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로베르트 발저 산문 단편 선집 | 양장본 Hardcover)

세상의 끝 (로베르트 발저 산문 단편 선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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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스위스의 작가 로베르트 발저(Robert Walser, 1878~1956)는 평생 고독 속에 칩거했다. 현존 작가 마르틴 발저(M. Walser)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시인들 중에 가장 깊이 은둔했던 시인’이다. 로베르트 발저에게 운명적 친화성을 느꼈던 소설가 제발트(Sebald)는 발저의 인생행로에 남은 흔적이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가볍다’고도 했다. 문학사에 자신의 이름이 남기를 바라는 작가는 흔히 작품 외에도 자신의 행적에 관해 소상한 기록을 남긴다. 단적인 예로 괴테의 경우 방대한 일기와 편지 등을 남겨서 거의 평생에 걸쳐 하루하루의 행적까지도 추적이 가능하다. 반면에 발저에겐 극소수의 가까운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 외에는 그런 기록이 거의 전무하다. 『발저가 발저에 관해』(1925)라는 산문에서 발저는 ‘나는 주목받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발저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노출을 꺼렸지만, 그의 작품에는 그의 인생경험이 다양한 방식으로 굴절되어 나타난다. 여기서는 우선 발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직간접으로 참고가 될 만한 전기적 사실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저자

로베르트발저

저자로베르트발저는소설가,극작가,시인.1878년스위스의소도시빌에서몰락한중산층집안의8남매중일곱째로태어났다.가정형편이어려워14세에김나지움을중퇴하고그때부터20대초반까지은행과보험회사등에서일했고,20세무렵시와산문을발표하기시작했다.장편소설『타너가의남매들』(1906),『조수(1908),『야콥폰군텐』(1909)외에1천편이넘는산문과단편소설을썼다.발저의이야기에는무일푼실업자,노동자,말단사무원,방랑자,하인,가난한시인,아웃사이더,고독한산책자가주로등장한다.발저는이들의눈으로세상을관찰하고,우리가당연시하는가치와통념이허상이아닌지끊임없이되물으며고정관념을허물어뜨리는사유의실험을보여준다.평생독신으로살았던발저는성장기이후일정한직업과거처가없었고,생의마지막28년을정신병원에서보냈다.1929년심한불면증과환청에시달리다발다우요양병원에입원했고,1933년헤리자우요양병원으로옮긴이후로는절필했다.그는1956년12월25일성탄절에눈길을산책하다가쓰러져영면했다.

목차

I.자연·가족·자화상
그라이펜호수ㆍ15
은둔자의오두막ㆍ21
몽상가ㆍ23
저녁산책ㆍ26
자연ㆍ30
어머니의무덤ㆍ36
아버지가아들에게쓰는편지ㆍ38
아버지의초상ㆍ42
여섯개의작은이야기ㆍ69
어느시인이어느신사에게쓰는편지ㆍ79
어느화가가어느시인에게쓴편지ㆍ84
어떤시인ㆍ88
타자기ㆍ95
나의노력ㆍ99

II.사랑과고독
지몬ㆍ109
메타ㆍ119
빌케부인ㆍ123
크리스마스이야기ㆍ132
어떤추억ㆍ140
크누헬양ㆍ142
파르치발이여자친구에게쓰는편지ㆍ145
어린아이ㆍ149
꿈이아니었어ㆍ157
올리비오여행기ㆍ165
꿈ㆍ174
마리ㆍ178

III.세상의이치
두개의이야기ㆍ209
네개의이미지ㆍ216
이상한도시ㆍ231
환상ㆍ235
재,바늘,연필그리고성냥개비ㆍ238
난로에게말걸기ㆍ241
날쌘돌이와게으름뱅이ㆍ244
혈거인간ㆍ246
천사ㆍ255
원숭이ㆍ257
단순한이야기ㆍ264
자유에대하여ㆍ267
철가면ㆍ271
올가의이야기ㆍ277

IV.삶과노동
세상의끝ㆍ289
나는가진게아무것도없어ㆍ293
노동자ㆍ297
일자리를구합니다ㆍ307
사무원ㆍ310
오전근무ㆍ334
뷔블리ㆍ345
게르머ㆍ354
헬블링의이야기ㆍ363
귀부인ㆍ386
주인과피고용인ㆍ391
계급투쟁과봄날의꿈ㆍ397

