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조선 강점, 1868∼1910 (국제관계의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에 대한 연구)

일본의 조선 강점, 1868∼1910 (국제관계의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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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은 40년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동아시아사를 연구했고, 미국아시아학회Association for Asian Studies가 힐러리 콘로이상(2011~ 논문)으로 기념하는 역사학자, 고(故) 힐러리 콘로이가 저술한 ‘동아시아 근대사 연구의 고전’이다.
저자는 1868년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기까지의 역사를 세밀하고 풍부하게 서술하고 견고한 이론의 구조 안에서 분석한다. 저자는 이 시기 일본의 주요 세력을 현실주의·자유주의적 이상주의·반동주의적 이상주의로 나눈 뒤 그들의 특징과 서로의 관계를 규정하고, 그것이 현실의 격동과 부딪치면서 변화하고 변질된 과정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조선 강점의 역사를 연구한다.
이 책은 일본의 조선 강점 과정을 조선과 일본, 양국의 관계로서가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국제관계에서 일본, 특히 일본의 현실주의 정치세력이 어떻게 대응했고, 결과적으로 조선을 강점하게 되었는지, 달리 말해 일본의 현실주의 외교는 어떻게 실패하였는지를 신중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1950년대 말, 세계가 냉전 시대로 이르게 된 단적인 사례로 일본의 조선 강점을 분석하고 평가한 힐러리 콘로이의 통찰과 제안은, 이른바 신냉전의 시대, 21세기 한반도가 열강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조언이 될 것이다.
저자

F.힐러리콘로이

저자:F.힐러리콘로이
1919년미국일리노이주출생.1941년노스웨스턴대학을졸업하고,1942~1949년캘리포니아대버클리캠퍼스에서석?박사학위를취득했다.1944년해군에입대하여언어학교과정을마치고군사정보부일본어통역관으로복무했고1945~1946년에는도쿄주둔맥아더사령부에서근무했다.1954년풀브라이트장학생으로도쿄대에서연구했다.1951~1990년까지40년간펜실베이니아대교수(동아시아사)로재직했다.미국아시아학회AssociationforAsianStudies는2011년부터힐러리콘로이상을,일본근대사학회TheModernJapanHistoryAssociation는2025년부터힐러리콘로이저작상을제정·수여하면서콘로이의업적을기리고있다.
주저인이책을비롯해TheJapaneseFrontierinHawaii,1868-1898(1953),편저에AHistoryofAsia(1964∼65),EastacrossthePacific(1972),ChinaandJapan(1978),JapanExamined(1983),JapaninTransition(1984),NewTidesinthePacific(1987),PearlHarborReexamined(1990),AmericaViewsChina(1991),WestacrossthePacific(2008)등일본사를중심으로동아시아사전반에걸쳐많은연구성과를남겼다.

역자:김범
1970년서울출생.현재국사편찬위원회편사연구관.고려대한국사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에서조선전기정치사를연구해박사학위를취득했다.저서에<사화와반정의시대>,<연산군―그인간과시대의내면>,<사람과그의글>,<민음한국사―15세기>(공저),번역서에<유교적경세론과조선의제도들―유형원과조선후기>(제임스팔레),<조선왕조의기원>(존던컨),<무신과문신>(에드워드슐츠),<조선의변방과반란,1812년홍경래난>(김선주),<동아시아세계질서의종막>(김기혁),<한국전쟁의기원>1·2(브루스커밍스)등이있다.

목차

한국의독자들에게9

머리말13

1장정한론―모욕과복수,그리고긴그림자16
2장확립된현실주의―“안전하고온건한”조선정책84
3장이상주의의진입―정부의신중한태도에도전한자유주의적열망135
4장재개된현실주의185
5장“예기치못한사건들”240
6장좌절된현실주의1―이노우에의실패,1894∼1895년285
7장좌절된현실주의2―이토의실패,1905∼1909년359
8장역행한이상주의―반동주의자들의대두와자유주의자들의혼란423
9장몇가지경제적문제490
10장결론544

주563
참고문헌627
옮긴이의글645
찾아보기651

출판사 서평

조선강점에이르기까지일본은어떻게한반도에접근하였는가?

두차례의전쟁으로?
조약과동맹의외교로?
미국역사학자의눈으로바라본일본의현실주의정치.

