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나, 밀레나, 황홀한(리커버)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리커버)

$15.00
Description
더 특별하게 다시 찾아온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배수아 소설집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이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독자들을 찾아왔다. 새로 선보이는 개정증보판은 초판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과 〈영국식 뒷마당〉에 더해 중편 분량의 〈부엉이에게 울음을〉을 추가하였다. 또한 등단 초기부터 작가를 지켜본 신수정 평론가의 해설을 덧붙여 작품에 다가가는 길을 안내했다. 소설집의 세 작품은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단편들과 느슨하고 자유로운 모종의 유대를 형성한다. 하나인 듯 여럿일 수밖에 없는 이들 작품의 사유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우리의 실존에 숨겨져 있는 ‘느닷없는 삶의 한순간’과 만나게 된다. 한순간 삶의 비밀을 꿰뚫어 보게 만드는 어떤 시간의 도래.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을 읽는 작업은 바로 그 시간 속으로 침잠하는 경험이다.
또한 이번 개정증보판은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 [다시, 이 책] 주제전에 맞추어 새로운 판형으로 표지도 새로 하였다. 디자인은 ‘2021년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권’ 선정 도서를 디자인하기도 한 이기준 디자이너가 맡았다. 디자이너는 글에 등장하는 배경, 물건, 개념 등을 그 구체성을 지우고 책의 물리적 요소로 치환해 켜켜로 포개거나 텅 비우는 식의 시각적 문법으로 번역했다. 번역의 결과는 흑지·격자 무늬 푸른 색지·크라프트지·트레이싱지의 네 겹의 표지와 소설과 소설 사이의 빈 페이지들, 제목도 지은이도 없는 앞표지로 파격적으로 표현되었다.
추가된 소설과 본격적인 작품 해설 그리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이 개정증보판은 초판보다 더욱더 황홀하게 독자들을 매혹할 것이다.
저자

배수아

소설가,번역가.《철수》《붉은손클럽》《동물원킨트》《이바나》《일요일스키야키식당》《당나귀들》《독학자》《훌》《에세이스트의책상》《북쪽거실》《올빼미의없음》《서울의낮은언덕들》《알려지지않은밤과하루》《밀레나,밀레나,황홀한》《뱀과물》《멀리있다우루는늦을것이다》등을썼고,사데크헤다야트의《눈먼부엉이》,페르난두페소아의《불안의서》,프란츠카프카의《꿈》,W.G.제발트의《현기증.감정들》《자연을따라.기초시》,로베르트발저의《산책자》,클라리시리스펙토르의《달걀과닭》《G.H.에따른수난》,아글라야페터라니의《아이는왜폴렌타속에서끓는가》등을옮겼다.

목차

밀레나,밀레나,황홀한5
영국식뒷마당69
부엉이에게울음을113

해설∥신수정(문학평론가,명지대교수)
하나의트로이안에또다른트로이가……
-여성(들)의이야기와마트료시카의시간205

출판사 서평

황홀한매혹에대하여
거의등단초기부터배수아의소설을특징짓는가장중요한키워드는‘이미지에대한매혹’이나‘자유로운사유의흐름’이다.고전적인의미에서의소설과거리를두려는그녀만의‘뱀과화염’의장치는그녀를특징짓는유니크한인장이되었다.
현실을넘어사유의경계를확장하는꿈의이미지나목소리의현전은이소설집에서도여전히두드러진다.그런데세편으로구성된단출한구성의이작은소설집은,기나긴이야기의사슬을뚫고나오는‘시적인순간’의‘황홀한매혹’이유독돋보인다.무어라고규정할수없는삶의우연과존재의중첩속에서어느순간생의비의를드러내는에피파니(epiphany)의순간이명멸하고있다.우리는이시간의마법을통해다양하게‘콜라주’된서로다른‘여성’의‘목소리’를듣는다.이목소리들은이제까지그러하리라고간주되어온여성에관한단일하고동질적인이미지를넘어살아움직이는다수의여성‘들’의실존을감각적으로복원해낸다.이소설집이선보이는시적순간의황홀은이복원의기쁨과무관하지않다.

밀레나,경희,그리고나
이렇게복원된살아움직이는다수의여성‘들’의실존은이작은소설집의‘느슨한연대’를형성한다.이소설집은독특한플롯을취하고있다.이는“하나의트로이안에또다른트로이가있고그안에는더이전의트로이가묻혀있으며이전의트로이안에는그보다더오랜옛날의트로이폐허가잠자고있”(118쪽)는플롯이다.마치커다란인형안에더작은또다른인형이숨어있는러시아인형마트료시카같은.
“떠날수있다면,나는황홀할거예요.여기가만히있으면내밤이영영끝나지않아요.나를데려가주신다면,나는황홀할거예요.”(42쪽)라고말하는〈밀레나,밀레나,황홀한〉의‘안경을쓴여비서’와,금지와혼자의상징인〈영국식뒷마당〉의‘경희’그리고열세살소녀인화자는서로겹쳐있다.가령경희는화자인‘나’에게다음과같은이야기를들려준다.“내생각에,그래서나는마침내영국식뒷마당으로가는길을찾아낸거야.”(71쪽)그리고결정적인말이뒤따른다.“내생각에,너도그렇게될거야.”(91쪽)경희와‘나’는구별되지않는다.마침내‘나’는경희가된다.경희가곧‘나’다.

