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꽃의 사랑법 (정일근 시집)

혀꽃의 사랑법 (정일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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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고독한 존재의 내면을 톺아보는 불꽃같은 시편들!”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 바치는 존중과 존경의 헌사!”
시대와 사회를 온몸으로 앓는 시인
정밀한 서정의 언어로 우리의 삶을 어루만져온 정일근 시인이 신작 시집 『혀꽃의 사랑법』을 펴냈다. 1984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고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등단한 정일근 시인은, 「바다가 보이는 교실」 연작과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경주남산』 등의 시집을 통해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을 모색해왔다.
『혀꽃의 사랑법』은 ‘착하고 맑은’ 인간의 마음을 되찾기 위해 40년 동안 오롯이 시를 써온 정일근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이다. 1987년에 첫 시집을 펴낸 이래 3년마다 한 권 꼴로 꾸준하게 시집을 상재해온 시인의 공력이 곳곳에 스며있는 이번 시집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게 바치는 존중과 존경의 헌사와도 같다.
『혀꽃의 사랑법』에 수록된 63편의 시들은 시인의 존재론적 성찰과 그로부터 기인한 시적 지향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정일근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자기 성찰적 태도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굴절된 존재로 머무르지 않으려는 단단한 의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정일근 시인의 시가 지닌 진정성은 사회적 윤리의 당위론적 응답을 넘어 자연의 섭리를 삶의 방식으로 일체화함으로써 이를 존재의 연원으로 삼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정일근 시인의 시적 발화는 침묵을 경유한 ‘고래(孤來)’의 반영태라 할 수 있다. 시대와 사회, 이 세계를 온몸으로 앓고 있는 시인은 “오랜 겨울 춥고 적막한 빈손의 시간”(「11월의 사랑-노래하듯이」)을 견디는 고독한 존재의 내면을 톺아보면서 삶이 내어주는 선물을 우리에게 조곤조곤 읊어준다.
저자

정일근

시인정일근은경남진해에서태어났다.경남대재학중인1984년『실천문학』(통권5호)과1985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바다가보이는교실』『경주남산』『마당으로출근하는시인』『기다린다는것에대하여』『방!』『소금성자』,한영대역시집『저녁의고래』등이있다.시와시학젊은시인상,소월시문학상,지훈문학상,이육사문학상,김달진문학상등을수상했다.경남대교수를거쳐현재같은대학석좌교수로시창작을강의하고있다.「시힘」동인이다.

목차

1부펜혹의향기
독활/시인의꽃/독수리난민/백야와흑야사이/고래란소리가올때/고래,비치코밍/
운명/고통,고래/시로가는길을묻기에/시를쓰려면/혀꽃의사랑법/사랑한다는말은/
금목서여자/반짝반짝,간질간질/황금세월을사다

2부수국총수국총
위대한독서/꽃의항의/수국이핀다/수국총수국총/쪽빛적멸/별불/만월단청/쪽빛화엄/
복사꽃목도리/쉿!/머꼬?/큰일났다!/때죽나무꽃인듯/사는것이무엇인지/슴슴한슬픔

3부꽃가지의금강보살
그냥/독거의 꽃/지리산서백두산까지/내탓,네탓/봄꿈,진해/공존의이유/꽃의모성/선물/
창조중인시인/죽음의형식/은목서사랑/저기동백이오고있다/작별/수국이피는풍경/
바다의장례/제주폭낭/왕년에,왕년에/사랑,그불변

4부가볍게말하지마라
11월의사랑/오메보시/크샤나의고래/줄가자미맛에대한보고/봄도다리의고백/꽃에자결을허하라/
침묵시위/인공위성0728/동백에대한편견/붉은오로라/히말라야작은별/아마다블람정상에롯지를짓고/
풀꽃에야단맞다/백시

해설빈손의시간을견디는고래의화엄ㆍ이병국

출판사 서평

시를쓰려면자신의목을걸고써라
정일근시인은“상처가스승이어서,병이스스로약을찾아내는일”(「독활-서시」)에천착한다.상처는존재가세상과만난흔적이고,그흔적을통해존재는자신을세상에증명할수있다는믿음을얻는다.이러한증명의과정을두고시인은‘병이스스로약을찾아내는일’이라고정의한다.시인은“내목을친친감게될//깊은바다무게같은운명”(「운명」)앞에서“등짝갈라져피가나도록고통스러운시를쓰는날”(「고통,고래」)과마주한다.시인에게주어진삶이그러한고통을동반하는운명이라면,“무진장무진장눈오는데//누군가다섯수레책이고지고오는데//그의발자국눈에찍히지않는다면/그것이시(詩)”(「시로가는길을묻기에」)라는인식은시의수행자가감당해야할몫이다.
오랫동안수행자의자세로시의길을걸어온정일근시인은“누가읽든단숨에시의꽃이피지않는다면시인은그자리에서스스로제목을쳐야하리.”(「시를쓰려면」)라고강조한다.『혀꽃의사랑법』에이별의순간이자주나타나는것은정일근시인이자신의목을걸고시를쓴다는증거이다.“온몸으로사랑한다고노래하지않아도/11월빛나는영혼의고백과복종의자세로마주서자”(「11월의사랑」)고다짐하는시인의태도는얼마나듬직한가.이는살아있는시,생명있는시,사람을살리는시를향해나아가려는시인의곧은의지이다.
정일근시인의시적수행은자연의시간과흐름을삶의시간과흐름으로체화하며이루어진다.시인은“풀리지않는시에고민하다백살이넘은은현리음나무찾아가답을물었”다.그러자“백년가지못하는시는써서뭐할라꼬”라는물음이되돌아왔다.이에시인은“아뜩해지다가온몸에소름가시돋는”(「머꼬?」)다.시인의영혼에서발화한소름의가시들은시인이쓴시에잠재해있다가시를읽는독자의정곡을찔러댄다.그리하여독자는자신의영혼이살아있음을깨닫게되는것이다.

언어없이말하는시

북해도여행길에서사온유리펜으로
추운바다를닮은블루블랙잉크찍어시를적었다
내귀얇아주변의부추긴장단에춤추며
그시액자에담아전시까지했다
더러돈받고팔려나갔고더러는폼잡고선물했다
내시가누군가의어디에서장식이되는것이
부끄러웠다,나만즐길일을무슨자랑이었는지
오래후회했다,어느날누군가말해주었다
액자속시가볕에바래시나브로사라지다가
내도장찍힌빈종이만걸려있다고!
이렇게고마울수가!시침뚝떼고말했다
나는그런적이없다고,그냥하얀종이만건넸다고
종이에붉은도장만찍어드렸는데
보이지않는시를읽은당신의시안(詩眼)이대단하다고
그시가백시(白詩)란내대표작이라고,
-「백시(白詩)」전문

시를통해무언가를표현해내는것은시인의책무이자숙명이다.어쩌면영원과영속을꿈꾸는헛된욕망이지도모른다.정일근시인은즉물적완결에집착하는방식에서벗어나시를유예하고우회하여바라보고자한다.이러한방식은자신의삶과시를성찰하는과정으로나아간다.
40년동안시를써오면서정일근시인이확인한것은“시가볕에바래시나브로사라지”고남은“그냥하얀종이”다.언어없이말하는시,침묵으로형상화하는시,그러한경지에이르기까지시인이쌓아온웅숭깊은내력이시집『혀꽃의사랑법』에오롯이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