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손바닥에 쓴 소설 | Paperback)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손바닥에 쓴 소설 | Paperback)

$13.50
Description
시인 원재훈은 등단 20년이 넘어 소설가로 재등단하며 문단의 주목을 끄는 장편소설을 잇달아 발표해왔다. 그의 소설은 잘 벼려진 문장과 서사적 구조에 시인다운 시적 함축성이 돋보인다. 그런 그가 이번에 들고 온 작품은 손바닥소설이다.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작가만의 새로운 문학세계가 흥미롭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고독하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사투하다 보니 온통 상처투성이다. 외로워 누군가를 가까이하다 보면 거기에 ‘고양이 상처’(213-220쪽)마저 덧붙여진다. 정신적 공허에서 헤어날 수 없고 소설 한 권 읽을 시간조차 내기 어렵다. 원재훈의 손바닥소설은 이들 상처받은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그의 전작 장편 《망치》가 아버지를 위한 레퀴엠이고, 《연애 감정》이 1980년대 청춘들에게 바치는 오마주였다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무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가끔 손바닥에 글자들을 쓰곤 한다고 술회한다. 위안, 사랑, 용기 같은 글자들이다. 어려서부터 습관이 된 이 버릇에서 그의 작품은 태동하였다. 이제 그는 자신의 손바닥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쓰려고 한다. 폭력적인 손바닥엔 친절과 겸손을, 핵폭탄의 손바닥엔 사랑과 평화를…. 절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다리와 길’이 되고 싶은 게 이 소설집의 집필동기다. 책 속의 작품들은 이내 길이의 한계를 떨쳐버리고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긴 여운을 선물한다. 표제작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사람과 반려동물의 위치를 바꾸어 세상을 들여다보는 풍자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2부에 실린 작품은 작가가 마법사가 되어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들이다. ‘삶의 손바닥’에 쓰인 이야기들이 따뜻하고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작가는 ‘소설이란 때가 되면 비로소 조금 쓸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이야기’라고 재정의한다. 손바닥소설(掌篇小說)을 장르적으로 궤도에 올린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상실과 절망의 시대를 사는 이 땅의 독자들에게는 문학에서도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이 책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우리 손바닥소설 문학의 새 영역을 열어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

원재훈

시인,소설가.1988년가을《세계의문학》에시〈공룡시대〉,2012년여름《작가세계》에중편소설〈망치〉로등단해작품활동을하고있다.시집《낙타의사랑》《그리운102》《사랑은말할수없는것을말하라하네》《딸기》,소설《만남》《모닝커피》《바다와커피》《미트라》《망치》《연애감정》《드라큘라맨》,산문집《나무들은그리움의간격으로서있다》《꿈길까지도함께가는가족》《내인생의밥상》《소주한잔》《어쩌면마지막일수도있는여행》《네가헛되이보내는오늘은어제죽은이가그토록그리던내일이다》《착한책》《나는글쓰고책읽는동안만행복했다》《고독의힘》《상처받을지라도패배하지않기위하여》《Restart!다시쓰는글쓰기》《사진보다낫잖아》외에동화,번역서등을펴냈다.현재파주여치길에살면서창작활동과방송강연활동을하고있다.

목차

1부태엽감는쥐

태엽감는쥐
세상에나쁜사람은없다
헐크와배트맨
만국의늙은이여,대동단결하라
나만생각해야겠다
느낌이온다
이쑤시개
민들레씨앗
도끼와토끼
지금몇시지
마법사
외출
모텔여자추락사건
시와소녀

2부소원을들어주는집

양귀비꽃
상사화
남천
호박꽃
나팔꽃
들국화
눈꽃

3부고양이상처

마포대교를건너는법
오카리나할머니의단풍든마음
여치길편지
대남방송
엄마의눈물
붉은달
휠체어를밀면서
실록포쇄형지안
화는어디서오는것인가
심야개표장에서
나비가날아오른다
야시장
팔부러진부처
내가아이를안은것이아니라,아이가나를안아준것이다
까치의공격
인도양에서의구걸
잠깐,눈을감았다뜨니삼십년이흘렀다

고양이상처

출판사 서평

손바닥에쓴소설

이소설집은장르적으로손바닥(掌篇)소설이다.파블로네루다는불현듯‘시가내게로왔다’고했던가.원재훈은손바닥소설을고집하지않는다.하지만자신도모르게손바닥소설이쓰였다.그것은그의천성에기인하기도하고시대정신과도맞닿아있지싶다.그는어려서부터손바닥에무언가글자를끄적이는버릇이있었다.작가가된다음그것은원고지로,모니터로이어졌다.‘세상의모든위대한작품은손바닥에쓴단순한것에서시작한다’고그는믿는다.
현대를사는우리는고독하다.낙오자가되지않기위해사투해야하며온몸이상처투성이다.정신적공허에서헤어나지못하고소설한권읽을시간조차없다.절망을안고사는사람들에게는‘다리와길’이필요하다.이제원재훈은자신의손바닥에서벗어나사람들의손바닥에무엇인가를쓰고자한다.그것이이소설집이다.그래서그는이소설집을‘손바닥에쓴소설’이라고일컫는다.

