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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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지극히 개인적일 수도 있는 고통의 문제가 사회 속에서 고민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 내부의 깊은 속살을 드러내왔던 사회학자 엄기호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고통의 지층을 한 겹씩 들여다보면서 발견하고 성찰해나간 우리 시대 고통의 지질학을 보여주는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을 억눌러왔다. 고통은 부끄러운 것이고 고통을 말하는 것은 나약한 짓이라고 비난했기에 고통을 겪는 이들은 그것을 감추려고 했지 고통을 드러내며 이에 대한 언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고통을 겪는 이들이 고통이 없는 것은 ‘정상 상태’가 아니라고, 고통은 늘 상존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책의 1부에는 고통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찌 보면 우리의 일상에서 종종 접하게 되는, 자극적이랄 것 없는 모습들이다. 저자가 묘사하고 드러내는 이 고통의 풍경은 고통을 겪는 이들의 언어가 어떻게 응답을 기대하지 않고 응답을 할 수 없는지, 그리하여 곁을 파국으로 몰아가는지를 보여준다. 2부에서 살펴보는 지점은 고통의 사회학적 측면이다. 마지막 3부에서 짚어보는 지점은 이러한 사회에서 고통을 어떻게 다뤄내야 할지의 윤리적 문제다.
저자

엄기호

사회학자.『단속사회』,『교사도학교가두렵다』,『고통은나눌수있는가』,『유튜브는책을집어삼킬것인가』등을썼다.
새마을운동이한창이던시절에태어나가난한나라를일으켜세우는과학자가되는것말고다른꿈을꿔본적이없었다.하지만이과에서문과로‘개종’한후사회학과에들어가문화연구를공부했다.유학을준비하다가“떠나라”는명령을듣고한동안국제단체에서일하며전세계를돌아다녔다....

목차

책머리에
고통에대한이야기는어떻게만들어지는가

1부고통의지층들
고통의곁,그황량한풍경에대하여

1아파보니알겠더라,내가어떤사람인지:고통은자기자신을발견하게한다
2당신들은모른다,내억울함과외로움을:극심한고통은개인의내면과세계를파괴한다
3주님은제말이무슨뜻인지다아시죠:실존의위기를신이나동식물에기대는경우
4그건됐고요,그래서어떻게된겁니까:사회적해결을모색하며제도의언어에기대는경우
5다필요없어요,하지만뭐든붙잡고싶어요:고통을말끔하게설명할수있는마법의언어는없다
6아무리말해도말할수없는게있어요:말할수없는그불가능에맞서야한다
7나만외로운줄알았는데아픈사람은다외롭더라:고통이가져온외로움,그외로움이통한다

2부고통의사회학
고통을전시하고소비하는메커니즘에대하여

1더‘쎄게’말해야눈길을끈다:존재감을위기에빠뜨린성과사회의풍경
2도대체뭘어떻게믿고사랑을하나:존중을모르는사랑,친밀성의세계를무너뜨리다
3애걔,넌고작그거밖에못하냐:내가타인으로대체될지모른다는불안에대하여
4저자식,그래도재미는있대:타인의고통을재미삼고그것을전시하는이들
5아무리친해도신상이알려지는건끔찍해요:관종,‘정의’의이름으로신상털이카니발을벌이다
6억울한내사연에‘좋아요’는몇개나달렸나요:피해자를관종으로만드는플랫폼의시대
7결국자기를빼곤누구든혐오한다:고통을대결하는콜로세움이되어버린공론장의모습

3부고통의윤리학
고통의이야기를만들어내는곁에대하여

1고통에대해말할수있는자리는어디인가:고통의곁에선다는것에대하여
2고통의곁에도곁이필요하다:고통의곁에선사람을지키는법
3‘지금당장’에서‘지금여기’로나아가기:고통을매개하는간극과시야가필요하다
4세계를보좌하는글쓰기는가능할것인가:동원의언어를넘어,동행의언어를찾아서

참고문헌을대신해서
신중한읽기와쓰기를위하여
책말미에
고통과연대하는우회로를찾아서

출판사 서평

“이고통이진짜끝나긴할까요?”
몸이아픈,마음이힘든,헤어짐이슬픈,
이따위세상에서도무지못살겠는사람들…
안간힘을쓰며버티고있는이들과그곁을들여다보는
신중하면서도사려깊은이야기의세계

