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 : 근대 유럽의 탄생 - KODEF 세계전쟁사 4

나폴레옹 전쟁 : 근대 유럽의 탄생 - KODEF 세계전쟁사 4

$29.80
Description
군사천재, 전장의 신, 불가능에 도전한 영웅,
예술을 사랑한 독재자
인간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전쟁을 객관적으로 조명한 역사서
『나폴레옹 전쟁』 개정판 출간!
‘군사 천재’, ‘전장의 신(神)’, ‘불가능에 도전한 영웅’, ‘예술을 사랑한 독재자’ 등 무수한 수식어를 남기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나폴레옹. 나폴레옹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책들이 나와 있다. 그러나 국내에 소개된 책들을 살펴보면, 나폴레옹의 내면을 담는 데 치중한 소설 형식의 책이나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시킨 위인전 등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이번에 도서출판 플래닛미디어가 출간한 『나폴레옹 전쟁: 근대 유럽의 탄생』 개정판은 세계적인 밀리터리 전문 출판사인 영국 오스프리(Osprey) 출판사의 『The Napoleonic Wars』를 번역한 책으로, 나폴레옹이 전 유럽 제패를 위해 유럽의 여러 나라를 상대로 벌인 나폴레옹 전쟁을 중심으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비롯해 프랑스 대육군과 그에 맞선 각국의 군대, 각 전투가 벌어진 과정, 대프랑스 동맹을 맺은 각국의 지도자와 군사 지휘자들 간의 복잡 미묘한 관계, 프랑스 제국 점령하의 근대 민족주의의 태동, 젊은 나이에 고속 승진하여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뒤 직접 수많은 전투를 지휘하며 전쟁의 영웅이 된 나폴레옹의 뛰어난 면모, 대프랑스 동맹의 연합군이 결정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그리고 전쟁의 종결과 여파 등을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하나하나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많이 나와 있는 나폴레옹의 영웅적인 면모에만 치중한 나폴레옹 관련 서적들과는 다른 보기 드문 객관적인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밖에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군인과 종군 악사, 배우, 외교관, 예술가 등에게 시선을 돌려 그들의 눈에 비친 나폴레옹 전쟁의 참상을 그들의 일지나 회고록, 또는 미술 작품을 통해 다각도로 보여준다. 나폴레옹이 10년 동안 권좌를 장악하면서 군사, 행정, 법률, 교육, 과학 분야에서 단행한 많은 개혁들과 정치,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미술, 건축, 조각, 음악, 요리, 패션 등 예술과 문화에 미친 영향을 조목조목 살펴봄으로써 나폴레옹이 남긴 유산까지도 놓치지 않고 조명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제1부 〈프랑스 제국의 탄생과 부흥 1805~1807〉에서는 1802년 아미앵 조약이 파기되면서 재개된 전쟁: 울름 전투에서 틸지트 조약까지를 살펴보고, 제2부 〈구제국의 역습 1808~1812〉에서는 대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랑스군이 큰 타격을 입은 러시아 원정, 제3부 〈이베리아 반도 전쟁 1807~1814〉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영국 연합군 및 스페인, 포르투갈 게릴라들과 프랑스군 사이에 벌어진 피가 피를 부르는 잔인한 싸움, 제4부 〈프랑스 제국의 몰락 1813~1815〉에서는 독일 해방 전쟁과 프랑스 본토 침공, 나폴레옹의 퇴위, 엘바 섬 유배, 엘바 섬 탈출 후 권력 재장악과 워털루 전투에서의 패배, 세인트헬레나 섬 유배 등 나폴레옹의 어두운 몰락 과정과 그 후 유럽 판도 재편을 위한 승전국들의 빈 합의,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 그리고 나폴레옹이 남긴 유산 등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

그레고리프리몬-반즈,토드피셔

저자:그레고리프리몬-반즈(GregoryFremont-Barnes)
UC버클리(UniversityofCalifornia,Berkeley)와시카고대학,옥스퍼드대학등에서역사학을전공했다.『프랑스혁명전쟁(TheFrenchRevolutionaryWars)』(2001)의저자이기도한그는최근『미국독립전쟁백과사전(EncyclopediaoftheAmericanRevolutionaryWar)』(2006)을공동집필했다.