‘고양이상처’없이사는사람은없다

책속의작품들은이내길이의한계를떨쳐버리고인생에대한통찰과긴여운을선물한다.표제작〈세상에나쁜사람은없다〉는사람과반려동물의위치를바꾸어세상을들여다보는풍자성이돋보인다.작가는점심을먹고마당가에가만히꽂아둔이쑤시개를아름드리거목처럼상상하는가하면,늙어주름진얼굴에서숨이막히게아름다운단풍을연상한다.2부를비롯한여러작품속에는마법사가주인공으로등장한다.마법사의집은‘소원을들어주는집’이다.작품을읽고있노라면어디선가음악소리가들려온다.

단풍잎이방바닥에툭떨어졌고,잠시단풍잎을보고있던케이는다시집어책갈피에넣었다.윤동주가별을헤아리고있는시구절이눈에들어왔다.시집의여백에이런구절이적혀있었다.
“별을보면서당신의이름을부르는밤.차라리별이가까이있구나.”
케이는잠시한숨을내쉬었다.아,참간절했구나싶었다.아픈이모는도대체누굴만나서어떤사연을남기고간것일까?-90쪽(〈시와소녀〉)

“꽃이된사람을찾고싶습니다.”
“…꽃이된사람이라고하시니까연인을만나고싶다는이야기로들리는군요.”
“예.한때는그런사이였는데,긴세월헤어져있다가최근에다시만났습니다.”
“아,꽃이되었다는말씀은?”
내가재차물어보자그녀가대답했다.
“그사람…,승려가되어있더군요.”
두어달후,내앞으로한송이의꽃이배달되었다.그녀가보내준활짝핀상사화였다.나는그녀와함께할그스님이부러웠다.-102쪽(〈상사화〉)

뭐든사랑하게되면그런거다.너무가까이하다보면상처가생기는거다.우리는그렇게상처를입으면서도더가까이있고싶어하고,더가까이있다가가벼운상처를입는다.그건상처라기보다는사랑의흔적이다.삶의흔적은그렇게생기는것이다.…아주젊었던시절잘알고지냈다고나할까,하여간종로나인사동의술집에서만나술잔을기울이기도하고,문학이야기를나누었던친구가먼이국에서말기암에걸렸다는소식.그녀의책을방송국에서우연히보고잠시가슴이턱막히면서답답했다.이건일종의고양이상처구나싶었다.-215쪽(〈고양이상처〉)

시와소설을넘나드는작가원재훈

시인,소설가.일찍이시인으로등단해《낙타의사랑》《그리운102》《사랑은말할수없는것을말하라하네》등의시집을펴냈으며,등단20년이넘어홀연소설가로재등단하며《만남》《모닝커피》《바다와커피》《미트라》《망치》《연애감정》《드라큘라맨》등문단의주목을끄는장편소설을잇달아발표해왔다.그의소설은잘벼려진문장과서사적구조에시인다운시적함축성이돋보인다.망치》가아버지를위한레퀴엠,《연애감정》이1980년대청춘들에게바치는오마주였다면,《세상에나쁜사람은없다》는이시대를살아가는상처받은영혼을위무하는작품이다.손바닥소설을장르적으로궤도에올린사람은노벨문학상수상작가가와바타야스나리였다.그의시대가또한그같은작품을요구했으리라.이겨울원재훈의따뜻한손바닥소설이손난로처럼독자를어루만져주기를기대한다.

[책속으로이어서]

세상에나쁜사람은없다

-개는플라톤이<국가>2권에서말한바와같이세상에서가장철학적인짐승이다.(라블레,<가르강튀아>작가서문에서)

