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일시적 해외 거주를 넘어 공존의 디아스포라로

태국: 일시적 해외 거주를 넘어 공존의 디아스포라로

$18.00
Description
태평양전쟁 시기 이주한 이민 1세대부터 한류를 타고 넘어온 엔터테인먼트 사업자까지, 다양한 현지 자료와 458명의 설문조사, 50여 명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시대와 공간을 넘어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낸 태국 한인 정착사!

관광과 투자 진출, 선교 목적 이주에서 최신 기술·문화예술·인적 교류까지
서로 다른 문화 배경을 극복하고 삶의 터전을 일궈낸 태국 한인 디아스포라
저자

김홍구

한국외국어대학교태국어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대학원에서정치학석·박사학위를받았다.태국의치앙마이대학교와까쎗쌋대학교객원교수로근무했다.부산외국어대학교동남아창의융합학부교수로재직했으며,한국동남아학회장,한국태국학회장,국제지역학회장,(사)한국동남아연구소장등을역임했다.현재는부산외국어대학교총장이다.저서로는『태국문화의즐거움』,『태국정치입문』,『한국의동남아시아연구』(공저),『동남아불교사』(공저),『문화로배우는타이어강독』(공저),『지역연구방법론』(공역),『아세안:경제발전과경제협력』(공역),『동남아정치변동의동학』(공저),『한국기업의현지화경영과문화적응:말레이시아,태국,필리핀』(공저),『동아시아아의한류』(공저),『한국속동남아현상』(공저)등이있으며,주요논문으로는“한국의태국연구:동향과과제”,“태국의왕위계승연구:쟁점과전망”,“태국승가법과국가권력”,“재태한인의특성과태국에대한인식”,“태국의경제위기와정치적선택”,“태국의선거제도변화와정당체제”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5

서론태국한인디아스포라연구
1.들어가는말 15
2.연구과정과방법 18
3.이론적논의 24

1장태국으로의이주와정착사
1.양국교류의역사관계 35
2.한인사회의현황과법적지위 43
1)현황 43
2)이민정책과법적지위 52
3.시기별한인의이주와정착이야기 59
1)1930~1940년대 60
2)1950~1960년대 69
3)1970~1980년대 81
4)1980년대중반이후 91
4.치앙마이한인사회 110

2장일상적삶과사회계층의분화
1.일상적생활양식과민족정체성 117
2.사회계층의분화와상호갈등 132
1)사회계층의분화와갈등 132
2)주재원과현채(현지채용)의관계와갈등 135
3.치앙마이한인사회 140

3장현지인과의상호인식과관계
1.상호인식과사회적가치관의상이성 147
1)한국인에대한인식 147
2)태국인에대한인식 157
2.가치관의상이성 159
3.상호관계와갈등양상 162
1)회사(공장)내에서의양자관계 163
2)기타관계 171

4장양국을넘나드는삶의방식과초국적정체성
1.양국넘나들기 181
2.자녀교육과정체성 185
3.언어와정체성 193

결론한인사회의미래
1.태국한인의현주소 203
2.미래전망 206

|부록1|재태한인인터뷰추가분 214
|부록2|설문조사,인터뷰자료정리 233
|부록3|이민및비자규정 268

참고자료 285
찾아보기 291

출판사 서평

초국적특성을지닌재태한인,다양한재태한인의목소리로재현해낸입체적인삶의증언
이책은태평양전쟁시기일제가많은한인을포로감시원,공사작업노무자등으로끌고가면서시작된재태한인의이주와정착의초기역사를다양한자료를통해여러각도에서면밀히살펴보고,이후크게세시기로나누어각시기별로재태한인이거주국태국사회에어떤경로와동기로이주했으며그과정에서개인과민족의정체성,정치적성향은어떤방향으로변화했는지50여명의심층인터뷰와방콕거주458명의한인설문조사를통해생생하게담아냈다.