저자:토드피셔(ToddFisher)
NapoleonicAlliance.com의대표이사이자국제나폴레옹협회(InternationalNapoleonicSociety)의창립회원이며,Emperor’sPress및NapoleonicJournal의최고경영자다.

역자:박근형
단국대사학과를졸업했으며,보안장비를중심으로한기술번역과출판번역분야에서활동중이다.옮긴책으로『세상보세3:세계사』,<세계의전쟁시리즈>『욤키푸르1973』(1),(2)등이있다.

목차

소개의글|정말놓쳐서는안될역사서
서문|나폴레옹전쟁이라는대서사시

1부:프랑스제국의탄생과부흥1805~1807
전쟁의배경-시한부평화
교전국-전쟁전야
전투-울름전투에서틸지트조약까지
어느군인의초상-프랑스원수장란
어느종군악사의초상-필립-르네지롤

2부:구제국의역습1808~1812
전쟁의배경-반란과항쟁
교전국-프랑스,오스트리아,러시아
전투-대오스트리아전쟁에서모스크바진공까지
어느군인의초상-바실리데톨리와야콥발터
어느민간인의초상-루이즈퓌질
사태의종결과정-곤경에빠진나폴레옹

3부:이베리아반도전쟁1807~1814
전쟁의배경-오래된앙숙들:영국,프랑스,스페인
교전국-각국군대
전쟁의발단-분쟁의기원
전투-극과극의전쟁
어느군인의초상-영국군제95소총연대에드워드코스텔로일병
어느민간인의초상-영국외무상조지캐닝
사태의종결과정-조금은허무한결말:1814년의전황

4부:프랑스제국의몰락1813~1815
전쟁의배경-프로이센과러시아의프랑스에대한적대의식의기원
교전국-각국군대
발단-복수의시간
전투-독일해방전쟁과프랑스본토침공
어느군인의초상-영국기마포병대캐벌리머서대위
어느민간인의초상-영국외무상캐슬레이자작
사태의종결과정-워털루에지는해
나폴레옹전쟁과세계-예술로본나폴레옹시대
결론및이후의파장-영광의끝

연표
더읽어볼자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두얼굴의전쟁:전쟁의영웅과승리뒤에가려진
민초의삶을통해전쟁의참상을고발

나폴레옹전쟁은처음에는프랑스혁명을방위하는성격을띠었으나,차차영토확장을위한침략적인전쟁으로변해갔다.나폴레옹은이전쟁기간동안유럽여러나라와60회나되는싸움을벌이면서,자신이직접지휘한전투에서는지는법없이승승장구했다.이책은나폴레옹이라는전쟁영웅과그의원수들,그리고그밖의다른여러나라의정치지도자나군사지휘자들이이끈전쟁의소용돌이에휘말릴수밖에없었던군인,배우,종군악사,외교관,예술가등의생생한일지나회고록,또는미술작품을통해당시그들이겪은전쟁의참상과부조리함을고스란히고발하고있다.

스페인이프랑스에점령될무렵62세였던프란시스코고야(FranciscoGoya)는이후6년동안프랑스군이스페인에서자행한사건들에영감을받아최고의걸작을내놓게된다.고야는<전쟁의참화(DesastresdelaGuerra)>라는제목의판화82장에결코잊을수없는적나라한전쟁의참상을기록하고그것에관한그의솔직한시선을담았다.너무강렬해서마음에서좀처럼떠나지않는이판화들은전쟁이란극단적상황이인간의야만적본능을일깨웠을때,인간본성이과연어디까지타락할수있는가를파헤치고있다.고야는분명전쟁의영웅이나승리,영광스런전장의모습이아니라,그뒤에가려진전쟁의참혹함과부조리함을고발하고싶었던것이다.고야는무엇때문에사람이사람에게그토록비인간적으로구는장면들만그리느냐는하인의질문에“야만인은되지말자는얘기를사람들에게영원히남기고싶어서”라고대답했다고한다.

