171
한국의동해안과비슷한픽턴에서넬슨까지……172
모투에카에도착하다……173
리와카로이사하다……174
남편이산첫번째우리집……176
뉴질랜드남섬에서의겨울……177
남편의딜레마……178
1972년크리스마스파티……179
큰아들사이몬(Simon)의탄생……182
아이들을싫어했던나……183
내몸이만들어낸기적……184
도움의손길-플랑켓너스……186
유모차를끌고극장엘가다……187
기이한방법으로기어다니는아기……187
어머,저꼬마좀봐……189
단어배우기……189
큰아들의초등학교생활시작……189
큰아이9개월때난또둘째를임신하다……191
리틀황제의탄생-둘째아들(Anton)……191
황달-둘째의힘든시작……192
이번엔딸이겠지-우리집막내(Rex)……195
자궁탈출증……196
또아들이네……196
2미터밖에못보는막내……197
신발닦기……198
아들셋하고산책을나가면……199
남편의대장암선고……201
그날남편은큰병원으로이송되다……203
피아노와그림……204
SummerArtSchool……205
팔려나간나의명작……205
아이들과의게임들……206
위험한점프……209
위험한엄마……211
튜발라이게이션수술……212
무척이나슬펐던‘자궁적출수술’……212
정신병원입원직전에풀려나다……212
결혼생활은너무나도어려워……215
망가져버린행복의분수……219


다섯째마당이야기……221

새로운일……222
흙을뚫고나오는작은생명의기쁨……223
엄마가뉴질랜드로오셨다……224
그렇게오랫동안보고싶었던엄마였는데……226
이번엔오빠가왔다……227
누구든해서는안될행동……229
“넌한번도날사랑한적이없지?내돈을보고결혼한거잖아!”……231
뉴질랜드달러로4,000불을빌려간오빠……232
오빠와관련된에피소드한가지더……233
도둑으로몰리다……233
결혼생활에서벗어나고파올빼미에게가다……235
골든베이로이사를하다……237
보스카와싹스……239
코스모스와싹스……242
목숨을잃는고래들……245
나의차례……246
죽음이나를기다리던날……246
물속에서의죽음으로의여행……248
그물로건져올린구조……249
중국정부의뉴질랜드식옥외목장설립기획……252
중국어수업을받다……253
환영파티……254
마오타이주의위력……256
탁구공만한바퀴벌레……257
200년전으로돌아간듯한치안지앙시범목장……258
중국은거대한대륙……259
아이들의통신교육-홈스쿨링……262
공산주의사회의면모……264
영혼을빼앗아가는사진기……266
일자리옮김……267
산시성의모래폭풍……268
아이들의전쟁놀이……271
야외이동공연단……272
동나무심기……273
24시간감시하는공안주……275
레위알리씨와우리집막내……279
내면에서의메시지……281
1984년8월-중국을떠나오다……282
미국여행……283
HaveaGoodDay!……285
1984년10월뉴질랜드로돌아오다……286
1984년또하나의수술……287
무슨일이있었어?-의사선생님의의문……288
새로생긴나의엄마들……288
남편의일본인애인……291
나의남편은왜밖으로만나돌까?……292
이중성격의소유자인가?……293
약속을어긴남편……294
금이간우리의결혼이라는항아리……295
악몽들……296
1985년12월에내린결정……297
남편이중국에서돌아왔을때……298
거주지를웰링턴으로옮기다……298
이번에도남편이나를따라오다……299


여섯째마당이야기……301

네번째의직장-은행외환과……302
1986년6월대만친구를만나다……304
운전사와요리사……305
다섯번째직장(MicrographicWellingtonLimited)Receptionist……306
연봉$19,000에서$29,000로……306
내인생의꽃을다시피우기시작하다……308
사장님이준비해주신생일파티……309
세번째의점(點)-사장님……310
뉴질랜드주재일본대사관에서걸려온전화……311
가슴아픈증거물이나오다……311
자동차사고……313
일본어장학생여행……314
법정에서다……317
호사다마-좋은일엔나쁜일이뒤따른다……319
어마어마한퇴직금을받고퇴사하다……320
내가언제너의상사였어?……320
여섯번째직업-OperationalManager-운영관리자……321
정확한사실만이야기하라……322
또감직……323
또나를따라온남편……324

