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시랑토앙케

암시랑토앙케

$12.00
Description
“민화적 언어가 빚어내는 웅숭깊은 해학과 서정!”
“영혼의 거울에 비친 사람 냄새 가득한 시편들!”
품격 있는 해학과 격조 높은 서정
삶의 아픈 굴곡을 격조 높은 서정으로 승화시켜온 정양 시인이 신작 시집 『암시랑토앙케』를 펴냈다. 2016년 구상문학상을 수상한 『헛디디며 헛짚으며』 이후 7년 만에 상재한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유년시절의 일화를 생생한 기억의 언어로 재현한다. 그동안 시대와의 불화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면서 현실과의 긴장을 유지해온 시인은, 민화(民畵)처럼 남아 있는 1950년대의 풍경을 해학의 정신을 담아 품격 있게 그려낸다.
194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정양 시인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지금까지 오롯이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김용택, 안도현, 유강희, 박성우 등 수많은 문인의 선배이자 스승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반세기 넘게 이어져온 정양 시인의 시세계는 등단작 「천정을 보며」에서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네 사는 일 따뜻하여 / 잠 아니 올 때 / 내 기억 밖에서 흘러가던 바람소리 / 어쩌다 되돌아와서 / 내 영혼의 우수의 석경을 닦는다.”라는 구절에 나타나 있듯이 시인은 “우리네 사는 일”로부터 자기 “영혼”을 맑게 닦아내는 것을 시 쓰기의 중심으로 삼아왔다. 세상의 일을 영혼의 거울에 담아내고, 그 거울에 비친 동시대의 풍경을 문학으로 형상화해온 시인에게 모국어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시인은 모국어가 함의하고 있는 민족적 정서를 눈썰미 있게 읽어냈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세태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심성과 인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짚어냈다. 그처럼 정양 시인에게 시 쓰기는 ‘영혼의 석경’을 닦는 숭고한 행위인 것이다.
저자

정양

1942년전북김제에서태어나동국대국문과와원광대대학원국문과를졸업했다.1968년시「청정을보며」가대한일보신춘문예에,1977년윤동주시에관한평론「동심의신화」가조선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었다.시집『까마귀떼』『살아있는것들의무게』『길을잃고싶을때가많았다』『나그네는지금도』『철들무렵』『헛디디며헛짚으며』등을펴냈으며모악문학상,아름다운작가상,백석문학상,구상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1부들마을민화
겨울밤/더큰소리로/진잡수유?/짜짜놀이/보리타작/도둑질/다시만나서/짚한다발/봄잠설치며/단수수잔치/앵속얻기/억새밭선열이/그날이후/연하남들/베신/비얌괴기/뻥쟁이나허풍쟁이나/딱한모금/가물치낚시/미신과확신/땜쟁이노래/야꼽쟁이/아무일도없었다는듯/바람쟁이하나쯤

2부질게뻔해도
봄비/질게뻔해도/그거안먹으면/단풍/가을밤/달밤/눈내리는강가에서/다리주무르기/봄밤/유리창에얼핏얼핏/매미소리/진달래와철쭉/눈오는밤/밤에우는새/마지막잎새/무등산에도무등은없다/백산백비/민망한꽃들이/도보다리/남는시간/한몸되기그리쉽던가/봄꽃

발문쓸쓸함의깊이를가늠하는시ㆍ김영춘

출판사 서평

자연과더불어살아가는보통사람들
시집『암시랑토앙케』는지나간세월속에남겨진상흔들을차분하고단단한언어로소개한다.1부「들마을민화」에는시인이기억하는고향마을이야기를소재로한시편들이,2부「질게뻔해도」에는잊혀져가는순간과사람의모습을맑고투명한언어로포착해낸시편들이담겨있다.
1부의작품들은“70여년전,우리나라가세계적으로제일가난했던내소년시절,내가겪은가난한들마을사람들의얘기들을민화적(民畵的)으로투박하게그려본것”(「시인의말」)이다.여기서주목할것은‘민화적’이라는표현방식이다.민화는꾸밈이없이자연과더불어살아가는보통사람들의일상이다.

