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 연가 (신서빈 장편소설)

모던 경성 연가 (신서빈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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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신서빈 장편소설 『모던 경성 연가』. 낙후된 조선을 바꾸기 위해 메스를 잡은 준필. 개화파라는 손가락질을 뒤로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5년 후, 조국으로 돌아가 신식 의학을 펼치려던 준필은 기나긴 항해 끝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태양 아래 녹아내리는 피부, 이성을 잠식해 오는 갈증뿐. 그날부터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신선한 피뿐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세상은 변해 갔지만, 그는 늘 그대로였다. “귀신도, 괴물도 아니에요. 당신은 분명 저와 같은 인간입니다. 제가 꼭 치료해 드릴 거고요.” 그런 그 앞에 나타난 한 명의 의사, 윤가영. 그는 그녀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암울한 일제 강점기의 경성, 그곳에서 피어나는 꿈과 사랑 이야기.
저자

신서빈

저자신서빈申棲瀕
시샘달이레태어난가니메데의물병.
다양한분야를섭렵하고싶은욕심쟁이.
언제나진행형인작가.
SunnyJu.

목차

序章.기묘한내기
第一章.운명같은만남
第二章.과거란그림자
第三章.눈물한방울
第四章.기억의조각
第五章.심장의고동
第六章.제자리걸음
第七章.불청객
第八章.입맞춤
第九章.다시,여름날
第十章.뱀파이어
第十一章.의사(醫師)와의사(義士)
第十二章.요괴신사
第十三章.되찾은빛
終章.영원아닌찰나
작가후기
참고자료

출판사 서평

발췌

대체저여자는어디다겁을두고왔을까.준필은혀를찼다.잠시그의시선이제게서아주멀리떨어져있는태운에게향했다.저와거리를둔그가현명했다.어리석은여인.제게성큼성큼다가오는가영을보는것이불편했다.특히그녀의귀끝이자꾸만제눈에밟히는것이싫었다.죄책감이아니었다.선홍빛이살짝감도는그녀의상처가자꾸저를자극했기때문이었다.지금껏먹어보았던수많은피중에서인간의피가단연가장맛있었지만,그녀는,그녀의피는달랐다.샬레에담겨있던피를바닥까지깨끗이비웠을때는혀끝에남겨진맛이분명달았지만그뿐이었다.그런데아주잠시핥았을뿐인데도그녀의피맛은도무지잊을수가없었다.맛있다기보다는무언가무거운것이저를짓누르는것같은이생소한감각.그럼에도자꾸만탐하고싶은이벗어날수없는욕망.저외엔아무도알수없을그맛이입안을맴돌면서자꾸만온몸을답답하게만들었다.
“가까이오지마시오,낭자.옛말에이르기를남녀칠세부동석이라하였소.그리고말했지만난병자요.의사라면그정도상식은…….”
자신이내뱉고도어이가없었다.제가조선땅을떠나던을미년1895,외국에서보기엔이미충분히늦은개혁이이루어지던그해에도,여전히공자,맹자따위를공부하던친구들이많았다.그들에게‘개화파’라손가락질받으며,심지어는미친놈소리까지들으면서미국으로떠나는배에오르던기억이어제일처럼아직도선명해서돌아버릴지경인데이제와서고리타분한발언이나내뱉고있다니.핑계도이런핑계가없구나싶어진순간,방안에시원시원한웃음소리가가득찼다.
“푸,푸하하하.재미있으신분이네요.말씀하시는것만들어보면제아버지보다도훨씬나이들어뵈세요.”
“……내말이재미있소?”
그녀가몇살인지짐작할수는없었지만정말제가그녀의아버지보다더먹었을지도모를일이었다.사실을정확히말할수없어답답해진준필이그저눈만이리저리흘겼다.
“자자,쓸데없는윤리는집어넣죠.일본이집어삼킨이땅에지켜야할윤리가남아있답니까?그러지말고일단성함부터가르쳐주세요.그리고증상도가능한세세하게말씀해주시고요.정말병이라면진단도,치료도의사인제몫이지,환자가자의적으로판단할문제가아닙니다.물론정말여의사가싫으신거면저기있는김태운선생도나쁘진않겠지만…….”
가영의시선이잠시뒤쪽의태운에게향하였다가제자리로돌아왔다.절대안된다는듯고개를양쪽으로강하게저으면서.
“적어도혈액쪽에관해서는,그러니까피에관해서는도무지김태운선생은믿을수가없어서요.그러니어쩔수없네요.물론세브란스병원에의사야많지만지금은아주늦은시간이고,더는고를선택지가없으실겁니다.환자는환자일뿐이고,의사는의사일뿐이라,남자도,여자도아니니…….자,이제편하게말씀해보실까요?”
어느새그녀는한손에는종이를,다른한손에는펜을쥐고있었다.그녀의눈은진지함으로반짝이고있었고펜을묵직하게쥔손에서는신뢰감이느껴졌다.순간적으로준필은그녀를바라보다가슴이일렁이는느낌에잠시흠칫했다.편안함,안정감,그도아니면떨림과갈증.대체이생경한감정이무엇일까.도무지정체를알수없었다.
정말로그녀가날치료할수있을까.
심장이세차게뛰는것이제손끝까지느껴지는기분이었다.다시인간이될수있다는희망에대한기대인지,혹은눈앞에서오묘한향기를풍기는먹이에대한갈증인지,그도아니면둘다인건지…….혼란스러움을감추지못한채그는천천히입을떼기시작했다.
“내가무슨말을해도낭자는절대믿지못할거요.”
“그건의사인제가판단합니다.그리고저는제환자를믿으려고애쓰는편이에요.물론환자도의사를믿어주면더할나위없이좋겠지만요.”

(중략)

기묘한일이제눈앞에서벌어지는게두렵기도했지만,그보다는호기심이더컸다.제심장이쿵쾅거리는건부정할수없었다.조금더,그저조금더눈앞의존재를알고싶을뿐.그래,이건연구자로서당연한호기심이야.그녀는스스로를애써진정시켰다.
“그래서혹시치료받을마음이생기셨나요?”
가영의말에준필이천천히고개를끄덕였다.시계를보지않아도직감적으로느낄수있는건이제곧해가뜰시간이란것이었다.실외로나가는것은무척이나위험했다.그리고무엇보다제본능을강하게자극하는이여자가아주조금은궁금해졌다.인간에대한호기심만큼저를위험하게할것도없었지만어차피죽음마저두렵지않은운명,그정도재미는누리고싶었다.그동안억울하게만살아온제삶에대한아주약간의보상으로.그리고아주조금은기대가되기도했다.아무런조치도없이,아무런의심도없이,그저제가달라했다는이유만으로제게선뜻피를건네줄수있는이당돌한여자의사가어쩌면자신의괴이한질병을치료할수도있으리라는희망.희망이란단어를가슴속에품어본게대체얼마만이던가.준필은자조적인미소를입가에올렸다.그래,어쩌면다시인간이될수있을지도몰랐다.괴물이었던모든시간을과거에묻을수만있다면!갑자기준필의심장이세차게일렁이기시작했다.
“아직까진잘모르겠지만…….”
“저를한번믿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