조선강점에이르는몇몇장면들

장면1-톈진조약
임오군란과갑신정변을거쳐1885년이됐을때일본의정책입안자들은강화도조약이후극복했던조선의비타협적태도뿐아니라청의비타협적태도도고려해야한다는것을알게됐다.갑신정변이후일본정부는앞으로조선에서청과일본이충돌할가능성을줄일수있는기본합의를모색했고,이토히로부미가직접중국으로건너가이홍장-이토조약이라고도하는톈진조약을체결했다.
이토히로부미는청에가기전주일미국공사를찾아가조언을구했다.주일미국공사는청과일본이조선에서군대를철수하고조선정부의정당하고배타적인자치권을인정한다면평화적해결에도달할수있다고촉구했다.이토는그런견해에동의하며그것을바탕으로청과합의를모색하겠다고공사에게말했다.
톈진조약이후일본정부는정치·외교적으로직접압박하기보다는무역과온건한개혁계획을후원함으로써조선의개혁에더느리지만더확실한추진력을제공할수있었다.이것은특히미국의정책과도부합되는것이었고,그들은그런미국의정책에서거듭단서를얻었다.일본은청의분노를불러일으킬수있는직접적인외교적도전은피했다.

장면2-청일전쟁
일본의외무대신은1894년8월16일에이토히로부미에게보낸각서에서조선에대한근본적인정책을결정할것을내각에촉구하면서병합만이조선문제를해결할수있다는최종결론에이르는단어를사용했다.하지만일본의과두정치가들은서양국가들이가르쳐준방식에따라실용적이고신중하며현실적인외교경기를하고있었다.그들은조약개정이라는위대한사업에서일본을성공직전까지이끌었고,그것은일본이본격적인서양식근대국가로인정받는광명의장소였다.자유주의에입각했든반동주의를따랐든그들이주장하는전쟁과대의는과두정치현실주의자들에게는혐오스러운것이었다.
1894년6월7일,톈진조약에따라일본과청은조선에파병할것을상대방에게공식통지했다.철군하지않겠다는일본의결심은속국문제에서비롯된것으로표현되지않고,철군하기전앞으로소요의악의뿌리를끊기위해청·일합동위원회가철저히조사하고조선정부의폐정을개혁하는단호한조처를보장해야한다고청에제안하는형태로표현됐다.
일본이이런방식으로문제를제기한것은,개혁계획방식이실패하더라도유럽국가들과미국에좋은인상을줄수있을것이지만조선의정치상황을거의이해하지못하는그들에게속국문제는좋은이유가되지못할것이라는정치적이유때문이었다.
일본의과두정치가들은청과의전쟁을망설였다.그들은일본이만족할만한해결책을찾기전청을한반도문제에서배제해야한다고확신하게됐지만,이것만으로는‘좋은결과’를보장할수없음을알고있었다.청이물러간뒤의시대는조선에서특히서구열강과의관계에서또다른복잡한문제를가져올수있었다.그래서망설였다.그래서일본의과두정치가들은적십자단과국제법에정통한변호사가군대와동행하는기독교식으로전쟁에나아갔고조선에있는서양인들을모욕하지않도록조심했다.

장면3-을사조약과통감부
아관파천이후일본의정치가들은자신들이만·한滿韓교환이라고부른것을러시아와협상의목표로삼기로결정했다.그러나영국공사만은반대했다.러시아는자국이만주에서절대적인행동의자유를누려야한다고주장하면서조선에서는일본을자국과같은지위로끌어내리고있기때문에그들과협상하는것은아무소용없다고그는지적했다.일본은1902년유럽의정치적경쟁과신임외무대신과영국공사의영리한외교가결합돼영국과의동맹을성사시키면서러시아와협상하는데필요한영향력을갖게됐다.
러일전쟁이끝난뒤러시아는1905년9월포츠머스조약에따라조선을일본에넘기기로합의했다.한편시어도어루스벨트대통령은미국은일본에대항하는조선인을위해간섭할수없다고결정했고7월가쓰라-태프트밀약을승인함으로써포츠머스회의가열리기전부터일본에게조선에대한미국의승인신호를보냈다.영국도1905년8월영·일동맹을갱신할때같은조치를했다.
국제적으로는1905년11월17일에체결된제2차한일협약과11월22일에발표된조선에관련된‘일본정부의선언’으로이토히로부미가조선문제에매우강력한영향력을행사할수있는길이열렸다.제2차한일협약은서울에주재하는통감이외교문제를주로담당할수있는권한을갖게된것이다.이것은다른모든나라에공사관을폐쇄하고조선을떠나라는공개적인초청이었다.11월22일의선언에서는그까닭을설명했다.
미국·영국·러시아와의사전합의는그정부들의이의제기가없을것을보장했고,그정부들은곧바로조선에상주하는공사들을소환했으며,다른국가들도일본의통감부설치의도를차례차례승인했다.