오늘제작할방송내용은미친듯이먹어대기만하는‘사람’이주인공이다.공영방송인우리방송국에서개편을맞이해서새로운프로그램을제작한다.‘세상에나쁜사람은없다’라는컨셉으로우리들의오랜애완동물인‘사람’을다양한각도로조명해봄으로써우리개들의마음을달래주는‘사람’이길들이기에따라서는매우달라진다는점을강조한다는제작의도이다.프로그램명도기획의도를최대한반영해,<세상에나쁜사람은없다>라고했다.
많은사람들이그러하지는않지만가끔이상행동을보이는사람때문에고민하는우리개들의마음을달래주는것이중요했다.사실점점각박해지는우리개사회에‘사람’만큼친근한동물이또얼마나있단말인가.요즘에는사람이죽으면자기가족을잃어버린것처럼트라우마에시달리는개들이있는정도이니까말이다.이제사람은더이상가축이아니다.우리개와동격인것이다.아마사람고기를먹는개들의야만적인행동은수년안에사라질것이다.뭐먹을것이없다고그토록다정한사람고기를먹는단말인가.
우리사회에애완동물시장은사람과원숭이로크게나뉘어있는데지구를지배하고있는우리가개와고양이로나뉘어있는것처럼사람도백인,흑인,홍인으로크게나뉜다.원숭이보다는사람이고가로거래된다.아무래도털이적고생긴것도예쁘기때문이다.암컷들은숫컷에비해더고가로거래된다.
오늘우리가촬영을나가는집안의애완사람은백인종이고금발에뚱뚱한놈이다.이놈은미친듯이먹어대기만하는데,간혹사료를조금덜주면주인인개에게으르릉거리면서공격성이드러난다.미친사람이우리개를물면광인병에걸려매우치명적일수도있다.
촬영팀은보호장비를착용하고사람에게접근했다.녀석은과연뚱뚱한몸짓에탐욕스러운이빨을드러내면서사료를먹고있었다.가끔은주먹을휘두르기도하고,주위에있는물건을쥐고달려들기도해서아주위험할때가있다.그사람의주인인스티브가말했다.
“이녀석은조금이라도먹을것을소홀하면아주지랄이에요.그렇다고거리에다버릴수도없고말이지요.”
“그래,언제부터저지경이된겁니까?절대로유기하시면안됩니다.잘보살펴야합니다.사람처럼나약한짐승도없어요.유기는범죄입니다.우리가잘돌봐야되는겁니다.혹시어떤이유가있는지짐작은되시는지요?”
“글쎄요.요즘에하도먹방이유행이어그런지.먹방프로그램만나오면아주정신을놓고보고있어요.가끔지가개라도되는줄알고유심히들여다보는걸보면참신기해요.어쩜저렇게우리들을닮았는지말이지요.”
“그래요.그럼카메라를켜놓고한번관찰해보지요.티브이를틀어놓고어떤행동을하는지봅시다.모든질병에원인이있듯이,세상에나쁜사람은사실없습니다.우리가그들을이해하지못하고소통하지못해서그런거지요.어찌보면우리들의잘못일수도있습니다.”
“그래요.처음엔저러지않았는데말이지요.중성화수술을해서그런것인지도모르지요.본능을제거했으니다른본능이터져나온것이아닌지말입니다.”
“그래도,중성화는하셔야됩니다.사람들의성욕은어휴,걷잡을수없어요.중성화를하지않으면우리행성은아마사람들천지로변할겁니다.어쩌면사람들이우리를지배할수도있어요.”
“그렇지요.최근에천문학자들은이우주에사람이지배하는행성이있을수도있다는가설을세웠다지요.”
“그럼요.충분히가능한일이지요.이우주에그런행성이분명이있을겁니다.”
“가끔UFO가출현한다고하는데,그외계인의모습이사람과아주흡사하다고합니다.”
“아이고,그래요.허긴저녀석을가만히보고있으면지능이아주뛰어나서.어떤행성하나정도는차지하고살것같기도해요.”
“아마,그행성은전쟁과폭력이난무할겁니다.”
“그래요.우리가통제하지않으면,아이고난리,난리.”
“그래서더사랑스럽지요.가끔평화를사랑하는모습도보이고,워낙성격들이다양해서말이지요.”
우리는주인의허락을얻고사람을관찰했다.과연하루종일빈둥거리다가먹방프로그램이방송되자이녀석이벌떡일어나서는유심히방송을보고있었다.그러더니사방으로먹을것을찾아다니는모습이가관이었다.
우리는뚱뚱한사람을일단주인과격리시키고자연속에서정해진사료와일정한운동을시키면서몇달간지속적으로교육을시켰다.사람은우리들의믿음을배신하지않았다.이녀석은다시단정한태도로돌아왔다.고분고분하게순종적으로변했다.녀석은다시주인의사랑을받는사람으로살아갈것이다.정말다행이다.

우리는그촬영분량을잘편집해서4회로나누어방송할것이다.사람을관찰하면서우리는몇가지깨달음을얻었다.우리도자꾸먹기만하면언젠가는저사람처럼이성이마비되고말수도있다는사실이었다.뭐든적당히해야지폭식은사람의이성을마비시키고지나친비만으로고통에빠질수가있다.개가사람이된다니,그건끔찍한일이다.정신을바짝차려야겠다.우리는그날저녁은아주간단하게선식을먹고퇴근했다.며칠방송국에서밤샘작업을했다.아내가보고싶다.내아내는고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