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소셜 무브먼트 그룹 NK Vision 2020을 설립해 남과 북을 셔틀 왕래하며 동포들에게 민족화합과 자주통일을 위한 새로운 이슈와 비전을 제시하는 통일운동가. NK Vision 2020 산하에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역사), 동북아종교위원회(종교), 남북동반성장위원회(경제), 오작교포럼(언론) 등 네 기관을 두었으며, 남, 북, 해외 동포 3자가 먼저 민족공조를 이룬 후에 국제공조 속에 주권적인 통일을 이루도록 조력하고 있다. 풀러신학교 대학원 선교목회학 박사이며, 미국 The Light of Glory Church 담임목사를 역임하였다. 저서에 《평양에선 누구나 미식가가 된다》가 있다.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선언을 계기로 남북 관계의 지형이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해빙 무드를 타면서 평양과 서울을 오가는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북녘 사회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아직도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북 사회는 최근 들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변화해왔다. 변화의 속도가 하도 빨라 새 소식을 접한 탈북자들마저 혼돈스러울 정도라도 한다. 평양 시내에 자가용 물결이 날로 늘어가고 상습 교통정체가 일어나며, 마침내 cc tv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영업용 택시는 이북 전역을 누빈다. 음식점 메뉴판에 태블릿 pc가 등장하고 전자기기로 주문을 받는다. 평양에 이탈리아식 피자집(별무리)이 등장하는가 하면 비엔나식 커피 프랜차이점(Helmut Sachers Kaffee)도 문을 열었다. 북한 주민들은 이제 스마트폰(아리랑)으로 로동신문을 읽고 게임을 즐긴다. 보급된 휴대폰의 수효가 600만 대에 이른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최재영 목사는 재미동포로 지난 10년간 금단의 땅인 북녘땅을 가장 빈번히 방문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는 이북 당국이 보여주는 모습만이 아니라 북녘땅 구석구석을 누비며 이북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는 때로는 냉철한 기자의 눈빛으로, 때로는 의혹을 가득 품은 검사의 매서운 눈초리로, 때로는 자비한 목자의 그윽한 시선으로 이북 사회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이 책의 가치는 가장 최근 북녘 사회의 변화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편견을 넘어선 내재적 접근을 통해 이북 사회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갔으며, 통일지향적인 관점에서 민족의 앵글로 북녘 사회의 모습을 담아냈다. 저자에게는 ‘분단 이후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럿 따라 다닌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과 북의 국립묘지를 모두 탐방한 사람’, ‘분단 이후 북측의 여러 교회에서 가장 많이 설교한 사람’, ‘분단 이후 현존하는 북측 종교시설을 가장 많이 방문한 사람’ … 그런 그에게 ‘분단 이후 가장 먼저 전파의 장벽을 깨고 서울로 카톡과 페이스북을 날린 사람’이라는 기록이 덧붙여졌다. 저자는 평양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이용해 서울로 카톡을 날리고 보이스톡 통화를 성사시켰다. 이 책에는 이에 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소상히 실려 있다. 그의 남다른 시선을 통해 우리는 이북 TV 드라마에서 박정희 대통령 역을 맡아 인기를 누린 재일교포 배우 김윤홍의 명대사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된 이야기며 6·25전쟁시 북으로 간 소설가 이광수가 언제 사망하고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분단의 벽을 허물고자 다양한 프로젝트를 세워 안간힘을 써온 이야기들이다. 빠르게 변모하는 북녘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본문 일부]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
평양에 도착해 주말을 보낸 다음에 공식 일정이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이었다. 식사를 하던 중 한국과 미국에 급히 연락할 일이 생각났다. 노인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구순이 지난 모친의 건강이 위중한 상황이라 신속히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모님까지 뇌졸중으로 쓰러져 안부가 걱정되었다.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도 수표가 보관된 장소를 알려주어야 했다. 매월 1일이면 아파트 렌트비를 납부해야 하는데, 수표를 써놓고 그만 보관한 장소를 아내에게 알리지 못하고 떠나왔던 것이다. 또한 방북 일정을 마친 다음에는 한국을 방문해야 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날 저녁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강연회를 갖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 강연과 언론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다. 평양 체류기간 중에도 한국과 미국에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안내원 선생, 미국과 한국에 긴급히 연락할 일이 생겼으니 아무래도 오늘 시간을 좀 내서 고려링크 통신국에 가야 할 듯합니다.” “아, 필요하시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그런데 손전화(핸드폰)로 사용하는 국제전화와 인터네트가 생각보다 료금이 비싼 것은 잘 알고 계시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내원을 통해 담당부서에 외국인 전용 모바일 심카드 구입을 요청했다. 다른 때는 호텔 객실에 연결된 유선 인터넷을 노트북 PC와 연결해 30분당 얼마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트북을 가져오지 않아 모바일 전용 심카드를 구입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WCDMA 방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안내원은 삼성 제품인 내 스마트폰을 달라고 하더니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기능과 버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우수한 신세대 안내원이다 보니 외국인 전용 이동통신 서비스나 기능을 제법 잘 아는 눈치였다. 