특히1980년대중반부터태국을드나들며변화하는태국한인사회를직접목격하고방콕까쎗쌋대학교와치앙마이대학교에교수로초빙되면서본격적으로한인사회를연구해다수의태국관련책까지쓴부산외국어대학교총장김홍구교수의밀도높은분석은태국한인사회의현주소뿐아니라미래전망까지명확하게보여준다.

무엇보다저자는재태한인의이주현상을거시적측면에서초국가주의적transnational문화의흐름이라고전제한다.최근의국제이주는단순히한사회에서다른사회로이동하는것이아니라둘이상의장소에서반복되는중요한연계를유지하는초국가적인면모를갖는다고보는것이다.초국적이주민transmigrants은이중적인삶을살아가며,이중적언어를구사하고,두국가에두곳의거주지를유지하며,이두곳에서정치·경제·문화적이해를추구한다.즉한국가에고정되어있는단일정체성이아닌다중적이고가변적이며혼종적인정체성을형성하게된다는것이다.

이를바탕으로이책에서는일반적으로디아스포라연구에서공통적으로다루는주제들-이주,적응,정체성-을재태한인(교민과체류자)의경험에적용해보는것을목적으로삼아한인들이태국으로이주하게된동기와과정,일상적삶속의생활양식과정체성,한인과현지인사이의관계와갈등양상,한인의현지사회에동화되는과정과초국적정체성에대해파악해보았다.

또한한인사회를이루는구성원을동질집단으로보는단일동족집단모델monoco-ethnicgroupmodel이아니라‘다자적동족집단모델multilateralcoethnicgroupmodel’을채택해이른바태국한인사회에서최상위층이라는주재원에서부터최하위층이라고일컫는한국인가이드까지,다양한계층집단의목소리를담아냈다.뿐만아니라지역적으로떨어져있고상대적으로역사는짧지만모범적인한인회활동모습을보여주는치앙마이한인회만이가진특수성까지살펴보았다.

시대별이주동기의변화와재태한인사회의성장
태국이주의최초세대(1930~1940년대)는제2차세계대전중일본군(징집병)또는군속으로징용되어태국혹은동남아지역에진출,정착하였거나일제강점기시대중국등에서거주하다종전후태국에이주한사람들이다.이후의미있는역사적맥락에따라서태국한인이주사는대개3개정도의시기구분-6.25전쟁직후(1950~1960년대),베트남전쟁시기(1970~1980년대),1980년대중반이후-이가능하다.

주요이주동기가되었던제2차세계대전이일본의무조건항복으로끝났으나이민1세대가귀국하지않은까닭은당시한끼제대로먹기도힘들었던고국에비해태국은‘곡물창고’라고불렸을정도로식량사정이넉넉했기때문이었다.1950~1960년대의이주동기는6.25전쟁,전후국가건설과정에서해외진출시도및해외이주법제정등을들수있다.이때부터선교사,연예인,유학생,유엔기구직원,건설회사직원,여행·호텔업자등이태국에유입되면서교민사회의인적구성이다양화되기시작했다.베트남전쟁은재태한인사회의발전에또다른계기로작용했다.우리나라가베트남전쟁에참전하고있을때태국은파월장병들의공식휴가지였기때문에이들을상대로한관광산업이호황이었다.

태국은동남아국가중한국과50년이상의수교역사를갖는3개국중하나이며(필리핀1949년,태국1958년,말레이시아1960년외교관계수립),1970년대까지만해도동남아에서교민의비율이가장높은나라로한인들이뿌리를내린안정도측면에서최고의국가이기도했다.한국건설사가19966년대최초로태국도로건설산업에진출했고한국항공사로서는처음으로대한항공이1969년에태국에취항했다.대체로1980년대중반까지(정착형이주자가다수인때)는아직태국이주자수가많지않았고이주동기로는경제적이유가중요했지만다른이유도상존했다.

