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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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의 세계일주 여행기
지금부터 똑 90년 전 이 땅의 여성 가운데 처음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돈 여성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화가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20개월에 걸쳐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여행기를 남겼다. 일제강점기라는 척박했던 시절에 그렇게 오랫동안 세계를 주유한 것도 놀랍거니와, 그 궤적이 완벽히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하지만 그의 여행기는 여지껏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여러 해에 걸쳐 여기저기 매체에 각기 다른 형식으로 발표되어 접근하기도 읽기도 불편해서일 것이다. 이 책은 나혜석이 남긴 21편의 여행기를 시기별, 나라별로 재구성 복원한 것이다. 나혜석의 여행기는 근대적 개인으로 탈각해 가는 신여성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90년 전의 기록이지만 최근의 여행기라 하여도 될 만큼 모던하고 생생하다.
저자

나혜석

정월나혜석(晶月羅蕙錫,1896∼1948)은1896년경기도수원에서부나기정과모최시의사이에서5남매중넷째,딸로는둘째로태어난다.부나기정은시흥군수와용인군수를지낸개화관료였다.나혜석의초명은아지(兒只)였고,진명여학교입학시명순(明順)으로불렸으나,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졸업때는혜석으로개명한다.1913년3월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최우등으로졸업하고,둘째오빠경석의권유로일본으로유학하여도쿄시립여자미술학교서양화부선과보통과1학년에입학한다.

1914년12월도쿄조선인유학생잡지[학지광]제3호에최초의글「이상적부인」을발표하고,오빠경석의친구인최승구와연애관계를맺는다.1915년아버지의결혼강요로여주공립보통학교교원으로1년간근무하여학비를마련하고,11월복학하면서고등사법과1학년으로전입했으나제대로다니지못한다.12월아버지가사망하고,애인최승구는결핵에걸려귀국하여요양을한다.1916년최승구가사망한뒤오빠경석의강력한권유로김우영과교제를시작한다.1918년3월[여자계]제2호에나혜석의대표작이자문학사적가치를지닌단편소설「경희」를발표하고,'H.S.'라는필명으로시「광(光)」을발표한다.사립여자미술학교를졸업하고,4월에귀국하여모교인진명여학교에서교편을잡았으나건강이안좋아그만두고,집에서그림공부를한다.9월[여자계]제3호에『회생한손녀에게」를발표한다.

1919년3월박인덕한신준려한황애시덕한김마리아등과3한1운동에여학생참가를의논하고,개성과평양으로가서자금모금과만세운동확산을위해이정자한박충애와만나의논한다.이화학당학생들이만세를부른사건으로체포되어5개월간옥고를치른후풀려난다.1920년김우영과결혼하고그와함께전남고흥군에있는최승구의묘지에찾아가비석을세우고돌아온다.1921년임신9개월의몸으로경성일보사내청각에서유화개인전람회를연다.4월첫딸을낳고,7월[신가정]창간호에「규원」을발표한다.9월만주안동현부영사로부임하는남편을따라만주로이주하고,1922년3월여자야학설립을주도한다.6월조선총독부주최제1회조선미술전람회유채수채화분야에출품한「봄」,「농가」가입선한다.

1923년1월첫딸을임신하여낳고돌이될때까지의심리적·육체적변화를솔직히기록한「모(母)된감상기」를발표한다.6월제2회조선미술전람회에「봉황성의남문」이4등,「봉황산」이입선한다.이후해마다조선미술전람회에유화를출품하여입선하며,1926년제5회조선미술전람회에「천후궁(天后宮)」이특선,「지나정(支那町)」이입선한다.1926년4월[조선문단]에『원한』을발표한다.

1927년만주안동현살림을정리하고귀국하여동래시집에서지내다가,6월남편과함께구미여행길에오른다.시베리아횡단열차를타고모스크바를거쳐파리에도착한다.스위스한벨기에한네덜란드등을여행하고,법률공부를위해남편이베를린으로간사이파리에서야수파화가인비시에르의화실에다니면서그림공부를한다.10월천도교도령(道令)으로파리에온최린을만나예술을논하고여행을하는과정에서연애관계를맺는다.1929년귀국하여9월수원에서'구미사생화전람회'라는제목으로전시회를연다.1930년김우영이서울에서변호사사무실을열었으나경제적으로어려웠고,파리시절최린과의연애에관한소문이나서남편과의관계가악화되고결국은이혼한다.

