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서
[시]
<꽃이재차말하네>_이영선
내가웃으면
아기미소로방긋웃고
내가울면
슬픔되어시든다꽃이말하네
꽃그늘에시름감추면
달콤한향기로덮어주고
투정의입술오물거려내밀면
바람의숨결로흔들어재우네
향기없는꽃은슬픈일이고
괴로움없는인생은
찬란함모른다고꽃은재차말하네
<순례>_김명옥
맨발로걸어들어간다
나무들의성당으로
된서리에발딛고
삭풍에시달리는나무들
성한몸이하나도없다
잘렸거나부러진상처를들고
고해소앞에길게줄서있다
나무들이흘린죄로
숲은점점더어두워지고
기울거나굽은고백을주워먹은새들
날개무거워지고
들어갈수록하늘은더가팔라진다
절룩거리는내게
못자국서늘한나목이묻는다
온힘다해오느라찢어졌냐고
펄럭이는내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어둠을본걸까
빛을나눠줄나무성자는어디에있나요?
속이텅빌때까지더찢겨야하나요?
부르튼질문들허공에붐빌때
어디선가나타난호랑가시나무한그루
나를들쳐업고가시밖으로나온다
눈발이온다
젖내나는맨발을신고서
[수필]
<눈물의이모티콘>_이순헌
쌍둥이들이거짓말처럼남미로떠난날은작년만우절인4월1일이다.아파트주차장에서딸네가족과잔뜩짐을실은밴차가공항으로떠나기직전이다.항상곁에있던아이들,오늘헤어지면언제볼지모른다.난차안으로몸을반쯤디밀고서서애들에게작별인사를했다
“가서엄마말잘듣고건강하게지내라~~”
내말이끝나기도전에갑자기서준이가내손을덥석잡으며소리쳤다.
“할머니,사랑해요!할머니사랑해요!”
그리고한손으로는뚝뚝떨어지는눈물을연신훔쳤다.
“아이고,우리서준이다컸네.”
나는놀라서오히려웃음이나왔다.좀전까지무심했던아이다.옆에서큰아이하준이도의외인듯말했다.
“너는,나도안우는데네가왜눈물을흘려?”
정작하준인며칠전부터이별을준비하며내게틈틈이말했었다.
“할머니,나는도착하면할머니가그리울것같애.”
전날에도“할머니,오늘이마지막밤이네.”하며나와안고헤어짐을아쉬워했다.그러나서준인태블릿에만몰두하며데면데면했었다.일찍부터괌,말레이시아몽키아라,시카고샌프란시스코등해외여행을많이다녔던아이들이다.우리부부도아이들과말레이시아에‘한달살기’로갔었고괌과제주에서도같이지냈다.이번엔3년이라니까그기간이긴세월인걸아는가보다.
사위가과테말라지사장으로발령이나자딸은예민한하준이가안가겠다고보챌까봐계속비밀로했다.아이들은이제막초등학교일년을보냈다.그곳에선국제학교에다닐것이다.정든친구들과이별할시간을줘야지않냐는내말에딸은반대였다.갈날짜가거의임박해서야딸이작정하고아이들에게알아듣도록얘기했단다.
“엄마,진작얘기할걸괜히감췄어.서준이가,내인생에외국에나가서살아보네,하고하준이도금방받아들이더라고.”
하여간아이들속은부모라도다알수가없다.그동안고집부릴까봐공연히애태운게무색했다.영어를잘하는엄마와과테말라의스페인어까지하는아빠와함께둥이들의외국생활은그리갑갑하지는않을것이다.
8년전한꺼번에찾아온둥이들은축복이었다.모두가기다리다지쳐마음을정리하고있을때였다.나의잦은눈물바람도멎었다.친구는애들을바라보는내눈에서꿀이뚝뚝떨어진다고했다.쌍둥이지만많은부분이서로다르다.이란성이라서골라보는재미도있다.큰애하준인기운이장사인데섬세하고낯가림이심하다.작은애는담백하고용기가있으나기운센하준일못당해서둘이자연스럽게서열이정해졌다.나는매번눈물찔찔짜는맞은놈편을들어큰애를꽉안고“너도한대때려봐.”하며서준에게기회를준다.그러나대거리만하면큰놈이더불같이달려드니작은애는울면서제엄마한테달려가구원을청한다.이제는제깜냥으로아예덤빌생각이없다.나도작전을타이르는쪽으로바꿀수밖에없었다.그러다가도금방사이가좋아져서걱정은없다.다정한제부모처럼둘이여보,당신하며놀때는동성쌍둥인것이다행이라생각한다.
평소껌딱지서준이가제에미에게달라붙어뽀뽀를퍼부으면옆에있던내가“할머니도~”하며손을벌렸다.그럴때마다서준인안으려는날밀치고뒤로뺀다.그러면에미는“우리서준인엄마밖에몰라.”하며아이를더사랑스럽게힘껏끌어안는다.영리한녀석이에미없을땐할머니에게도넙적잘안기는데에미나애나유난스러웠다.제딴에날잠깐씩서운케했던게갑자기마음에걸렸을까?
밴차량은공항으로떠나버렸다.남겨진남편과나는우두커니서있고,애들이사라진아파트마당은텅비어허허하다.그때손안에서핸드폰이부르르떤다.카톡이왔다.
「보고싶어요,할머니.ㅠㅠ」
감정을추스르지못한채방금떠난서준이그새파란눈물홍수의이모티콘과함께문자를보내왔다.허전한가슴이뭉클해오며나도답장을보냈다.
「위험한장난하지말고,밥잘먹고건강해져서만나자.」
이모티콘처럼눈물을뿌리며“할머니사랑해요”를외치던아이모습이오락가락해나도눈앞이흐려지면서가슴으로부터벅찬웃음이자꾸자꾸삐져나왔다.
거리에서우리쌍둥이만한애들이깔깔웃으며서로밀고당기며장난을친다.
“너희들몇살이니?”
멈칫서서내가물었다.
“안가르쳐줘요!”“백살예요!”“오만살예요!”
“에구이개구쟁이들아,울애기들같아서묻는거야.”
“우린아기가아니거든요!”
그렇다,난아직도여덟살손주들을애기라고말하고있다.
보고싶다~~.울애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