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어막혔던 입에서

틀어막혔던 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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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틀어막혔던 입에서』의 제1부는 ‘문학의 종언 이후’는 활기를 잃어버린 문단에서 시인들이 느끼는 위기의식과 불안감, 그리고 그 속에서 방향을 타개해 보려는 노력들에 대해 이야기, 제2부는 ‘가면의 고백’은 강남역 사건 이후 스스로를 여성 평론가로 정체화하면서 쓴 글, 제3부 ‘고통의 좌표들’은 문학은 고통에 대해서 증언한다는 명제에 충실한 작품들을 쓴 시인들에게 공감과 경의를 표하며 쓴 글, 제4부 ‘시가 되지 못한 것들의 시’는 최근의 문학이 어떻게 형질 변환되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시론적 성격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안지영

서울대학교에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
2013년〈문화일보〉신춘문예를통해문학평론가로등단했다.
〈틀어막혔던입에서〉〈천사의허무주의〉를썼고,〈부흥문화론:일본적창조의계보〉를함께옮겼다.
현재청주대학교에서조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005책머리에인간에대한예의

제1부문학의종언이후
019뒤늦게찾아온사춘기-2000년대시와근대문학의종언
036쓰레기를사랑하는마음으로-김승일의시에게
049취향의헤테로토피아-황인찬의〈희지의세계〉읽기
065진정성을대리보충하기-안미옥시를경유하는질문들
083젊은예술가의초상-배수연?문보영?장수진의시와‘예술의죽음’에대하여

제2부가면의고백
1072층과3층사이에서
117가면의고백-‘미래파’의기원으로여성시다시읽기
126퀴어비평은어떻게‘클리셰’에서벗어날수있는가-황병승과김현의시
140종언,종말그리고미러링
152틀어막혔던입에서-임승유의〈아이를낳았지나갖고는부족할까봐〉다시읽기

제3부고통의좌표들
167카메라옵스큐라,그리고고독의냄새들-이현승?송재학?김수복의시
176역원근법세계의풍요로움-홍일표론
188쓸쓸한,고통의신비-유안진?최승자의시
198그가저녁에이야기하는것들-고영민의시
208인간이라는악몽에대한반성-허수경론
218참을수없는‘돼지’의불편함-김혜순의〈피어라돼지〉
226여성,새하다-김혜순의〈날개환상통〉읽기

제4부시가되지못한것들의시
243시가당신을쓴다
249눈먼사람들
258파편화된신체와완성되는전율
266시적언어와내파되는상징
276‘슬픔의근원’을횡단하기-이수명론

출판사 서평

다시읽고,쓰고,말할것들이너무나도많다.이제시작이다.