그는 내 폰을 해체해 배터리가 끼워진 뒷면에 적힌 코드와 사양을 확인하더니,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WCDMA(광대역 부호분할 다중접속) 방식이 아니라서 심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기종이라고 알려줬다. 미국이나 한국은 주로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 방식인 반면, 중국과 북한에서는 WCDMA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최목사님의 손전화는 저희와 같은 WCDMA 방식이 아니라서 고려링크 통신국에 가지고 가봐야 어차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나도 무선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아는 편인데…. 삼성이 남조선 제품인 것은 아시지요? 이 손전화는 ‘4G LTE’ 기능입니다. WCDMA 방식을 초월하기 때문에 심카드만 구입하면 평양에서도 문제없이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 아무튼 저는 WCDMA 방식이 아니면 무조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급하게 연락하실 일이 있으면, 저희가 잘 아는 중국동포 사업가에게서 손전화를 잠시 빌려올 테니, 그걸 사용하십시오.” “남의 전화기를 신세지면 되나요. 서로가 불편해서 안됩니다. 성의는 고맙지만 이번 체류기간에는 국제전화를 빈번히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 빌리는 정도로는 안됩니다.” “안 그러면 미국 통화는 호텔방에서 교환한테 연결해달라고 해서 사용하시고, 인터네트는 가까운 량각도호텔 통신빡스(부스)에 가서 사용하시면 될 텐데요.” 안내원은 자신의 손전화 뒷면을 열어 ‘WCDMA’라고 쓰인 글자를 보여주며 그 같은 기종의 전화기라야 심카드 사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호텔의 국제전화는 남한과의 통화가 아예 차단되어 사용할 수 없으며, 호텔에 구비된 인터넷 부스는 이메일 발신 기능만 가능한데다 보안 여부도 불투명했다. 어떻게든 심카드를 구입해야 했다. 평양을 비롯한 이북의 인터넷과 와이파이 사용 실태가 어떤지 알고 싶은 이유도 컸다. 심카드를 구입하는 절차와 사용방법, 그리고 이북 주민들의 실제 사이버 활동 모습을 확인해 널리 알리고 싶었다. 고려링크가 제공하는 모바일 서비스는 인터넷 속도가 빠르고 해외 사이트 접속에도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카페트(카톡,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인기 있는 SNS나 탱고(Tango), 스카이프(Skype), 바이버(Viber) 같은 영상통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메신저가 실제 가능한지 몹시 궁금했다.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속 시원히 증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외부 세계에서 자국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정보가 유입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아직 구글과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매체를 제대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심카드를 구입하다
이튿날 점심시간이 되자 심카드 구입을 알아보던 젊은 관리에게서 전갈이 왔다. 평양 시내 인민문화궁전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고려링크 통신국 빌딩이 두 달 전부터 폐쇄되었다는 것이다. 내부 설비 공사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지며 안내원을 채근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순안공항에 있는 고려링크로 가서 가입해야 되겠군.” “공항에 있는 고려링크는 비행기가 도착하는 시간에만 영업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비행기 착륙이 없는 날입니다.” 안내원은 나를 진정시키며 공항에 나가도 소용없음을 알려주었다. 담당 관리에게 평양 시내 고려링크 통신국이 왜 폐쇄되었는지, 외국인 통신정책에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알아봐 줄 것을 요청했다. 저녁시간이 되자 반가운 연락이 왔다. 공사 중인 고려링크 통신국을 대신해 보통강호텔에서 통신국 업무를 본다는 소식이었다. 안내원은 심카드를 구입하려면 가입자의 ‘여권’, 해외주재 북조선영사관에서 발급한 ‘비자’, 선불 가입비 ‘미화 204달러’, 그리고 ‘가입신청서’ 등이 필요하다고 알려주었다. 이튿날 통신국에 도착하니 두 명의 여직원이 우리를 맞았다. 한 명이 내 폰을 건네받았다. 한참 매뉴얼을 만지작거리더니 내 전화기로는 심카드 사용이 안된다는 것 아닌가. 절망이 엄습해왔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폰을 건네받더니 매뉴얼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폰 속에 내장된 매뉴얼이 영어 버전으로 되어 있어 직원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한글 버전으로 전환해주었다. 천만다행으로 주의 깊게 매뉴얼을 살펴본 직원은 내 폰으로도 심카드가 가능하다는 최종 결론을 내려주었다. 그제야 직원은 가입신청서 작성을 요구했고, 본격적인 세팅 작업에 들어갔다. 신청서의 앞면 상단부는 내가 작성해야 하는 부분이고, 나머지 하단부는 담당 안내원이 작성하도록 되어 있었다. 서류의 마지막 부분에는 담당 안내원이 직접 서명해야 했다. 책임부서에서 보증을 서야만 모바일 서비스 가입이 가능한 줄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과 국제전화는 분리되어 있었다. 두 가지 모두 가입해도 되고, 둘 가운데 한 가지만 가입해도 되었다. 나는 두 가지 모두 가입했다. 인터넷을 가입해야만 카톡과 페이스북은 물론 이메일 송수신, 포털 사이트 검색 등을 실험해볼 수 있기 때문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드디어 손전화 번호를 부여 받다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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