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
일제강점기에지어진건축물중대표적인것이경성역사(현문화역서울284),조선은행(현한국은행화폐박물관)등인데,17~18세기유럽에서나봄직한형태로고풍스럽습니다.예술사조에서는이미모더니즘이유행하던20세기초반이었지만,건축에서는때아닌복고바람이불고있었습니다.유럽을모방하던일본은시대에뒤떨어진네오르네상스,네오바로크양식을답습했고그것이한국에그대로이식되었기때문입니다.-본문에서
1945년해방이되어일제는물러갔지만총독부건물은대한민국의중앙관청인중앙청건물로사용되었습니다.1950년에발발한한국전쟁으로서울의건물은대부분파괴되었고중앙관청을새로지을여력이없어기존총독부건물을수리하여사용한것입니다.그래서1950~80년대초중반까지총독부건물은‘중앙청’으로불리면서정부중앙관청역할을했습니다.-본문에서
평리원을헐고지은경성재판소는해방후대법원으로사용되다가1995년대법원이서초동으로이전한뒤서울시립미술관이되었습니다.독립공원자리에있던서대문형무소는해방후에도교도소로사용되다가1987년교도소가경기도의왕시로이전하고지금은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되었습니다.일제강점기독립투사를투옥했던시설이그대로재현되어있어당시의모습을엿볼수있습니다.-본문에서
창경궁에는뜰과연못에온통꽃나무가심어진가운데박물관,동물원,식물원등유럽제국주의시절에성행하던시설이모두들어섰습니다.이름조차‘창경원’으로바꾸어버리면서조선의궁궐을한낱놀이공원으로만들었습니다.1924년부터는벚꽃이피는4월이면창경궁곳곳에600여개의전등을달고밤에도벚꽃놀이를즐기게했습니다.-본문에서
식민통치는크게정치와경제로나누어생각해볼수있습니다.경제는정치권력과달리민간자본에의해움직입니다.하지만기존의것을제압하기위해그것을대체할새로운시설을인근에둔다는점에서정치권력과똑같은행태를취했습니다.일제는종로에있던육의전과시전을대체할백화점을명동에세웠고,은목전상인들이은행을세우자이를제압하기위해조선은행을세웠습니다.-본문에서
식민지배는그나라의지리적구조까지도바꾸어놓습니다.경부선(경상도),호남선(전라도),경의선(평안도),경원선(함경도)의네철도는한반도를X자형으로가로질렀습니다.북쪽을연결하는경의선과경원선의시발역은용산이었고,남쪽을연결하는경부선과호남선의시발역은경성역이었습니다.북쪽은주로군사수송목적이었고,남쪽은물자수탈이목적이었습니다.-본문에서
조선총독부는중앙청이되었고,경성부청사는서울시청사가되었습니다.경성재판소는법원이되었고,서대문형무소는교도소가되는등일제가만들어놓은건물은해방후에도같은용도로사용되었습니다.해방후한국전쟁이일어났고모든것이부족한상황에서새로짓기가쉽지않았기때문입니다.대략1990~2000년대이후부터새건물로이전하기시작했고,기존건물들은대개박물관이되었습니다.-본문에서
18~19세기유럽에서역사주의건축이등장하여네오르네상스,네오바로크가유행했고일본도이를모방하여조선총독부나조선은행등을지었습니다.한편유럽양식을일본식으로개조한것이제관양식,흥아양식입니다.몸체는철근콘크리트에지붕만일본식으로얹었습니다.그리고이를다시모방한양식이바로콘크리트벽체에한옥지붕을얹는이른바‘박정희스타일’혹은‘육영수한옥’입니다.1960~70년대우리나라에서만유행한독특한양식입니다.-본문에서
전두환정권시기에지은독립기념관을끝으로,일본제관양식의한국식버전이라할수있는‘박정희스타일’한옥이더는지어지지않고있습니다.그시작은2000년대초반에지어진용산국립중앙박물관입니다.지나치게현대적인모습이라는비판도있지만,이때부터우리건축이비로소제관양식혹은‘박정희스타일’을탈피했다고할수있습니다.-본문에서