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노회찬 유고산문집
이제 그가 없는 세상, 그의 깊은 육성을 오롯이 만나다
“우리가 가는 길이 바로 역사이고, 이를 기록하는 것은 나의 임무라 생각했다.”
2018년 7월 23일. 한 사람이 멈춰 섰다. 기록적으로 거친 폭염 속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학생들이 그의 장례식장을 끊임없이 찾았다. 그는 노회찬이었다. 정치인이었으되, 가장 인간다운 인간으로 더 기억되는 사람, 세상은 깊게 애도했다.
이제 그가 없는 세상, 그의 육성과 성찰이 담긴 단 한 권의 유고산문집 『노회찬의 진심』이 출간됐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꾸었던 그의 뜨겁고 생생한 15년간의 기록이다. 더러 건너뛴 해도 있지만, 그는 피곤에 지쳤을 때도 그의 글을 기다리는 지구당 당원들과 시민들을 위해 열정을 다해 글을 썼다.
그래서 이 책은 어쩌면 그가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전체 5부 중 1~4부는 제17대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한 이후, 2004년 7월 14일부터 2018년 7월 23일까지 고(故) 노회찬 의원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진보정의당, 정의당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에 올린 ‘난중일기’, 노회찬의 공감로그, 페이스북 글 등을 엮었다.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국회에서, 거리에서, 노동의 현장에서 우리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언제나 가장 약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그가 남긴 살아 있는 역사이자, 기록이다.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한평생 분투했던 노회찬 의원의 행적이 날것 그대로 담겨 있다.
5부는 2004년부터 201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방송토론, 인터뷰, 트위터 글 등 세간에 큰 공감을 자아내며 회자된 ‘촌철살인 노회찬 어록’을 모았다. 때로는 유머로, 때로는 명징하고 통쾌한 비유로, 무엇보다 철저한 자료조사와 사실제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선량함과 따뜻함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고 우리 시대의 핵심을 짚어낸, 그의 잊을 수 없는 말들이다.
정치활동을 같이한 오랜 동지 두 사람, 유시민과 조승수 전 의원의「추도의 글」두 편도 수록했다. 6쪽에 걸친「노회찬 연보」에는 진보정당 지지자들을 넘어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큰 공감과 지지를 얻은 그의 삶을 총망라한 행보를 담았다.
노회찬, 가장 뜨거운 시대를 관통한 한 사람
분단, 독재, 부당한 권력?자본에 대한 분투, 사회양극화와 빈부격차에 대한 저항,
“언젠가 촛불마저 꺼져도 광장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생사가 갈리는 노동의 현장, 노동과 정치권력?독점자본과의 갈등, 노동자와 일하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 첨예한 지역대립과 정치갈등……. 이제껏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현실’이다.
“전쟁을 겪은 소년은 이미 소년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1972년 10월 17일 이후 나는 이미 소년이 아니었다.”라는 노회찬 의원의 회상대로, 유신독재 치하에서 자란 소년 노회찬은 유신반대 유인물을 뿌릴 정도로 결기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청계천 헌책방으로 달려가 사회과학 서적도 탐독했다. 대학시절에는 용접일을 배워 용접공으로 일했고,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창립을 주도하는 등 1980년대 후반 민주화와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그는 합법적 정치세력화를 꿈꾸며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해 한평생 노동자와 농민, 중소상인 등 서민의 편에 함께했다.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을 목도할 때마다, 그는 진보정당 운동은 바로 매일매일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 부조리한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들’을 위한 일이며, 이것이 진보정당의 존재이유라고 선언했다.
몇십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대한민국의 모순, 노동의 현실에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부단히 문제를 제기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법 개혁을 외치고, 밤늦게까지 토론했다. 이후 그는 제17대, 제19대, 제20대 등 3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끝까지 민중과 노동의 현장에 기반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통쾌한 언변과 설득력으로 현실정치를 강도 높게 비판했고 정치?경제?법 개혁을 일궈내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그가 심혈을 기울인 문제 중 하나로 비정규직 양산 등 고용의 불안정 구조를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인권문제, 국가보안법 폐지, 독도영유권, 파병반대, 용산기지를 둘러싼 한미외교협상 비판, 한반도 평화염원 등 흔들림 없이 진보와 정의의 입장에 섰다.
