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영의 청소년 건축 특강 : 건축으로 살펴본 일제 강점기 -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 7

서윤영의 청소년 건축 특강 : 건축으로 살펴본 일제 강점기 -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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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인의 민족성을 말살하려 한 일제의 건축물 이야기

왜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를 지었나?
왜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었나?
왜 덕수궁을 미술관으로 만들었나?
왜 남산에 신궁을 지었나?
왜 성균관 앞에 경성제국대학을 세웠나?
왜 장충단에 이토 히로부미의 추모 사찰을 지었나?
이 책은 일제가 한국인의 민족성을 말살하려고 훼손한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등 조선의 궁궐들과 식민지 지배를 위해 지은 조선총독부, 조선 신궁, 경성제국대학 등 열 가지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해방 이후 일제가 지은 건축물을 청산하는 과정을 청소년 눈높이에서 쉽게 알려 준다.
일제는 조선의 궁궐들 대부분을 훼손했는데, 경복궁은 흥례문과 전각들을 허물고 조선총독부를 지었고, 덕수궁은 미술관으로, 창경궁은 동물원으로 만들었다. 태조 이성계와 단군 왕검을 모시는 국사당이 있는 남산에는 일본 신과 메이지 일왕을 기리는 조선 신궁을 지었고,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인 성균관은 교육 기능을 없애고 그 앞에 경성제국대학을 만들었다. 고종이 군인들의 희생을 기리려고 만든 장충단에는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당을 지었다.
대한제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환구단을 허물고 그 자리에 일본인이 묵는 조선 철도호텔을 지었고, 대한제국의 최초의 근대적 사법 시설인 평리원을 허물고 그 자리에 경성재판소를, 독립문 근처 독립공원 자리에는 서대문 형무소를 지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투사들은 경성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감금되었다.
한편 일제는 한국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며 중국과 만주로 뻗어 나가기 위한 병참 기지로 만들었다. 일본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전국에 일본 왕들을 신격화하고 모시는 신사를 세우고 한국인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당시 일제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도 관청이나 학교, 백화점, 호텔 등을 17~18세기 유럽에서나 봄 직한 형태로 지었다. ‘탈아입구(脫亞入歐)’라 하여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의식주 생활 전반에서 빠르게 유럽식을 받아들였고, 이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일제가 훼손한 궁궐들을 지금도 복원하고 있으며, 일제가 지은 조선총독부는 해방 이후 중앙청과 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50년 만에 철거했다. 일제의 주요 건축물 중 철거되지 않고 남은 건물들은 박물관이나 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건축으로 살펴본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건축이 당시 시대 상황과 어떻게 맞물려 작용했는지 알려 주고 있다. 건축가가 되고 싶거나 건축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청소년들에게 건축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저자

서윤영

건축과관련된사회,문화,역사이야기를글로쓰는건축칼럼니스트이다.명지대학교대학원에서건축공부를시작했고,지금은고려대학교에서박사과정을공부하고있다.홍익대학교,인하대학교등에서강의를했다.

건축설계사무소에다니면서온라인신문에칼럼을연재한것이계기가되어첫책『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집』을펴냈고그뒤로는철근과콘크리트가아닌,말과글로집을짓는일에전념하게되...

목차

머리말일제강점기건축은당시시대상황과어떻게맞물려있을까?

1부.일본의침략과조선의궁궐

1.20세기일본제국주의의특징
유럽식민지vs일본식민지
유럽을모방한일본식건축
일본근린제국주의의한양지우기
군사제국주의

2.산업박람회장이된경복궁
경복궁중건과아관파천
경복궁에서개최된조선물산공진회
흥례문을헐어내고총독부를짓다
다시시민의품으로

3.미술관이된덕수궁
경운궁중건과한성개조사업
우리나라에지어진최초의서양식궁전
덕수궁앞에들어선경성부청사
미술관이된덕수궁
서울도서관이된경성부청사

4.동물원이된창경궁
순종즉위와창덕궁
창경궁은왜‘창경원’이되었나?
제관양식으로지은‘이왕가박물관’
창덕궁-조선의역대왕들이가장오래머물렀던공간

2부.민족성을말살하는일제의건축물

5.함춘원과성균관의수난
창경궁후원에세워진대한의원
성균관의교육기능을없애다
일본의여섯번째제국대학,경성제대
대학의거리가된봄의정원

6.민족성을말살하는조선신궁
일제의유화정치와신궁건립
조선신궁과경성신사
전국거점도시에들어선일본신사
전시체제기호국신사의등장

7.이토히로부미추모사찰,박문사
별기군해체후들어선경성운동장
장충단의이토히로부미추모사찰
의류디자인중심지동대문

3부.건축으로보는일제잔재청산

8.종로에서명동으로바뀐상권
선혜청과육의전
은목전이세운은행,광통관
식민지경제의두축-은행과백화점
해방후찾아온변화

9.경제수탈의출발지,경성역
산업혁명과식민지배의상징-철도
군사기지의도시,용산의성장
도시구조를바꾼식민지배
한반도를가로지르는철도중심지-경성역
금단의땅에서시민의공원으로