출판사 서평

이책은1947년7월,충북옥천군군북면지오리에서한귀섭의6남매셋째딸로출생해평택주재미8군장교클럽여비서로근무해오다24세때인1971년5월,한국주재뉴질랜드〈한뉴목장농업컨설턴트〉로재직하던뉴질랜드청년을서울조계사부근시외버스터미널에서우연히만나지정된좌석에서평택까지같이앉아가게되고,얼마후뉴질랜드청년의구애와청혼으로한국주재뉴질랜드대사관의주선으로국제결혼후남편을따라뉴질랜드로귀화해,세아들을낳아훌륭히키우면서자식들을대학까지졸업시키기위해솔로맘으로뉴질랜드사회직업전선으로나아가타국사회에서의숱한고난과역경을이기며동양여성으로는최초로파이낸셜어드바이즈(재정고문또는재정구원)로활동하며뉴질랜드사회정착에성공한파이낸셜어드바이즈한현순의일대기를기록한인간승리자전에세이다.

1990년,마흔셋이라는늦은나이에,솔로맘의신분으로뉴질랜드사회직업전선으로나아가짧게는6개월,길게는2년씩근무하며자리를잡을만하면또다시구조조정을당해이직장,저직장전전하며타국사회에서의숱한고난과역경을이기며동양여성으로는최초로일곱번째직장인종신생명보험판매회사파이낸셜어드바이즈(재정고문또는재정구원)로활동하며〈뉴질랜드전역TOP10브로커〉반열에올라4년간〈백만달러원탁회의〉에초청되는영예를안기도했었다.

그러다1992년6월2일,본의아니게종신보험회사한클라이언트의집한채를인수,세입자관리를해주며부동산사업에첫발을내디딘후한해에한채씩부동산을사들였고,어떤해는두채도사들이고,얼마후는웰링턴지역을넘어서뉴질랜드남섬의부동산도사들이며〈집한채는나무한그루〉라는개념으로부(富)의문을열어갔다…….

웰링턴지역일간지인「ThePost(구DominionPost)」지는그녀를향해“성공한한인여성사업가”이자“부동산투자전문가”로소개했고,「코리아포스트(NZKoreaPost)」지는2015년~2017년비즈니스섹션(12면~18면)에다여러회에걸쳐“모기지(mortgage)설계의마술사”,“자산증식의파트너”,“웰링턴의부동산투자멘토”라는제목으로집중보도하기도했다.

48세때인1995년5월,종신보험판매프리랜서로전향해최근까지뉴질랜드아일랜드베이뉴타운에거주하며,〈HaleyFenwickFinancialadvisor'(헤일리펜윅경제자문)사무실을열어놓고멘토로활동했던그녀는,“43살의나이에처음으로돈이절실히필요하다는것을깨달은사람이다.아주늦게사회에나온온상속의화초,아니면잡풀(?)이라고해야겠다.보통그나이가되면모든것을포기하고마는데이사람은좀달랐다.일어섰다.세아들을대학에보내야했기때문이다.그녀는솔로맘이었다.그리고그녀는해냈다.능력이있어서가아니었다.대형거미줄에걸려든한마리의벌처럼허우적거리며삶과죽음사이를오가는절박함속에서살아날길을찾아야했기에…….그절박함이그녀를살렸다.”라고처음직장을구하기위해그녀가직업소개소를찾아나선그날을회고하고있다.

분망한일상생활속에서도1993년3월대전EXPO’93뉴질랜드관관리자로한국에파견되었고,그해12월에는뉴질랜드육류수출위원회한국어통역사로발탁되어,한국미트바이어들의육류수입상담을한국어로통역하며뉴질랜드전역모든도축장을한국의바이어들에게안내하며갖은고난과역경속에서도오뚜기처럼우뚝서는한국인의참모습을보여주며,전세계인들로부터귀감이되는〈한국인상〉을이룩하였다는정평을받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