한국사회는오랫동안고통을이야기하는것을억눌러왔다.고통은부끄러운것이고고통을말하는것은나약한짓이라고비난했다.이때문에고통을겪는이들은그것을감추려고했지고통을드러내며이에대한언어를만들어내지못했다.고통을겪는이들은‘언어없음’의상황에서극심한고통에시달렸다.
그러나이제고통을겪는이들이고통이없는것은‘정상상태’가아니라고,고통은늘상존하는것이라고말하기시작했다.사람과사회를바라보는기초값이바뀌기시작했다는점에서고통에관한이야기가나오기시작하는것은좋은전환이다.이런이야기들이모여우리사회가고통을외면하고고통을겪는이를억압하거나사회적공간에서제거하는것이아니라언제어디서나있을수있는고통에대해듣고응답할준비를할수있기때문이다.
그런데지금우리는이러한상황을잘다뤄내고있는것일까.사랑과정의의이름으로,사회적으로존재하기위해자신의고통을전시하면서소비하고있는것은아닐까.고통을겪는이들뿐만아니라주변에서그들의곁을지키는이들조차함께무너져가고있는것은아닐까.이책은한국사회내부의깊은속살을드러내왔던사회학자엄기호가켜켜이쌓여있는고통의지층을한겹씩들여다보면서발견하고성찰해나간우리시대고통의지질학을보여주는저서다.


고통의지질학_고통을겪는사람들,그리고그곁의풍경에대하여
남편과의관계가어그러진선아는집단상담을받으면서흔들리는마음을다스리고있다.하지만남편의사업이망했다는사실을알게되면서다잡았던그의마음은무너져버린다.친정부모에게조차사실을말하지못한채그는혼자끙끙앓으면서아이들을건사하고일을하며일상을버텨내고있다.
젊은나이에갑작스레백혈병진단을받은승우는사람들이자신을문병하러찾아오는것이귀찮으면서도사람들이찾아오지않으면외롭고원망스러운양가감정을품고있다.그리스도교신앙이돈독한이였지만,그럼에도하필이면왜자기에게이런시련이닥쳤는지알길이없다며절망하고있다.
젊은시절집안을주도했을뿐만아니라자식들을잘키워냈고사회활동도왕성하게했던재희어머니에게는일흔을넘기면서온갖노인성질환이찾아들었다.육체적고통으로인해그는가족에게하소연과비난을반복하고있다.“너넨내가얼마나힘든지모른다”소리를입에달고살면서병원을전전한다.
대학교수이자독실한불교신자였던덕룡아버지는노년에사랑하는아내와의사별을겪은뒤주변사람들과의관계를정리했다.그들과이야기나누는게자신에게아무런의미가없었기때문이다.그러던덕룡아버지는동생을통해접하게된신흥종교에기대주문을외우며자신의고립감을떨쳐내고있다.
사랑하는이에게배신당한준석은실연뿐만아니라주변사람들의말에서도상처받았다.자신을위로하면서도문제의원인이‘순진한’그에게있다고하는사람들의말을믿을수없었기때문이다.그런그가손대기시작한것은식물이었다.그에게는말못하는식물이오히려사람보다정직하게느껴졌다.
영화
<공동정범>
에등장하는이충연의경우,자신의실존적고통을입밖에내어말하지않는다.그는고통의실존적측면과사회적측면을나눈뒤,후자를해결하기위해사회적으로발언할수있는명망가들과이야기하며자신이겪은참사를세상에이야기한다.주변사람들은그런그를차갑게바라보기도한다.

대안학교교사인태석은학생들을가르치는것이자신의천직이라고생각해왔다.그러나아무리노력해도학생들의질긴무기력을깨트릴수없었고자신의좌절감도사라지지않았다.그는이것이결국‘신자유주의’때문이라는결론에도달하지만,사람들은‘신자유주의전도사’가된태석과점점거리를둔다.