반도전쟁에서게릴라들이보여준잔인한행위의대부분은프랑스군의파괴행위가낳은자연스런결과로,점령군의약탈과무분별한파괴로인해도시와촌락이황폐화되는일이비일비재했다.프랑스점령군은게릴라를제압하기위해갈수록잔혹한수단을동원할수밖에없었고,학살과이에맞선학살이라는악순환이시작되었다.분노는분노를낳아,군대를따라다니는프랑스민간인들이학살당하면프랑스군이지역민들을총살하고그들의터전을불태우는보복이이어졌다.양측은모두추악한고문과살인행위를저질렀다.양측의동기가무엇이었건간에게릴라의전쟁은급속히피비린내나는폭력의악순환에빠져들었다.

반도전쟁에참가한프랑스장군들은점령한마을의자원을거덜내며가는곳마다예술품을훔치고,보화찾기에열중하면서도부끄러운줄을몰랐다.환멸에빠진프랑스일반병사들은“스페인전쟁은졸병들에게는죽음을,장교들에게는폐허를,장군들에게는한몫을의미했다”며지휘관들의탐욕에개탄의목소리를높였다.

이처럼전쟁의영웅과승리뒤에가려진끝없는파괴와학살,민중을침략자들에대한보복행위로내몬전쟁의잔혹함,전쟁의희생자가된평범한민중의고통스런삶과일반병사들의개탄의목소리가이책곳곳에담겨있다.


나폴레옹의유산:법앞에평등이라는혁명의원칙과더불어
재능에따른승진을보장하는능력주의원칙을계승하고,
행정,법률,교육,과학분야에서많은개혁실시

두번씩이나폐위를경험한나폴레옹은남대서양의고도세인트헬레나섬에유배되었고,두
번다시는유럽의평화를위협하지못한채1821년에그곳에서숨을거두었다.그는고작10년동안권좌를장악했을뿐인데도그사이프랑스와유럽전역에구석구석스며든그의유산은오늘날까지도깊고끈질긴지속력을발휘하고있다.

나폴레옹은천재였고,해박한지식과크고작은일들에대한비상한기억력을갖고있었다.그의타고난지능은포병대위에불과했던그가고작1년뒤23세에준장까지벼락출세할수있었던원동력이었다.26세에소장이된그는그로부터5년뒤정권을장악했고,35세에는황제가되었다.40세가될무렵,그는거의모든유럽을손에쥐고있었다.타의추종을불허하는군사적혜안을가진것외에도민간분야의행정,법률,교육,과학등에도조예가깊었던그는오늘날까지도나폴레옹시대에이뤄진많은개혁들이그대로이어질만큼상당한수준의지식을자랑했다.

그는유명한정교협약을통해일대종교개혁을단행하는한편,프랑스국내와제국의대부분에서민간및행정분야의개혁을실시함으로써폭주하던혁명에고삐를채우고,비효율을질서로대체했다.프랑스와독일의봉건제적원칙에기반한낡은법률체계는혁명기에쏟아져나온1만개의포고령과함께폐지되었고,그대신나폴레옹법전CodeNapoleon,또는프랑스민법전(CivilCode)이라불리는새로운체계로바뀌었다.그는정치면에서는제한된남성참정권과헌법을고수했고,경제면에서는국내관세를철폐한제도를그대로유지했다.교육면에서는국가가운영하는교육체계를세웠다.그는법앞에평등이라는혁명의원칙과더불어행정부의구성및재능에따른승진을보장하는능력주의원칙도그대로계승했다.하지만혁명기의여러정부들처럼입법부에게많은자유를주지않음으로써,결국제국이란독재로향할수밖에없었던것이다.

나폴레옹은탁월한군사적재능에힘입어혁명의원칙을전파할수있었고,스스로도‘혁명의군인’으로행세했다.그에게정복당한나라들은즉시혁명기와통령제정부시절,그리고황제즉위이후에실시된개혁들을도입했고,경우에따라서는강제로개혁이이뤄지기도했다.나폴레옹법전은멀리동쪽의바르샤바공국까지전파되기에이르렀는데,자유주의성향이강한알렉산드르1세는전쟁후에도법앞의평등을비롯한주요내용들을그대로놔두었다.그밖의이탈리아등지에서는나폴레옹의개혁이광범위하고지속적이며간혹심대하기까지한영향을끼쳤다.

