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오딧세이 : 인류학자의 시선

울릉도 오딧세이 : 인류학자의 시선

$26.00
저자

전경수

서울대학교문리대및동대학원을거쳐1982년에미국미네소타대학교에서인류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2014년에서울대학교인류학과에서정년퇴임한후중국의귀주대학교특빙교수(2014~2017)로재임하였다.문화이론과생태인류학에서주된저술활동을했으며,현재동아시아인류학사를집중적으로정리하고있다.진도를시작으로브라질,베트남,중앙아시아,오키나와,파푸아등에서현지작업을수행하였다.‘가족과혼인’에관해오랜기간강의했으며,『한국인류학백년』(일지사,1999),『문화시대의문화학』(일지사,2000),『혼혈에서다문화로』(공저,일지사,2008)등다수의논문과저서가있다.

목차

머리말
책머리에11
울릉도유감:국경이닿는곳20
권력과일상36
문화주권:관계의에스노그래피41

1장문서와기억:역사재구성론
울릉도와독도의개황51
기록과기억78
울릉도의역지83
벌목과조선95
오키노시마의구미에서리양코까지142
자원:진상품,군수품,상품153
토속지명과지도205
부록1사료에서발췌한울릉도의토속지명229

2장학포민속지:폐촌화
울릉도의학포240
마을풍경255
생업271
바다에서274
산비탈에서287
폐촌에대응하여296
여객선과장보기298
의료서비스의변화303
가옥307
교육314
신앙과종교327
소결358

3장독도해정학:문화주권과커먼스정치
울릉도와오키노시마365
국가권력과공문서371
수로부장키모쓰키와일본해군망루377
동아시아지중해386
가지의멸종391
박제된가지와독도의가지어업394
커먼스정치400

맺음말
공생주의를지향하며407

참고문헌423
찾아보기428

출판사 서평

텔레비전의기상보도가“태풍은동해로빠져나가서다행입니다.”로끝나면울릉도주민은아연실색하게된다.울릉도에는아직도착하지도않았는데,“태풍상황끝”이라는보도를접하면,내팽개쳐진기분이들게마련이다.울릉도주민들은줄곧이런식의대접을받고살아왔다._「머리말」중에서

오딧세이적살림살이의보고,울릉도를보는새로운시각!
이책은원로인류학자전경수가2006년울릉도를연구하기시작한후15년남짓오랜시간동안현지조사/야로野勞(“현지조사”는인류학학술용어이나저자는“조사”라는말에든지적/계층적우월의식을거부하고“야로”라는단어를사용한다.)를비롯하여인류학적,민속학적,문헌학적,생태학적,해정학Oceopolitics적연구를통해울릉도를새로운시각으로조명하는책이다.

저자는본래바다를무대로살아가는사람들의살림살이를이야기한다.바다를배경으로살아가는사람들은육지를배경으로사는사람들과는다른방식으로살아간다.저자는쿠로시오해류를비롯한바닷물의흐름에몸을의탁하여동해를중심으로한반도,일본,극동러시아일대를오가던사람들과그들이만들고쌓아온사연을말한다.

먼옛날우산국의우해왕이대마도공주풍미녀와혼인한전설이며,우산국의궁성터이야기며,국립중앙박물관에보관된울릉도의금동불상이야기며,전라도흥양지방(여수,고흥반도인근,거문도를비롯한남해도서지역)사람들이울릉도에와선박을건조하고돌아가는일이며,울릉도를배경으로하는민요들이며,동학농민전쟁당시의어지러운사태를피하려입항한경주최씨의일이며,일본시마네현오키노시마에서바다를건너벌목과어업을하던일이며,풍랑을만나난파한어민을서로돌봐주던일이며,러일전쟁당시제국주의전쟁의기지가된일이며,어업권을위해울릉도와독도를자국영토에포함시키려는일본세력의일이며,인구감소와경제적어려움을겪으면서도울릉도를지키며살아가는사람들의이야기들이마치오딧세이를보듯이펼쳐진다.

