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회주의자 열전 : 새로운 세계를 꿈꾼 인간, 그들의 삶과 생각을 다시 찾아서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 : 새로운 세계를 꿈꾼 인간, 그들의 삶과 생각을 다시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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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가면 갈수록 막다른 골목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분위기는 국내외에서 모두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위기의 시대에 100여 년 전 또 다른 위기의 시대를 겪으며 배태한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사상적 유산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한번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대안적 근대의 선구자들이 우리가 지금 안고 있는 문제를 두고 고민한 만큼, 우리도 이들의 고민을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_머리말 중에서

저자

박노자

저자:박노자
소련의레닌그라드(현재의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태어나자랐고,본명은‘블라디미르티호노프’다.2001년귀화하여한국인이되었다.레닌그라드대학극동사학과에서조선사를전공했고,모스크바대학에서고대가야사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노르웨이오슬로대학에서한국학과동아시아학을가르치고있다.
한국사회에대한비판적인칼럼들을묶은『당신들의대한민국』으로주목받았으며,『주식회사대한민국』『비굴의시대』『당신을위한국가는없다』『전환의시대』등은이연장선상의저작이다.『거꾸로보는고대사』『우리가몰랐던동아시아』『우승열패의신화』『러시아혁명사강의』등을통해역사연구자로서의작업도꾸준히이어가고있다.

