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밥 빈집에 세 들어 (천병석 시집)

연밥 빈집에 세 들어 (천병석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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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순수한 직관과 우주적 사유가 빛나는 시어!”
“뭇 생명과 별들의 운명을 감득하는 시편들!”
『연밥 빈집에 세 들어』는 “현란한 상상력과 충혈된 열망이 빛나는 시인”으로 평가받는 천병석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연밥 빈집에 세 들어』에는 “연밥의 빈 구멍을 빌려 우주의 실상과 섭리를 밝”히는 46편의 시들이 담겨 있다.
연밥은 우주의 원형(原形)이며 그 안의 구멍 하나하나가 우주 전체를 구성하는 개체의 집이다.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잠시 세 들어 살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미지의 공간이다. 어느 누구도, 어떤 별들도, 영구 입주가 불가능한 그곳에서 ‘입주’와 ‘이사’를 번갈아 가며 이합집산을 반복한다. 시인은 그 집을 무상(無常)을 전거로 삼는 존재의 실상으로 파악한다.
천병석 시인은 “씨앗 빠진 연밥”의 빈 구멍에 세 들어 하룻밤 사이에 지구의 내력을 다 깨치고 “통째 하늘로 훌쩍 솟아오르기”를 꿈꾼다. “지극정성”으로 키워낸 한 그루 나무 같은 시심(詩心)에서 뭇 생명과 별들의 운명을 감득한다. 그리하여 연밭에서 만나는 장엄하고도 꼿꼿한 외줄기 연의 시편들을 담아 『연밥 빈집에 세 들어』를 상재했다.
저자

천병석

천병석시인은1983년「시와해방」동인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첫시집『양들에관한기록』으로2012문학나눔에선정되었으며대구시인협회,국제PEN경주위원회,현대불교문인회대경지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1부수련이질때까지
수련,만발한/수련이질때까지/연밥빈집에세들어/연지못6만2천평/연지못백성들/그창졸지간/봄의무게/시간이란것의세포/절경/남쪽바다,동백/나무,이사/나무를심는모르는이유

2부라디오,연못낚시꾼
나무,겨울/섬,시인/나비에부쳐/난파선/겨울바람은/낙엽송,뼈처럼허물다/돌배나무,누가베어갔나!/겨울산에오르다/마이산,능소화/선바위,영양군/불길/라디오,연못낚시꾼

3부달리고달린다
월류봉/누워계시게,그냥/서석지은행나무/달리고달린다/뜯기고남은/밤,혹은생체에대한/환,목이마른말/칼에대한명상/녹다만비누하나발견되었다/밤

4부공유지의약속같은것
관측병/객차/풍향계/종다리강/엘리베이터/조금슬프다/밤의풍경/공유지의약속같은것/소크라테스의전향/예초의날/변비/밤송이전설

해설·창조적변주와내밀한사유의화음

출판사 서평

다의성과참신성이돋보이는시세계
천병석시집『연밥빈집에세들어』는만발한수련을주제로한작품으로문을연다.만발한수련과허공을동시에배치하여충만속에서허무를재인식하게하는‘색즉시공’의현상학적주석이돋보이는시다.
 
수련이만발한연못가를풍물패들무리지어돌고/나는허무를설파하는무슨교도처럼술에취해/누웠다/자전거처럼경쾌하게연못을따라도는생머리아가씨/그녀가가진것은가정뿐인가/나는무슨허무의교도처럼/투명한집하나를허공에/지었다부수었다
-「수련, 만발한」전문

수련이피어있는연못가를풍물패가떼지어돈다.만개한수련과“자전거처럼경쾌하게연못을따라도는생머리아가씨”의이미지가하나의연속동작을연출하여정경일치(情景一致)의진풍경을빚는다.풍경과전경이주객을바꿔가며독자들의시각을사로잡는이작품은천병석시인만의특기인다의성과참신성이잘드러나있다,

지구의내력을깨치는돈오의세상
장자의우화를연상케하는표제시「연밥빈집에세들어」는시인의정치한사유와세계관이응축되어있다. 
 
하룻밤만이라도좋겠어/6만평연지못에다익어고개떨군연밥들/씨앗빠지고생긴저셀수없이많은빈구멍/그중하나빈집세들어/하룻밤만자고갔음좋겠어/그하룻밤사이, 나는지구의내력다깨치고/조조兆兆 단위를넘는그많은뭇생명들//황새니박새니개똥지빠귀, 물벼룩이니하마니물뱀이나코끼리, 붓꽃이니우담바라능소화민들레구절초박달나무, 바오밥, 엉겅퀴같은그많은생명들//하룻밤그이름듣는것만으로지구의경經 모두읽은명부에이름올리고선/아침햇살에사라지는이슬과함께, 아/나는또어디로/이미가있었으면좋겠어/가령/하얀목화솜위잠든채발견된/어스름저녁손톱애벌레같은
-「연밥빈집에세들어」전문

문명의발달덕분에포식자의정점을누려온인간은“조조兆兆 단위를넘는그많은뭇생명들”중극히일부에지나지않는다.인간또한다른생명체들과더불어‘우주살이’의일익을담당하는협업체다.시인은 “연지못”의“연밥”에다름아닌우주를다가구주택정도로보고“그중하나빈집세들어/하룻밤만자고갔음좋겠”다고한다. “그하룻밤사이”에“지구의내력다깨치”는기적은,“빈집”과“투명한집”을한통속으로보는돈오(頓悟)의경지다.  

순수직관과감각적시어의조화
천병석시인은날선언어와낯선배치를통한형식실험,순수직관과사유가체화된시인이다.시인은꽃을표현할때아름답다거나향기롭다는형용사를배제한다.습관화된상투적표현을철저히경계하는시인은꽃에관한통상적인식을지우고그속에들어가꽃(우주자연)의아름다움과향기를자신의언어로형상화한다.현상학적직관과감각적인언어로사물과존재의만남을주선한다.바로그지점에서천병석시집『연밥빈집에세들어』는포스트모더니즘이후의새로운가능성을제시하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