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예술가다

사람은 모두 예술가다

$25.00
Description
과정이 실재이며 그 과정이 전체이다
명확하다. 무려 537쪽에 달하는 이 책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예술은 과정이다’이다. 왜 그런가. 저자 황봉구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예술은 생명의 힘에 의해서, 생명의 흐름을 따라서 일어나는 우주의 모든 작용과 현상을 느끼거나, 그리고 이를 이미 개체 안에 내재하고 있는 인간이 그 내면적인 움직임을 감지하면서, 안과 밖의 느낌들이 서로 상응하면서, 인간이 주체로서 이러한 느낌들을 구체적 형상으로 드러내는 모든 과정을 일컫는다. 이러한 과정이 인간에 의해 시공간에서 형상화된 결과물이 바로 예술 작품이다. 작품이란 구체적 형상을 지닌 어떤 실체를 포함하여, 예술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이다. 과거에는 예술 작품은 형상을 지닌 것만으로 국한되었다. 그러나 현재 모든 인간은 예술의 과정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과정 자체가 어느 경우에든 예술의 결과물로서 간주될 수 있다. 그 결과물은 고정되어 멈춰 있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 과정의 흐름 그 자체일 수 있다. 과정이 실재(reality)이며 그 과정(process)이 전체이다. 인간을 예술적 존재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인간은 그 자체가 예술을 본성의 하나로 거느리고 있다. 예술적인 측면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면 인간의 모든 행동과 존재 그 자체가 이미 예술이며, 그들의 움직임과 행동이 남겨 놓는 궤적이나 흔적의 결과물이 예술 작품이다.” 덧붙일 말이 없다.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황봉구의 문학을 포함한 예술론은 방대하나 단 하나를 말하고 있으며, 단 하나를 말하고 있으나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는 ‘자연(自然)’이다. 자연은 “그냥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자연은 개념적 실재다.” “자연은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궁극적 경계에 자리한 무형의 개념으로서 우주 전체를 조망하며 동시에 내재적으로 포괄하는 그 무엇이다.” 자연은 “자기 이외의 원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어떤 절대자를 가리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원인 자체를 설정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강하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노자의 말이 이를 보여 준다.” “자연이 빚어내는 산과 들 그리고 바다, 이들의 천변만화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다. 개념의 영역을 한껏 좁혀 인위적인 결과물들만으로 한정한다 하더라도 예술 작품의 범위는 그야말로 광대하다. 그러한 작품들이 대상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고 심지어는 상상 속으로도 침투하여 예술 작품은 이제 인간이 지닌 본원적인 기능에 의해 산출된 사물로서, 그리고 생명체로서 지구 생활 세계의 어느 곳이든 널려 있다.”
그래서 이렇게 적는 일은 정당하다. “예술이 넘쳐 난다. 예술이 곳곳에 시내처럼, 개울처럼, 강물처럼 흐른다. 예술의 구름이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인류가 문화를 창출하고 생활 세계를 가득 메우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예술은 인간의 손에 창출되어 거대한 바다를 형성하고 있다. 예술은 바다이며 우주이다. 그 세계의 영역은 무한대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 깊이는 측정할 수 없다. 그것은 아직도 형성의 과정에 있으며, 예술은 과정 그 자체로 흐르고 있다. 예술은 그 과정의 흐름에서 인간에게 거꾸로 잉여가치를 부가하며 인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삶이 풍성하다 함은 그 삶이 끊임없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으며 그 모습이 영원히 빛나는 태양처럼 밝게 빛을 발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가는 한마디로 일반인들에게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특정한 부류를 지칭하지 않는다. 어느 사람이든 다른 사람에게 상대적일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예술가도 사람이며 그렇게 불리지 않는 사람도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은 모두 성체(性體)를 지니는데, 그것은 천연(天然)이며 자연(自然)을 본질로 하고 있음에 공통성을 지닌다. 사람들에게 어떤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예술을 빌미로 사람을 각기 상대적으로 구별함은 예술의 본질에 어긋난다. 예술은 바로 인간이 타고나는 천연의 것이다. 그것은 자연으로서 절로 그러함이다.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다. 모든 사람이 바로 예술가다.” 통쾌하고 장려하다. “‘어슴푸레 멍하니 헤아릴 수 없(惚恍)’는 것이 ‘혼명(混溟)’에서 솟아나 하이데거의 표현처럼 ‘열어 밝혀지며(aufschliessen)’ 그 생김새를 드러낸다.”
저자

