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불일암 사계 | 양장본 Hardcover)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불일암 사계 | 양장본 Hardcover)

$14.91
Description
깊이 있고 절제된 문장을 통해 일상과 자연 속에 담긴 놀라운 깨달음을 전해 주는 법정 스님의 글과, 불일암을 십수 년 동안 오가며 그곳의 사계절과 소소한 풍경을 담은 최순희 할머니의 사진을 엮은 책이다. 한국전쟁과 이념 대립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운명처럼 떠안은 채 고통 속에 유폐되어 있던 한 여인이 법정 스님과 불일암을 통해 삶의 평온을 되찾아가는 시간의 흔적이 소담한 사진과 법정 스님의 유려한 글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아름다운 삶이 남긴 향기와 여운은 이토록 진하고 오래가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맑고향기롭게

저자법정은1932년전라남도해남에서태어났다.전남대학교상과대학3년을수료하고,1956년당대의고승효봉을은사로출가하여같은해사미계를받고1959년에비구계를받았다.치열한수행을거쳐교단안팎에서활발한활동을펼치던중1975년부터송광사뒷산에불일암을짓고홀로살기시작했다.1976년출간한수필집『무소유』가입소문을타면서스테디셀러로자리잡았고이후펴낸책들대부분이베스트셀러에오르면서수필가로서명성이널리퍼졌다.2010년3월11일(양력),길상사에서78세를일기로입적했다.
대표작으로는『무소유』,『오두막편지』,『물소리바람소리』,『홀로사는즐거움』,『살아있는것은다행복하라』등이있다.

목차

春,흙을만지다
땅에서의슬픔은땅의것으로,땅에서의그리움은땅의것으로1/5
도배를하고나서|봄의문|안에서들려오는소리|흙,우리,생명|‘나’라는그릇|사건|고독|향수|물흐르고꽃피는방|산|하나의물방울|자기들여다보기|봄여름가을겨울|나무가나에게1|나무가나에게2|묵묵히,꽃처럼|꽃이서로를느끼는방법|이미부처|아침의인사|떠날때도아름답게

夏,바람안에머물다
땅에서의슬픔은땅의것으로,땅에서의그리움은땅의것으로2/5
봄은가도꽃은남는다|어린왕자의별나라|한가한하루|약속|마지막인사|석류꽃|꽃한송이의약속|맑은시간|답게살고답게떠나라|간밤에온손님|저녁에피는꽃|짐승과다툴수야없지|사람의향기|생명의바다에서건져올린|지혜와덕|산앓이|도라지꽃이알려준것|몰입의순간|맑고향기롭게|일|자연의질서|나를즐겁게하는것들|스스로해보아야만가질수있는것|군불을지피며

秋,햇빛속을거닐다
땅에서의슬픔은땅의것으로,땅에서의그리움은땅의것으로3/5
홀로마시는차|가지치기|삶의즐거움을만드는사람|얼굴|마음하는아우야|가을이내리고있다|침묵이후|목욕하는날|선행이란|우주가태어난다|감사가행복이다|버리고또버리기|이상한계절|쉴줄알고놀줄알아야|빈방에홀로|직선과곡선|바람이되어떠나야할때|지금이바로그때|빈가지|비밀|김장

冬,눈을밟다
땅에서의슬픔은땅의것으로,땅에서의그리움은땅의것으로4/5
무언가를갖는다는건|불일암수칙|할머니의옛이야기같은|눈위의발자국|나그네의하루|눈속의단상|산중의겨울|눈꽃|겨울의이유|나무꺾이는소리|깊은산속에서의자유|불일암을지은이유|바람,구름,물|주름진얼굴|숲의겨울잠|꽃을찾아가는마음|집착함이없이나답게|친절한마음씨|겨울지나봄|봄이오는소리|봄의늑장|당신을위한샘물

땅에서의슬픔은땅의것으로,땅에서의그리움은땅의것으로5/5

지리산곡

출판사 서평

“스님을만나오랫동안잊었던마음의평화를다시찾았습니다.”
법정스님의자비와최순희할머니의믿음이만든
삶의아름다운풍경들

법정스님,불일암의사계절,15년의시간…
그모든것이그녀의삶을어루만졌다

불일암의이름모를수행자


1979년한여인이법정스님이머물고있는불일암에나타났다.법정스님의문도(門徒)들에게는그다지낯선일이아니었다.법정스님을따르는불자들이적지않았고,3년전에펴낸수필집『무소유』가널리읽히면서‘팬’들이심심찮게찾아오던터였다.하지만여인은달랐다.아침나절에찾아온그녀는법정스님에게꾸벅절을하고는암자의잔일을돌보다가저녁이되기전에총총히산을내려갔다.잊을만하면찾아와있는듯없는듯지내다가서둘러돌아가기를되풀이했다.법정스님은여인을반기는눈치는아니었지만그렇다고멀리하지도않았다.문도들은그녀가궁금했지만속가의일을따지는것은수도자의도리가아니었다.그저나름의수행을하고있는것이라고지레짐작할뿐이었다.
그렇게한계절이지나고두번째계절이찾아왔다.1년이지나고2년을넘기고십수년의시간이쌓였다.그사이여인에대해서하나둘드러났지만,불일암에서그녀는여전히무명인(無名人)이었다.

