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해피엔딩이 필요하다
세상 속에서 시인 김상혁은 안심하지 못한다. 세상 속에서 당신이 반드시 내 옆에 있어야 하는 필연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의 이유가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라면? 이야기 속에서는 우연이란 정해진 결말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일 뿐이다. 더욱이 해피엔딩 이야기는 가장 끔찍한 우연마저 여지없는 다행으로 역전시킨다. 이야기는 그를 안심시킨다. 그래서 시인 김상혁은 해피엔딩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니, 그에게는 해피엔딩 이야기가 필요하다.
해피엔딩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이 책에서 시인 김상혁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 속 이야기를 아우르며 해피엔딩을 이야기한다. 과연 해피엔딩이란 무엇일까를, 어떻게 해피엔딩에 이를 수 있을까를, 이야기 자체가 어떻게 행복감을 주는지를 이야기한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아이에게 읽어주며 시인에게는 ‘악인에 대한 적절한 처벌 없이 해피엔딩은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이 이야기에서 아이가 배워야 할 정의로운 결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헨젤과 그레텔을 숲에 버린 아버지가 보물 꾸러미를 쥐고 돌아온 그들과 행복하게 재회하는 모습에 웃음 짓는 아이를 보면서, 복수의 황금률을 넘어서는 아이만의 해피엔딩이 따로 있기를 기대한다.
때로는 죽음도 해피엔딩, 혹은 덜 나쁜 엔딩일 수 있다. 만화 《빈란드 사가》의 두 인물은 망자를 가슴에 묻는다. 그들은 멜랑콜리에 빠지지 않았으며 씩씩히 살아남아 망자를 애도했고, 그럼으로써 망자라는 의미를 망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했다. 시인은 이런 방식이 죽음을 다루는 가장 나은 엔딩 중 하나라 믿는다.
어쩌면 슬픈 이야기도 해피엔딩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슬픈 이야기가 헛것임을 알더라도 그것이 충분히 아름답다면 눈물을 흘리며 감동과 교훈을 얻는다. 시인은 시 〈부드러운 마음〉처럼, 탁월하게 조탁된 이야기가 인간에게 인간적인 것을 돌아보게 하는 결말을 가진다면, 그 이야기가 아무리 슬프더라도 독자들은 행복하게 책을 덮을 것이라 말한다.
해피엔딩은 선물이다
그래서 결국 해피엔딩이란 무엇일까? 해피엔딩은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런데 이 선물은 그냥 오지는 않는다.
그림책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선물 하나가’ 단 한 명의 가난한 아이 하비 슬럼펜버거 앞에 ‘놓이기까지’ 산타를 포함해 많이 이들이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사이 눈밭과 절벽을 말 그대로 죽도록 구른다. ‘선물 하나가 놓이기까지’에는 고난과 희생이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는 영원한 비밀이고 아이는 아무런 부채감 없이 선물을 받는다. 그래서 아이는 유독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거리낌 없이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해피엔딩
이야기는 이렇게 수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통해 해피엔딩이 된다. 시인은 이 책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결말에서조차 행복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이것이 시인 김상혁이 생각하는 ‘행복’일 것이고, 이런 노력과 함께라면 이야기는,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언제나 ‘그러나 해피엔딩’일 것이다.
중요한 건 ‘엔딩’이다-두 가지 ‘엔딩’ 이야기
우리는 영화를 본다. 드라마도 본다. 노래를 듣고, 소설을 읽고, 시를 읽는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림도 본다. 그러면서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 울고 웃는다. 대체로 이야기의 ‘끝’이 슬프면 울고, 행복하면 웃는다. 이야기가 시작할 때, 이야기가 전개될 때, 주인공이 행복하거나 불행한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끝’이 좋으면 모두 좋고 ‘끝’이 나쁘면 모두 나쁘다. 이렇게 이야기에서는 끝이, ‘엔딩’이 중요하다.
그리고 ‘엔딩’은 이렇게 행복하거나 슬프다. (종종 열린 결말, 이런 것도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런 엔딩은 엔딩이 아니다.) 해피엔딩 혹은 새드엔딩.