이후나혜석은실의를딛고그림작업에몰두하여계속조선미술전람회에출품해서좋은평가를얻는다.1932년금강산해금강에서제13회제국미술원전람회에출품하기위해그림을그리다가불의의화재로10여점밖에건지지못해충격을크게받는다.1933년생계와그림활동을위해서울종로구수송동에'여자미술학사'를열고운영한다.1934년김우영과만나연애하고결혼하고이혼하기까지의개인적인생활과심경을솔직하게서술한『이혼고백장』([삼천리],1934.8∼9)을발표한다.이글에서여성에게일방적으로강요되는정조관념을비판함으로써사회적논란을불러일으켰다.

그뒤사회의냉대로점점소외되었다.1935년생활비를벌기위해전시회를열었지만주목받지못했다.수덕사·해인사등을전전하며유랑생활에들어가정확한행적을알수없다.1946년서울자혜병원에서행려병자로쓸쓸히인생을마감했다.

조선최초의여성서양화가이자문인,언론인으로파격적인작품과사회비판적주장을통해봉건적제도와인습이라는금기에도전했다.다양한예술분야에서기념비적인작품들을남기며가부장제타파와여성의식화에주춧돌을놓았다.

목차

소비에트러시아를가다9
파리에서스위스로45
서양예술과나체미:벨기에와네덜란드65
아아,자유의파리가그리워77
베를린의그새벽113
이탈리아미술을찾아125
도버해협을건너다157
정열의스페인행171
대서양을건너미국으로187
태평양물결이뱃머리를치다215

출판사 서평

글과그림으로복원한조선여성의첫세계일주

나혜석은신여성을상징하는인물이다.이땅최초의여성동경유학생이자서양화가다.김명순과선후를다투는최초의여성소설가이기도하다.
신여성들에게세상은거대한벽이었다.식민지체제,봉건사상,남성중심주의라는억압적질서는숨쉬기조차버거웠다.선각자로서의자의식이클수록아픔은배가되었다.김명순은정신이상자가되어,윤심덕은자살로,나혜석은행려병자로삶을마감했다.
‘탐험하는자가없으면그길은영원히못갈것’이라며사회를바꾸려했던나혜석은첫사랑을병마로떠나보낸뒤,‘자기의예술을살리고생활의안정을위하여’변호사김우영과결혼한다.하지만사람이되고예술가가되고싶었던그의바람은여전히신기루일뿐이었다.
그러던차에꿈도꾸어보기어려운세계일주여행의기회가찾아왔다.남편의포상휴가덕이었다.젖먹이를포함한세아이가있었지만그는‘자신을위하여,자식을위하여’떠나기로결정한다.
한달여간시베리아를횡단하는것으로여정은시작된다.파리에1년2개월머물면서유럽각지를여행한다.이어서대서양을건너미국각지를돌아본다.마지막으로하와이를거쳐태평양을횡단하는것으로1년9개월에이르는여정이마무리된다.
실로놀랍다.1927년이라는이른시기에이렇게오랫동안세계를주유한것도놀랍거니와,그궤적이완벽히지구를한바퀴돌고있는점이이채롭다.나혜석이전에세계일주라이름할만한여행은1883년조선정부가파견한보빙사일행과나혜석에한해앞선허헌정도가있다.나혜석의여행은떠나기전부터화제가되었고,귀국후에《동아일보》와《삼천리》에여행기가연재되었다.
여행중나혜석은작가로서의정체성을끝없이채찍질하고되묻는다.미술기행이라고해도될정도다.또하나의화두는여성으로서의정체성이었다.

“나는여성인것을확실히깨달았다.…여성은위대한것이요,행복한존재임을깨달았다.모든물정이여성의지배하에있는것을보았고알았다.”(〈아아,자유의파리가그리워〉)

나혜석의여행기는결코가볍지않다.근대적개인으로탈각해가는신여성들의세계를이해하는중요한기록이다.그의기행기는서너편이단편적으로소개되거나전집속에접근도읽기도어려운형태로옹송그리고있을뿐이다.
이책은나혜석이남긴모든기행문을집대성한것이다.《삼천리》에실린글을근간으로삼되,다른매체에발표된새로운내용을찾아보탬으로써내용을풍성히하였다.단편적인기행문조각까지찾아내박스형태로관련되는부분에수록하였다.모두23편의글(2편은신문기사)이이책의피와살이되었다.또한여행순서대로내용을배열하였다.
나혜석은여행중그림작업을계속하였다.나혜석의그림가운데세계여행과관련되는작품을골라함께수록한다.일부나혜석의그림이아닌작품은기행문을이해하는데도움이될것이라고판단한것들이다.
이로써90년전이땅의여성가운데최초로지구를한바퀴돈나혜석의여행은글과그림으로온전히복원되었다.