대한민국근현대사의비극이새겨진삶
그리고아픔을묵묵히지켜봐주었던법정스님과60번의계절


그녀의이름은최순희.일제강점기에태어나이화여자대학교를다니고일본유학까지다녀온엘리트신여성이었다.사회주의자였던남편을따라북으로건너가평양국립예술극장의공훈배우로활동하던그녀는한국전쟁때광주로향하다가국군의반격으로지리산에숨어들어가남부군문화공작대문화부장이되었다.1952년생포된그녀는자신의의도와는달리남부군의자수를권유하는삐라와방송의주인공이되고말았다.전쟁이끝나고적지않은시간이흘렀건만그녀의삶은여전히한국전쟁속에유폐되어있었다.혼자만살아남았다는죄책감과북에두고온아들때문에그녀는오랜세월고통스러운시간에갇혀있어야만했다.
1970년대후반법정스님이잡지에기고한글을접한최순희는장문의편지를쓴뒤무작정불일암으로향했고,이후그녀는시간이허락될때마다불일암에올랐다.십수년의시간이쌓이는동안그녀는서서히불일암의일부가되어갔다.불일암은최순희에게상처를치유하는공간이었고,법정스님은거의유일하게믿고따를수있는존재였다.

법정스님과불일암을추억하다

최순희는불일암을오르내린지15년째되던1994년에『불일암사계』라는사진집을펴냈다.소량만만들어시중에는팔지않고지인들에게만나누어준비매품도서였다.이책에는자신의삶을더듬고마음을추스르는동안틈틈이카메라에담았던불일암의봄여름가을겨울이담겨있다.처음불일암을오를때오십대중반이었던나이는어느덧일흔살이되어있었다.그녀는자신이펴낸책의서문에이렇게썼다.

불일암을오르내리기열다섯해째입니다.
이젠눈을감아도초입풀섶에이계절어떤빛깔의풀꽃들이소담스레피어있을지도환하게떠오릅니다.그러나정작법정스님과대화를나눈일은그리많지않습니다.행여수행생활에방해가되는것은아닐까두려워,눈에안띄는곳만찾아바람처럼,그림자마냥그렇게다녀왔을뿐입니다.맑고투명하게살아가시는법정스님의면모를이작고보잘것없는사진집으로부터접하는계기가된다면,더없는기쁨이겠습니다.
이제껏그래왔듯이불일암은앞으로도두다리의힘이성성할때까지변함없이찾을것입니다.지나온세월들을부처님전에간절히참회하면서,이책을인연있는모든분들께바칩니다.
최순희(1994년,비매품사진집『불일암사계』를펴내면서)

나이칠십에이르러법정스님,불일암과의만남을기념하며사진집을펴낸이후최순희와불일암의인연이언제까지이어졌는지는확실하지않다.다만‘지리산지킴이’였던함태식씨가2002년에출간한책『그곳에가면따뜻한사람이있다』에소개된뒤몇차례언론의주목을끈이후법정스님과불일암에누가될까저어하여발길이뜸해졌을것으로추측할따름이다.최순희는2015년향년91세로세상을떠났다.

법정스님과최순희의아름다운만남이만든책

새롭게펴낸책『길이아니면가지말라:불일암사계』는최순희가손수찍은오래된사진과법정스님의글을엮은것이다.최순희의사진속어디에도법정스님은보이지않는다.아마도그녀는법정스님을자신의카메라에담는것을큰실례로여겼나보다.하지만신기하게도불일암의구석구석과사계절의흐름속에서언뜻언뜻법정스님이느껴진다.사진속모든풍경에법정스님의손길과눈길이머물렀기때문일것이다.
1994년에『불일암사계』를펴내면서최순희는자신을드러내지않았다.서문의간단한인사말과법정스님의글귀몇편을조심스럽게옮겨놓았을뿐,책의모든공간은오롯이불일암과그곳에담겨있는시간,소박한풍경에내주었다.
이오래된사진첩같은책을새롭게꾸미면서몇가지를덧붙였다.우선최순희의사진에어울릴만한법정스님의글을짝을지어배치한것이다(이작업은‘㈔맑고향기롭게’에서진행했다).깊이있고절제된법정스님의수필속문장들은따로떼어놓으면그대로시가된다.소소한일상과자연속의지극히당연한이치들이법정스님과만나면크나큰울림으로다가오는것이다.그리고소설가정지아의글을덧붙였다.부모가최순희와함께지리산남부군으로활동했던인연으로오래전부터최순희와알고지냈던소설가정지아는한시대의비극이새겨진아픈삶을,짧지만강렬한필치로그려내어책의무게와감동을더해주고있다.

참된수행자법정스님이남긴사라지지않을향기

앞서밝혔듯,최순희의사진속어디에도법정스님은없다.어쩌면그녀의카메라앵글은일부러법정스님을비켜갔을지도모른다.그조심스러움은법정스님을향한존경의한표현이었을것이다.그리고굳이사진으로잡아두지않아도얼마든지마음으로품을수있다는넉넉한믿음이기도했을것이다.
이책『길이아니면가지말라』는묵묵히지켜봐주고조용히곁에머물렀던두사람의마음이빚은책이다.근현대사의아픔을삶의생채기로안고살아야했던한여인과,그상처를묵묵히어루만져주었던아름다운만남이소담한사진과법정스님의유려한글을통해되살아나고있다.
또한가지,이책을통해우리는,삶을아름답게살아낸사람의향기는좀처럼사라지지않는다는사실을깨닫게된다.법정스님의입적이후,오히려생전에는알려지지않았던고귀한행적들이그를그리워하는사람들에의해하나둘드러나고있다.어쩌면법정스님은아직우리를떠나지않았고,우리역시그를떠나보내지않았는지도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