출판사 서평

“카프카와헤세가애독했던작가로베르트발저”
미지의‘나’를찾아가는고독한산책

삶의단면들

스위스의작가로베르트발저(RobertWalser,1878~1956)는평생고독속에칩거했다.현존작가마르틴발저(M.Walser)의표현을빌리면‘모든시인들중에가장깊이은둔했던시인’이다.로베르트발저에게운명적친화성을느꼈던소설가제발트(Sebald)는발저의인생행로에남은흔적이‘바람이불면날아갈듯가볍다’고도했다.문학사에자신의이름이남기를바라는작가는흔히작품외에도자신의행적에관해소상한기록을남긴다.단적인예로괴테의경우방대한일기와편지등을남겨서거의평생에걸쳐하루하루의행적까지도추적이가능하다.반면에발저에겐극소수의가까운지인과주고받은편지외에는그런기록이거의전무하다.『발저가발저에관해』(1925)라는산문에서발저는‘나는주목받고싶지않다’라고말한다.이처럼발저는결벽증에가까울정도로자기노출을꺼렸지만,그의작품에는그의인생경험이다양한방식으로굴절되어나타난다.여기서는우선발저의작품세계를이해하는데직간접으로참고가될만한전기적사실을간략히살펴보기로하겠다.

발저는몰락한중산층집안에서8남매중일곱째로태어났다.아버지는파리에서인쇄기술을배워와서고향도시빌에서소규모제본소겸문구류가게를운영했다.하지만아버지의사업이기울고가정형편이어려워지자발저는김나지움예비과정(우리식의중학교)에다니던14세에학업을포기해야했다.그때부터20대초반까지발저는은행의사무보조원,보험회사경리사원등으로일했는데,한곳에오래눌러있지못하고자주직장을옮겼다.이러한직장생활의경험은이책의4부에수록된『사무원』,『오전근무』,『뷔블리』,『게르머』,『헬블링의이야기』등에서밀도있게다루어진다.

발저의성장기에서특기할사실은어머니의보살핌을받지못했다는것이다.어머니는심한우울증을앓아서집안의근심거리였고,발저보다네살위의누나리자(1874~1944)가어머니를간호하면서일찍부터주부역할을대신했다.발저는평생독신으로살았을뿐아니라아마한번도진지한사랑의모험을경험하지못했던것으로보인다.발저가20대중반부터평생가까운‘지인’으로교제했던프리다메르메(1877~1969)부인과의관계를보면그가세상을꺼렸던만큼이나여성도거의결벽증으로대했던것으로짐작된다.

정신병원에서보낸28년
발저는생의마지막28년을정신병원에서보냈다.1929년그는불면증과환청등으로고통을호소하다가발다우요양병원에입원했다.발다우병원에서4년을보내고서1933년에는본인의사에반하여헤리자우정신병원에강제로수용되었다.발다우병원에머물던기간에는집필활동을계속했지만,헤리자우병원에들어간후로는완전히절필했다.종신강제수용을해야할정도로그의정신분열증이심각했는가에대해서는논란이있다.아마도가족의병력이분열증확진판정과강제수용에부정적영향을주었을것이다.이미언급한대로어머니는심한우울증을앓았고,베른대학교지리인류학교수였던둘째형알프렛발저(1870~1919)는자살했다.그리고교사로재직하던넷째형에른스트발저(1873~1916)또한정신병진단을받고18년동안발다우병원에수용되었다가거기서생을마감했다.
헤리자우병원에서발저는다른환자들과마찬가지로오후에는채소를다듬거나봉투를접거나청소를하는등규칙적인의무노동을했고,나머지시간에는독서나산책을했다.특히산책은발저에게평생몸에배인습관으로,그의거의모든글에는산책의리듬이바탕에깔려있다.발저는전설적인도보여행의기록을남겼다.20대에잠시슈투트가르트에서출판사직원으로일하다가다시스위스로귀향할때는수백킬로미터를걸어서갔다고한다.또베른에서제네바까지170킬로미터를걸어가기도했고,베른에서빌까지25킬로미터를자정부터이른아침까지한밤중에걸어가기도했다.요양원에서도산책은그에게가장중요한일과였다.한겨울에눈이오는날씨에도외투도없이산책을했다고한다.
1956년12월25일성탄절오후에발저는눈길에산책을나갔다가심장마비로쓰러졌다.『크리스마스이야기』(1919)에서눈길에누워서영영잠들고싶다고했던대로그는그렇게생을마감했다.

1937년6월27일대화에서발저는자신의작품을비판하는평론가들이모두헤르만헤세에열광한다고불만을토로한다.역설적이게도헤세는발저의작품을늘높이평가했고,발저가받은유일한문학상을주선했던장본인이다.헤세는‘발저의독자가1만명만되면세상은더좋아질것이다’라는말을남기기도했다.