[본문일부]

시베리아통과

만주리에서여권검사를받고기차는소비에트연방의영역으로들어선다.창망한광야를질주하는동안곳곳에낙타의무리,브리야트인의작은집이차창으로보인다.오논강을건너니여기서부터궤도는복선으로되어있다.
치타Chita역에도착하니정오가되었다.소낙비가끊임없이쏟아지는데러시아농민여자들이머리에붉은수건을쓰고아이를안고서서승객들이나와거니는것을유심히구경하고있다.이곳은농산물로유명한곳이다.여기서13시간동안가서공장이많은베르흐네우딘스크에도착하였다.
지금부터유명한바이칼호호반으로기차는질주한다.물은언제보던지반갑다.그리고모든사람에게친근한맛을주는것은물론이다.하물며망막한대평야에있는바이칼호수의경색이랴.지리해못견디던승객은차창에모여섰다.

크라스노야르스크Krasnoyarsk에이르려할때반가운것은송림사이로은은히보이는교회첨탑이었다.시베리아의아테네라고하는톰스크와정치경제중심지인노보시비르스크를지나옴스크에도착하였다.이부근에는쓰러진오두막집과부서진차량이많이있어혁명당시참극의자취를볼수있다.이곳에서부터흙빛이점점흑색으로변하여가고,식물파는여자들의복장이차차깨끗해진다.
여기는스베르들로프스크*다.러시아황제니콜라이2세일가가비참한최후를마친곳이니,니콜라이일족은죽기전에이부근을소요하였을것이다.
지평선과푸른하늘이맞닿은황망한들판에푸른잔디가끝없이깔려있고,비단실로수놓은듯한흰은방울꽃과붉은장미꽃이섞여있었다.뭉툭잘린자작나무고목,한숨에뻗쳐오른적송은무한히많다.흰빛검은빛이섞인얼룩소떼는목을늘여한가스럽다.이곳이겨울이되어백설이희디흰대평야에서시베리아인이썰매를타고질주할것을상상하지않을수없다.

오로라

자작나무삼림위에는석양이냉랭했다.온하늘빗이황색이되었다가진홍색으로바뀌더니청회색으로변한다.하늘은확실히둥근형상이보이고,밤낮을분간할수없게되었다.하늘은거울같이투명하고어지러이빛난다.그리고거기에는갖은형상이다보였다.이것이우리가부르던오로라다.우리는익히알던노래〈오로라〉를불렀다.

갈까보다말까보다
오로라의아래로
러시아는북쪽나라
끝이없어라
서쪽하늘엔석양이타고
동쪽하늘엔밤이샌다
종소리들리누나
중천으로부터

오려니너무밝고
가려니어둡다
멀리서불빛이
반짝반짝해
섰거라,헌마차여
쉬어라,백마여
내일갈길이
없는바아니나

나는나는뜬수풀
바람부는그대로
흐르고흘러서
한없이흘러
낮에는길걷고
밤엔밤새껏춤추어
말년엔어디서
끝을마치든

어느곳에이르면하의를넓게껴입고붉은수건을머리에써늘어뜨린집단농장여자들의무리가늘어서있고,어느곳에이르면몽골인의무리가수염을쓰다듬으며점잖이서있다.
정거장마다그곳농민여자들이계란,우유,새끼돼지훈제를들고판매점에서여객에게사가기를청하고,소녀들은들판에피어있는향기높은꽃다발을가지고여객에게권하는특수한정취를맛보게된다.기차보이가갖다주는꽃을먹고남은통조림통에꽂아놓고,구매한음식을탁자위에벌여놓고부부가마주앉아먹을때,우리살림살이는풍부하였고재미스러웠다.
모스크바에가까이다가가자농촌은온통감자로깔렸다.선로주변에는걸인이많고,정거장대합실바닥에는병자,노인,어린이,부녀들이신음하고,울고,졸고,혹은두팔을늘어뜨리고앉아있거나담요를두르고바랑을옆에끼고있는참상이니,러시아혁명의여파가이러할줄어찌가히상상하였으랴.러시아라면혁명을연상하고혁명이라면러시아를기억할만큼,시베리아를통과할때는무엇인지모르게피비린내공기가충만하였다.

