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올레 (이동순 시집)

마을 올레 (이동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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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마을 올레』는 이동순 시인의 열여섯 번째 시집이다. 시인 이동순은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다양한 삶의 이력과 풍경을 조곤조곤한 시어로 담백하게 드러내 왔다. 이번 시집에도 등단 40년을 훌쩍 넘긴 시인의 무심한 듯 섬세한 눈길이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마을 올레』에서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드러난 삶 이면에 침묵하고 있는 스토리다. 퇴락해가는 농촌 공동체 속에서 시인이 발견한 것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이 꽁꽁 감춰두었던 삶의 ‘내력들’이었다.
저자

이동순

저자이동순은1950년경북김천에서태어나경북대국문학과및동대학원에서한국현대문학사를공부하여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동아일보신춘문예에시「마왕의잠」당선(1973),동아일보신춘문예에문학평론「시와구체적싸움의진정성-김남주시에대하여」당선(1989).시집『개밥풀』『물의노래』『지금그리운사람은』『철조망조국』『그바보들은더욱바보가되어간다』『꿈에오신그대』『봄의설법』『가시연꽃』『기차는달린다』『아름다운순간』『마음의사막』『미스사이공』『발견의기쁨』『묵호』『멍게먹는법』등15권발간.2003년민족서사시『홍범도』(5부작10권)발간.평론집『민족시의정신사』『시정신을찾아서』『우리시의얼굴찾기』『잃어버린문학사의복원과현장』등발간.편저『백석시전집』『권환시전집』『조명암시전집』『이찬시전집』『조벽암시전집』『박세영시전집』을포함하여각종저서54권발간.신동엽창작기금,김삿갓문학상,시와시학상,정지용문학상등수상.현재영남대학교명예교수,계명문화대학교특임교수.

목차

시인의말

1부어등역
다랑논
산수유
목화다방
어등역
산포리마을
돌탑
비빔밥
성주농꾼
미나리
오디똥
그여인
능금품앗이
한국인

2부할머니의콩
홍도마을
산수유
저음리에서
마을회관
발칫잠
삼베마을
세월
자두꽃
성찬이형제
봄비
옥성할머니
자두밭
무거운빚
할머니의콩
청어

3부삼거리주막
백살노인
고인돌
보현분교
송아지
구산포구
망께소리
정려각
황령마을
다부동에서
가송마을
마구령
삼거리주막
열사의무덤앞에서
장사마을
어느실향민

4부경계선
너구마을
경계선
옻밭마을
첫물복숭아
솥골
마을잔치
신당리에서
노랫가락
옹기김수환
추억
느타리
파전마을
가자미식해
노루
내원마을

해설일상에서걸러진축제의세계│송기한

출판사 서평

“사람과삶과사랑을한가운데에둔진귀한시편들!”
“고향으로가는길의시집,나를기다리고있는모성(母性)의시집!”

모든살아가는것들은이야기를남긴다
『마을올레』는이동순시인의열여섯번째시집이다.시인이동순은1973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등단한이후,다양한삶의이력과풍경을조곤조곤한시어로담백하게드러내왔다.이번시집에도등단40년을훌쩍넘긴시인의무심한듯섬세한눈길이곳곳에드리워져있다.
이동순시인은15개월동안대구KBSTV기획프로의진행자가되어경상북도의마을63곳을매주탐방했다.말로만듣던텅빈농촌,노약자들만남아있는마을회관에서현지주민들과손을맞잡고가슴속에갈무리된이야기를들었다.눈물,웃음,애달픔,처연함등고단하고힘겹게살아온민초(民草)들의사연을온몸으로껴안았다.방송취재를마치고돌아오는차량뒷좌석에서시인은시작품의밑그림을그렸다.그렇게해서탄생한58편의시가오롯이『마을올레』에담겨있다.
『마을올레』에서시인이주목하는것은드러난삶이면에침묵하고있는스토리다.퇴락해가는농촌공동체속에서시인이발견한것은여전히그곳에서살아가는‘사람들’이었고,그사람들이꽁꽁감춰두었던삶의‘내력들’이었다.시인의눈에그것들은‘행복’이라고말해질것들이아니었다.마을공동체가기억하고있는것들은크고작은상처였다.
이동순시인에게이야기는삶과다른의미가아니다.모든살아있는것들은이야기를남긴다.그중에서도지난세기의굴곡진시간을살아온사람들의이야기는특별하다.마음의바닥에묵혀두었던이야기들을하나씩하나씩꺼내놓는사람들앞에서이동순시인은뜨겁게호응했다.그리고그호응의결과물로시집『마을올레』를상재했다.

남은자의윤리,기억되는내력들
우리는남은것을통해사라진것을기억한다.그렇다고남은것들이사라진것들의흔적이라고말할수는없다.다만,남은것들은사라진것들을기억해야할윤리를지키고있을뿐이다.기억해주는사람들이있으므로기억되는사람들이있는것이다.지금남아서기억하는사람들도머지않아기억의대상이된다.이동순시인의『마을올레』는남은자의기록이자기억하는자의윤리이다.