발저의산문과단편의특징
발저는서른살전후에세편의장편소설-『타너가의남매들』(1906),『조수』(1908),『야콥폰군텐』(1909)-을발표한것말고는주로산문과단편소설을썼다.작가적이력을회고한글『나의노력』(1928/29)에서그는장편소설을포기한이유를‘장황한서사의얼개를짜는일이짜증나서’라고밝히고있다.나날의생계를걱정하느라긴호흡으로장편에매달릴여유가없었던것도중요한이유일것이다.

발저의산문은주로취리히,베른,베를린,뮌헨,프랑크푸르트,프라하의신문과잡지에발표되었다.특히프라하에서는카프카의친구막스브로트(죽기전에남긴유언에서자신의미발표원고를모두불태워없애라고했는데,그유언을어기고카프카사후에그의원고를보존하여출판한장본인이바로막스브로트다.)가발저를위해지속적으로지면을할애해주었다.다른생계수단이없었던1910년대중반이후로는짧은산문과단편원고료가유일한수입원이었는데,1926년에는무려60여편을발표하여거의매주1편씩을썼던셈이다.그렇게생시에발표한산문과단편이모두1천여편에이르며,유고로남은미발표원고도5백편이넘는다.

발저의산문은대개화자가전면에등장하는짧은이야기의형식을취하지만,전통적인이야기장르의근간이되는특이한사건이나플롯은최소한으로축소된다.발저의산문은대부분자신의경험에바탕을둔자전적성격과허구적요소가결합된양상을보인다.그런의미에서그의산문은‘자전적허구’(Autofiction)라일컬어지기도한다.

발저의산문은시각적특성이강하다.산과호수의나라스위스에서태어나서자랐고,매일그풍경속을거닐었기때문일것이다.『그라이펜호수』,『은둔자의오두막』,『저녁산책』같은글을보면발저에겐자연이예술적영감의원천이었음을실감할수있다.그가처음발표한산문『그라이펜호수』는발저의산문에서큰비중을차지하는자연묘사의원형을보여준다.하늘과태양이호수에비쳐호수와하나가된풍경속에서오리한마리가헤엄치고있고,화자인‘나’도호수에풍덩뛰어들어오리처럼헤엄친다.화자가자연의일부로변신하는과정,그리고그온몸의느낌을서술하는이텍스트가탄생하는과정을보여준다.‘나’자신이곧텍스트와한몸이되는것이다.“그런즉무슨말을더하겠는가?내가처음부터다시말하더라도지금과똑같이말할것이다.”더이상언어로형용될수없는언어도단의유일무이한체험이곧자연과하나가되고내몸이텍스트로탄생하는과정이다.

발저가‘언어속에잠재하는미지의생기’를드러내는서술기법중하나는서로무관하거나대비되거나대립되는사물이나이미지를하나의장면으로병치시키는방식이다.예컨대『세상의끝』에서무작정‘세상의끝’에다다르기위해16년동안이나방랑하는소녀는‘세상의끝’을이렇게상상한다.

세상의끝이처음에는높은성벽일거라는생각이들었고,그런가하면어떤때는깊은낭떠러지,때로는아름다운푸른초원,때로는호수,때로는반점이수놓인수건,때로는냄비에가득담은걸쭉한죽,때로는맑은허공,때로는온통하얗게펼쳐진설원,때로는출렁이는바다처럼마냥자신을내맡길수있는황홀경,때로는우중충한잿빛의길이라는생각도들었고,때로는아무것도아닌것또는안타깝게도하느님도모르는그무엇일거라는생각도들었다.

‘세상의끝’을‘높은성벽’이나‘깊은낭떠러지’로이해하면그것은엄청난장애나절체절명의위기가된다.반대로‘세상의끝‘을‘아름다운푸른초원’이나‘바다처럼출렁이는황홀경’으로떠올리면‘세상의끝’은궁극의안식처와통하는어떤상태일것이다.그런데이대극적이미지가어떻게동시에‘세상의끝’을가리킬수있을까?우리의인생에서그둘은상극으로경험되지만,발저는양자가공존할가능성은없을지의문을제기하는것이다.나아가서,의미가선명한이런이미지들과‘반점이수놓인수건’이나‘냄비에가득담은걸쭉한죽’은대체무슨상관이있다는말인가?그리고이‘수건’이나‘죽’은‘하느님도모르는그무엇’과어떻게연결되어있는것일까?누구도쉽게답하기어려운이러한질문을던짐으로써발저는우리의타성적사고와지각으로는포착되지않는삶의진경과세상의이치가무엇일지곰곰이생각하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