목차

머리말_사회주의운동,그‘선구’의의미를되새기며

1강신남철_식민지조선의제국대학에출현한주체의철학자
2강박치우_파시즘의기원을찾아나선이론가이자비운의빨치산
3강임화_한국적근대의근원을모색한유기적지식인
4강김명식_식민지시대최고의명필,한국적좌파의토대를마련하다
5강남만춘과김남겸_조선과러시아의경계에서사회주의를꿈꾼디아스포라들
6강최성우와양명_모스크바에서조국의현실을바라본급진파조선인들
7강한위건_중국공산당의노선을파고들어활약한이념형운동가
8강허정숙_붉은페미니즘을선도한조선의엘리트신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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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조선의지식인사회,그중심에있던사회주의자들
조선의사회주의자로필자가가장먼저주목한인물은경성제대철학과를졸업한뒤《동아일보》학술담당기자로일하면서연구자생활을이어가다가모교에서교수를지낸철학자신남철(申南澈,1907~1958)이다.일제강점기의사회주의역사를살펴볼때,운동으로서의역사뿐만아니라사상으로서의역사도함께짚어봐야한다는점에서신남철을우선살펴보았다.그는해외파의영향을받지않은채조선에서원전을읽고마르크스주의를받아들인국내파로서주목할만한인물이다.
경성제대는일제에의해만들어진,식민주의이론을생산하는기관이었다.일본의좌파지식인들에게식민지대학의교수직은마음편치않은자리였다.그럼에도본국과의거리감때문인지특히경성제대철학과는일본학계와견주어보더라도리버럴한분위기였다.이곳의교수였던사회주의자미야케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는조선의노동운동가이재유를교수관사지하토굴에숨겨주었다가발각되는바람에감옥생활을하기도했다.신남철은바로그의제자로마르크스의저작을독일어원전으로배우면서19세기의유럽문화까지폭넓게학습한,세계성을바탕으로조선의문제를고민한연구자다.
그는집단적투쟁을벌일수있는개성적이고실천적인개인을모색하면서,동시에관념주의자가전체주의에이용될수있는측면을잘지적한이성의철학자였다.또한주변부국가의인텔리로서변혁운동에한발들이게된자신을규명해보려는시도였는지,세계체제의주변부에혁명전위가만들어지는상황을왕양명의지행일치철학과결부해설명하기도했다.신남철은해방이후월북해김일성종합대학철학과교수로북한철학계의초기기틀을마련했으나,주류에서밀려난뒤병사한다.남한에서는월북때문에,북한에서는주류에서밀려났기에,서서히잊히며재조명하기어려웠던안타까운인물이다.
경성제대철학과를거치며사회주의자가된또한사람이있으니,그는박치우(朴致祐,1909~1949)다.신남철이연구자로자리매김했다면,박치우는이론가로서의면모를보여주면서도현실에적극개입하기도한인물이다.잠시숭의실업전문학교에서교수로학생들을가르치지만,학교가신사참배를거부하며자진폐교하자그는《조선일보》사회부기자로일하면서다양한논의를벌여나갔다.해방뒤에는박헌영과뜻을같이하며활동하다가월북한뒤빨치산양성기관인강동정치학원에서정치부원장을지냈다.그러다가그스스로빨치산이되어남한으로내려왔고,결국태백산지구전투에서사살된다.
이처럼극적인삶을살아간박치우는개념사정리가돋보이는철학자였다.고대그리스의자유개념에서부터부르주아의자유주의를거쳐이를넘어서는새로운자유와개인을모색하는데까지나아가는그의글을보면,그의사유가과거를아우르면서도현재적이고세부를들여다보면서도폭넓었음을여실히알수있다.또한일본이독일,이탈리아와함께전세계를제패하기위한침략을서슴지않던상황에서파시즘의뿌리를탁월하게분석해낸이론가이기도하다.
한편이책에서다룬인물가운데가장잘알려진이는바로임화(林和,1908~1953)일것이다.혁명적낭만시인이자유기적문예를주창한이론가임화는민족문학과계급문학이라는이중의과제를고민한지식인이다.다른한편으로는조선사회주의운동사의산증인이었으나일제말기에는소극적으로나마부역을했고,미제의고용간첩이었다는누명을쓰면서북한에서숙청된비극의주인공이기도하다.
필자는임화가당대의주류신화에도전하며보여준방법론을눈여겨본다.주류세력들이즐겨쓰던‘객관성’‘자유’‘순수예술’같은개념들을역사적으로맥락화하여그이면을드러내고,그것이왜주류세력의신화인지설명해내는지점에주목해본것이다.이는필자가모든담론가운데계급적의제가내재되어있다고보면서그주관성을들춰내는임화의방법론이지금도우리에게필요하다고보았기때문이다.
제주의양반가출신으로식민지시대최고의명필로불렸지만우리에게는잊힌사회주의자김명식(金明植,1890~1943)은그야말로달필에다가한국적좌파의토대를마련한인물중하나다.그는지적인압축성장의시기를살아가던조선사회주의자1세대들의도약을대표적으로보여주는인물이다.즉그는양반가의자제로전근대적풍토에서성장했으며일본유학을거치면서급진적근대주의자의면모를보이다가사회주의자로까지나아간다.나라를잘다스려백성을편하게하려는선비로서의뜻을품은사람이면서동시에사회주의자로서민족문제와근대문제를함께고민하는인물이라할수있다.
사회주의자로서그는민족이근대자본주의의산물임을직시하면서이를조선에대입해보려했다.그런과정에서당대민족주의의거두였던이광수와거침없는논쟁을벌이기도하고,마르크스주의적인민족주의비판론을대중화한다.또한식민치하에서명실상부한자본주의의발전이불가능하다는점을알리면서,파시즘의발생과정을비롯해그과정에서주변화한중산계층과금융자본의역할,근대자본주의의내재적진화논리와파시즘사이의관계도정밀히연구한다.그의존재는오랫동안남과북에서망각되었다.하지만식민치하에서그의글을읽은이들이차후남북을이끄는지식인집단의일부가되었으며,그가닦아놓은한국적좌파의명맥은초기의북한을비롯해남한에도가녀리게나마영향을미쳤음을기억해야할것이다.