목화다방을아시나요
상주은척면소재지장터끝에서
오른쪽으로돌아가면
숨어서빠끔히내다보는
간판하나가걸려있는데요
거기쥔마담은
한자리에서사십년넘도록
시골다방을지켜왔대요
봄바람가을비가몇번이나지나갔나
어느틈에회갑을넘겼다며
배시시웃는마담눈가에
잔주름이오글오글돋아나네요
난로옆에는
칠순이넘어도여전히건달기가득한
은척영감님들서넛
고스톱치느라옆돌아볼틈도없는데
국자도주전자도
벽에걸린액자도불알시계도
모두모두세월의때가덕지덕지앉은
골동품들이랍니다
상주은척목화다방소파에앉으면
나도저절로골동품이됩니다
-?목화다방?전문

이시에서‘목화다방’은고유명사가아니라‘시골다방’처럼보통명사로읽어야한다.지금은퇴락한조그마한읍내에서그것도길모퉁이에서살짝돌아앉아있을법한이다방도한때는많은사람들이들고났으리라.그시절에는‘목화다방’도‘거기쥔마담’도나름대로치장한고유명사로존재했으리라.고유하다는건뜨겁게살아서숨쉬고있다는뜻이다.그렇기때문에고유명사는기억하는주체의다른이름이된다.그러나“봄바람가을비”가“사십년”이넘도록지나가면서고유한것들은모두사라졌다.남은건“골동품들”같은“은척영감님들서넛”과“회갑을넘겼다”는“마담”뿐이다.그들은모두“잔주름이오글오글돋아”난존재다.이때‘잔주름’이야말로그들의고유한것들을모두보편화해버리는상징,즉기억하는자에서기억되는자로이행해가는표식이다.
이동순시인은이러한표식으로남은것들을기록한다.그의시선에포착된것들은‘역사’라는통칭으로는아우를수없는‘마을’과‘사람들’의내력이다.역사가공식적으로기록된사실이라면,내력은공식화할수없는개별적사연이다.때문에역사가종종진실을외면할때,내력은진실을더욱강하게끌어안는다.

흘러간날
남의집머슴살이하느라
가슴이썩은박속처럼내려앉았다던
불쌍한우리영감님
객지사는막내딸

어제도왔다가같이누워서
갈고리같이휘어진이어미손잡더니
제뺨에부비며서럽게웁디다
자두꽃은만발했는데
저는구부러진손가락으로
영감님사진쓸고또쓸고어루만지다
기어이그위에눈물떨굽니다
-?자두꽃?부분

슬픔은맑지만서러움은뜨겁다.역사앞에서우리는슬퍼하지만,누군가의살아온내력앞에서서럽지않은경우는드물다.슬픔이눈물로표면화된다면,서러움은온몸으로흐느끼는울음이다.온몸으로세상을살아내고견뎌낸사람만이“서럽게”울수있다.?자두꽃?은바로그러한온몸의내력을기억하고있다.여기사무치는울음도있다.“군대가서죽은아들생각/세월이흘러갔는데/사무치는슬픔은어찌그대로인가”(?할머니의콩?)에서보듯,“사무치는슬픔”은“세월이흘러”도결코소멸하지않는다.기억되는것들은기억하는자들을사무치게한다.이동순시인의『마을올레』에는이처럼사무치는것들이시의형식으로기억되고있다.

서로의상처를치유하는마을공동체
이동순시인이기록/기억하는‘사무치는’내력들은우리근현대사의굴곡진역사가남긴상처들이다.그상처들은어떤식으로든치유되고위로되어야한다.이동순시인의소명은침묵하고있는상처들의내력을낱낱이들어주는일이면서그것들의아픔을치유하는일이다.『마을올레』의시편들은공동체의어울림과신명을통해‘사무치는’내력들의아픔을치유하려는주술이다.사람으로인해생겨난상처를사람과더불어회복하고자하는따뜻한말건넴이자신명풀이인것이다.

마을둘러싼
세개의산봉우리를
솥다리로생각한이고장조상들
마을이름솥골의유래도
그렇게생겨났다
경북문경시마성면
산좋고물좋은솥골에서
양조장만들어
세계최고의막걸리빚겠다는
탁주계숨은야심가
솥골의복만씨
막걸리상표는자기이름뒤집어
만복이라붙였다
받으시요받으시요
만복주한잔을받으시요
마을회관에서
오늘은배추전부치고
돼지족발에콩나물삶아무치고
갓무친겉절이새우젓에
상다리가휘어지는구나
외롭게살아온늙은이들모여
틀니털럭거리며
모처럼맛있는음식나누는구나
늘이런시간이라면
얼마나좋을꼬
-?솥골?전문

신화시대부터‘술’은현실의고통을잊게하는‘약’이었다.도취와마취의경계를넘나들면서술은상처투성이인이성과감성을적절하게회복시켜주었다.“외롭게살아온늙은이들”이간직하고있는저마다의내력들을아물게한것이바로술이다.이술로인해인류의신명은발산되었고,그신명을받아새로운상처앞에서당당할수있었다.그러한맥락에서‘솥골’은온갖현실적고뇌로부터벗어난세계이자역사로부터비켜선곳이다.그곳에서사람들은“묵을빚고/젊은남정네들은떡메로떡을친다/왁자지껄한마을이/모처럼사람사는곳”(?옻밭마을?)임을확인한다.
『마을올레』는변화된농촌공동체를사실적으로짚어내면서전근대적마을공동체와근대적삶의‘경계’를촘촘하게읽어내는시집이다.사라진자와남은자의경계,기억되는자와기억하는자의경계,상처준자와상처받은자의경계,이모두가마을공동체에서하나로수렴된다.그리하여“아,인간의삶에서/경계니구분이니차별이니하는따위가/대체무슨소용이란말인가”(?경계선?)라는결론에이르게된다.
공동체의결속력이느슨해지고사람에대한기대와희망이희미해진이시대에,이동순시인의『마을올레』는건강한공동체적삶을회복하려는노래이다.아주먼옛날부터전해져온노래,부르는순간생명성의찬란함으로황홀해지는노래.그러한신명의노래처럼『마을올레』는현대인의가슴속에가만가만스며드는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