매일매일 정직하게 일하고,
이름 없이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인간존엄과 평등사회를 꿈꾼 ‘가장 인간적인 정치인’, 최고의 휴머니스트
이렇듯 치열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의 삶을 살았지만, 노회찬 의원은 진솔한 인간미, 재치 넘치는 유머감각, 문화예술에 대한 조예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소신에 따라 첼로를 배웠고, 책을 항상 가까이했으며, 신혼의 아내를 위해 요리솜씨를 뽐내고 싶어 한 남편이기도 했다. 자연을 사랑해 광릉 숲에서 업무보고를 받은 날, ‘가장 좋은 하루를 보냈다’고 기뻐했고 좋은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가장 인간적인 정치인’이라는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평도 그의 인품을 수식하는 말이다. 70세 시어머니가 연로해 40년 간 운영한 떡집 문을 닫는 날, 마지막 떡을 주려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시어머니와 함께 만든 떡을 두고 간 40대 여성, 강연을 마치고 탄 야간고속버스에서 만난 정년 다 된 고속버스기사, 열정에 넘친 항공기 조종사노조원들, 무더위 속에서 정책을 토론하고 공부하던 20대에서 60대까지의 노점상들, 강연이 끝나자 손을 꼭 잡고 “여든하나인 우리들이 살아생전에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는 그날을 꼭 보게 해달라”고 당부하던 노인…, 그가 만난 사람들은 감동이었고, 힘이었다.
그는 이렇듯 사람들을 사랑했고, 또 사랑받았다. 생전 2005년부터 14년간 해마다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해 여성리더, 여성노동자 등에게 장미꽃을 선물했으며, 국회 청소노동자들에겐 ”혹시 잘 안 되면 저희 사무실 같이 씁시다” 권하며 이들을 “국민을 위해 한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라고 응원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화물연대 노동자의 응원에 감동했고, 새벽 두 시 반, 함께 고생한 보좌관과 터미널에서 헤어지며 아침부터 다시 시작될 일정을 위해 힘을 냈다.
신영복 선생을 깊이 존경했고, ‘밤이 깊으면 별은 더욱 빛난다’라는 글귀를 특히 좋아해 힘들 때 자주 읽었다. 또한 이 유고산문집에는 가족과 지인들, 특히 어머님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아프게 배어난다. “내 인생의 첫 눈은 태어나서 처음 마주한 어머니 얼굴의 그 눈! 어머님 건강하세요.”라는 글귀가 잊히지 않는다.
따스한 인간미만큼이나 그의 유머도 특출했다. 엄중한 국정감사기간에도 “야간근로를 반대하기 때문에 질의하지 않겠다”고 분위기를 눅이거나,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암소갈비 먹던 사람이 불고기 먹으면 그 옆의 굶던 사람은 라면을 먹을 수 있어요”, “50년 된 삼겹살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만 명만 평등한 것 아닌가요?”라는 촌철살인 어록에서는 통쾌한 노회찬식 유머와 함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그래서 부당한 현실 앞에 더욱 분노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용산참사 영결식 추도사를 하면서 고인들에게 함께 숨진 고 김남훈 경사를 하늘나라에서 만나거든 따뜻하게 안아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역시 무모한 진입명령의 희생자이고 무허가건물 옥탑방에서 기거하던 서민이었습니다.”라는 그의 추도사는 누가 진정한 가해자인지 가려야 한다는 주문이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배웠다. 때로 비판하고 논쟁했으며, 같이 열정을 키웠다. 항상 서민이 고통받는 현장을 직접 찾았기에 그의 말과 글은 절절했고, 현실에 닿아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울러 신간『노회찬의 진심』에 담긴 그의 글들은 놀랄 만한 현실분석력을 보여준다.
어려운 법과 제도 문제, 난마처럼 얽힌 경제논리, 국방과 외교의 현안을 탁월한 지성과 통찰력으로 해부해 문제의 본질을 꿰뚫었다. ‘국회의원 의정교재’로도 손색 없을 정도로 뛰어난 분석과 통찰, 해박함, 치밀한 조사, 세상을 바로 세우려는 고민의 힘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갈등에 대해 그가 던지는 해법과 문제분석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권력과 자본의 힘 앞에 무너지고, 의지할 데라곤 없이 맨몸으로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고 고뇌했던 노회찬. 유쾌한 재담, 치밀한 자료조사와 명쾌한 설득력, 끊임없는 공부와 고민, 현실적 해법으로 이 강력한 세상의 벽과 제도에 맞서던 그는 이제 글로,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를 알게 된 건 우리의 특권이었다.
그는 이제 여기에 없다. 그가 남긴 이 기록의 힘이 살아남은 자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