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의 계보학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든 서사들)

애국의 계보학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든 서사들)

$20.00
Description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을 엮어
젠더화된 민족주의의 계보를 해부한 독창적 몽타주
20세기 한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알고 싶다면, 단연 첫 번째 목록에 오를 책이다. 이 책은 신채호부터 김대중까지, 한국의 건국 원리로서 젠더화된 민족주의의 계보를 추적한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를 이 책만큼 설득적으로 분석한 책은 드물 것이다. 글쓰기의 방법론과 관점은 매혹적이고, 내용은 지성과 흥미가 넘친다.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통찰력이 힘차다. _정희진(〈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여성학 박사)

이 책은 대한민국의 근대화 서사를 해부하는 것이 왜 남성성 비판이자 가족 로망스 분석일 수밖에 없는지를 예리한 직관으로 논증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그 서사가 남성성 신화의 단순한 반복이기보다 창조적 변용이었음을 알게 된다. 오늘 한국 사회가 그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이 책은 생생한 현재성을 지닌다. _박권일(미디어사회학자, 『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는 한국 사회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오랫동안 회자되어온 레토릭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인가? 이는 곧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최근 불거진 ‘국가 정통성’ 논란은 이 질문에 대한 익숙한 변주일 터. 반일 대 친일, 진보 대 보수와 같은 통상적 관점에 일말의 의구심을 품었던 이라면, 실라 미요시 야거가 펼쳐 보이는 애국의 계보도는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야거는 개화기부터 현대까지의 특정 텍스트를 골라낸 뒤 그것이 어떤 서사로 구축되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새롭게 한국 근현대사의 내적 논리를 읽어낸다. 그녀는 이 작업을 위한 방법론으로 발터 벤야민의 이론을 채택한다. “수수께끼 같은 형식을 활용하여 충격을 주고 이를 통해 생각을 움직이게 만드는 그림 퍼즐”이라 할 수 있는 몽타주처럼, 여러 텍스트들을 찾아내 그것들을 병치함으로써 그들 간의 연관성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는 “작은 개별적 순간의 분석 속에서 전체 사건의 결정체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통 역사학과는 사뭇 다른 방법론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강렬한 통찰을 이끌어낸다.
야거는 흔히 적대적 이분법으로 나뉘었던 관점들의 내적 논리가 기실 얼마나 유사한지를 섬세하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젠더’라는 필터로 한국사를 바라볼 때 새로이 조명할 수 있는 지점을 보여준다. 가령 대표적인 항일 인사 중 한 사람인 신채호가 바라 마지않으며 구축하려 했던 것은 한껏 ‘무력’을 갖춘 국가였으며 그가 되살리려 했던 전통은 영웅들이 강하게 칼을 들던 과거였다. 일제강점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야거는 이순신을 강력하게 내세운 박정희가 바로 신채호의 계승자임을 넌지시 지적한 뒤 그의 서사를 되짚어본다. 사상적으로는 대척된 듯 보이지만 이들의 서사가 닮은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은 여성 또한 빗겨가지 않는다. 야거는 이광수의 작품들을 분석하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열녀’와 ‘효녀’가 근대로 넘어오면서 ‘애국부인’으로 창조적으로 대체되었음을 논증한다. 과거와 견주어보면 마음을 바치는 대상이 바뀌었을 뿐 신여성조차 다시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되곤 했던 것이다. 저자의 시선은 1980년대의 운동권,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그리고 김대중에게까지 가닿으면서, 대한민국이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주창하며 만들어낸 서사의 논리들을 하나하나 파헤친다.
이 독특한 저작은 야거가 샤머니즘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6월항쟁을 목도한 뒤 자신의 연구 방향을 틀면서 태동되었다. ‘외부자’이자 ‘연구자’로서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볼 때 불거져 나온 질문들을 해명할 기원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녀는 이 저작을 기점으로 인류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한국 전문가로 자리매김한다. 한국에서는 야거가 젊은 시절 버락 오바마의 연인이었던 점이 기사화되면서 처음 알려졌지만, 한국사에 대한 명민한 통찰력을 선보이는 저자로서 다시금 그녀를 소개한다.
저자