서울효제국민학교에서
김제공덕국민학교로전학왔던
육이오한해전3학년때
공덕학교아이들은모두맨발로학교에다녔다
내하늘색운동화를아이들은베신이라했고
나를베신신은놈이라부르기도했다

맨발로학교에다니는아이들을
처음엔이상하게여기다가며칠뒤부터
길가다박솔밑에신을감추고
나도맨발로학교에다니기시작했다

(…중략…)

어느날그다박솔아래베신이없어졌다
훔친놈누구든걸리기만하면
내손으로당장쥑여뻐린다면서
복철이가불같이화를냈지만
나는베신이하나도아깝지않았고
앓던이빠진것처럼개운하기만했다
-「베신」부분

‘서울’과‘김제’의거리만큼‘베신’과‘맨발’의차이는크다.맨발의세계에서베신을신는것은확연하게다른모습이다.이런상황에서화자는“베신신은놈”에서“맨발로학교에다니는아이들”이됨으로써비로소공동체에합류한다.“어어참마디따보리마슨역시/이러케구워멍는거시최고지”(「보리타작」),“이렁거시다크니라고허는지싱게/괴얀스레너무걱정덜허덜마러”(「그날이후」)에서처럼시인이민화의언어를즐겨사용하는것은지금은희미해져버린맨발의세계를우리앞에다시불러내기위함이다.그아스라하고따뜻했던날들의기억을.

하수들이세상에남긴인생노래
정양시인에게시는예술이아니라삶그자체이다.그리하여그의시에나타난삶은예술이도달하지못하는경지를넘어선다.정양시인은쓸수없는것은쓰지못하는법이고,써서는안될것은쓰지말아야한다고여긴다.그에게시는꼭써야만하는것들이고쓰지않으면안되는것들이다.그것들은“이세상어디에도/더는못감출상처”(「단풍」)들이고,“목숨걸린걸알고저렇게/악착같이맴맴거리”(「매미소리」)기때문이다.그에게시는우리의삶이“남겨야할말이꼭있다는듯이/마지막잎새하나창밖에/이악물고대롱거”(「마지막잎새」)리는것들이다.이처럼정양시인은삶이시에앞서고시가삶의잔여가되기를바란다.이는모든삶은결국죽음에귀착한다는것을인식함으로서비롯된다.

나는가끔티비프로그램중
장기두는걸즐겨본다

다그런건아니지만
고수일수록질듯한판은
서둘러포기해버리고하수일수록
질게뻔해도끝까지둔다

무슨의로운일에목숨걸어야지싶어
늙어병들어죽는걸부끄럽게여기던
고수인척하던시절이내게도있었거니

이제와돌이켜보면
질게뻔해도끝까지두는게
세상에대한최선의예의인것같다
최선의예의일지마지못한도리일지
늙어서병들어죽는걸이제는
당연하게여기면서

질게뻔해도끝까지두는
끝까지시달리는하수들의회한이
장기판마다새삼되씹힌다
-「질게뻔해도」전문

정양시인은“질게뻔해도끝까지”살아보는,그래서어쩌지못하고삶에“끝까지시달리는”하수임을자처한다.시는그런하수들이세상에남기는노래이다.그렇게남겨진시편들에는하수의삶이아니라‘시달림’이새겨져있다.때문에정양시인의시에서인생의의미를찾는일은어쩌면무의미하다.대신명사로서의인생이아닌동사로서의시달림을찾아야한다.“누굴그리보고싶은지//빗방울들맺혀그렁거린다”(「봄비」)고할때,‘그렁거’리는그미세한떨림이바로시달림의순간들이다.그래서일까?시집『암시랑토앙케』를읽고나면가벼운미열에시달리게된다.그미열에서헤어나면,시집을읽기전과는분명다른,삶의새로운기운을충천한것처럼마음이맑고가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