장면4-헤이그특사사건
고종의헤이그특사파견이후책임감있는세계여론을가장잘표현한것은1907년7월20일과26일자『뉴욕트리뷴』사설이었을것이다.사설에따르면,조선은러시아에게정복될뻔했지만일본의구원을받았고일본정부를통해외교문제를수행하기로합의했다.이것은전세계가인정한합의다.부하라Bokhara의에미르Emir가자신과차르사이의중재를요청하기위해,또는베트남국왕이프랑스에맞서기위해,또는인도국왕이인도북부에서영국을추방하기위해헤이그에사절단을보냈다고상상해보면일본이모르게대표단을파견한조선황제가얼마나큰범죄를저질렀는지짐작할수있다.일본이조선을다스리는직함은러시아·프랑스·영국또는그밖의열강이피지배국가를다스리는것만큼좋다.(…)조선은많은문제의근원이었으며(…)평화를위협했다.(…)위협은제거하는것이좋다.세계의평화와진보가더중요하다.

현실주의외교는왜실패하는가?

콘로이가보기에,조선병합을향한일본의과정은산속에있는세개의샘처럼이념적으로나철학적으로멀리떨어져있던세개의물줄기인자유주의적이상주의,반동주의적이상주의,현실주의가점차합쳐져조선을집어삼킨홍수가된것이다.
일본의현실주의자는1873년정한을둘러싼대논쟁이후지속적으로국가운영을관리했으며,1880년대와1890년대에는자유주의자에게,그뒤에는반동주의자에게방해받기는했지만,결코주도권을잃지않았다.그러나그들의목표는미묘한변화를겪었는데,조선을일본의부분적통제와지시를받는별도의정치적실체로유지하겠다는처음의결심에서한반도를완전히일본의통치아래두겠다는결정으로바뀌었다.

왜바뀌었을까?
콘로이는국가가서열에따라등급이매겨지고권력이여왕인국제정치의체스판에서그대답을찾을수있다고본다.현실주의외교가추구하는현실적균형(또는반半균형)은이론적으로는논리적이고실행할수있는것처럼보이지만실제로는그럴수없다는것을조선의사례는보여준다.조선의사례가현실주의외교의실험실시험이라고인정할수는없겠지만역사적상황이줄수있는가장근접한결과일것이다.
콘로이에따르면,조선의사례는아무리전문적이고대중에영향을받지않는정치가라도그의기준이‘국익’이라면,미안한것보다는안전한것이낫다는가정에따라행동할것임을보여준다.이렇게되면현실주의정치가의정책은자동적으로반동쪽으로기울고현실주의는잔인함에빠지게된다.

꾸준한이상주의

그렇다면현실주의외교의대안은없을까?
있을수있지만,그대안은국가가영리하게자신의이익만추구하는것이아니라선해져야하며추상적인정의와도덕의문제에더많은관심을두고정책을수립해야한다는도전과제들을제시한다.그도전은국가제도의뿌리,그철학과가정,그리고그행동에대한것이다.콘로이는그도전을체스경기가경품행사로바뀌어야한다고말하는것과같다고표현한다.콘로이는말한다.그러기는어렵지만,특히오랫동안진지하게경기했어도우승자가나오지않았다면경품행사는이상하게상쾌하고신기하게전염성이강할수있다고.
콘로이는이경품행사에는열망이표현된이상주의가분명히포함될것인데,우리는과거에이상주의가빠졌던함정을이해하고피해야한다고강조한다.새로운이상주의를그는“꾸준한이상주의”라고부른다.

콘로이는조선문제의구체적상황에꾸준한이상주의를적용했다면,미국과일본이,이른바“조선인에게기본적으로옳고괜찮은것”에좀더관심을기울였을지모른다고가정해본다.
만약미국국무부가좀더적극적으로개입했다면일본은조선을안전하게확보해야한다는긴급함을덜느꼈을것이다.일본은조선의갑신정변세력을설득했을뿐아니라그들의후계자들은고종이동학의청원을받아들이도록설득함으로써유쾌한놀라움을선사했을지도모른다.그리고1898년독립협회는자금과현명한조언을모두활용할수있었을것이다.

역사에만약은없었다,하지만역사를되풀이하지않을수는있다.

역사에만약은없었다.한반도는강점되었고,광복을맞이했으나,이후분단되어오늘에이르고있다.
하지만역사를되풀이하지않을수는있다.한반도의역사가민족의상처와균열을반복하지않고회복하고화합하려면지금우리는무엇을어떻게해야하는지를아는데에,이책이단초를제공할수있기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