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연대기 (잊힌 시간 형태의 기록)

시간의 연대기 (잊힌 시간 형태의 기록)

$40.00
Description
이 책은 19세기 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국에서 근대적인 시간이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시계 없이 달력만으로도 충분히 ‘시간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근대적인 세계는 달력만으로는 살 수 없다. 근대적인 세계는 시, 분, 초를 강박적으로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 곳이다. 이 책은 근대적인 시간의 형성 과정에 참여한 달력, 종, 오포, 사이렌, 시계, 라디오의 연대기를 복원하고 기록함으로써, 지금 우리의 시간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지금과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저자

이창익

(李窓益,LeeChangYick)

서울대학교인문대학종교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에서철학박사학위를받았다.서울대,세종대,성신여대,광주과학기술원,아주대에서강의했다.한신대,원광대,한림대를거쳐지금은고려대연구교수로있다.⟪종교와스포츠:몸의테크닉과희생제의⟫,⟪조선시대달력의변천과세시의례⟫,⟪죽음을사색하는시간⟫,⟪미신의연대기:지워진믿음의기록⟫을썼고,파스칼보이어의⟪종교,설명하기:종교적사유의진화론적기원⟫과데이비드치데스터의⟪구원과자살:짐존스·인민사원·존스타운⟫을번역했다.

목차

책을내면서

프롤로그.근대적인시간의지도

1장.종의연대기
1.시간의중심:종의역사
시간공유의어려움:인정과파루
시간의소리:종루종,광화문종,돈화문종
흥천사종의행방
원각사종의행방
물시계의폐지
2.식민의종소리:일본불교의범종
3.시간지우기:제야의종소리와종의침묵
제야의종,그시작
종의두갈래미래:무기또는보물
4.종각:중지된시간의역사
일제강점기의종각
자유의종과제야의종

2장.오포와사이렌의전성시대
1.오포의연대기:무기의시간
용산과한양공원의오포
효창원의오포
오포의폐지와잔존
지방의오포설치상황
2.시간기계의등장:남대문소방서의모터사이렌
3.모터사이렌전성시대:시보에서경보로
시간의그물과시간의암전
모던한시간:시보와경보의혼재
일본의종,오포,모터사이렌
4.철탑과망루의시대:높이의식민화
망루,시간의높이
경종소리와신체의통일
5.일상과비상:근대적인시간의정체
정신,사람,물건의총동원
일상의시간과비상의시간

3장.시계의연대기
1.시계시간의등장:모던타임의확산
회중시계,완시계,괘시계,치시계
일제강점기의시계보급률
2.최초의시계탑:거리시계의등장
경복궁시계탑
한성전기회사의시계탑:전차,전등,와사등
종로경찰서이전기:법원,태화여자관,소화낙원
화신백화점과장안빌딩:백화점의시간
3.대시계:랜드마크의시대
대한의원시계탑과광고시계탑
경성역,부산역,대전역의대시계
경성우편국,경성부민관,경성운동장,명동성당의대시계
백화점과은행의시간
4.전기시계:바야흐로전기의시대
친시계와자시계
조선총독부와전기시계
전기시계의장단점
5.시의기념일:일상의표준화
‘시의기념일’의유래
일본의시보상황
조선의‘시의기념일’
시계의정오조사

4장.라디오시대
1.표준시의역사:하나의시간을위하여
표준시제도의시작
표준시의식민화와탈식민화
하나의시간이라는폭력
2.경성방송국과라디오학교:하늘로부터의문화
라디오시보
경성방송국의탄생
연희방송소와이중방송의시작
3.라디오청취자통계:근대화와식민화의혼효
이중방송후라디오청취자수
지방방송국의등장
라디오청취자의급증
전쟁과라디오
라디오수신기
4.라디오체조회:몸으로스며드는시간
라디오체조의기원
경성라디오체조회의시작
전선라디오체조회
황국신민체조와건국체조
국민체조의타락