고통의언어학_고통과대면하고그것을말하는언어에대하여

이책의1부에는고통을겪는이들의이야기가펼쳐진다.어찌보면우리의일상에서종종접하게되는,자극적이랄것없는모습들이다.엄기호가묘사하고드러내는이고통의풍경은고통을겪는이들의언어가어떻게응답을기대하지않고응답을할수없는지,그리하여곁을파국으로몰아가는지를보여준다.자신의고통에갇힌이들은타인이알아들을수없는‘주문’을외운다.물론고통을겪는이에게는주문이필요하다.대부분의종교에‘주문’이있는이유는,그것이깨달음에이르기까지의지난한과정을견디게하는‘방편’이되어주기때문이다.그러나이주문이방편을넘어서서실체가되면‘곁’은걷잡을수없이파괴된다.잠시의고통을잊게해줄지모르지만결국정신을차리게하는것이아니라주문의노예가되게한다.고통에말할수없는지점이있다는사실을깨닫는것을방해한다.극심한고통을겪는이들의곁을지키는이들에게감사하게하는것이아니라그주문을함께하지않는다고비난하게만든다.

내면적언어나사회적언어에기대더라도고통의모든것을명료하게말할순없다.고통은그렇게하나의언어로‘봉합’되지않는다.고통을겪는이에게이는절망이다.어떻게말하더라도온전히그것을드러내지못한다는,타인을이해시킬수없다는사실에부딪히기때문이다.그렇다면고통은말할수없는것일까.고통에찬사람들은그무의미함으로인해울부짖을수밖에없다.그러나그것이모든언어의가능성을포기하라는말은아니다.모든언어가결국허무하기에시도조차포기해야한다는말이아니다.고통을통해서는세계의파국만이있고새로운구축은있을수없다는말이아니다.이런언어의가능성에대한파국적결론은‘주문’의기만과짝패를이룰뿐이다.엄기호는당사자가고통을명료하게말할수있다고하는기만을경계하되고통을말할필요가없고말할수있는것이하나도없다는장벽과도맞서싸워야한다고말한다.불가능에좌절하는것이아니라그불가능과대면하고싸움으로써이를기록하고나눌수있다는것이다.




고통의사회학_고통을소비하고전시하는메커니즘에대하여

이책의2부에서살펴보는지점은고통의사회학적측면이다.현재우리사회는오로지고통의비참함에만주목하고있다.그리고그비참의전시를통해서만사회의주목을받을수있다.그렇지않으면사회적으로잊힌존재가되어버린다.고통을겪으면서도존재감이전혀없는유령이되어이사회를배회하게된다.이유령들이죽었을때만오로지그존재를눈치채는잔인한사회다.그렇기에유령이되지않으려면고통의참담함과비참함을강조하고전시해야한다.고통을당하고서그것을보여주는사람으로서만겨우사회적으로가시화될수있다.이게이사회의정치이자경제가되었다.

더구나이것이사랑과정의의이름으로행해지고있다는것이더욱불길하다.사회적으로존재하기위해자기의고통을전시하며주문을외우는동안곁은빠르게파괴된다.대신고통의곁에선이에게아무것도아닌존재로가만히있어주기를기대한다.심지어이것은“비를맞는이에게가장좋은사람은같이비를맞는사람”이라는말로윤리화되고미학화되어있다.

이런미학과윤리학에서그곁에선이는그저‘현존’하는존재여야한다.현존이란그저눈앞에존재하는것을말한다.응답을기대하지않는말을들어야하고,응답을기대하지않고응답해야한다.고통을겪는이가고통을전시하는것을통해겨우유령을면하고그나마사회적으로존재할수있다면,그곁에선이는사랑과정의의이름으로그저유령으로만존재해야한다.현존은기쁨이아니라고통이된다.이렇게곁에현존을강요함으로써‘아직모든것이끝나지않았음’에서‘모든것이끝장남’이라는파국을맞이한다.

이파국에어떻게대처해야하는것일까?우리가‘사회’라는말로기대했던것은반대였다.고통을겪는이를지원하는것만큼이나중요한것이그곁을지키고있는사람을지원하는것이다.고통의곁에선이가감당할수있도록해야한다.만약버틸수없을때안전하게물러날수있어야한다.물러남에대해죄책감을가지지않도록고통을겪는이를돌볼수있는장치가있어야한다.곁에선이가‘독박’을쓰지않도록해야하며그의삶이파괴되지않도록해야한다.그게사회의역할이다.