실라미요시야거

저자:실라미요시야거SheilaMiyoshiJager
미국오벌린대학동아시아학교수.시카고대학에서인류학박사논문을준비하며샤머니즘을연구하기위해한국을방문했다가,6월항쟁을목도한뒤연구의방향을틀어논문을쓰고『애국의계보학』을출간했다.이를계기로인류학에서역사학으로전공을바꾸었으며,한국을비롯한동아시아연구자로자리매김했다.역사,젠더,민족주의라는세축을중심으로대한민국이라는국가를건설하는데바탕이된서사들을탐색한이책은역사적순간들을엮어해석해낸독창적몽타주로주목받았고,한국학연구자들의필독서로자리잡았다.이후에지은책으로는해방기부터현대까지의한반도역사를다룬『형제들의전쟁:남북한의끝나지않은갈등』(2013),급변하는세계체제의한가운데놓인한국의여명기를탐색한『또다른위대한게임:한국의개항과현대동아시아의탄생』(2023)이있다.다큐멘터리<장진호전투>와<코리아:끝나지않은전쟁>의자문을맡았으며,《뉴욕타임스》,《보스턴글로브》등에칼럼과서평을쓰고있다.

시리즈기획·감수:정희진
여성학·평화학연구자.한국현대사를포스트콜로니얼관점에서공부하고있으며,젠더,폭력,언어에관한다수의저서가있다.

역자:조고은
국어국문학을공부한뒤영어와일본어를우리말로옮기는일을하고있다.지금보다더좋은세상을만들기위해인권교육센터‘들’에서활동하고있다.옮긴책으로는『주디스버틀러』,『도나헤러웨이』,『내일의섹스는다시좋아질것이다』,『여기부터성희롱』등이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
서론민족주의와젠더의시선으로본한국사
1부근대정체성
·1장남성성의회복:신채호
·2장감정의탐구:이광수
2부여성
·3장국가에대한사랑의기호
·4장현모양처,애국부인
3부남성
·5장박정희와농업의역군들
·6장학생들,그리고역사의구원
·7장기념비적역사
에필로그김대중의승리
감사의말│옮긴이의말│참고문헌│사진출처│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신채호부터김대중까지
대한민국의정체성에관한서사를낱낱이해부하다

개화기부터일제강점기까지의한국사가운데서저자가골라낸두인물은신채호와이광수다.당대의지식인들은‘조선’을딛고넘어서야만하는과제로인식했다.조선에문제가있었기에중국과사대관계를맺었고이땅이일본의식민지가되었으며근대국가로나아가는데어려움을겪었다는것이다.이에신채호가선택한길은,조선시대의양반을문약함의상징으로규정한뒤이들의존재를지우면서한국사가운데서강한무력의시대와인물을조명하는것이었다.이러한역사인식의일환으로그는을지문덕,이순신,최영등의전기를집필한다.이와같은과거에대한평가와재해석에이어신채호는동시대의국민들에게나약함을떨쳐내고강한군사력을함양할것을요청한다.

반면에이광수가나아간길은,신채호에비하면좀더다층적이다.신채호가부정적으로평가했던나약한양반의모습은,이광수의소설에서식민지시대의나약한지식인남성의모습으로재현된다.내면이갈등으로가득차있으면서결단하지못하는남성들과달리,이광수가그려내는여성들은고난으로멍들지만‘개화’하여새로운국가와사회를건설하는중심에서기도한다.가령『무정』의주인공형식은자살하려는자신의약혼자영채를외면하고서새로운여성선형과의유학을꿈꾸는반면,아버지의사업실패로인해기생으로살아가던영채는주변여성의도움을받아목숨을구한뒤자기삶의의미를자각하고나라를위해헌신할것을다짐한다.저자는이를그저긍정적으로만바라보지는않는다.‘사랑’이라는사적인삶이‘국가’와‘민족’을위한삶으로편입되는것을포착한것이다.즉이광수의여성인물들이보여주는선택은,서구의근대적개인주의에준하는것이아니라공적인것에대한투신으로드러나기에집단주의적이다.또한이렇게사적영역과공적영역이통합됨으로써국가와민족을위한삶은설득력있는서사적힘을갖게된다.