황봉구

1948년경기도장단에서태어났다.
시집〈새끼붕어가죽은어느추운날〉〈생선가게를위한두개의변주〉〈물어뜯을수도없는숨소리〉〈넘나드는사잇길에서〉,짧은산문집〈당신은하늘에소리를지르고싶다〉,여행기〈아름다운중국을찾아서〉〈명나라뒷골목60일간헤매기〉,음악산문집〈태초에음악이있었다〉〈소리의늪〉,회화산문집〈그림의숲〉,예술철학에세이〈생명의정신과예술-제1권정신에관하여〉〈생명의정신과예술-제2권생명에관하여〉〈생명의정신과예술-제3권예술에관하여〉,산문집〈바람의그림자〉,예술비평집〈사람은모두예술가다〉를썼다.

목차

005책머리에

009사람은모두예술가다

079열린예술과닫힌예술

125예술작품은어떻게생겼을까-생김새,패턴과문리(文理)
1.들어가며
2.느낌과상(象)
3.생김새,짜임새그리고모양새
4.패턴
5.문리(文理)
6.생김새,패턴,문리

402상(象)과도추(道樞)-언어와사유방식,그리고시어(詩語)
1.상(象)과언어
2.원형이정(元亨利貞)과언어
3.‘-적(的)’
4.도추(道樞)
5.언어와사유방식-들뢰즈의내재성
6.언어로서의시어(詩語)

455예술평론가에대하여

출판사 서평

[책속으로이어서]
pp.400-401.
우주는하나의생김새다.그것은무수한생김새들을거느린다.우주의분신이라할수있다.분신이되그것은하나의생명체로서우주와동격이다.본원이고으뜸인본생은하나다.본생은개념적실재요,실체다.그것은생명이다.하나인생명이다.모든생김새들은이에서비롯된다.우주현상에는생명을지닌구체적형상인생명체들이넘쳐난다.예술은생명의흐름이며그것이매듭지어져드러난것이예술작품이다.작품은하나의생김새다.그생김새는모양새와짜임새를거느린다.생김새는본체요,모양새와짜임새는본질이거나속성이다.굳이말해서모양새는형식에비견되고짜임새는내용에견줄수있다.하지만모양새는고정된것이아니라언제나가변적이다.그것은흐른다.우리가작품을흐름의한곳에일시적으로매듭지어진것이라고말하는이유다.짜임새는엄격히말해서내용이아니다.짜임새는‘-결’,또는‘-새’다.위에서언급한시김새,추임새도모두짜임새다.내용은형식을이루는바탕이라하지만하나의대상이내용과형식으로양분되는것에는모순이있다.인간을정신과육체로나누는것과마찬가지다.모양새와짜임새그리고생김새는이미이모든것을함축하고있다.모양새와짜임새는하나다.짜임새가있어야모양새가가능하다.모양새는다른측면에서짜임새를보여준다.이들이어떤선후관계를갖는다는것이아니라그것들은병행해서공존한다.이는필연이다.분리가아니라본디하나이기때문이다.그하나는생김새다.

pp.436-437.
언어는기본적으로차이를읽는다.그차이는도가본질적으로지니고있는비동일성의차이가아니라,도가드러내는우주현상의사물들이보여주는현실적인차이다.장자가이야기하는제일(齊一)의사물들이우리에게보여주는이것저것등의차이다.제일의의미는도로서,또는‘하나’로서모든사물은하나라는이야기다.그도는자연이므로(道法自然),모든사물은그자체로원인을가지며그드러나는모습은천양각색으로서로다르다.바로이런이유로언어는구분을한다.언어가비동일성의만물과현상을일반화하는것은어떤인식을필요로한다.언어의발전은한편으로미세화,분석과구별을요구한다.그것은필연이다.언어가지니는어휘가다양한것은그만큼분석을통해차이가구별되었기때문이다.언어는언제나일정하지가않다.언어의외양은끊임없이변하며,그것들이실어나르는의미도또한삭감이나제거그리고덧붙임이나다층화의우여곡절을겪는다.그것은살아움직인다.불법(佛法)에서의제행무상(諸行無常)은언어에도적용된다.언어의이러한특성은도의속성에서비롯된다.사물이나현상은도를따라제일하지만,다시말해서궁극적인도와마찬가지로똑같은‘하나’이지만,그것의현실적인드러남은일정하지않다.도는언제나흐르기때문이며그움직임의방향은정해지지않았음이다.언어는도의쓰임으로써하나의덕이라할수있다.이때덕의의미는본질에따르는속성이라할수있다.서구의사유가언어를통해,진리나실체를인식하려하지만언제나난관에부딪히는것은바로사유의전개를뒷받침하는언어의본질이이미문제점을지니고있기때문이다.