“페미니즘은비-정치의영역에있던억압들을정치적이고미학적인방식으로사유하게만든다.사적인것과공적인것의경계선을의문시하며그사이에서벌어지는투쟁의장을가시화함으로써말이다.아무리전위적인정치나미학일지라도그것이삶을변화시키지않는다면무의미한공회전에그칠뿐이다.그러니우리의삶이근본적인질문과계속해서부딪혀나아갈수있도록,그리하여낡고식상한반격에허물어져버리지않도록날선고민은계속되어야한다.예술이계몽의역할을자임하던시대는한참전에끝났다.하지만예술의종언은새로운싸움이시작될것임을예고하는초대장이기도하다.우리앞에도래한페미니즘은기존의틀에서배제되었던몫없는자들을그싸움터에불러모으고있다.이제정치와미학의새로운연대를고민해야한다.”(「2층과3층사이에서」)
“제1부‘문학의종언이후’는활기를잃어버린문단에서시인들이느끼는위기의식과불안감,그리고그속에서방향을타개해보려는노력들에대해이야기했다.사춘기적반항,찌질한‘병맛’감성,마니아혹은오타쿠적인것으로평가절하되는것들이야말로망가져버린이세계에서망해가는주체들이‘다른’세계를모색하고있는증거라는점을살펴보았다.진보에대한믿음이사라져버린시대에‘실존하는기쁨’(황인찬)을지켜내기위해서는혐오와불안을넘어미지의취향을향해한발짝나아가는태도가필요하다.
제2부‘가면의고백’은강남역사건이후스스로를여성평론가로정체화하면서쓴글들이다.여성주의적시각으로문학텍스트를독해한다는것이‘정치적올바름(politicalcorrectness)’에구속되거나‘정체성정치’의한계에갇혀남성에대한혐오와문학에대한편견을표출하는행위가전혀아니라는사실을확인했다.페미니즘리부트이후여성주의적이슈를무분별하게,소모적으로이용하는태도를경계하면서페미니즘을통해정치와미학의새로운연대를고민하였다.우리가젠더이분법의해체를도모하는텍스트에대한지지를표명해야하는근거를밝히는한편으로,피해/가해이분법으로해결될수없는폭력의구조적측면을직시하고자했다.‘틀어막혔던입에서’라는책의제목은제2부에실린글에서가져왔다.
제3부‘고통의좌표들’은문학은고통에대해서증언한다는명제에충실한작품들을쓴시인들에게공감과경의를표하며쓴글들이다.한국문단을든든하게떠받치고있는시인들이굳어진관념과낡은관습을갱신하기위해치열하게고투하고있다는사실이경이로웠다.2018년세상을떠난허수경시인의시를비롯해서,고독과죽음의쓸쓸함에매료되어이들의시를읽어내려가다보면성속(聖俗)이교차하는일상의순간들과조우할수있었다.이들문학의원동력은세상과불화하면서도냉소적나르시시즘으로쉽게모순을해소해버리지않는다는데있다.세계를깊이사랑하기에가능한도저한허무주의는내가오랫동안안고가야할숙제이기도하다.
제4부‘시가되지못한것들의시’는최근의문학이어떻게형질변환되어가고있는지에대한생각을정리한시론적성격의글을모았다.2000년대이후서정시의문법을갱신해야한다는당위와마침내그당위를성취했다는열광이한국시단을지배했다는것은알려진바와같다.나는과연이러한진단이적절한것인지를성찰하며‘시적인것’의의미를재맥락화해보았다.이를위해황지우나김수영의시론을다시읽으며‘시적인것’이이동해온궤적을추적하고,무엇보다시쓰기의수행성에강조점을두었다.시가정치적일수있다면시가어떠한내용을담고있는지의여부가아니라그시를쓰는자의신체에어떠한변용이일어나는지를논해야한다는점을이야기했다.”(「책머리에-인간에대한예의」)
안지영평론가는서울대학교에서문학박사학위를받았으며,2013년〈문화일보〉신춘문예를통해문학평론가로등단했다.〈천사의허무주의〉를썼고,〈부흥문화론:일본적창조의계보〉를함께옮겼다.현재청주대학교에서조교수로재직중이다.〈틀어막혔던입에서〉는안지영평론가의첫번째평론집이다.