모스크바CCCP

옛러시아제국의수도는페테르부르크였지만,1917년대혁명이있은후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은수도를모스크바로옮겼다.모스크바는지리상위치로보더라도서구와동아시아나라를이어주는세계적인큰길로서의사명을가지고있다.오랫동안찻속생활을하다가여기서내리니심신이상쾌하였다.러시아통과는비교적편리하나,입국해머무는데는엄중한제한이있어서집행위원회외국여권과에가서거주권을받아야하므로,여행객들은될수있는대로당일통과하는것이좋다.
우리는여기서3일간체재하였다.호텔숙식료며물가가높은데는놀라지않을수없었다.그리고자동차와택시는개인소유가없이모두국유인데다얼마되지도않아서,거리가멀건가깝건꼭걸어다니게되었다.
모스크바정거장에내리면조선인박씨가있어서조선인이든일본인이든안내를청한다.박씨는전에러시아주재한국공사관참사로있던사람인데,지금은안내영업으로생활을유지하여간다.이박씨는일본인을안내하고,우리는일본인러시아유학생의안내를받게되었다.

우선나서는길로푸시킨미술관,트레티야코프미술관,근대프랑스미술관,모로조프박물관과혁명박물관을언뜻언뜻보았다.
러시아미술은역사상으로보면조금도구속을받지아니하였다.러시아문화의중심이변동함에따라예술가들은중단되었던예술을중흥시키기위해노력하였다.동시에러시아예술은외국여러나라의영향을많이받았으나,본래가진특질은의연히보전하였다.러시아현대미술은대략3개파로나눌수있다.첫번째는보수파로혁명전의전통을보수하려는,기술보다구상을중요시하는파요,두번째는동서양미술의장점을취하여자기화하려는비교적진보한파요,세번째는극히소수이니구성파예술을민중화하려는일파이다.그외모스크바파며레닌그라드파며각지방파도많이있다.그중에도예술중심지인모스크바에는혁명러시아미술가협회,사과四科협회,미술잡지기자조합이있어해마다전람회가왕성하다.
푸시킨과트레티야코프미술관은푸시킨과트레티야코프개인이수집한유럽각국의유명한그림이많았다.근대프랑스미술관에는근대프랑스화단에유명한그림은거의다있었다.무엇보다모스크바미술관의진열방법은세계에자랑할만한다는세평이있다.

크렘린궁전

높은성벽이있고십자가옥상이보이는크렘린궁전주위를돌아서바실리사원을들어가으리으리한장식을정신놓고보다가나와서,나폴레옹전쟁기념공원을보고다시나와국영백화점속을휘돌아서맑게흐르는모스크바강을건너흰돌로지은노동궁앞을지나서참새언덕으로갔다.언덕에올라서니모스크바전경이눈앞에나열한중에돔지붕교회당옥상의금색이태양에번쩍거려가관이었다.
다시내려와서러시아현정부당국들의클럽식당에가서밥을먹고에레와공원에서거닐다가돌아왔다.아침에사방교회당으로부터종소리가울려들어온다.나는궁금증이나서나아가사람들뒤를따라가까운큰교회당으로같다.마침장례식을거행하고있었다.관뚜껑을열고꽃속에싸인시체를공개한다.누구든지들어가서한번씩들여다보고기도를올리고또옆에있는예수초상에입을맞추고나온다.
시가지어느교회당정문에는‘종교는아편’이라고써붙였다.군중은그것을보면서그곁에있는회당에들어가절을하고나온다.
모스크바시가는너절하다.그리고무슨폭풍우나지나간듯하여수습할길이없어보인다.사람들은모두실컷매맞은것같이늘씬하고아무려면어떠랴하는염세적기분이보인다.남자들은와이셔츠바람으로다니고,여자들은모자를쓰지않고발벗고다닌다.내용을듣건대비참한일이많으며,외국물건이없어서국내산으로만생활하게되므로물가가비싸고불편한점이많다한다.

오후에는레닌VladimirLenin묘를구경갔다.공개하는시간전부터구경꾼이줄을섰다.좌우문을지키고있는문지기사이로엄숙히발자국을가볍게하여들어갔다.지하층계로내려서서유리관주위를돌며창백한얼굴로조용히드러누운레닌의시체를보게된다.이혁명가레닌의시체에대하여실물이니아니니세평이자자하나하여간보게된것이광영이었다.광장앞에서나팔소리,북소리가하늘높이떠오르고,광장에는적색깃발이수만개나부꼈다.무려수만군중속에서청춘남녀들이적색모자를쓰고적색넥타이를메고마차위혹은자동차속에서팔을뻗치고발을굴러활기있는소리로합창이나독창을하여북적북적하고와글와글해졌다.영국과의국교단절시위운동이라고한다.한참동안구경하다가떠날길이바빠돌아섰다.
오후5시에모스크바를출발하여목적지인프랑스로향하였다.러시아와폴란드국경세관에서일일이짐을가지고내려가조사를받게되어퍽거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