10.해방후일제건축의청산
한국재벌의일제잔재
독재정권의‘일본따라하기’
70여년이걸린일제잔재청산

출판사 서평

<본문에서>

일제강점기에지어진건축물중대표적인것이경성역사(현문화역서울284),조선은행(현한국은행화폐박물관)등인데,17~18세기유럽에서나봄직한형태로고풍스럽습니다.예술사조에서는이미모더니즘이유행하던20세기초반이었지만,건축에서는때아닌복고바람이불고있었습니다.유럽을모방하던일본은시대에뒤떨어진네오르네상스,네오바로크양식을답습했고그것이한국에그대로이식되었기때문입니다.-본문에서

1945년해방이되어일제는물러갔지만총독부건물은대한민국의중앙관청인중앙청건물로사용되었습니다.1950년에발발한한국전쟁으로서울의건물은대부분파괴되었고중앙관청을새로지을여력이없어기존총독부건물을수리하여사용한것입니다.그래서1950~80년대초중반까지총독부건물은‘중앙청’으로불리면서정부중앙관청역할을했습니다.-본문에서

평리원을헐고지은경성재판소는해방후대법원으로사용되다가1995년대법원이서초동으로이전한뒤서울시립미술관이되었습니다.독립공원자리에있던서대문형무소는해방후에도교도소로사용되다가1987년교도소가경기도의왕시로이전하고지금은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되었습니다.일제강점기독립투사를투옥했던시설이그대로재현되어있어당시의모습을엿볼수있습니다.-본문에서

창경궁에는뜰과연못에온통꽃나무가심어진가운데박물관,동물원,식물원등유럽제국주의시절에성행하던시설이모두들어섰습니다.이름조차‘창경원’으로바꾸어버리면서조선의궁궐을한낱놀이공원으로만들었습니다.1924년부터는벚꽃이피는4월이면창경궁곳곳에600여개의전등을달고밤에도벚꽃놀이를즐기게했습니다.-본문에서

식민통치는크게정치와경제로나누어생각해볼수있습니다.경제는정치권력과달리민간자본에의해움직입니다.하지만기존의것을제압하기위해그것을대체할새로운시설을인근에둔다는점에서정치권력과똑같은행태를취했습니다.일제는종로에있던육의전과시전을대체할백화점을명동에세웠고,은목전상인들이은행을세우자이를제압하기위해조선은행을세웠습니다.-본문에서

식민지배는그나라의지리적구조까지도바꾸어놓습니다.경부선(경상도),호남선(전라도),경의선(평안도),경원선(함경도)의네철도는한반도를X자형으로가로질렀습니다.북쪽을연결하는경의선과경원선의시발역은용산이었고,남쪽을연결하는경부선과호남선의시발역은경성역이었습니다.북쪽은주로군사수송목적이었고,남쪽은물자수탈이목적이었습니다.-본문에서

조선총독부는중앙청이되었고,경성부청사는서울시청사가되었습니다.경성재판소는법원이되었고,서대문형무소는교도소가되는등일제가만들어놓은건물은해방후에도같은용도로사용되었습니다.해방후한국전쟁이일어났고모든것이부족한상황에서새로짓기가쉽지않았기때문입니다.대략1990~2000년대이후부터새건물로이전하기시작했고,기존건물들은대개박물관이되었습니다.-본문에서

18~19세기유럽에서역사주의건축이등장하여네오르네상스,네오바로크가유행했고일본도이를모방하여조선총독부나조선은행등을지었습니다.한편유럽양식을일본식으로개조한것이제관양식,흥아양식입니다.몸체는철근콘크리트에지붕만일본식으로얹었습니다.그리고이를다시모방한양식이바로콘크리트벽체에한옥지붕을얹는이른바‘박정희스타일’혹은‘육영수한옥’입니다.1960~70년대우리나라에서만유행한독특한양식입니다.-본문에서

전두환정권시기에지은독립기념관을끝으로,일본제관양식의한국식버전이라할수있는‘박정희스타일’한옥이더는지어지지않고있습니다.그시작은2000년대초반에지어진용산국립중앙박물관입니다.지나치게현대적인모습이라는비판도있지만,이때부터우리건축이비로소제관양식혹은‘박정희스타일’을탈피했다고할수있습니다.-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