[책머리에]
이렇게참담한마음으로서문을시작하게될줄은생각하지못했다.문단에서의경력이쌓일수록무력감과열패감만늘어가는것같다.2015년표절사태와2016년10월#문단_내_성폭력해시태그운동,2018년2월미투운동을통해한국문학계에도일정정도자정의계기가마련되었으리라예상한것은오판이었던모양이다.2020년2월,이상문학상의불합리한저작권계약관행에문제를제기한윤이형작가가절필을선언하고,7월에는당사자의동의를받지않은창작으로문제가된김봉곤작가의「그런생활」과해당작품을출간한문학동네와창비의부적절한대응이논란을일으켰다.이렇게이슈화된일련의사태들이아니더라도나는문단내적폐가청산되지못한현실을순간순간체감하였다.성폭력가해자를옹호하고지지하는세력들이의외로적지않았고,문학?출판계의잘못된‘관행’역시쉽게바뀌지않았다.
이때문에비평활동을하는내내나도모르게내가비판하는비윤리적구조에연루되어버리는건아닌가하는공포감과싸워야했다.2014년등단할당시나는세명의시인을묶어서주제론을발표했는데,그중의한시인이2016년성폭행을시도했다는폭로이후문단을떠났다.이시인뿐만아니라너무나도많은남성작가,평론가들의이름이언론과SNS에오르내렸고,문단에서는피해자가전면에나서지않은이들가운데도곤란할사람들이있을것이라는소문이무성했다.특정인의문제가아니라문단전반의반성과변화가필요한것이분명해보였다.하지만문제를제기한피해자및피해자와연대한이들이문학을버리고떠난이후에도가해자들은여전히문단근처를배회하고있다.가해자를옹호하며2차가해를하거나슬슬주변의눈치를보며가해자를다시문단에불러내려는이들로인해잡음이끊이질않는다.시효만료된문학을붙들고과거로역행하려는세력은공고하고,무엇보다어디까지를적으로돌려야하는지알수없는상황에지쳐간다.그모든연대와선언과투쟁에도불구하고한국문단의백래시(backlash)는현재진행형이다.

2020년7월은공교롭게도한국사회전반의분위기역시한국문학의그것과별반다르지않음을보여준시기였다.7월6일아동성착취물사이트‘웰컴투비디오’운영자손정우의미국송환이불허된날은안희정전충남도지사모친상빈소에정치인들의근조화환이늘어선풍경을마주해야했던날이기도하였다.이날만해도정신을온전히붙들고있기가어려웠는데,고작삼일후에박원순전서울시장이성추행피소후죽음을택했다.이후무슨일이벌어졌는지는모두가아는사실이다.리트머스시험지라도되는양이사태에대한반응을통해여성문제에대해시대착오적이고그릇된태도를지닌일군의세력을확인할수있었다.고인이소속된민주당의대표는성추행의혹대응여부를묻는데‘예의’가아니라며도리어화를냈고,50만명을훌쩍넘긴청와대청원동의와코로나19전염병사태에도불구하고강행된대규모의추모의례는죽은후에도지속되는위력을실감케했다.성범죄에대한미온적인처벌과가해자감싸기가반복되면서안전하고인간답게살아갈최소한의권리조차부정당했다는모욕감과분노,절망감은한국여성의공통감각이되었다.
이나라는여성들이지르는비명이들리지않는모양이다.2016년강남역살인사건과2018년미투운동에도불구하고한국사회에서민주주의는지극히선별적이고차별적으로작동한다.‘K방역’에대한외신의보도에는우쭐하면서이땅에서살아가는여성들이‘코로나’가아니라‘성폭력’팬데믹을조심해야할판이라고비판하는목소리에는귀기울이지않는다.1980년대민주화투쟁의역사에서여성의존재가삭제된것과마찬가지로,박근혜정권을탄핵하고‘촛불민심’을기반으로만들어졌다고자임하는문재인정부도여성에게‘인간에대한예의’를갖추지않는것같다.현정권을주도하고있는이들이1980년대민주화투쟁의기억을‘훈장’처럼달고있는장본인들이라는점을떠올려보면,어째서이런일이벌어지고있는지납득이되기도한다.
소위586이라불리는1960년대생엘리트남성들은한국사회에서도덕적헤게모니를장악하고있을뿐더러,한국자본주의가고도화되는과정에서가장많은수혜를입고“학력과전문지식,직업,경제적지위가맞물린테크노크라트에가까운집단을대규모로창출”한상태다.이들은자신들이가진계층지위를자식들에게세습하는데부끄러움이없다는점에서‘불평등한민주주의’라는불가능한이상향을지향하고있다.또한이들은1980년대적진정성은진정성대로폐기처분하지않으면서성공과치부(致富)를추구하는이중적면모를보인다.김은하는이들이“공적인자기와사적인자기의괴리를좁힐수없어위장과가면쓰기에능하거나,속으로는깊은분열을겪는병리적인간의계보에속한다”고지적한다.특히“‘성’은1980년대라는이념의시대가추방했던욕망혹은억압된무의식이귀환한증거”로,이들세대가여성혹은여성성을신성한대의를위협할수있는세속적욕망으로분류하면서감시혹은억압의대상으로삼아왔던까닭을설명해준다.