한편해방이후의상황을살펴보기위해필자의시선이머문곳은박정희와운동권학생들,그리고전쟁기념관이다.앞서언급했듯이,저자는그목적은다를지언정근대화에관한원칙에있어서는신채호와박정희가서로닮아있음을조명한다.신채호가조선의양반문화를의식적으로폄하했듯이,박정희역시새마을운동의사례에서알수있듯농촌에내재되어있던전통문화를지양한다.그러면서신채호와마찬가지로일본의침략에맞서싸운이순신이갖춘용맹성을부활시켜야한다고주장한다.이는북한으로부터나라를지키겠다는결의이자박정희에반하는민주화세력에대항하는담론으로자리매김한다.
그렇다면군부독재시대를거치면서대항담론을만들어냈던1980년대의운동권학생들은어떠했을까?저자는이들이이광수의서사에서엿보였던유약한남성성,그리고군부독재의잘못된아버지를넘어서려했다고본다.그러면서만나게된주체사상은급진성을품고있는듯보임에도여전히혈연중심적이며가부장적이다.혁명가의이상적모델이서구에서는권위적인부친을살해하는아들이라면,한국에서는아버지에게효성을다하는아들이된것이다.당대의운동권학생들이강인하면서도자애롭게묘사되는김일성에게왜끌렸는지,그러면서도서구로부터의‘오염’에민감하게반응하며여성들을이에저항하는주체로만들려했는지설명할수있는논리이다.또한이들의서사속에서남북분단은남녀의이별로표현되는바,이는북한을남한의적으로묘사해온오랜냉전수사에대한문제제기였으나이광수의여성인물들과마찬가지로사적인사랑을국가의문제로환치한것이기도했다.

한편군부독재가물러간시대에대한민국정부가자신의과거를어떻게바라보았는지를집약적으로엿볼수있는공식기념물로,야거는1994년에개관한전쟁기념관을살펴본다.전쟁과애국전사에관한전시에서그녀는이계보의불안정성을읽어낸다.달리말하면이불안정성이잠재되어있기에기념물에서는더더욱과거사를영웅적으로부각시킨다는것이다.또한군대와국민을단단히묶어설명함으로써무력의증대와국가의부강이자연스럽게연결된다.이는북한에대한남한의우월성을강조하는서사로이어지는데,약해보이는아우는북한으로,그러한아우를끌어안은형은남한으로묘사한<형제의상>조각상을통해화해의가능성을보여주면서도남한이영광스러운‘남성적’과거를정당하게계승했음을드러낸다고평한다.이때야거는질문한다.“군사력에대한기념비는과거군사정권의폭력적통치를상기시키는대상으로읽힐까,아니면민주주의를향한평화로운이행과포용의상징으로보일까?”그녀는<형제의상>에서상징적으로엿볼수있듯,화해의제안조차도결국전쟁에대한기념을통해표현되는아이러니를말하고싶은듯하다.
이와같이한국근현대사의국면들을살펴본뒤,에필로그에서는간략하게김대중의남성성에대한분석을시도한다.이분석은상당히독특한데,야거는과거한국의남성성이무력을숭상하는남성성(신채호)이거나무력한남성성(이광수)등이었다면,김대중의남성성은‘기독교적용서’에기반한것이라고보고있다.적을쓰러뜨리기위해서가아니라적을용서하기위해몇번이고일어나는김대중의남성성,이것은과거한국이경유해온남성성의계보와는차이가있다는것이다.다만이차이는과거남성성을부인하는것이라기보다는이를참조하고변용하여새롭게만들어낸것이라고저자는말한다.

이러한분석에서단적으로엿보이는것은,저자가과거와현재의관계를오직이행의개념으로만이해하려는역사이론에반기를든다는점이다.즉역사진보의신화를넘어서,이에대한비판적전통을되살림으로써그녀는더욱풍요로우면서도자유롭게역사를해석해낸다.“역사가의과제는텍스트,사건,이미지의병치로드러나는여러겹의의미의층위를벗겨내고,그사이에존재하는무한하고예상치못하거나숨어있는연결을(재)포착하는것이다.”이런맥락에서실라미요시야거는스스로가한국어판서문에밝혔듯이과거뿐아니라현재와미래까지연구하는존재다.이독특한역사학자의시선을책을통해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