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위트컴 장군(한/영대역)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위트컴 장군(한/영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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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위트컴 장군의 아름답고도 숭고한 이야기
온 가족이 읽고 세계인에게 알리려 ‘동화 형식’에 ‘한영대역’ 구성
6·25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되었다. 많은 이야기가 발굴되었고, 감동적인 선행도 많았다. 우리가 감사하고 간직해야 할 이야기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뒤늦게 공적이 밝혀져 2022년에 최고 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한 미군이 있다. 사후 40년 만에 훈장을 받은 유엔군 부산 군수기지 사령관 리차드 위트컴 장군, 그는 1953년 11월 부산역 대화재 때 군수품을 동원해 이재민이 3만여 명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게 했다. 민간인에게 군수품을 사용했다는 명목으로 미국에 소환되어 의회 청문회까지 불려 나간 위트컴 장군은 미국에서 조성해온 자금으로 한국 사람 돕기에 더욱 앞장섰다. 예편한 이후 전쟁고아들을 도와 ‘한국 고아의 아버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위트컴 장군은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한 산하에 방치된 미군 유해 찾는 일에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이다 생을 마감하고 한국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위트컴 장군의 삶을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동화 형식으로 담았으며 한영 대역으로 구성해 세계인들도 위트컴 장군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저자

이근미

중앙대학교와동대학원에서문예창작학을전공했다.1993년문화일보로등단했으며2006년여성동아장편소설공모에당선되었다.장편소설《17세》《어쩌면후르츠캔디》《서른아홉아빠애인열다섯아빠딸》《나의아름다운첫학기》어린이책《김장환목사이야기》《베토벤》《역사를바꾼대통령박정희》를냈다.
기자로활동하며얻은지식을분석해비소설《실컷놀고도공부는일등이라뇨》《+1%로승부하라》《프리랜서처럼일하라》《대한민국최고들은왜잘하는것에미쳤을까》《큰교회큰목사이야기》《광야에길을내다》외다수의책을발표했다.

목차

40계단과불에탄축대
Thefortystepsandthefire-burnedterrace

그나라국민을위하는것이승리
Theturevictoryistheoneforthepeopleofthecountry

위트컴장군의한국사랑,부산사랑
GenWhitcomb'sloveforKoreaandBusan

한복입고모금에나선위트컴장군
GenWhitcombdressedinHanbokontheroadforfundraising

부산의도시기능을살리다
TherestorationofcityfunctionofBusan

부산대의미래와한국청년의도약을위해
ForthefutureofPusanNationalUniversity(PNU)aswellastheRiseoftheyounggenerationsinKorea

한국유엔기념공원에잠든유일한장성
TheonlygeneralburiedintheUnitedNationsMemorialCemetaryinKorea(UNMCK)

한국고아의아버지
ThefatherofKoreanorphans

장진호에서싸운미해병을기억하라
RemembertheUSmarineswhofoughtinChosinreservoir(Jangjinho)

마미를부르며하늘나라로간미군들
TheUSsoldierswhowenttoHeavencalling~Mommies

국민훈장무궁화장에추서된위트컴장군
GenWhitcomb,whoposthumouslyhonoredbyMugunghwaMedalofOrder,CivilMeritofKorea

한국보다한국을더사랑한위트컴장군
GenWhitcombwholovedKoreamorethanKoreanpeople.

출판사 서평

전쟁직후화마와가난으로고통받는부산시민을도운진정한영웅
전쟁고아를도운‘한국고아의아버지’,유엔기념공원에묻힌유일한장성
위트컴장군사후40년만에최고영예인무궁화장추서

위트컴장군은제1·2차세계대전에모두참전했으며노르망디상륙작전때‘오마하해안전투’에서공을세워프랑스정부로부터최고훈장인제1무공훈장을받았다.제2차세계대전이끝난후세계여러나라에서중요한일을하다가6·25전쟁이발발하자준장으로입대해한국에서복무했다.

위트컴장군이부산역화재사건때군수물자를민간인에게사용했다는이유로본국에소환되어청문회에불려나갔을때“전쟁은총칼로만하는게아니다.그나라국민을위하는것이진정한승리다”라고당당히말해의원들을감동시켰다.

미국에서조성해온자금으로AFAK(미군대한원조처)를설립하고5년동안600만달러를지원했다.부산의도시기능을살리고메리놀병원을비롯한여러병원을돕고,부산대학교부지조성등수많은사업을펼쳤다.70년전의600만달러면어마어마한액수가아닐수없다.

위트컴장군은메리놀병원건립때거리에서한복을입고모금을펼칠정도로열정적이었다.아울러미군장병들에게월급의1%를기부해달라고호소해기부금을모았다.위트컴장군은88개미군부대를부산지역의각기관과연결해자원봉사를펼치게하고각종기부물품을전달하게했다.

위트컴장군은예편후한국에남아온생을바쳐한국을사랑했다.민간단체인한미재단을설립해전국의많은고아원을돕는과정에서만난한묘숙원장과결혼하고한국에서살다한국에묻혔다.

위트컴장군은유엔기념공원에잠들어있는유일한장성이다.숭고한그의삶은2011년경부터언론에보도되기시작했고뒤늦게공적을인정받아2022년최고훈장인무궁화장이추서되었다.부산시는시차원에서위트컴장군기념사업에나섰고,그사랑에감동한3만여부산시민의정성으로동상을세웠다.

위트컴장군의선행은오랜기간묻혀있었다.늦었지만한국을진정으로사랑한위트컴장군에게감사하고그사랑을기려야하며,그정신을이어받아사랑전파에나서야한다.

이책의그림은북한을탈출해자유의품에안긴이진주학생이그렸다.홍익대학교미술대학에서화가의꿈을키우고있는이진주학생이평안남도군수동원과박격포탄연구소제1보위대에서복무하다탈북했다는사실에서6·25전쟁이끝나지않은전쟁임을살감하게된다.

6·25전쟁은큰슬픔이지만그속에서피어난깊은사랑이우리에게큰힘이되고있다.위트컴장군의일대기는진정한사랑이무엇인지깊이생각해볼기회를안기는내용을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