5장.달력의연대기
1.자동점술의시간:시헌력의구조
얇은시간과두꺼운시간
역주:시간을해석하는달력
시헌력의권두:월표와절후표
연신방위지도:시간과방위의신
시헌력의정월역면:시간주기와역주
시헌력의윤월:길흉이없는달
시헌력의권말:불변하는역주
시헌력의특징
2.사라진43일:태양력의등장
시간을파는사람들
태양력채택과시간의혼란
3.번역되지않는시간:양력축일과음력제일
4.음양력대조역서:조선과일본의양력화과정
한국최초의양력역서
일본양력역서의변화
5.사라진달력:음양합병역서와대한융희5년력
6.파괴되지않는시간:조선민력의구조와역사
조선민력의권두:일본축제일의추가
조선민력각월역면의변화
조선민력의권말부록
조선민력,만세력,절후표
7.음력폐지와시간의통일:약력과양력의시대
8.시간의식민화:약력의구조와역사
약력의권두
약력각월역면의변화
약력권말부록의변화
9.식민지조선의마지막시간:약력,본력,약본력
일본역서의제작과반포과정
약력,본력,약본력
10.관청의집무시간:절기의시간에서전쟁의시간으로
11.공휴일의탄생:몸과정신의시간통일
조선시대관리의집무시간과휴일개념
공휴일의등장과확산
12.카렌다연대기:절후표,월력,칠요표

에필로그.파괴된시간의연대기

출판사 서평

사회적이고역사적인시간의연대기
편의상시간을세종류로나누어볼수있다.첫째,우리의마음속에서흐르는과거,현재,미래로구성되는내면의시간,즉인간적인시간.둘째,천체의운동이형성하는측정가능한천문학적인시간.셋째,인위적으로제작되어유포되는제3의시간.이책은제3의시간에관한책이다.
이책은태양력이채용된1896년부터일제강점기가끝나는1945년까지이땅의근대적인시간의정체를밝히고자한다.근대적인시간은수많은시행착오끝에사회정치적으로매우힘겹게구성된엄청난노고의산물이다.정치적인상황에따라시간관념은그강도를달리하며삶에영향을미쳤고,시간관념을정치적으로수정하고조작하는일도빈번했다.근대적인시간은부자연스럽고엉성하게조선의공간을침윤했다.

잊힌시간의연대기
이책은시간이라는감각할수없는추상적인대상을포착하기위해아예정반대로구체적인사물의역사로시선을돌린다.이책은근대적인시간의형성과정에참여한종,오포,사이렌,시계,라디오,달력같은사물들의행로를추적함으로써각사물들의배치와전위(轉位)가어떤시간형태를구성하고있었는지,어떤목적의시간에동원되고있었는지살펴본다.결국이책은이들사물에새겨진잊힌시간형태를복원하고기록하는작업이다.

역사의분위기를치밀하게묘사하는‘시간의민속학’
혹은역사가없는사물의역사를쓰는인류학자의작업
이책은주로일제강점기자료에근거하여이땅에서근대적인시간이발아하는과정을묘사한다.이책은식민주의와제국주의가어떻게시간을악용하고오용하고남용했는지를담담하게,그러나선명하게서술한다.근대적인시간은50년이라는장기적인시간동안매우느린속도로조선의공간에스며들었고,이책은그모습을‘슬로모션’으로보여준다.
이책은자료에대한과도한해석작업보다는자료가제시하는현상을좀더생생히부조(浮彫)하는데온힘을모은다.사실의해석보다는정확한기록을지향한다.그래서이책은근대적인시간의형성과정에참여한사물들,즉종,오포,사이렌,시계,라디오,달력이주인공으로등장하는근대적인시간의‘연대기’이다.

달리표현하자면,이책은‘역사쓰기’보다는‘역사만들기’를지향한다.그전에는자체적인역사가거의서술되지않은종,오포,사이렌,시계,라디오,달력을대상으로소박한연대기를작성한다.이책은역사밖에있는사물들,또는파편적으로역사에잠시참여하는사물들의온전한역사적인차원을드러내고자,역사가없는원시부족의역사를쓰는인류학자의작업방식을염두에두면서집필되었다.

시간공유와‘소리시계’
근대이전의시대,조선시대에는시계의보급이아니라시계가가리키는시간을효과적으로전파할수있는시보가중요했다.조선시대에표준시계인물시계의시간을적절히전파할수있는수단은종소리밖에없었다.종은일종의‘소리시계’였다.
그런데종은모든공간에시간을전파하는것이아니라시간이꼭필요한한정된장소에하루두번시간을공급하면그뿐이었다.조선시대는12지시법과96각법으로하루를등분했지만,분(分)과초(秒)라는시간개념이전혀필요없는세상,심지어하루를24등분으로나눈시(時)개념에서도압박감을느끼는느슨한세상이었다.
근대적인시간이작동하려면사람들의팔목에완시계가감겨있고,모든가정의벽에괘시계가걸려있고,근대적인건축물의외벽이나내벽에전기시계가설치되어야했다.시계가본격적으로보급되기이전시간의연대기는시간측정의연대기라기보다는시간공유의연대기이다.
종은시간공유를가능하게한가장오래된형태의사물이다.조선시대에는통금과새벽을알리던밤의종소리,즉시종(時鐘)이있었다.이종들은물시계가폐지될때까지공식적인‘소리시계’로존재했다.또한범종도‘소리시계’의역할을했다.이들시종과범종은일제강점기에경종,제야의종등으로변질되다가급기야융해되어대포와탄환이되기도했다.이러한종의연대기끝에는오늘날까지남아있는,보신각제야의종이라는근대적인시간의례가있다.