“동아시아지중해”의중심울릉도!문화주권의논리로다시보는울릉도!
지금까지울릉도를타자화하는방식은크게세가지였다.그중하나는“태풍이큰피해를주지않고동해로빠져나가다행이다”라는기상보도로대표되는무의식적무시와외면이다.대한민국의심장이라는서울에서저멀리떨어져버려지다시피한아득한섬이울릉도가갖고있는이미지다.다른하나는“천혜의관광자원”이라는이름으로불리며육지에서관광삼아한철드나드는장소라는것이다.관광이울릉도경제에큰역할을하고있는것이사실이지만,그곳에사는일반인들의삶이천혜의풍광에가려지는것또한사실이다.마지막으로는울릉도가마치독도의부속도서인것처럼비쳐지는것이다.육지사람들의관심은사실상울릉도가아니라독도에가있다.독도인근에서생업활동을하고,독도의용수비대와같이독도를지키는사람들이울릉도사람들이고,독도해역의동식물이일본의오키노시마가아닌울릉도와혈연적으로더가까우며,독도가울릉도의한부분임에도불구하고국제정치의현장에는독도만이등장할뿐이다.울릉도는육지의권력자들에겐독도를갈때에들르는길목에지나지않는것이현실이다.

울릉도는한국사회의일원이면서또한울릉도를구성하는수많은요인들로구성된하나의전체이기도하다.울릉도는전체와부분이톱니처럼얽혀돌아가는커다란체계를형성한다.여기에는먼옛날신라,거란,고려,조선,일본제국주의의크고작은소외와수탈과침략이있었고,쿠로시오해류를이용한동해와남해어민들의활동이있었고,고령화율17퍼센트(14퍼센트를넘으면초고령사회로불린다)가넘는주민들의위태로운삶이들어있다.또한동해와울릉도에의지하여사는수많은동식물의삶이들어있다.저자는영토주권의논리와대결과배척의논리를거부하고울릉도를중심으로세상을새롭게보려는시도를감행한다.그럼으로써외부의힘에의해좌지우지된피곤한삶의울릉도를넘어서오랜세월동안역사와교류와무역으로쌓아온사연을만들어내는오딧세이적살림살이의기반인울릉도를복권한다.

울릉도의주인은누구인가?서울인가?또는도쿄인가?아니면바람과흙과물인가?그위에서태어나고살아가고죽기를반복하는수많은생명인가?

저자는육지의논리인영토주권의논리가아닌문화주권의논리로울릉도를봐야울릉도의실체에한층더가까워진다고주장한다.영토주권은너와나를엄격히분리하여소유와배척,대결과반목을조장하는정치의논리이며,100여년동안자본과권력에휘둘려어업에서농업으로,다시관광업으로휘둘리는삶의논리다.문화주권은주민들이땅과바다에의지하여살며스스로의삶의방식을개척하고만들어나가는주권을말한다.

그러한주권을행사하는삶은,한국,북한,러시아,일본이둘러싸고있는“동아시아지중해”동해의한가운데에서서울을거치지않고일본오키노시마어민들과직접교류하는것이가능하며,동해의일상을조율하는권한과능력을기르는것이며,모든생명이공생하며살수있게끔노력하는삶이다.국경과영토의논리로울릉도를접근할때에는필경대결과착취의안경으로바라볼수밖에없다.이를극복하려면인류학적상상력을발휘하여공생하는살림살이의논리로울릉도를살게끔할것을저자는바란다.

울릉도와독도의지명에전라도흥양지방말이많은이유는?
울릉도의지명은크게내륙지명과해안지명으로나눌수있는데,후자는거문도를포함한흥양,즉전라남도해안지방의지명이나용어가바탕이된지명들이다.울릉도의해안가에서보이는항국로이용할수있는좁고깊숙히들어간만을뜻하는“-구미”,자갈이깔려있는해변을뜻하는“-작지”,작은돌들이널려있는긴해안을뜻하는“-와달”,물고기나수초가모두모여있는바닷속넓적한바위를뜻하는“걸”들이이그렇다.

특히거북손(turtle'shand)이라불리는보찰은전라도지역의방언인데울릉도민은거북손보다는보찰을더익숙하게사용한다.독도에있는보찰바위(보찰바우)는울릉도민이독도에서활동을했다는것,그리고더멀리나아가전라도해안지역에서물길을따라활동을했다는좋은증거가된다.전라도남해안흥양지역사람들이해류를타고울릉도에와서좋은목재로선박을건조하고어업활동을하고돌아간것이다.