분열적양상을띠는진정성레짐이한국문학을지탱해온주요기제였다는사실은불행한진실이다.김홍중에따르면,1980년대적진정성은“개인의충분한성찰에근거한사회운동이라기보다는역사적책무나책임의식이선행하면서개인들을도덕적으로동원하는양상을”띠었고,이에따라권위주의적나르시시즘에서벗어나지못한주체들을대량으로양산해냈다.이는문학사를통해확인할수있듯비단1980년대에한정된문제는아니다.문학사를리얼리즘과모더니즘의이분법으로구분해온오래된‘관행’은다분히도덕적으로선한‘우리’와그렇지않은‘저들’로이분화하여후자의잘못을지적하는식으로귀결시켜온유구한이분법적세계관에근거한다.마찬가지로1990년대문학사를‘내면으로의침잠’이두드러진‘여성문학’이융성한시기라는점을강조하는이들중에는여성을‘비정치적주체’로단정지으며‘여성문학’을비하하려는의도를은연중에표명하기도한다.
우리가이런유의문학(사)과작별할수있게된것은주지하듯‘페미니즘리부트’의영향덕분이다.2010년대중반이후여성주의적시각에서문학사를탈구축하는기획들이활발하게진행되면서한쪽으로지나치게기울었던문학의정치성에대한시각을교정할수있게되었다(이책역시이들기획에엄청난빚을지고있다).근대문학의종언을외쳤던이들은이런식으로한국문학(사)의부흥이가능하리라고는상상조차하지못했을것이다.가령최근에읽은최은영의「몫」(2018)은배제되었던여성들의투쟁의역사를불러오면서여성에대한폭력이폭력으로인식되지도못했던시절의지난한싸움을그려내고있다.1996년고대생들의이대난입?난동사건,교수성희롱문제,가정폭력,기지촌여성문제등여성에대한폭력이만연한현실을문제삼으며해결을모색한정치적주체는여성이었다.2010년대한국문학의가장큰성취는주변화되었던주체들의목소리를복원시킨것과더불어신성시되었던문학-문학성에의문을품고재현의윤리를재정립하기위한논의가시작되었다는데있다.그런점에서“소설의가치가한사람의삶보다우선한다고생각하지않는다”는김초엽소설가의말은한국문학이지향해야할가치가무엇인지를되새기게해준다.
#문단_내_성폭력해시태그운동에서확인되듯,피해자와연대하며‘문학’이라는이름으로자행된폭력에저항하고자한이들은‘가만히있으라’는강요를당하던이들이었다.2016년발표된고양예고문예창작과졸업생연대‘탈선’의성명서에는이런문장이등장한다.“고발자와피해자들의목소리를앗아간‘문학’은어디에있는가.가해지목인이자신이저지른폭력을엮어시집을출간할때,가해지목인의든든한조력자가된‘문학’은어디에있는가.문학이라는이름,그것이오로지가해지목인이고발자와피해자들을성적착취하는수단이자명목으로다루어졌다.누가문학을자기목소리의발현이라고말할수있단말인가.문학이라는이름으로가해지목인의목소리는증폭되었고,우리의목소리는침잠했다.이에우리는분노한다.왜우리는문학성을정의받아야하는가.”이들의용기있는고발덕에우리는‘문학이라는이름으로’자행되었던폭력을직시하고폭력을용인?은폐?재생산하는데기여했던‘문학성’과단절할수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