일상의시간과비상의시간
한일병합무렵부터본격적으로오포가종을대신하여시간을알리기시작했고,1920년대중반무렵사이렌이오포를대신했다.오포와사이렌은종보다는훨씬더넓은공간에시간을공급할수있다는이점이있었다.오포와사이렌의주목적은사람들이시보를듣고각자의시계를정확히조정하게하는것이었다.오포와사이렌은시계의일치를통해시간의힘을키우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었다.이처럼근대성은동시성의확보를통해공시적인사회구조를강화하는것을지향했다.
사이렌의또다른강점은시보뿐만아니라경보의용도로도언제든사용할수있다는것이었다.경보는기상과취침의시각을알리는신호일수도있고,궁성요배나정오묵도의시각을알리는국민의례의신호일수도있고,적기의내습을알리는방공경보일수도있고,화재나수재를알리는비상경보일수도있다.한편으로황국신민을양성하기위한사회적이고정치적인여러경보가‘시간의소리’로존재하고있었다.이것은개인의시간에서국가의시간으로이동할것을재촉하는경보였다.다른한편으로방공경보는언제든일상의시간이전쟁의시간으로추락할수있다는경고를담고있었다.
사이렌을통해공유되는시간은일상이언제든비상으로추락할수있는시간,즉일상의시간과비상의시간이공존하는시간이다.시보와경보의혼재와동화를촉진한사이렌은근대적인시간의매우중요한상징물이었다.

시계를통한공간의시간화
1930년대가되면시계와라디오의대중적인보급으로인해근대적인시간이일상화되기시작한다.특히6월10일‘시(時)의기념일’은시계의보급과시간관념의확산에있어서결정적인역할을했다.
근대적인시간은공간의근대화가전개되면서그지배력을강화했다.거리시계로인해해당공간을통과하는사람은언제든정확한시간을알수있었고손목시계의시간도조정할수있었다.종,오포,사이렌과달리거리시계는언제든눈으로볼수있는시각적인시보장치였다.근대적인건축물은외벽에대시계를붙이고있거나,내부의벽에전기시계를걸고있는경우가많았다.관공서,우편국,철도역,백화점,은행,병원,학교등의근대적인공간은시계를장착한공간,즉시계시간의질서에편입된공간이었다.

몸으로스며드는시간
라디오의대중적보급으로가능해진라디오체조는시보가경보가되는가장극적인예다.라디오체조는사이렌소리를듣고매일아침학교,공원,신사등에모여서로의몸을하나로조율하는모습,즉동시적인무수한신체의가능성을보여주었다.라디오체조는신체의소집,일치,접속을통해집합의식을비등시키는용광로였다.라디오체조를통해사람들은매일같은공간에서만나신체의속도와동작을하나로통일하는연습을계속하고있었다.결국이러한신체의통일은궁극적으로정신의통일을겨냥하고있었다.또한라디오체조는사회적으로쓸모있는건강한신체,나아가전장의제물로바칠수있는미래의신체를준비하는국민의례이기도했다.
근대적인시간은정확한시계에존재하는것이아니라,같은시간에같은행동을반복함으로써같은생각을일으키는신체들에기생하는것이었다.추상적으로흘러가는시계시간이아니라신체의동시성이바로근대적인시간의얼굴이었다.

달력의시간과시계의시간/음력의시간과양력의시간
근대이전의시대,조선시대의시개념은양적분할뿐만아니라질적분할에입각해있었다.시계는분과초라는새로운시간개념을유포시켰고,사람들은양적차원만존재하는전혀다른‘시간의세계’로진입하게되었다.시계의보급으로양적으로‘미시분할’된시간이도입되긴했지만,시계시간은질적으로는매우밋밋했다.조선시대의시간이질적으로구조화된양적시간이었다면,근대적인시간은양적으로구조화된텅빈시간이었다.이처럼근대적인시간은질이사라지고양만남은시간이었으므로사라진‘시간의질’을어떻게회복할것인지가항상문제로남았다.근대적인시간은인간이자율적으로‘시간의질’을결정할수있다는장점이있었다.그러나20세기초에‘시간의질’을결정한것은주로사회와국가였다.무엇보다도중요한것은인간이‘시간의질’을형성하기위한시간의재료로전락하고있었다는사실일것이다.