또한독도는“홀로떨어져있는섬”이아닌돌섬을뜻하는전라도방언“독섬”에서왔으며,대한제국이이에따라한자로“石島(석도)”로표기했다는점을밝힌다.“다케시마(죽도)에왔더니대나무가없더라”라고한일본인의표현처럼일본이명명한“죽도”는군사작전이개입한정치적명명이며,“독도”야말로어민의일상생활이반영된명명이라는점을밝힌다.저자는,울릉도와독도의역사와정당성을밝히는작업은흥양어부의기억을소상하게복원하는데에서그시작점이있다고주장한다.

1882년울릉도검찰사이규원은울릉도에조선인이140명이있는데이중115명이전라도출신이라고보고한다.그렇다면언제부터경상도지역방언을쓰는경상도민이주류를이루었을까?저자는울릉도최고最古터줏대감이라하는경주최씨의족보를분석하여그들이동학농민전쟁을전후로입도하였으며,경주최씨를비롯하여경상도지역사람들이피난처로울릉도를택하여입도하였던정황을밝힌다.그들은19세기정치적불안을피해울릉도로망명했다가그원인소멸하면귀향하기를반복했던듯하다.흥양지방사람들의왕래가적어지고경상도경주부근지역사람들이늘어나면서언어의변화도같이일어난것이다.이어조선정부의개척정책에의해강원도주민의이민이시작되었고,그에이어일본인들의이민이뒤따랐다.

강치가아니라가지다.그동안잘못알려진이름을바로잡는다!
우리는흔히독도에서멸종한한바다생물을강치로불러왔다.그러나저자는강치가아니라가지라고강치로알고있는그바다생물의이름이강치가아니라가지라는것을문헌학적,언어학적자료를근거로밝혀낸다.강치와가지는서로다른종이다.가지의학명은ZalophusLobatus(일본어로는아시카)이며,강치의학명은EumetopiusJubata(일본어로는토도)이다.강치가가지보다덩치가더크고,털이길다.가지는털이짧다.강치가가지보다한랭한조건에더잘서식한다(161쪽이하참조).그리고분포지역또한다르다(168~169쪽참조).

가지는이미그이름이조선시대기록에등장한다.조선시대무신장한상은“왜인이가지어(可支漁)를죽여기름을얻는다”고했고,조선왕조실록정조실록을비롯한많은기록에서가지는“가지어”라는이름으로등장한다(180~191쪽참조).일본에서도아시카(가지)잡이에관한기록이많이있다.특히죽도(여기서는울릉도를말한다.당시에일본에서독도는송도로불렸다)에아시카를잡으러출항하여포획했다는기록이있다.

해방이후1947년에석주명과함께울릉도를탐사한윤병익은가지에대해자세한보고서를남긴다(201~203쪽참조).그는석주명이가지를“日名도도,英名바다사자”로이해한것에대해두차례에걸쳐해부를통해포유류학적으로자세히교정한다.그는가지를“가제”로표기하여해부학적특징을정확히기술하였다.가제는가지의전라도흥양지방의말로당시에통용되던말이다.윤병익은이를존중하여그대로사용하였다.저자는,가제를강치의사투리로오해하여가지와강치를동일한종으로보는오류는바로잡혀야한다고주장한다.

또한저자는조선시대의기록,해방이후한국학자들의기록,일본측의기록에서모두가지가울릉도에서발견된다는점에주목한다.가지는독도에서만발견되었던것이아니라울릉도에서흔히볼수있었다는점을방증하기때문이다.

저자는가지의멸종에대해슬픈심정을감추지못하며인간의탐욕를고발한다.“독도의주인은누구인가?가지다.그런데어느날부터순차적으로두무리의손님들이등장하여,주인인가지를다죽이고잡아간뒤,서로자신들이독도의주인이라고주장하고있다.[...]독도의진정한주인은사람이아니라가지와보찰이며,그들의이웃인물고기와해조류,그리고새들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