pp.451-452.
시상은열려있다.생명의빛으로충만하여환하다.시인은하나의개체인생명체로이를전일적으로체화(體化)하고있다.시상과시인은변화하며움직이고있다.거기에는지정된형식이나체계가없다.뿌리도없다.본받아야할어떤규범이나형식도선행하지않는다.그것의본질은그냥느낌이다.적연부동하다가일어나는어떤느낌이다.그것은혼돈이라는우주의시원에서부터무한한양태로발생하고있는영속적인운동이다.그것은원초적힘을지닌다.바로신(神)과정(精)이기도하다.인간의경험적느낌은그것에서부터일부만을취할뿐이다.더구나느낌이순수성을상실한언어로표현될때그것은한계를지닌다.느낌의표현은극히일부만을비출뿐이다.우리가부딪히며살아가는현실세계에서시는이러한모호함을먹고산다.시는그자체가상이다.시를만날때,우리는시어들이가리고있는,깊고은밀하게덮여있는어떤세계속으로들어간다.우리는그것을시경(詩境)이라고부른다.시경속으로걸어들어가환한모습으로그를반기는시를전체로받아들이면서시인은신(神)을느낀다.시인은이를드러내고자한다.그러한작업이바로신명(神明)이다.신이나서이를드러냄이바로신명이다.시짓기는바로이러한신명에다름이아니다.시인은신명이날때,시를짓는다.

pp.469-470.
진정한평론은그자체로예술이어야한다.예술은생명의흐름을표현한다.낳고낳음을이어가는생명의흐름은언제나뜨겁고강렬하다.그것은불꽃으로타오르며빛을뿜는다.그불꽃은무한한양태를갖는다.하나의불꽃이아니라헤아릴수없을만큼의불꽃들이있다.예술가가그중의하나를발견하고사람들에게보여주는것이바로예술가가작품을창조해내는과정이다.이때의발견은주체의식을지닌작가가불꽃을대상으로바라보는것을의미하지않는다.그불꽃에는객체와주체가없다.작가가불꽃이된다.불꽃이된작가는그때생명처럼그냥열려있다.이열려있는불꽃작가가인간의현실세계에서어떻게드러나는것인가는그어떤것도규정할수없다.그냥‘되기’일뿐이다.춤이나음악그리고회화나문학은어디까지나사후에임의적으로선택되어이루어지는모습일뿐이다.‘되기’능력과감응성이유달리뛰어난평론가역시이러한불꽃을동시에인식하고,그자신의마음에내재적으로타오르고있는불꽃과연결하여자신만의생생한평론을만든다.이것이평론가의진정한임무다.이러한작업은어느특정예술작품을빗대어평론이라는그자신의새로운예술작품을창출하는일이기도하다.

p.499.
예술은정신의작용이이루어가는과정이며,예술작품은그결과물이다.평론가는이명제를분명히인식해야한다.우리는이글에서평론과평론가는무엇인가를해석하고있다.그해석의기준으로이념이아닌본생의정신을거론하고있다.정신은생명의힘과그움직임이다.예술작품의평가의가장근원적인기준으로생명을제시하고있음이다.예술은무엇보다신명(神明)을표출하여야함이다.신명은생명의움직임이밝게드러나고있음을의미한다.예술작품에있어가치평가의기준은한작품에생명의기운,신명또는생명의약동이드러나는강도의크기에달려있다.

pp.518-519.
평론가는예술가이다.평론은또하나의예술작품이다.평론가는예술세계에서무수한예술작품들을만난다.그작품을빚어낸작가들은고인도있지만현재를살아가는사람들도있다.평론가는이들모두와대면한다.망자와산자를모두맞이함이다.이때평론가는바로무당이된다.무당이지만세습무가아니라강신무(降神巫)가된다.진정한평론가는세습무처럼가계를이어굿의형식에정통한것으로그치지않는다.신내림과신들림을통해무(巫)가되어야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