미친여자의독백같은······돌림노래
〈밀레나,밀레나,황홀한〉과〈영국식뒷마당〉을관통하는마트료시카같은여성들의시간은뒤섞이고중첩된시간이다.여러차원의시간대에동시에거주하며미래에서과거를보고과거에서미래를내다보는자를우리는‘셔먼’이라고부른다.〈영국식뒷마당〉의화자‘나’에게던져진경희의예언은카산드라의주술에버금간다.그러나선조적인일상의시간에비추어볼때그녀의예언은‘미친여자’의독백과구별되지않는다.경희의목소리는이해하기힘들고무의미한소리에가깝다.그러나바로그결과이목소리는음악이되어신비한힘을불어넣을수있는능력을지니게된다.이소설들에는소리의향연이펼쳐진다.공기중에부유하는기타소리와밀려왔다밀려가는수백수천의작은종소리는‘여성’(들)의목소리에대한메타포이다.그것은모든주술적음악이그러하듯돌림노래의후렴구처럼영원히되돌아왔다가또되돌아나가며일정한리듬을반복한다.오디세우스의귀향을방해하는사이렌의노래가그러했던것처럼이반복적인돌림노래는매혹의근원으로작용한다.이매혹은불현듯주체를찾아와그또는그녀를사로잡고놓아주지않는다.
에피파니가찾아오는것은바로그순간이다.〈밀레나,밀레나,황홀한〉의오디세우스험윤은젊은여성의목소리로화한사이렌의절박한호소를물리치고집으로귀환하는길에복도가운데놓인금이간거울을마주하는순간어떤각성에직면한다.“삶에는일순간이있다.”(49쪽)〈영국식뒷마당〉의에피파니는다분히환멸적인데가있다.백지의노트를읽는경희의목소리에절대적인매혹을느끼던‘나’는불현듯그녀가“오직자신이읽고있는그이야기로만존재한다는것”(93쪽)을깨닫는다.그사실을알아차리자마자“나는울고싶었다.”(95쪽)‘나’는“어쩌면경희는바보일지도모른다”(95쪽)고각성한다.이각성은쓰라릴수밖에없다.그‘바보’가바로자신이될수도있다는예언적명명때문에.내생각에,너도그렇게될거야······.돌림노래처럼떠도는셔먼의목소리.여성적마트료시카의끝은완전한무,영원한폐허이다.그것은여성이처한실존적상황과관련한가장뼈아픈깨달음이다.

다락방의‘홀로’글쓰는여자
그러나이쓰라린각성은글쓰는여자의출발점일수있다.〈부엉이에게울음을〉에서두번째이혼을결정한스물아홉살의‘나’는막연하게작가가되면어떨까하는마음을먹는다.두사건,곧‘이혼’과‘작가가되는것’은얼핏보면아무런연관도없어보인다.화자역시두사건을‘막연하게’라는부사로연결하고있을뿐이다.그러나두사건이나란히병치되는순간,그들사이에는모종의인과성이개입할가능성이커진다.
이소설의화자는“다락방의먼지에서홀로자라난아이였다.”(116쪽)화자에게는산더미같은책이쌓여있던‘다락방의시간’이있다.학교를그만두고집을떠난이후단한권의책도소유하거나읽지않으며유년시절의‘다락방’을잊고살던화자는우연한일로책들의요새라고할만한남편의작업실을방문한뒤자신의다락방을기억해낸다.그리고다락방은그냥거기그대로있었을뿐사라진것이아니라는사실을확인한다.다만자신이그곳을떠나왔을뿐임을깨닫게된것이다.이각성은“무한한현기증”(157쪽)으로이어진다.이현기증은,‘나’를강타하는다음과같은자각,요컨대“정말이상한일이기는하지만,작가가되어야겠다는생각.어쩌면나는작가가될지도모른다는생각.위대한작가나대단한작품을써서이름이알려지는그런작가가아니라,오랫동안자신의회귀를기다려온다락방을가졌기때문에결국그곳에서홀로글을쓸수밖에없는작가”(157~158쪽)가될지도모른다는생각이초래하는강렬한존재의전율같은것이다.
문제는이‘에피파니’가남편에대한상징적처벌과자발적고립으로이어지는지점이다.남편은화자의다락방의시간을알지못한다.다락방의시간은‘나’를규정하는가장근본적인경험인만큼그사실을알지못한다면‘나’의존재자체를오인할가능성도없지않다.이부부의파탄과이혼은다락방의아이였던자신의과거를기억해내고오랜시간억압해온작가가되고자하는욕망을누설한‘나’의선언과직접적인연관이있다.

배수아는제각기다른듯서로닮은세편의소설들을통해“하나의트로이안에또다른트로이가있고그안에는더이전의트로이가묻혀있으며이전의트로이안에는그보다더오랜옛날의트로이폐허가잠자고있”(118쪽)는여성의이야기에귀를기울이고“점점더과거인것을향해,점점더어떤특정한시간을향해점점더빠르게수렴됨을느끼는”(118쪽)여성시간탐험가의원형을보여준다.《밀레나,밀레나,황홀한》은‘트로이로가는흐릿한지도’이다.

리커버디자인에대하여-디자이너이기준의말
책이단지글을담는그릇이아니라시각적번역물이되길바랐다.표지에는글에등장하는배경,물건,개념등을끌어와구체성을지우고책의물리적요소로치환해켜켜로포갰다.이를테면기억,환영,그림자,다락방,흙,무덤등을흑지로,욕조,타일,책,편지,아파트먼트콤플렉스,이끼,풀,정원,호수,책들의바다등을격자무늬가쳐진푸른색지로,낡은책더미를크라프트지로,스크린,거울,이쪽과저쪽의경계,문,다락방의먼지,황홀경등을트레이싱지로치환하는것이다.글사이의빈공간은다른세계로넘어가는완충지대이자편지지,불명확한시간,죽은꿈들,읽히지않은페이지,부엉이의울음,일어나지않은사건,이해할수없는꿈이다.하지만디자이너의설명은한가지예시일뿐이니독자마다자기방식으로디자인을읽었으면좋겠다.여러겹의문을,바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