이 책은 두 가지 ‘엔딩’ 중 해피‘엔딩’에 대한 이야기이며, 새드‘엔딩’에 대한 이야기와 동시에 독자들 앞에 놓였다.
해피엔딩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이 책에서 시인 김상혁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 속 이야기를 아우르며 해피엔딩을 이야기한다. 과연 해피엔딩이란 무엇일까를, 어떻게 해피엔딩에 이를 수 있을까를, 이야기 자체가 어떻게 행복감을 주는지를 이야기한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아이에게 읽어주며 시인에게는 ‘악인에 대한 적절한 처벌 없이 해피엔딩은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이 이야기에서 아이가 배워야 할 정의로운 결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헨젤과 그레텔을 숲에 버린 아버지가 보물 꾸러미를 쥐고 돌아온 그들과 행복하게 재회하는 모습에 웃음 짓는 아이를 보면서, 복수의 황금률을 넘어서는 아이만의 해피엔딩이 따로 있기를 기대한다.
때로는 죽음도 해피엔딩, 혹은 덜 나쁜 엔딩일 수 있다. 만화 《빈란드 사가》의 두 인물은 망자를 가슴에 묻는다. 그들은 멜랑콜리에 빠지지 않았으며 씩씩히 살아남아 망자를 애도했고, 그럼으로써 망자라는 의미를 망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했다. 시인은 이런 방식이 죽음을 다루는 가장 나은 엔딩 중 하나라 믿는다.
어쩌면 슬픈 이야기도 해피엔딩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슬픈 이야기가 헛것임을 알더라도 그것이 충분히 아름답다면 눈물을 흘리며 감동과 교훈을 얻는다. 시인은 시 〈부드러운 마음〉처럼, 탁월하게 조탁된 이야기가 인간에게 인간적인 것을 돌아보게 하는 결말을 가진다면, 그 이야기가 아무리 슬프더라도 독자들은 행복하게 책을 덮을 것이라 말한다.
해피엔딩은 선물이다
그래서 결국 해피엔딩이란 무엇일까? 해피엔딩은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런데 이 선물은 그냥 오지는 않는다.
그림책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선물 하나가’ 단 한 명의 가난한 아이 하비 슬럼펜버거 앞에 ‘놓이기까지’ 산타를 포함해 많이 이들이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사이 눈밭과 절벽을 말 그대로 죽도록 구른다. ‘선물 하나가 놓이기까지’에는 고난과 희생이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는 영원한 비밀이고 아이는 아무런 부채감 없이 선물을 받는다. 그래서 아이는 유독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거리낌 없이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해피엔딩
이야기는 이렇게 수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통해 해피엔딩이 된다. 시인은 이 책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결말에서조차 행복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이것이 시인 김상혁이 생각하는 ‘행복’일 것이고, 이런 노력과 함께라면 이야기는,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언제나 ‘그러나 해피엔딩’일 것이다.
중요한 건 ‘엔딩’이다-두 가지 ‘엔딩’ 이야기
우리는 영화를 본다. 드라마도 본다. 노래를 듣고, 소설을 읽고, 시를 읽는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림도 본다. 그러면서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 울고 웃는다. 대체로 이야기의 ‘끝’이 슬프면 울고, 행복하면 웃는다. 이야기가 시작할 때, 이야기가 전개될 때, 주인공이 행복하거나 불행한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끝’이 좋으면 모두 좋고 ‘끝’이 나쁘면 모두 나쁘다. 이렇게 이야기에서는 끝이, ‘엔딩’이 중요하다.
그리고 ‘엔딩’은 이렇게 행복하거나 슬프다. (종종 열린 결말, 이런 것도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런 엔딩은 엔딩이 아니다.) 해피엔딩 혹은 새드엔딩.
이 책은 두 가지 ‘엔딩’ 중 해피‘엔딩’에 대한 이야기이며, 새드‘엔딩’에 대한 이야기와 동시에 독자들 앞에 놓였다.
선물 하나가 놓이기까지 : 해피‘엔딩’ 이야기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