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월드속의자폐스펙트럼당사자,뺄셈의세계속의아바타
많은“성인자폐스펙트럼당사자”들이현실세계에선사회적응이나의사소통에장애나불편함을겪지만,컴퓨터를통한가상공간에서는비교적편하게소통할수있다.컴퓨터앞에앉는물리적조건과환경을스스로선택하거나만들수있기때문에타인과의교류에서불편함을덜느낀다.아바타를통해교류함으로써불안감이나지각이상을효과적으로통제할수있고,타인과의만남에대한현장감도느낄수있다.(이런점에서인터넷문화는‘자폐증적문화’라고할수있다.)또한메타-정보의홍수라고할수있는현실과는달리“세컨드라이프”와같은가상공간에선오가는정보의범위를한정시켜대화에집중하거나느슨하게참여할수있는기회를얻는다.불필요한정보가뇌를괴롭힐일이없는셈이다.
저자가만난많은자폐스펙트럼당사자들이들려주는내면세계는일반적인이미지와는정반대인경우가많았다.즉뇌속에선폭풍우가몰아치는듯한강렬한체험을하고,과도한정보를과잉한채로수용하는“하이퍼월드hyper-world”인것인데,이런상태에선지나치게민감하게지각하고지나치게정보를많이수용하여통합이이루어지지않거나시간이너무오래걸려대응할타이밍을통치기쉽다.하지만아바타의세계(이세계는대체로익숙하고정돈된자신의집에서구현된다)에선불안감을주는불필요한잡음을차단하고,눈에보이는세계를줄이고,타인과의실제접촉을피할수있고,안전하다는감각을유지할수있어타인과의거리를줄이고안전하게교류할수있다.가상공간은이러한“뺄셈의세계”를훌륭히제공한다.
신경다양성사회속의소수자로서의자폐스펙트럼당사자들
저자는자폐스펙트럼당사자들을“장애인”으로보지말고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사회의소수자로보아야한다고주장한다.자폐스펙트럼증상은질병이아니라뇌신경구조의다양성에의한것이며,이러한뇌신경구조의다양성을개인의개성이나다양한경향으로받아들여야한다는것이다.이런관점에서보자면자폐스펙트럼당사자는정상인과구분되는장애인이라기보다는,뇌신경구조가발달된형태가대다수와는다른“비정형발달인”이다.신경다양성에대한배려가있는사회에선자폐스펙트럼당사자-비정형발달인의자폐성향은개성일뿐이며,가상공간과같은특정한조건에선얼마든지그개성이충분히표현될수있다.
신경다양성이라는개념을받아들인다면,자폐스펙트럼은장애라기보다는태어날때부터갖고있는뇌의개성이다.뇌가정형적으로발달한사람들과함께생활할때에는어려움이많은만큼이에대한배려도필요하지만,다른한편으로는그들의개성그대로존중하고지원할이유도있는것이다.이책은,장애인으로서보호받고배려받는발달장애인이아니라사회적소수자로서존중받으며살아가는자폐스펙트럼당사자운동이가능한이유를충분히설명하고있다.저자는이러한운동을한주류사회의성소수자나사회적약자,소수민족들의소수자운동과비슷하다고보고있다.
2022년에방영된인기드라마《이상한변호사우영우》는영화《레인맨》(1988),드라마《굿닥터》(2013)등에이어한국에“자폐스펙트럼장애”에대한이해와인식의폭을넓힌계기였다.드라마나영화등에서그려진자폐스펙트럼당사자들은놀라운계산능력이나기억력등천재적인재능을가진경우가많다.하지만실제로천재로분류되는정형발달인이소수인것처럼,범상치않은암기력이나표현능력을가진자폐스펙트럼당사자들은소수에불과하다.이런드라마나영화가자폐스펙트럼에대한사회적인식을긍정적으로확산시키는데에일조하는것은사실이지만,“자폐스펙트럼은천재적능력을숨기고있다”는오해를만들어내기도한다.많은“정형발달인”들이자폐스펙트럼당사자들에게천재적인능력을기대하고,범상치않은능력이없다고하면실망하거나혐오를표현하기도한다.저자는자폐스펙트럼당사자전체의존엄성을존중하고저마다개성을지닌사회적소수자로살아가는그대로의모습을인정해야한다고말한다.
신경다양성이라는렌즈로보는인간의다채로운세계
저자는“가상공간에서만난자폐스펙트럼당사자들은놀라움으로가득찬하이퍼월드의심오한세계로나를안내해주었다.무엇보다나는그뇌속세계의깊은연못옆에잠시서있었을뿐이었는데도,아주먼곳까지여행했다는감각이있다.자폐스펙트럼당사자의느낌이사물을보는법은내가세상을느끼는방법과정말로다르다.그럼에도,내게도부분적으로는그들과닮은느낌이있음을알게되었고,내주변사람들을보는눈이달라지는경험도했다”고고백한다(310쪽).자폐스펙트럼은그자체로개성이며인류가자폐증적인뇌의작용을잃어버린다면대단히귀중한가치를잃어버리는것(133쪽)이라는자폐스펙트럼당사자활동가그랜딘의말은충분히설득력이있다.
이책은자폐스펙트럼당사자들이장애인이아니라사물을보는방식이나스타일이다른사회적소수자임을밝히고,자폐스펙트럼에대한장애와비장애의고정관념을넘어서는새로운시각을제공한다.그리하여신경다양성이라는렌즈를통해서보는인간의다채로운정신세계를그려내는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