나폴레옹이추진한개혁은대다수가그의정권아래서실리를챙기던중산층을위한것이었다.법적권리는경제적기회못지않게크게신장되었으며,산업의부양으로수백만프랑스시민들의생활수준이확실히높아졌다.이러한현상은자연스럽게정치의식을성장시켰고,보다넓은정치참여의욕구는이후1830년대의혁명을거치며수면으로떠올랐다.수많은점령지와정복지의부르주아들은나폴레옹이정치,경제양측면에서변화의긍정적인원동력이되어주리라고기대했다.민법전으로각계층간의평등이보장되고,봉건제도및구체제의소유권이행정개혁을통해폐지되는가운데귀족들의특권은군주제의승리와상관없이날이갈수록약화되었다.물론프랑스밖에서는법적권리의신장이반드시농민들의이익으로직결된것도아니었고그들의생활수준이크게나아진것도아니었지만,새로운평등의원칙덕분에어느정도근대사회진보의기회가싹트고미래의경제발전을위한초석이놓이게된것은부인할수없는사실이다.


‘나폴레옹시대’는군사적신기원못지않게문화양식과
상상력에까지정복자의힘이미친시기였다!

나폴레옹제국은프랑스혁명을전후로등장한갖가지예술사조를흡수하고활용했다.당연히이시대의예술에는신고전주의와초기낭만주의의매혹적이고도흥미로운결합에매료된제국의취향이반영되었다.

회화분야에서는자크-루이다비드와앙투안-장그로같은화가들이제국의장대한영광을작품속에투영했을뿐만아니라,정점에이른제국의정서까지도표현해냈다.음악분야에서는프란츠요제프하이든의엄격한고전양식에서감상적인선율의낭만주의로옮아가는변화가있었다.루트비히판베토벤은이같은변화를대표하는인물이었다.그는다른어떤작곡가보다음악계의변화를충실히보여준삶을살았다.평생열렬한공화주의자였던그는나폴레옹을흠모해교향곡3번<영웅(Eroica)>을작곡하기도했지만,나폴레옹의황제즉위소식이들려오자‘위대한이를기리며’로헌사를바꿔버렸다.나폴레옹시대의작곡가들은몇몇뛰어난군악을선보이기도했다.나폴레옹의군악대는피리와북이고작인옛방식에서벗어나현대적인오케스트라나다름없었다.전투가펼쳐질때마다관악기와어우러져전장에울려퍼진북100개의소리는병사들의사기진작에중요한역할을했다.

또한나폴레옹은루브르궁을개방해부르봉왕가의소장품부터자신의제1차이탈리아원정당시노획한전리품에이르는예술품들을대중이볼수있게했다.또통령과황제시절,나폴레옹은프랑스에서전례가없던건축사업들을벌였다.파리에서는개선문을필두로지금의증권거래소건물과리볼리가의아케이드,루브르궁의북쪽익벽(翼壁),방돔광장의전승기념탑등이새로들어섰고,마들렌성당이개축되었다.우리가보는오늘날의파리는상당부분이나폴레옹의머릿속에서만들어진것이라할수있다.

프랑스사회는나폴레옹황제즉위이후변화기를맞았다.혁명이전만해도대부분개인살롱을중심으로형성되던상류사회는황제의즉위초부터황후조제핀이나나폴레옹의여동생들이머무는궁전으로그무대를옮겼다.나폴레옹은이를통해파리의정치와유행에더큰영향력을발휘할수있었다.

패션은나폴레옹의취향에맞지않았던통령정부시기의자유분방함을거쳐더보수적으로변했다.여자들은고대그리스를동경해길고허리선이높은‘제국양식’의옷을입었다.남자들은외투와조끼,바지따위를다양하게조합해서입었다.현대남성복양식은실질적으로이시기에서출발한것이라고볼수있다.

역사상최초로외식이유행한것역시이무렵이었다.레스토랑들은문전성시를이루기시작했다.프랑스가낳은최초의요리명장브리야사바랭(Brillat-Savarin)과카렘(Careme)도이때이름을날렸다.특히카렘은요리를외교술의경지까지끌어올림으로써프랑스의위상을드높이려한황제의추천을받아탈레랑의전속요리사가되기도했다.

이처럼나폴레옹은극장,가구,법률,가톨릭교회를비롯한모든것에자신의자취를남겼다.‘나폴레옹시대’는군사적신기원못지않게문화양식과상상력에까지정복자의힘이미친시기로기억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