조선시대사람들은시계가아니라달력이필요한삶을살고있었다.시간의형태가삶을결정하는것이아니라삶의형태가그에적합한시간을선택하고결정한다고말할수있다.달력만으로도충분히‘시간의질서’를유지할수있었던사회는근대적인시간의도입에그리적극적이지않았다.일제강점기에‘달력시간’이아니라‘시계시간’이주도권을쥐기까지는꽤많은시간이필요했다.삶의구조를파괴하지않는한새로운시간형태는여전히삶을겉도는문명의기호이자장식품일뿐이었다.

조선최초의양력역서뿐만아니라한일병합직전부터발행된음양합병역서는음력과양력을상호번역할수있도록만든임시적이고과도기적인달력이었다.그리고양력역서든음양합병역서든궁극적인지향점은음력을양력으로완전히대체하는것이었다.그러나애초의의도와달리음력과양력의공존을허용하는과도기가40년이상지속되었고,이로인해예외가규칙이되는기이한현상이발생하고말았다.
조선총독부는1937년부터조선달력의폐기와일본달력의사용을통해전면적인양력화를시도했고,1940년부터는달력에서아예음력일을삭제했다.그러나이미44년동안지속된음양력공존현상을뒤늦게타파하기는힘들었다.그리하여음양력공존현상은해방후에도지속되었고,지금까지도그힘을완전히상실하지않고있다.

근대화와식민화의혼효-‘문명지연’의시간
시간의식민화와시간의근대화가가리키는방향은사실비슷하다.근대적인시간이란하나의국가를하나의시간으로균질하게관리하는것을지향하기때문이다.다만식민화와근대화는그과도함이나폭력성에서큰차이를보인다.

국가를형성하고국민을제작하는일에서시간의통일은중요하다.가령,일제는식민지를국가질서에편입시키기위해경도차를무시하고조선,중국,대만,만주등에일본의중앙표준시를강제했다.하나의시간으로제국이라는하나의균질적인공간을창조하고자했던것이다.

조선보다먼저근대화의길에들어선일제는일본의문화발달을기준으로조선의문화개혁을시도했다.그러나식민지조선의물질적근대화는그러한수준에미치지못했다.예컨대일제는시간관념이나시계의정확성을강조했지만,식민지조선에는여전히오포와사이렌은부족했고,시계의보급속도는너무느렸고,라디오보급률은단시간에높아지지않았다.식민지조선으로한정할경우,일본인과조선인의물질적조건은더큰차이를보였다.따라서일본과식민지조선이,또는조선인과일본인이똑같은근대문화를공유하거나향유하는것은불가능했다.
말하자면,식민지조선에서는문명이문화의속도를따라잡지못하는경우가많았다.사람들은근대문화와친숙해지고있었지만,제도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물질적으로조선사회는근대문화를흡수할수있을정도로충분히근대화되지못한것이다.즉일제의제한적이고선택적인근대화로인해식민지조선에서는문명이문화의속도를따라잡지못하는‘문명지연’현상이발생한것이다.

‘파괴된시간’의연대기
이땅에서사회적인시간,정치적인시간,식민지의시간은내면의시간을압도하고질식시켰다.근대적인시간이구축되던백여년전의상황과현재우리의상황을비교해보면,지금우리가얼마나내면의시간을강탈당하며살고있는지느낄수있다.종,오포,사이렌,시계,라디오,달력의연대기는,근대적인시간이정치적으로남용되거나오용되는모습을자주보여주었다.그시간들의연대기는매번‘파괴된시간’의연대기였다.지금우리의시간은‘파괴된시간’의유물이다.

하지만우리는시간의의미를얼마든지수정할수있고,심지어는시간의틀자체도얼마든지변경할수있다.우리는절대적인시간을잠시꺼두는‘시간소거’의기술을얼마든지사용할수도있다.더나아가이제우리는‘시간소거’를넘어새로운시간질서의가능성을탐색하는조금더구체적인실험을전개할필요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