소수자로서세계의중심에뛰어들어조국을고민했던이들
이책이조명한사회주의자들가운데남만춘(南萬春,1892~1938)과김만겸(金萬謙,1886~1938)은유독많이가려져있던인물들이다.이들은재러조선인2세출신,즉디아스포라로사회주의활동의세계적중심지였던러시아와자신의조국사이에서활동했다.러시아에서태어나고자란이들은러시아에서는소수자지식인이었고조선에서는조선인활동가였다.
사실세계체제의주변부에서새로운사상을전파하고유포하는이들의상당수가이러한접경인들이었다.조선에서는남만춘과김만겸같은디아스포라들이급진화되어서볼셰비키에입당하고조선사회주의운동에도이바지한것이다.이들은러시아와조선을오가고,조선에서러시아로망명한사회주의자들과교유하며보다넓은시야로조선사회를바라보는이론을만들어냈다.특히최초의마르크스주의적조선근대사론인『압박받는고려』를통해조선의좌파에게영향을미친남만춘의기여는눈여겨볼만하다.
한국근현대사회사연구의선구자로서러시아현지에서활약했던최성우(崔聖禹,1898~1937)와양명(梁明,1902~?)역시주목해볼만하다.최성우는남만춘,김만겸과마찬가지로재러조선인2세이면서코민테른의중심에서활동한인물이고,양명은중국유학을거쳤다가조선공산당에서활동한뒤상해와모스크바를무대로활약한인물이다.중앙의이론적인틀로주변부를바라보고주변부의상황을중앙에전달하는중재자였다고할수있다.
이들두인물은특히이론가로서주목할만한데,이들의몸은머나먼타국에있었지만이들의식민지시대조선에대한관찰은상당히치밀했다.급진파사회주의자로서밑에서의움직임에촉각을곤두세우며폭동과소요를비롯해조선민중들이들고일어나는사건들에하나하나관심을기울인것이다.운동가로서민중의흐름을열심히추적하며이를바탕으로이론을만들어낸이들이다.
한편한위건(韓偉健,1896~1937)은중국공산당에서활약을한것으로평가받는인물이다.그는경성의학전문학교학생으로3·1운동에참여했다가상해로피신했으며,이후도쿄로유학하여와세다대정치경제과에다녔다.급진적민족주의와사회주의사이에서동요하던그는유학에서돌아와《동아일보》의기자생활을하면서동시에조선공산당에입당해사회주의자로활동을벌인다.하지만1928년지하조선공산당이무너지면서일제의검거를피해야했기에중국으로망명한다.
그렇게중국으로거처를옮긴한위건은중국공산당에가입해상당히중요한직책을맡으며활동하는데,당시중국공산당의공식적인영도권을쥐고있던왕밍(王明)의노선을비판한것을계기로주목받는다.이후마오쩌둥은자신의전집에서실사구시한사람,빈이야기를좋아하지않는사람,유물론적·변증법적혁명관의소유자로한위건을묘사하기도했다.조선,일본,중국에서모두살아본노련한운동가로서그의급진적대중노선은중국공산당에여파를드리운것이다.
이책에서다룬마지막인물은붉은페미니즘을선도한조선의엘리트여성허정숙(許貞淑,1908~1991)이다.조선희의소설『세여자』를통해대중적으로알려지기도한그녀는일본,중국,미국등다양한나라를돌아보았고,일본어,중국어,영어,러시아어까지구사할줄알았던보기드문여성이었다.함경도부터제주도까지전국각지를돌아다니며연설하는운동가였으며,중국으로망명해서는조선의용대로활동하며여전사이자정치지도자로활약한다.그리고당대의수많은신여성들에게드리워져있던가십의회오리바람에서줄곧중심에있던인물이기도하다.
조선사회의최전선에서있던그녀가월북한뒤의행보에대해서는아쉬움이남을지모르겠다.1920~30년대에급진적페미니스트로활동한허정숙이김일성이라는최고의가부장과타협했기때문이다.하지만필자는이를힘센이와힘약한이의동맹에가까웠다고평한다.급진페미니스트였던그녀가체제에편입되어서만든젠더정책의급진성또한다시금주목해볼만한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