그러나지금사회는어떠한가.타인의인격과존엄을파괴하고그비참을전시하는것을통해관심을끌려고하는‘관종(關種)’들이활개치는세상이아닌가.이들이사람들을발가벗김으로써세상을동물원으로만들면서신상털이카니발을벌이는시대가아닌가.이런일을더해질수록관종들의명망은더더욱올라가고,심지어피해자조차관종으로만드는선정적플랫폼이일상으로자리잡은사회가아닌가.

엄기호는이를로마시대의콜로세움에빗대어설명한다.한편에는끊임없이사람들을끌고와사자밥이되게하는노예상인,즉관종이있다.다른한편에는자신이살기위해다른사람의비참과고통을밀쳐내며자신의고통을드러내는검투사,즉고통을겪는이들이있다.그리고무엇보다도이를관람하는관객들이있다.이들이야말로콜로세움을유지하고지속시키는존재들이다.이들은팝콘을들고와가장안전한자리에서이모든것을구경하고소비한다.때로는값싼동정을보내지만,이들의관심은곧새로운구경거리로넘어간다.이시대의공론장은해상도높은언어를통해세상을좀더세밀하게읽고나아가게하는것이아니라이렇게뒤바뀌어버린것이다.

이콜로세움을지배하는것은인간에대한혐오다.모두가모두를혐오하는이악순환에서벗어날수있을까.그길은하나밖에없다.콜로세움에서물러나는것이다.관종의먹이가되지않고자신을보호하기위해,객석에있으면서고통의당사자들이펼치는참혹함을소비하지않기위해,그러면서도자기자신과인간에대한연민을지키기위해‘사라짐’을택하는것이다.




고통의윤리학_고통의이야기를만들어내는곁에대하여

마지막3부에서짚어보는지점은이러한사회에서고통을어떻게다뤄내야할지의윤리적문제다.이때필자가주목하는것은고통을겪는당사자가아니라그들의옆에있는고통의‘곁’이다.이상적으로말한다면곁의역할은고통을겪는이가자기고통에서빠져나와그곁에설수있도록도와주는것이다.고통을겪는이는대체로바깥은붕괴하고자기에게함몰되어있는상태다.이러한당사자에게필요한것은고통을매개하는간극과시야다.지금당장자신의고통을타인과소통하겠다는강박에서벗어날때비로소자신을돌아볼수있는시야가생긴다.또한자신의고통을말할수없다는그외로움을통해서비로소타인과소통할수있게된다.

그런데고통을겪는이에게곁이존재한다면,그것은희망의근거가된다.이곁의존재를보며고통을겪는이는드문드문주문에서벗어나자기에게돌아갈자리가있고그자리로돌아가기위한언어를만들어야한다고생각하게된다.비록그것이산발적인찰나일지라도말이다.일이잘진행된다면곁이라는존재를통해자기가그함몰된구덩이에서나와스스로자기의곁에설수있게된다.

이를위해서는말할수없는고통을전시하고소비하는것이아니라고통의곁이말을할수있어야한다.사랑과정의의이름으로곁의현존을착취하고소비하지말아야한다.고통의곁이이야기를듣는자리가아니라바로고통에관한이야기가만들어지는자리라는것을알아차려야한다.언어가파괴되는것이아니라필요하고또만들어지는곳이바로이자리다.또한고통이머무는‘그라운드제로’의자리옆에있는고통의곁에게도또다른곁이필요하다.그럴때고통의곁에있는이는고통받는이의옆에서기약없는희망을포기하지않을수있다.

마지막으로필자가묻는지점은고통의콜로세움이펼쳐지는세상에서그것을드러내는윤리적방법에대한것이다.굳건한콜로세움의메커니즘을경계하며그자리에서물러나는것,그렇게사라져버리는것은과연정당한지되묻는것이다.엄기호는타인의주목을끌기위한경쟁과인간에대한혐오에서벗어나기위해선택한‘사라짐의기술’을대체해야할것은세상을보좌하기위해‘신중하게자신을드러내는기술’이어야한다고말한다.그리고그것이보호받을수있는사회를만드는것이어야한다고말한다.이것이지극히개인적일수도있는‘고통’의문제가사회속에서고민되어야하는이유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