1980년대중반이후재태한인사회는양적으로나질적으로큰성장을이루었다.1985년플라자합의PlazaAccord(미국의달러화강세를완화하려는목적으로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의재무장관들이맺은합의)결과와1987년민주화와노동운동이활발해지면서신발,완구,섬유등의수출형노동집약적업종들이공장운영이어려워지자대거태국과동남아등지로진출했다.이로인해한국투자진출증가등한·태경제협력관계증진에따른상사원및투자업체직원등이급증했다.이시기는태국의공업화와산업화가활발히진행되는기간으로태국경제는1987년이후급속한수출신장을바탕으로유사이래볼수없었던고도경제성장을기록했다.1987~1990년연평균두자리수이상의경제성장률증가를보였다.
여기에더해1989년한국의해외여행전면자유화에따른한국인관광객의급증으로한인들이급격히태국에유입되었다.

이때의이주로태국한인은특수한존재양태를갖게되었는데바로‘정착형이주자settler’보다는‘일시적해외거주자sojourner’가많아졌다는점이다.당시이주한한인은태국의시민권이나영주권을취득해도실익이별로없는데다,언젠가는다시돌아간다는생각을하고있었다.여기에1981년우리나라와태국간에비자면제협정이체결되면서양국가의국민은상대국에90일간의무비자체류가허용되었다.그래서잠시인근국가로출국했다다시입국하는비자런visarun을이용해체류기간을편법으로연장하며생활한것이다.이로인해재태한인사회의초국적특성이더욱심화되었다.

1997년동아시아금융위기는한국과동남아국가에큰충격을주었고동북아와동남아가서로별개가아니라유기적으로연결된하나의단위이자,나아가하나의동아시아라는지역으로묶일수있는단위라는인식이생겼다.그결과정치경제결속이빠른속도로발전했으며인적ㆍ문화교류도활발히이루어졌다.2000년대초초국가주의현상으로서‘재태한인의대규모이주현상’중눈에띄는것은한류와의관련성이었다.태국속한류는재태한인이주현상의중요한요인중하나로자리매김했다.현재태국내한류는영화·TV드라마·케이팝등은물론이고온라인게임·음식·화장품·한국어교육등전방위적으로나타나는현상으로이와관련해태국내에서사업하는한인들도나타나고있다.

태국한인의일상적삶과사회계층의분화와갈등
재태한인은대체로민족정체성을유지하기에대다수가태국사회에동화되지않았다고보아야할것이다.이들은태국어구사능력이부족하고,한국어는거의모든가정과한인사회에서일상적으로사용되며,한국식의가치관과규범도유지하며산다.한국식명절이지켜지고,조상숭배도행해진다.태국인과의결혼이드물며,한국식의이름과성을그대로사용한다.또현지사회의결사체나조직참여도도매우낮은수준에머무르고있다.

하지만태국이주의역사가오래되고이주동기역시다양해지며교민사회는여러분화의모습을보여준다.특히2000년대이후이주해온한국인들은현지사회에문화적으로적응하는과정에서모국의문화정체성을유지하면서,체류국가의새로운전통과문화도수용하는통합유형을보이고있다.

태국한인사회에서문화적응및정체성과관련해서경제력과의관계를주장하는독특한의견도찾아볼수있다.사회경제지위에따라한인들이상당히다른삶의방식을보여준다며“돈없으면정체성을유지하기가어렵다.돈있는사람은자기뿌리에대한집착이강해추석이나설에는무조건한국에들어간다.반대상황에있는돈없는사람은그러지못해서점차뿌리가없어진다”라고말하기도한다.전반적으로살펴보면,민족동일시나애착도면에서여성이남성보다,소득상위층이하위층보다,연령대가높을수록긍정률이대체로높다.

교민사회는피라미드사회와같다는주장도있다.제일밑에는가이드와현지채용한국인이있고,그위는소규모자영업자들이며,다음은개인사업자,제일위는대기업주재원들이층을이룬다.태국내최하위층은한국인가이드이다.가이드는법적지위를인정받지못하고있다.과거와달리패키지여행자체가많이줄었고,여행객들도SNS등을통해서여행정보를많이확보하기때문에수입도크게축소되었다.반면에부유층의삶은완전히다르기에이로인해한인사회에갈등이불거지기도한다.
주재원과현채사이에서도갈등은존재한다.주재원과현채는일상적인삶의적응및사회편입방식(현지화)에서상당한차이가있는데서로가상대의입장을이해하려들기보다는맞서고적대시하기때문이다.그러나주재원과현채와갈등이실제보다과장된경우가많다는시각도생겨났다.

방콕에비해라이프스타일이주가많아동질성을어느정도유지하고있는치앙마이한인사회에서는사회문화적초국가주의행태와한인정체성을강화시켜주는모범적인한인회활동이활발히이루어지고있다.

태국인과재태한인,다름을넘어공존과화합으로
1980년대이전한국의태국에대한인식은6.25전쟁당시파병을한고마운국가,국왕과불교의국가,킹스컵으로알려진국가정도였다.그러다1980년대중반이후몇차례의계기를통해인적·물적교류가빈번해지면서‘태국인은시키는일만한다’라든지‘태국인들은성실하지만창의력이부족하다’라든지,‘태국인들은느리고게을러서일을철저하게처리하지못한다’등의고정적인인식이생겼다.한국기업의태국진출이본격화되면서생산공장에고용된태국인노동자들과이후2000년대이후국내에유입한태국노동자들을통해서태국에대한인식이구체화된것이다.

반면태국인은한국인에대해양가감정을가졌다.1968년한국의1인당GNP가태국을앞서기시작하자태국인은한국을아리랑과인삼의나라,새마을운동을성공시키고빠른경제발전을한나라,86아시안게임과88올림픽,2002년월드컵을성공시킨나라라고긍정적으로인식했다.하지만양국간교류가본격화되는1980년대중후반태국인은한국인의투자초기노동집약적제조업공장에서빈번하게발생했던노사분규와태국관광초기한국인의행태로인해부정적인이미지도갖게되었다.그들은‘한국인은직설적이고목소리가크다’‘욕을잘한다’‘빨리빨리,먹고죽자등의말을잘한다’라며인정은많지만별로웃지를않아서무섭다고도한다.이이미지는양국의핵심적인역사관계를함축할뿐아니라한인과태국인이현지에서맺고있는관계의두가지다른양상을만들어낸다.

무엇보다태국인에대한부정적인인식이나평가는일방적인것일수있음을알아야한다.한인이태국인에대해가진일반이미지는선천적인유전형질에의해결정되기보다는후천적인문화배경이나환경에서만들어지는경우가많다.문화차이에대한몰이해가오해를불러일으킬수있다는것이다.미국의인류학자엠브리는태국사회를‘느슨하게구조화된사회looselystructuredsocialsystem’로규정했다.태국인은집단의식이부족하며사회의무와책임의한도내에서,사회에큰해를끼치지않는범위내에서,개인적인성향에따라활동한다는것이다.

이러한이질적인문화차이를긍정적으로이해하는한인일수록이른바현지화가많이된경우라고볼수있는데이들은사회문화적실천에상당히성공한한인들로서상대방의문화에대한진지한이해와성찰이선행되어야한다는견해를갖고있다.저자는앞으로태국경제가더욱성장하고,한인들이현지문화를객관화하여바라보는교육과훈련이이루어지면서로를바라보는시각에변화가생기고나아가한인들과현지인들간의갈등관계도해소될수있을것이라고본다.또태국문화를이해하기위해무엇보다태국어구사능력이뒤따라야한다고조언한다.체류국가의언어구사정도는곧해당국가의문화를받아들이고이해하는정도와직접적으로연관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